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내가 회원으로 있고 현재도 아티스트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글프로젝트2013’ 에 출품한 작품이다. 사연이 많은 작품이라 짧은 지면으로는 많은 얘기를 소개하긴 힘들지만 에피소드 한두가지라도 남겨보려 한다. 아직도 내 작업실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며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하고 애뜻한 마음이 드는 소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2013년 인천에 있는 한중문화관 기획초대로 열린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다. 100호와 10호 두점을 함께 출품 전시하였는데 100호는 내가 소장하고 있고 10호 그림은 다른 한점과 함께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소장되어 있다. 당시 같이 하던 일을 접고 서울 방학시장에 돈까스집을 개업하면서 내가 선물로 드렸다. 이 당시의 나는 결혼후 운영하고 있던 학원경영 악화로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따라서 경제적인 부족함을 해결하려 여러 가지 돌파구를 찾아보던 시기였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내 뜻대로 내 맘대로 안되는 상황과 일들이 벌어지면서 스스로 자신감 자존감이 위축되고 그 나약함을 술에 의지하던 때였다. 우울감과 불안한 생각들과 그로 인한 모든 일들이 악순환되는 안좋은 상황들이 교차되는 시기였다. 그런 와중에 어찌어찌 서울 방학동 집 근처 우이동 제일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인연이 생겨 길거리에서 호떡을 팔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 당시 그림을 그리는 선배가 우이동 제일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분을 통해 소개받은 사람들이 호떡을 판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관심을 갖고 찾아가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에 마음먹고 호떡을 팔기로 결심을 굳히고 누나한테 융통한 약간의 보증금을 지불하고 나중에 돌려받기로 하여 마침내 내 인생에서 뜻하지 않은 호떡팔기가 시작되게 된 것이다. 같이 호떡을 팔자고 했던 선배는 안하고 ... 사실은 그 사람들도 이제 막 호떡 판매를 시작한지 얼마 안된 사람들이었다. 이 분들 생각에는 시장에서 흔히 보던 호떡을 새로운 발상으로 기름을 적게 쓰고 내용물이 다양한 호떡을 만들어 이른바 바닥부터 직접 몸으로 파는 길거리 노점상부터 경험하면서 시제품을 테스트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나중에 반응이 좋으면 노점상들을 통해 납품을 늘려가고 향후 요식업 프랜차이즈 까지 확대해보려는 야심(?)을 갖고 있던 분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운좋게 끼었다는 생각과 함께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서로 의지하며 노력해서 꿈을 이루어보자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누나에게 빌린 돈으로 호떡을 납품받아 지금도 타고 다니는 스타렉스 뒤 트렁크를 약간 개조하고 가스통과 불과 집기들을 설치하여 단속이 뜸한 길거리나 골목에서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 소개 소개로 연결된 교회 빈공터, 수락산 등산로 입구, 선배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 큰 동서가 운영하고 있던 한의원 건물 옆 등 여러 지인들의 도움으로 영업장소를 점차 넓혀가게 되었다. 급기야 나중엔 진입하기 힘든 남대문 시장과 수유역 가판대까지 진출하였다. 호떡을 팔던 2년반 남짓 많은 우여곡절과 모르던 세계, 새로운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신기한 일 등 많은 일들을 겪었는데 지면상 다 얘기할 수 없지만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는 것은 분명한 팩트다. 당시 나는 종교가 없었다. 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이상한 인연과 계기로 만난 교회 사람들과의 인연이 그쪽 입장에서는 일종의 전도가 되어 나는 결국 우이동 제일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주일예배에 매주 참석하는 신도가 되었다. 신기한 일은 지금부터다. 이 내용은 교회에서 하는 간증같은 일인데 그 내용은 이렇다. 첫 예배를 마치고 나서 그곳 교회 목사와 전도사와 함께 사진을 찍고 거기서 만든 책 한권을 받게 되었다. 끝나고 인사하고 내 차에 들어와 대수롭지 않게 받은 책을 무의식적으로 펼쳐 보았는데 생전 처음보는 ‘야베스의 기도’ 라는 제목과 문장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도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읽어 내려 갔는데 놀라운 것은 처음보는 기도 내용이 한줄 한줄 정말 당시에 내게 필요한 내용의 기도이어서 적잖이 놀랐다. 기도도 할줄 몰랐던 나에게 내게 꼭 필요한 기도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야베스의 기도를 외우고 호떡을 팔 때마다 기도하는 일이 내 삶에 벌어진 것이다. 나만을 위한 기도 야베스의 기도를 보면 이렇다.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이 기도를 호떡을 팔 때마다 외치며 그 힘든 시기를 버티며 보냈다. 나중에는 술 한잔 먹고 답답한 감정이 치솟을 때 교회에 가서 무릎굻고 ‘하나님!! 이젠 내맘대로 내뜻대로 아무것도 안됩니다. 죽이던지 살리던지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하는 장족의 발전(?)을 이루는 때도 있곤 했다. 지나보면 알게 되듯이 이제 되돌아보면 지나친 자아에 억지로 부자연스럽게 힘주며 살았던 그 억지힘을 빼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보자던 마음이 일었던 감사한 시절이었고 끝없이 추락할 것만 같았던 마음이 바닥을 치며 일어날 수 있었던 기회의 시절이었음을 이젠 느낀다. 참 감사하다. 전혀 다른 인생의 행로를 만나면서 나의 부족함을 여실히 느끼게 하던 그 시절, 그런 생활을 2년반 남짓 하던 시기에 이 작품은 제작되고 탄생되어 아직도 내곁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당시 절박했던 나의 심정과 ‘예술보다 삶이 먼저다’라는 의미로 ‘마이 라이프’라 명명하였다. 바탕은 불판을 상징하는 블랙을 칠하였고, 당시 팔았던 호떡들을 프린트하여 리페인팅하거나 찟거나 오려 붙이면서 꼴라쥬를 덧붙였다. 더불어 조형적인 요소를 감안하여 블랙 바탕에는 남대문 시장에서 일본인 관광객,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호객행위할 때 부르짖던 단어인 ‘오이시’, ‘야사이’ 같은 일본단어와 영단어들을 써 넣었다. 당시만 교회를 다니고 지금은 교회를 안 다니지만, 이 고난과 역경의 시절을 보내고 또 한번 맞닥뜨린 운명처럼 기연이 된 빛힐링과 명상을 통해 개인적인 육체와 영적 치유의 경험을 하면서 그 당시에 나에게 복음처럼 등장했던 ‘야베스의 기도’가 이젠 내 자신에 대한 참회와 반성, 그리고 현재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 타인을 위한 기도, 신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그 시절 인연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게 하여 달라고...로 변해갔고 이 때 처음 만난 기도가 지금은 매일 행하는 일상의 중요한 내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이 호떡으로 맺어진 짧고도 강한 인연이 되었던 분들과는 나중에 형편이 어려워 그랬겠지만 서로의 깊은 유대감이 받지 못한 보증금 문제로 점차 소원해지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일이 빈번해지고 내가 힘들 때 도움은커녕 돌아보지도 않는 행동들에 마음 한구석에 섭섭함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힘들 때 뜻하지 않게 등장한 소중한 인연이었고 귀한 인연이었음을 이제는 알기에 그런 조그만 생각들은 접기로 하였다. 용서가 아닌 감사의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섭섭함이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도 어찌보면 내게는 신기한 일이다. 지난시절 어둠속 무저갱처럼 내 힘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했던 나에게 다가온 이 한줄기 빛은 분명 모든 종교를 망라하고 초월한 하느님의 빛, 부처님의 빛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개인적인 경험이라 이해를 바라면서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감당할 만큼의 시험을 통해 그 고통들이 연단이 되어 알게 모르게 나를 눈뜨게 하고 알아차리게 하고 단련하신 그 뜻을 아직도 부족한 삶이지만 이제는 조금은 느끼고 있음도 참 다행하고 감사한 일이다. 모든 부질없는 시절을 거치면서 그 기나긴 무명의 시간을 살아오면서 교만과 아집속에 갇혀 참회도 하지 않은 무지함과 어리석은 나를 맑히고 밝히는 근원의 빛!! 생명의 빛!! 작금의 국내는 물론 전 지구적으로 혼란하고 어수선하고 힘든 시기에 상념으로나마 그 빛을 모든 이들이 알고 붙잡고 받아들여서 그 밝음의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우리의 어리석은 영혼의 마음 또한 악심이 선심으로 바뀌고 한없는 사랑으로 내리는 빛으로 은혜와 축복이 가득한 빛으로 모든 이들이 늘 행복하길 오늘도 간절히 바래본다. 지금 이 순간 오늘도 감사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 태괘(泰卦) 태(泰)는 지극히 큰 것이다. 지극히 크면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안정은 행복과 아름답고 원만함을, 화목 단결을, 번영 부강을 가져온다. 안정을 원하거들랑 반드시 소통하고 성심으로 신용을 지키며 사람을 대하라. 그러면 이해가 증진된다. 유무상통(有無相通),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융통한다. 교류에 능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사람은 군집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군집생활은 서로 협조하여야 하고 서로 어울려야 하며 교류하고 소통하여야 한다. 소통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성심으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용감하게 자아를 드러내고 자신을 분석하여야 한다. 가까운 사람과 친구에게 자신을 더 이해시키고 믿게 하고 관심을 보이게 하고 깊이 사랑하게 하여야 한다. 오늘날은 경쟁의 시대다. 국가와 국가 간에 다투어 발전하는 시대다. 그렇기에 소통을 더 강화하여야 한다. 어디에서나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태,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오니 길하여 형통할 것이다. 천지가 교합해 만물이 소통되며 상하가 교합해 그 뜻이 같다.” 무슨 말인가? 사람 마음이 크면 순조롭게 왕래하고 교류에 능숙하다. 인간관계가 순조로우면 부유해지고 운수대통,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된다. 만약 천지간이 소통되면 만물은 막힘없이 통할 것이다. 때맞춰 비가 오고 바람이 불게 될 게다. 물과 물고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활짝 핀 온갖 꽃이 비단같이 펼쳐지고 큰 과일이 주렁주렁 열릴 게다. 사람과 사람이 소통되면 이해가 증진된다. 서로 겸양하고 의기가 투합 한다. 지향하는 바가 같게 된다. 정치가 잘 이루어져 인심이 부드러워지게 된다. 그야말로 국태민안이다. 소통은, 사람 사이에서 자아를 표현하고 감정을 토로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형식을 통하여 피차간에 이해를 증진시키고 감정을 배양하여 장벽과 오해를 없애는 과정이다. 막 세상에 나온 갓난애는 말은 못하지만 응애응애 울 때 배가 고픈지 응가 했는지 어머니는 확실하게 안다. 시각장애인 학교의 학생은 자연적인 언어로 대화하지는 못하지만 수화로 피차간에 일반인처럼 비할 데 없이 순조롭게 교류한다. 정각장애 친구는 존재하는 사물은 보지 못하지만, 점자와 말소리 소프트웨어가 출현하면서 일상적으로 책 읽고 쓰며 인터넷에 접속해 출판 매체나 인터넷으로 자기 생각과 사상을 표현할 수 있다……. 어쨌든 어떤 처지나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소통하려 한다. 소통은 인류생활 중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울음소리든 손짓이든, 눈빛이든 웃음이든, 포스터든 표어든 상관없다. 모든 것이 소통이다. 소통은 일치단결해 사업을 구축하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나 틈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제때에 소통하고 풀지 않으면 점점 더 매듭지게 되고 더욱 꽉 쪼이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고 ‘매일매일 만나면서 낯은 익으나 내면 깊은 곳에는 벽이 생기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업무할 때 소통해야만 협조가 긴밀하게 이루어지면서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생활하면서 소통해야만 사람 사이에 관심과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 사상에 있어서도 소통해야만 오해를 없애고 문제에 대한 인식이 통일될 수 있다. 감정에 있어서도 소통해야만 우의와 정감을 증진시킬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진정한 소통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 그저 자기 의견과 일치되는, 뜻 맞는 사람과 한데 뭉치기만을 좋아한다. 어떤 이는 자기 의견과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절대 접촉도 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남과 어우러지지 못한다. 어떤 이는 가까운 사람에게는 마음의 문을 열고 오만소리를 다하면서도 여타 사람에게는 입을 다물고 말을 삼가면서 교류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직업적인 왕래에만 집중하고 감정 교류나 사상적 소통은 소홀이 한다. 그게 오래 지속되다보면 필연적으로 간극이 생기고 단결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사람 사이에 소통이 부족하게 되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이는 늘 독선적이라 진리는 자기 쪽에만 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과는 비굴하게 교류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어떤 이는 매일매일 만나기에 상황도 확실하고 문제도 분명하니 군더더기 ‘번쇄철학’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어떤 이는 마음속에 늘 ‘두려움’이라는 글자를 새겨두니, 걱정이 수두룩하여 의견을 교환할 때 내심을 보여주고 실정을 얘기하면 체면을 깎일까 두려워한다. 문제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이 문제를 틀어쥐고 놓지 않아서 자신에게 ‘후환’이나 ‘말썽’을 남길까 두려워한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많은 사람이 소통은 효과를 볼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여긴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소통이 직장생활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끝내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하는 소통을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테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자신의 저작 속에 끊임없이 제시하였다. “한 개인이 성공하느냐 못하느냐는 타인과의 소통능력에 따라 85%가 결정된다. 전문지식이 차지하는 것은 15%에 불과하다.” 소통은 피차의 관점을 서로 교환한 후 쌍방이 이해하고 일치시키는 과정이다. 소통은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경청한 후 다시 당신의 관점을 상대의 마음속에 심어놓는 일이다. 소통은 이념을 표현하여 타인이 받아들이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지지자가 확실히 많다. 다른 사람이 그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분명 최고의 세일즈맨이다. 고객이 그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이다. 아랫사람을 이해하기에 아랫사람도 그를 믿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분명 뛰어난 연설자이다. 청중의 마음이 그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소통을 잘하는 어머니에게는 말 잘 듣는 자녀가 있다. 소통이 있는 혼인이라야 행복하게 된다. 소통의 방식으로 학생을 교육할 수 있는 교사에게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소통이 필요하다. 유감인 것은 대부분은 소통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학교에서도 우리에게 어떻게 소통하여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못한다. 소통이란 우리를 머리 아프게 만드는 어려운 일이 결코 아니다. 다음 몇 가지에 주의하기만 하면 된다 : 소통은 상대방이 먼저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먼저 들은 후에 표현한다. 칭찬, 칭송을 기억하라. 상대방의 정확한 관점을 긍정하라. 관점이 충돌하는 상황이 생기면 반드시 기억해 둬야 한다, 자기 관점은 완곡하게 표현하라,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질책하지 마라. 어조를 중시하라. 단호하게 거부하지 말라. 상대방의 저항, 대치를 최선을 다하여 모면하여야 한다. 소통하는 방식은 많다. 반드시 배워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방법이 없다. 그 방법에 정통하게 된다면 성공할 희망이 커진다. 여러 직업에서 성공한 사람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소통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서 한 번 살펴보라. 성공한 광고는 가장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리괘(履卦) 리(履)괘는 조심하게 행동하는 것을 상징한다. 호랑이 꼬리 뒤를 따라 길을 가는데 호랑이는 고개를 돌려 사람을 물지 않는다. 당연히 형통하고 순조롭다. 이 괘는 사람의 실천은 반드시 행위 준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조심하고 신중하며 겸손하고 예가 있어야 하며 행위에는 법칙이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사해에 우환을 남긴다. 한 순간도 신중하지 않으면 백년의 우환을 남긴다. 일의 마지막에 처음처럼 신중을 기하면〔신종여시(愼終如始)〕 망칠 일이 없다. 위험한 지경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역』은 말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도 사람을 물지 않는다. 형통하다.” 호랑이는 양강(陽剛)의 동물이다. 호랑이 꼬리는 사람을 물지 않지만 호랑이 꼬리를 밟으면 위험하게 된다. 조심하게 행동해야만 비로소 ‘형통’하게 된다. 어디에서든지 조심하게 행동하라는 말이다. 연못 위를 밟는 것과 같다. 주의하지 않으면 빠지게 된다. 군자는 대의를 잘 알아야 한다. 예의를 따라 행하면 분명코 질서가 정연하게 된다. 이괘는 행위 준칙을 따라서, “신을 섬기고 복을 얻는다.” 라는 것처럼 경건하고 정성스러워야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본래 밟아 나가는 대로 나아가면 허물이 없다.”1) 지위가 낮다. 위에도 상응하는 바가 없다. 무명옷을 입은 선비와 같다. 벼슬길에 들어간 적이 없다. 이때는 사물의 본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겸손한 모습으로 조심하게 나아가면 어떤 위험도 있을 수 없다. “은사는 바르고 길하다./은사가 바르면 길하다.”2) 길이 평탄하고 순풍에 돛을 올린 듯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너무 흥분해 모든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겸손, 태연한 태도를 유지하여야 한다. 분수에 맞지 않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유명한 기업가인 이가성(李嘉誠)은 언론과 인터뷰할 때 두 가지를 요구하였다. “당신이 어떻게 쓰던 상관없습니다. 다만, 첫째 타인에게 죄짓지 마십시오. 둘째, 남들이 나를 질투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사람은 말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이 자기를 칭찬해서는 안 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이 어떤 성취를 이루었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재능과 식견, 학문이 높은 사람일수록 겸손하게 자신을 낮춘다. 자신은 더 깊이 연마하려 애쓴다. 한 단계 더 높이려 노력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포용하는 풍도를 갖추고 있고 비평을 받아들이는 아량을 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정통하지 못한 일에 아무렇게나 의견을 내서는 안 된다. 전문가가 들으면 자신이 말한 학식이 얕다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애꾸눈이 능히 보며 절름발이가 능히 밟는다.” 성급하게 나아가는 형상이다. 마치 애꾸눈이 억지로 보려고 하거나 절름발이가 강행하는 것과 같다. 경솔하게 행동하면 호랑이 꼬리를 밟게 되고 잡아먹히게 된다. “호랑이 꼬리를 밟으니 사람을 잡아먹는다.”3) 이 말이 그 뜻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 라는 것은, 호랑이 뒤를 쫓아가는 것이다. 비록 모골이 송연하지만, “조심하고 두려워하면 끝내 길하다.” 조심하면서 공경하고 삼가면서 행하면 된다. 시시각각 경계심을 잃지 않으면 된다. 낮은 내를 건너면서도 깊은 강이라 여기면 끝내는 길상을 얻으리라. 그런데, “결단해 밟으나 바르더라도 위태하다.”4) 무슨 말인가?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만 아무렇게나 결단을 내리면 결과는 반드시 위험하게 된다는 말이다. 리(履)는 사람의 행동, 실천이다 ; 리(履)는 또 예(禮)이다. 사람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행위 준칙이다. ‘호랑이 꼬리’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다. 사물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한도요 기준이다. 호랑이 꼬리는 본래 사람을 물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객관 존재를 돌아보지 않고 고집스럽게 호랑이 꼬리를 밟으면 사람을 문다. 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두 잎을 자르지도 않으면 나중에 도낏자루를 찾아서 잘라야 하는 것처럼 한 때의 실수는 백 일이 걸려도 수습하기 어렵게 된다. 이 괘가 명백히 논하는 행위 준칙은 다음같이 개괄하고 있다. 첫째, ‘소리(素履)’다. 사물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다. 겉을 보기 좋게 꾸미지 않는다. 순리를 따라 발전하는 것이다. 둘째, ‘유인(幽人)’이 되는 것이 좋다. 사물이 순리대로 발전할 때 흥분해 모든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과 평안하고 고요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셋째, ‘색색(愬愬)’하여야 좋다. 시종 조심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상궤를 벗어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넷째, “밟아온 길을 보고 상서로움을 살핀다.〔시리고상(視履考祥)〕” 그래야 한다. 늘 자신의 행위를 조심해 살펴보아야 한다. ‘묘리(眇履)’는 맹목적인 행동이다. ‘파리(跛履)’는 억지로 하는 행위다. ‘결리(夬履)’는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위험하다. 가장 멋있는 싸움은 사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득실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싸움이다. 성공하는 청사진을 다지는 데에는 4가지 요소가 있다. “계획을 잘 세워 성사시킨다〔호모이성(好謀而成)〕, 구역을 나누어 일을 처리한다〔분단치사(分段治事)〕, 서두르지 않아도 속도가 난다〔부질이속(不疾而速)〕, 하는 것이 없어도 다스려 진다〔무위이치(無爲而治〕).” 한 고리 한 고리 서로 꿰어있듯 이 네 가지는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서로 인과관계를 이루고 있다. ‘계획을 잘 세워 성사시킨다’는, 모든 일을 심사숙고하고 계획을 세워 의논하여서 결정한 후 움직인다는 말이다. ‘구역을 나누어 일을 처리한다’는, 사물의 이치를 통찰하고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진행시켜 착실히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는 말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속도가 난다’는 난제, 곤란은 당신이 그 일을 하기 전부터 이미 알 수 있고 충분한 준비를 한 까닭에 속에 이미 타산이 있어서 기회가 도래할 때 스스로 신속하게 파악하여 일발적중, 한 번에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는 것이 없어도 다스려 진다’는 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모든 일이 적절하게 안배가 된 후 사물, 사건이 순리대로 자연스레 발전하도록 하여야 한다. 강요해서는 안 된다. 평온하고 고요한 심리 상태를 유지하면서 최후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도 듣지 않고 보지 않는 곳에 있다 하더라도 면목 없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생활이 곤궁해 초라하게 되어서 뜻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의지, 목표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성공할 능력이 있는 영웅이라 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성취는 평상시에 방울방울이 모여 이루어진다. 의지, 인품과 덕성, 사람을 대우하는 것 어느 하나 작은 것부터 시작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일생동안 사업이 실패하느냐 성공하느냐는, 사람이 주의하지 않는 사소한 일에 달려있기도 한다. 장래성 있는 사람은 큰 곳에 눈을 두고 작은 곳에서 시작한다. 실패하더라도 나태하거나 거칠어지지 않는다. 신중함은 용감함의 한 부분이다. 독일에 명구가 하나 있다. “엄격함과 신중함은 지혜의 어머니이다.” 중국에도 옛말이 있다. “부지런히 일하면 가난을 극복할 수 있고, 삼가고 조심하면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 재난은 신중한 집안의 문 안에 들어서기 어렵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심하며 신중하고 예를 따라야 한다. 경솔, 충동, 건성 등 좋지 않은 행동 습관을 억제하고 언제나 이성을 가지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 履卦 ䷉ : 天澤履(천택리) ; 건(乾: ☰)상 태(兌: ☱)하 호랑이 꼬리를 밟는데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履虎尾,不咥人,亨.) 평소의 본분대로 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평소의 본분대로니 가서 허물이 없을 것이다.(素履,往,无咎.) 다니는 길이 평탄하니, 은자[幽人]라야 곧고 길하다./ 다니는 길이 평탄하니, 은자이다. 곧고 길하다.(履道坦坦,幽人貞吉.) 애꾸눈이 볼 수 있고, 절름발이가 걸을 수 있다. 그러나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사람이 물리니 흉하고, 무인이 대군이 될 것이다.(眇能視,跛能履.履虎尾,咥人,凶,武人爲于大君.) 호랑이 꼬리를 밟으니, 두려워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으나, 두려워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履虎尾,愬愬,終吉.) [傳] 리괘(履卦)는 「서괘전」에 “만물이 길러지고 나서 예가 있게 된다. 그래서 리괘(履卦)로 받았다”라고 했다. 만물이 모이면 크고 작음의 구별과 높고 낮음의 등급과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이 있다. 이것이 만물이 길러진 뒤에 예가 생겨나며, 리괘가 소축괘의 뒤를 이은 까닭이다. ‘리(履)’는 예이니, 예는 사람이 실천한다. 괘상이 하늘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있는 것은 위아래의 직분과 신분의 높음과 낮음을 뜻한다. 이치의 마땅함이고 예의 근본이며 떳떳이 행해야 할 도이다. 그러므로 ‘리(履)’라고 하였다. ‘리(履)’는 밟는 것[천(踐)]이고, 까는 것[자(藉)]이다. 물건을 밟는 것이 ‘천(踐)’이고 물건 아래에 까는 것이 ‘자(藉)’이다. 유약한 음이 굳센 양에게 깔리는 것이므로 ‘리(履)’라고 했다. “굳센 양이 유약한 음을 밟는다”라고 말하지 않고, “유약한 음이 굳센 양에게 밟혔다”라고 말한 것은 굳센 양이 유약한 음을 타는 것은 떳떳한 이치이기 때문이니 굳이 말할 필요 없다. 그러므로 『주역』에서는 오직 “유약한 음이 굳센 양을 탄다”라고 말하며, “굳센 양이 유약한 음을 탄다”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굳센 양에게 밟히고 깔린다”라고 한 것은 바로 자신을 낮추고 순순히 기뻐하며 응하는 뜻을 나타낸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素履往,無咎. (素履往: 소박하게 밟고 나아가다) 2) 幽人貞吉 ; 幽人,隱士. 3) 履虎尾,咥人. 4) 夬履貞勵.
미루고 미루다가 이제야 밤늦게 글을 쓴다. 이 작품은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제작되었던 작품으로 미발표작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나서 서울 장모님집에 있을때 2층에 있는 빈방을 작업실로 쓰면서 수묵으로 제작했던 소품 25점 가량의 군상(群像) 시리즈 중 하나다. 가로 세로로 얽히고 설키게 표현된 군상들 가운데 작품 우측 아래 약간 진하게 표현된 형상이 곧 나의 모습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는 그림이다. 이 많은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 화두처럼 끈임없는 질문을 던지던 시절... 방황의 시절, 술과 자학의 시절, 객기와 방탕의 시절, 때늦은 결혼을 하고 막막한 현실에서도 희망의 꿈을 꾸던 시절. 그 또한 젊음이었으리라. 지나보니 이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나는 준비되지 않은 아빠이자 남편이자 자식이었다. 그리고 자아의 교만과 아집, 객기와 방탕을 스스로 저지르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한편으로는 고고한 도(道)를 좇는 어리석고 어두운 무명(無明)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또한 폭음으로 자학을 일삼고 그것이 어둠이 되어 향후 가족에게도 마음의 상처가 되어, 잘못된 인과와 과보가 되어 모든 관계와 모든 일들이 힘들어질 줄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스스로 만든 어리석고 어둡고 무거운 시절을 보내며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 보려고 ‘나는 누구인가’를 그림으로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감사하게도 이젠 애기할 수 있다. 잘못된 인과와 과보, 실수를 알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 선택은 두가지밖에 없다. 사느냐 죽느냐처럼. 그러나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 노력도 중요하지만 내 경험상 내 힘이 아닌 또다른 보이지 않는 힘도 작용하고 있음을 주지하지 않을수 없다. 쉽지 않지만 스스로 힘을 빼고 순리와 자연에 맡기는 삶이 그것이다. 사실 모든일이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고통가운데 지나간 부족하고 부질없는 것들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통해 어둠에서 나와 빛이 있는 곳으로 향해야 한다. 그것이 변화고 삶이고 생명의 길이다. 다같이 행복해지는 길! 내가 바로 서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은 우리에게 변하라는 시그널이다. 과거의 그림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변화된 오늘의 나의 모습을 본다. 입도한지 얼마 안된 친구가 옛날에 살던 동네에 자기 건물을 매입, 1층에 사무실 2층에 와인바를 창업하려 하는 곳에 들렀다. 부탁을 받고 그곳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였다. 참 감사한 일이다. 함께 아는 친구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술을 곁들인 저녁까지 먹고 새로운 인연도 맺었다. 서로 모르는 얼굴도 한다리 건너보면 인연이 연결되어 있는 제주는 참 좁은 동네임을 새삼 또 느낀 하루다. 1차를 하고 비가 온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몇몇이 근처로 자리를 옮겨 파전과 오뎅탕 안주에 2차까지 하고 들어와 연재 소개할 그림을 이것저것 뒤적여보다가 이 그림을 뽑아놓고 이제야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변화된 나의 모습은 술과 관련있다. 연재를 통해서 슬쩍 고백하기도 했지만 몇 번의 특별한 상황과 실수를 빼고 근 8년간 소주 독주를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맥주는 친구들끼리 모일 땐 가볍게 마실 때가 있고 집에서도 가끔 캔맥주 한 캔 정도 할 때가 있다. 어떨 땐 미술부 선배한테 최근에 배운 스킬로 소주잔에 물을 따르고 난 ‘수주(水酒)’ 라 하고 양해를 구하고 건배도 하면서 분위기를 함께 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술자리를 지켰고 2차에서는 수주만 들이켰다. 그리고 술자리가 파하고 비가 오는 바람에 택시까지 안 잡혀 술 안먹은 내가 친구들을 집에까지 차로 데려다주고 온 것이다. 이만하면 술로 따지면 과거의 내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술을 억지로 안마시는 것은 아니고 어느 순간 술 생각이 나지 않게 된 것이다. 참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누군가는 총량제에 들어서서 그렇다고 하긴 하지만 어쨌든 나를 새롭게 살게 해준 생명의 빛에 감사하다. 이젠 지나간 것도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행복할 때가 많아 감사하다. 비록 젊을 때 과한 술로 많은 시간을 부질없이 인생을 낭비하긴 했지만 낭만과 좋은 추억이 깃든 멋진 술도 많았다. 즐겁고 행복한 술자리들이 되면 좋겠다는 의미로 혼자만의 술을 드시는 사람에게도 멋진 술을 드시라는 의미로 이태백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 제4수중 1수를 남기며 두서없는 이글을 마무리한다. 꽃밭사이 술단지 하나놓고 대작할 이 없어 홀로 마시는 구나 잔을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니 달과 나와 내그림자가 비춰서 셋이 되었네. 달은 본래 술을 마실줄 모르고 그림자는 거저 흉내만 낼뿐이다.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을 삼아 봄날을 맘껏 즐겨보노라. 노래를 부르면 달은 서성이고 춤을추면 그림자가 어지럽도다. 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 취한뒤엔 각각 흩어지니 영원히 엉킴이 없는 우정맺고저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세.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중국 혁명 중에서 2만 5천 리 장정은 세계전쟁사상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는 장개석(蔣介石)이 제5차 ‘토벌〔위초(圍剿)〕’을 진행하는 중이었다. 왕명(王明) 등은 적아의 역량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주동적으로 앞서, “출격해 국경 밖에서 적을 막아야 한다.” 라고 단편적으로 주장하였다. 모택동(毛澤東) 등이 제기한 깊숙이 적을 유인해 유격전을 전개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단호하게 배척하였다. 결국 중앙 근거지에서 홍군의 ‘토벌 반격’은 실패하였다. 왕명 등은 모택동 등이 제기한 잠시 산악지대로 철수해 유격전을 벌이고 시기를 봐서 반격하자는 주장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그 후에는 게릴라주의를 실행하여, 한 방면의 홍군을 중앙근거지에서 출수시켜 장정을 시작하였다. 장정은 절박한 가운데 어쩔 수 없이 실행했다고 할 수 있다. 주요 원인은 당 지도부 사이에 ‘좌’경에 따른 잘못이 생겼기 때문이다. 장정 초기에도 그런 잘못이 계속되면서 홍군은 참담한 손실을 맛봤다. 나중에 지도부 일부가 실수를 인지하였다. 원래 노선을 계속하면 혁명역량이 전멸하게 된다고 보았다. 홍군을 구해야만 했다. 특히 존의회의(遵義會議) 이후 모택동 중심의 지도부가 실제 권한을 얻어 ‘좌’경 잘못을 바로잡았다. 홍군을 정확한 철수 노선으로 이끌면서 천신만고 끝에 섬서성 북쪽에 도착해 유지단(劉志丹)이 이끄는 섬서북홍군(陝西北紅軍)과 합류하였다. 장정은 홍군의 역량을 보존하는 작용을 했다. 이후 혁명에 힘을 축적하게 됐고 동시에 훈련하면서 부대의 전투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다. 각고 분투하는 홍군의 품성을 배양하였다. 도착한 곳에서 혁명사상을 선전할 수 있었다. 홍군과 혁명에 민중의 지지를 얻게 됐다. 이것이 바로 정도를 걸으면 위기는 있으나 허물이 없다는 뜻의 본보기이다. 처음 사회에 나설 때 우리 모두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게 된다. 꿈꾸고 희망을 가진다. 청춘의 빛에 충만해 있다. 기세 드높게 사회에 들어선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졌던 희망은, 결과적으로 현실이 되지 못한다. 투자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게 맞느냐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탓한다.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한다. 의기소침해지고 낙담한다. 실망하고 고뇌하고 방황한다. 그렇게 생활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삶은, 생활은 크던 작던 늘 우리를 놀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에 깊은 구덩이를 파놓는다. 우리 희망의 씨앗에 한 겹의 찬 서리를 얼려 놓는다. 우리가 분투하려는 격정 속에 냉수를 끼얹는다. 좌절을 많이 겪은 기구한 운명을 가진 사람은 하늘이 늘 사람을 놀린다고 탄식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삶은, 생활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것은 우리가 삶이 고난이요 걸어가는 길이 평탄치 않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에게 고통 속에서 자신을 연마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아름다움 뒤에 고난이 가득하고 무지개가 나타나기 전에는 늘 비바람을 겪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우리 희망이 파괴될 때 우리는 굳세어야 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곧추서 있어야 한다.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하고 알아주지 않는다는 원망과 분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환경이 좋다고 해서 너무 기뻐하거나 처지가 나쁘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우순풍조(雨順風調) 속에서나 광풍폭우(狂風暴雨) 속에서나 우리는 시시각각 평상심을 유지하여야 한다. 잠시의 실패가 어찌 영원한 완결이던가. 살아가는 과정 중의 짧은 간주곡일 따름이다. 하나의 음표요 충고요 교훈이다. 돌이켜 사색하도록 특별히 남겨둔 변통의 여지다. 멈추어 서는 것은 현명한 후퇴다. 한 걸음 물러서면서 더 한 층 굳건히 노력하여야 한다. 충분히 준비하여야 한다, 다음 단계의 두 걸음 나아감을 위하여. 송골매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날기만 하면 하늘 높이 오른다. 울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한 번 울기만 하면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도 있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 『주역』은 말한다. “소축은 형통하다. 우리 서쪽 들판에서부터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잠시 동안의 작은 멈춤은 형통하다. 그때는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내리지 않는 때이기 때문이다. 아직 성숙되지 않는 단계요 시기다. 우리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 우리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우리의 원대한 포부는 아직 실현될 충분한 조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기다려야 한다. 서쪽 들판 가장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깃털이 다 자라기를 기다려야 하고 꽃이 피는 따뜻한 봄날을 기다려야 한다.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 어리석어서도 안 되고 너무 똑똑해서도 안 된다. “어리석게 보이기가 어렵다.” 이 도리를 잘 알아야 한다. 청나라 때 화가 겸 서예가로 유명한 정섭(鄭燮)의 글에서 나왔다.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며 뜻하지 않고 있노라면 후에 복으로 보답이 올 것이다.”1) 손해 보는 것이 복이라는 교훈도 알아야 한다. ‘흘휴시복(吃虧是福)’이 그것이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놓아야 할 일은 마땅히 놓아야 한다. 해야 할 말은 해야 하고 침묵할 때는 한 마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바람이 하늘 위에서 운행하는 것이 소축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문덕을 아름답게 꾸민다.” 무슨 말인가? 바람은 하늘에서 움직인다. 먹장구름이 모이기를 기다린다. 하늘에서 단비가 내리기를 기다린다. 모든 게 성숙되어 가는 중이다. 이때는 잠시 멈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잠시 멈춤은 사실 기회이기도 하다. 바로 재능과 도덕을 축적할 가장 좋은 시기요 기회다. 이 기회를 포착하여야 한다. 하늘에서 큰 비가 내릴 때, 무지개가 내릴 때를 기다리면 마음에 품은 뜻을 펼쳐나갈 수 있다. 모든 곤란은 대나무가 칼집을 따라 쪼개지듯 순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그때가 되면 원대한 계획을 펼칠 수 있다. 하늘이 우리에게 멈추라고 한 바는, 우리 노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가 갖추어야 할 지식과 재덕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가만히 마음도 풀고 긴장도 풀고 정신을 가다듬으면 된다. 충전할 때 충전하고 웃을 때 크게 웃고 울어야 할 때 대성통곡하면 된다. 제갈량은 명언을 우리에게 남겼다. “군자의 행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다. 안정되고 고요하지 않으면 먼데까지 이르지 못한다.”(「계자서戒子書」) 무슨 뜻인가? 군자는 일할 때 잡념을 없애고 근검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도덕수양을 드높여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의지를 다 드러낼 수 없다. 사상이 정밀하지 못하게 되어 원대한 목표를 실현하지 못한다. 공자는 일생을 수신하고 성정을 수양하였다. 열국을 주유하면서 각 나라의 군왕에게 도덕을 설파하였다. 사학을 열어 백성을 교화하였다. 온힘을 기울여 자신의 덕정과 인정을 악착같이 추구하였다. 부지런히 노력해, 자신의 이상사회를 위하여 필사적으로 싸웠다. 도덕과 재능은 하나하나 모이는 것이다. 축적은 오랜 과정이 있어야 한다. 고통의 과정이다. 큰 뜻을 품어야 한다. 자강하고 자립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끝까지 투쟁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고통을 기쁨으로 여기고 인생을 즐겨야 한다. 아침 첫 햇살이 우리를 향하여 손짓할 때 우리의 웃는 얼굴은 분명 찬란하리라. 봄이 대지를 감싸 돌 때 씨앗은 흙을 뚫고 나오리라. 나무 한 가득 열린 열매의 향기가 코를 찌를 때 즐거운 노랫소리는 우리 귓가를 맴돌 것이다. 우리가 의욕을 북돋을 때 성공은 우리 가까이에 다가오기 시작한다. ***** ䷈ : 풍천소축(風天小畜), 손(巽 : ☴)上 건(乾: ☰)下 소축은 형통하니 빽빽이 구름이 끼었지만 비가 오지 않음은 내가 서쪽들로부터 하기 때문이다./ 소축은 형통하나 빽빽이 구름이 끼고 비가 오지 않음이 내가 서쪽들로부터 하기 때문이다.(小畜,亨,密雲不雨,自我西郊.) 「상전」에서 말하였다. 바람이 하늘 위에 행함이 소축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서 문덕을 아름답게 한다.(象曰,風行天上,小畜,君子以,懿文德.) 소축은 형통하다. 우리 서쪽 들판에서 부터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다.(小畜,亨.密雲不雨,自我西郊.) 바람이 하늘 위에서 운행하는 것이 소축이다. 군자는 이것을 보고 문덕을 아름답게 꾸민다.(風行天上,小畜.君子以懿文德.) 주역에서는 64괘(卦)중 9번째 괘(卦)인 소축(小畜)편에서 원만하게 가정을 이끌고 이를 기반으로 작은 성공을 이루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소축(小畜) 형(亨) 밀운불우(密雲不雨) 자아서교(自我西郊)’라는 첫 구절이 나온다. 이를 쉽게 풀이하면 이런 말이다. “작은 성공이나 행복도 일찍부터 노력해야 얻을 수 있다.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 오지 않는 경우가 있듯이, 쉬워 보이는 작은 행복도 얻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집 바깥에서 기다리고만 있기 때문이다.” [傳] 소축괘(小畜卦)는 「서괘전」에 “도우면 반드시 쌓이는 바가 있다. 그래서 소축괘로 받았다”라고 했다. 물건이 서로 돕고 따르면 모이게 된다. 모임은 쌓이는 것이다. 서로 친하여 도우면 뜻이 서로 쌓이니 소축괘가 비괘(比卦)의 다음이 된 이유이다. 쌓이는 것은 그침이다. 그치면 모이게 된다. 괘가 손괘가 위에 있고 건괘가 아래에 있다. 건괘는 위에 있는 물건인데 이에 손괘의 아래에 있다. 강건한 것을 쌓고 그치게 함은 손순(巽順)함만한 것이 없다. 손괘에 의해 그치게 되므로 소축(小畜)이 된다. 그러나 손괘는 음이고 그 몸체가 유순하다. 오직 손순함으로 그 강건함을 부드럽게 할 수 있다. 힘으로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쌓는 도의 작은 것이다. 사효는 한 음으로 제자리를 얻어 다섯 양의 기뻐하는 바가 된다. 제자리를 얻음은 부드럽고 공손한 도를 얻어 여러 양의 뜻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쌓는 것이 된 것이다. 소축은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쌓음에 이른다. 쌓여 모이는 것이 작고 쌓여지는 일이 작은 것은 음이기 때문이다. 「단전」에서 오로지 육사가 여러 양을 쌓이게 하는 것으로 괘가 이루어진 뜻을 삼고 두 몸체는 말하지 않았으니, 그 중요한 것만 든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難得糊塗’ ; 정섭(鄭燮, 호 판교板橋); “聰明難,糊途難.由聰明轉入糊途更難.放一著,退一步.當下必安.非圖後來福報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