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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한상범이 본 제주찰나(36)] 그림 안에 담긴 시적 상징과 은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날씨가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맑으며 땅은 그동안 일군 땀의 수고로움 속에 풍성한 수확으로 그 보상을 받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김없이 찾아오는 계절의 시간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가을은 또한 사색의 계절이며 외로움과 고독의 계절이기도 하다. 서정적이고 낭만을 자아내는 계절인 것이다.

 

나 또한 지나보면 가을을 타는 성정이 많은 것 같다. 속절없이 가는 시간 앞에 인간의 욕망이 무상함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욕망 앞에 불면의 밤도 깊어진다. 불혹의 나이를 훨씬 지났는데도 의혹됨이 아직도 많고 하심(下心)이 아직도 익지 않는 것을 보면 젊은 계절을 그리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부질없는 과거는 소각하고 유한함을 자각하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앞서는 계절이기도 하다. 오는 겨울을 대비하는 사유의 계절, 가을이 깊어간다.

 

이 그림은 아내가 임신으로 부득이하게 친가살이를 할 때 2층방 한칸을 작업실로 삼아 수묵실험을 하며 만든 작품이다. 팍팍한 서울살이에서 남편으로 아버지로 작가로서 고민과 부담이 많이 있던 때라 그 감정과 번뇌를 수묵으로 형상화하고 상징과 은유로 표현해 본 작품이다.

 

뒤늦게 한국미술협회 노원지부 정기전에 발표하였다.

 

제목은 욕망과 추락이다. 욕망은 그림 배경에 보이듯 반복된 곡선과 직선의 결합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육적이고 성적인 형상을 드로잉함으로써 인간의 물질적 육체적 본능적 욕망의 시각적 표현을 선과 함께 알 듯 모를듯 형상의 상징과 은유로 표현되어 있다.

 

제작기법으로는 한지에 먹칠을 하고 먹지처럼 만들어 그 위에 손톱으로 곡선과 직선으로 자유 드로잉 한 것이다. 그 위에 담묵을 첨가해서 농담을 통한 입체적 분위기를 만들고 붓으로 표현할 수 없는 선의 느낌을 손톱으로 긋는 드로잉을 통해 실험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초창기 서예를 할 때 탁본에서 나오는 먹의 입자적 물성 효과와 긋는 서예의 획의 느낌을 좋아했었기에 필선의 느낌을 손톱으로 긁고 긋는 회화적 드로잉 표현으로 발전시켰고, 판화적 효과가 그림의 완성도를 더해주기 때문에 필요할 때 가끔씩 애용하는 표현 방법이다.

 

단순화된 초승달, 떨어지는 인간의 머리, 벌거벗은 여성 형태의 산 이런 형상들은 현실에서 늘 부딪히고 벌어지는 인간의 어리석은 생각, 분별심, 번뇌와 이룰 수 없는 욕구와 욕망, 결핍, 불안, 타락과 추락, 자연과 현실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요소로 그림에 등장시키고 있다.

 

곧 이런 이미지들은 이 그림의 제목인 욕망과 추락의 상징과 은유로 형상화된 것들이며 여러 의미가 있다 하겠다. 보는 사람들도 제각각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며 공감도 할 수 있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평가와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이처럼 상징과 은유를 동반한 그림은 작가 자신만의 아이콘이 되기도 하고, 개성적 독창적 형상으로 발전되어 작가의 인지도를 극대화 시키키도 한다. 쉽게 예를 들면 이중섭의 그림에 보이는 소나 아이들, 게와 같은 것도 그렇다.

 

감상자도 상징과 은유를 통해 제각각 다양한 해석과 공감을 맛보며 보이지 않는 느낌과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내면에서 발견하고 구현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이처럼 상징과 은유는 예술적 표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예로 예술, 특히 문학에 있어서 시와 그림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시화집이나 시화전처럼 시를 그림으로 표현해본 경험은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한국화에서도 고래로부터 서화일치(書畫一致), 즉 글과 그림은 같다고 보았으며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라는시중유화 화중유시( 詩中有畵 畵中有詩)가 그것이다.

 

상징은 추상적인 사실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대표성을 띤 기호나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로 정의하고 있다. 은유(隱喩) 또한 비유법의 하나로 행동, 개념, 물체 등을 그와 유사한 성질을 지닌 다른 말로 대체하는 것을 일컫는 단어다. 암유(暗喩)나 메타포(metaphor)도 유사한 의미다.

 

우리가 인식하는 것 이상의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사물의 속성, 본질적 속성을 끄집어 내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특징임으로 상징과 은유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더불어 분해, 해체, 결합, 조립 등의 조형요소로 새로운 조형적 미를 변화.발전시키며 새로움을 환기 시킨다.

 

이런 상징과 은유의 이면에는 규정된 말과 언어가 있다. 말과 언어는 사물에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기도하고, 어쩌면 인간의 존재와 삶은 철저히 말과 언어에 의해 규정되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고,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라고 했다. 말과 언어가 생각이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말과 언어를 통한 생각과 의식은 삶의 모습이 구현되는 근원의 장일 수도 있다.

 

예술이란 관조적 대상일뿐 학문이나 과학으로는 분석할 수 없다는 칸트 미학에 나는 동조한다. 학문화와 과학화는 경직성, 고정성, 구속성을 강화하여 존재의 본래성과 내적 의미를 상실케 한다고 본다.

 

그래서 규정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세계는 상징과 은유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시적 언어와 내용들은 과학적 언어와 구별된다.

 

과학적 언어는 수량화하여 객관적으로 표현되는 언어다. 반면에 시적 언어는 인간의 내밀한 감성을 자극하고 반영하는 언어이며 대상의 본질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함축성 있는 언어다. 이런 점이 한국화의 시화일체 내용과 닮았다. 그림 안에 시적 상징과 은유의 세계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동양의 자연친화사상도 그렇다.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고 자연의 생명들과 공존하고 더불어 살고자 했고, 합일하고자 했고, 그런 존재들에 늘 감사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하고, 공생하는 삶의 방식과 생명력을 추구하는 동양의 정신적, 자연친화적 삶은 현실을 넘어 상징과 은유속에 더 풍부해질 수 있다. 인디언의 생활과 언어들이 그 예다.

 

동양화는 의경(意境)과 사의(事意)의 세계다. 그것은 또한 상징과 은유의 추상세계와 다름 아니다. 이들 모두는 예술과 삶의 의의 안에서 깊이와 울림과 반향을 크게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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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중한 가을의 계절에 시집 한 권을 읽건, 보고 싶은 영화 한 편을 보건, 전시장에 가서 그림감상을 하건, 한적한 오솔길을 걸어보건 나만의 여행을 떠나 사색해 보는 것도 허허로운 삶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을 맞으며 ‘내가 지나온 세월만큼 여물고 단단해졌는줄 알았는데 그저 익숙한 길에 길들여져 있을 뿐이였다'라는 어느 누군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곧 겨울이 머지 않았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찰나찰나 잡을 수 없는 이 삶을 더없이 사랑하자.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한상범은? = 제주제일고,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나와 홍익대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담묵회 창립회원, 아티스트그룹 '정글' 회원, 민족미술협회 회원, 한국미술협회 노원미술협회 회원, 디자인 출판 일러스트작가, 한강원 조형물연구소 디자이너, 서울 제주/홍익조형미술학원 원장, 빛 힐링명상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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