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문색달해수욕장에 바다거북은 다시 돌아올까?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 8월 25일, 오후 12시 30분. 중문색달해수욕장(이하 중문해수욕장)이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입욕객뿐 아니라 여러 언론사 기자들도 함께 있었다. 또한 사람 아닌 동물도 있었으니, 바로 바다거북이었다. 매부리바다거북, 붉은바다거북, 푸른바다거북 6마리가 함께였다. 왜 갑자기 바다거북이 중문해수욕장에 등장한 걸까? 중문해수욕장은 해양수산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국내 유일의 바다거북 산란지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4차례 바다거북 산란이 확인됐다. 한반도에서는 제주도가 어쩌면 바다거북 산란지의 북방한계선일지 모른다. 그만큼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바다거북의 중요한 서식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07년을 끝으로 바다거북은 알을 낳으러 다시 제주도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CC-TV를 중문해수욕장에 오랜 기간 동안 설치하기도 했건만 끝내 바다거북의 산란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래서 2017년부터 해양수산부는 매해 중문해수욕장에서 바다거북 방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방류된 바다거북 새끼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다시 중문해수욕장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구조 치료한 바다거북도 함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독특한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유행과 기기가 등장하는 세상 속에 옛것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 일쑤다. 편리하고, 새롭고, 멋진 건물 옆에 초라하고 낡은 초가집, 기와집은 사람들의 눈에 마치 반 평균을 깎아 먹는 열등
# 바다거북에게서 우리나라 쓰레기 문제를 본다 2021년 양동우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박사팀은 2014∼2020년 사이 전국의 지자체와 연구기관이 수거해 보내온 바다거북 사체 62구의 위 내용물을 분석해봤다. 그랬더니 우리나라 연안에 널리 분포하는 해조류와 물고기 등이 자주 검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발견된 바다거북들은 단순히 해류를 따라 잠깐 들린 것이 아니라 한반도 연안과 제주도를 먹이 터와 서식지로 이용한다는 증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동거리가 수천km, 수만km에 달하는 바다거북은 우리나라를 스쳐 지나가거나 이동경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연안에 터를 잡아 먹이를 섭식하고 있는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산란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올해 제주자연의벗 바다거북 모니터링 팀이 제주도내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에서도, 제주도 표선 해중 분화구에서 특정 바다거북이 계속 터를 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서귀포시 소재 섬 부근에서도 바다거북이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즉, 제주 바닷가에 사체로 떠밀려 오는 바다거북의 뱃속에서 발견되는 내용물들은 먼 바다나 다른 나라 연근해에서 먹은 게 아니라 제주도 연안이나 근해에서 섭취한 먹이라는 것을 뜻한다. 즉 이는
# 화산섬, 제주도의 해안 인류가 우주로 먼 항해를 나아가 지구와 한참 멀어졌을 때, 뒤를 돌아 카메라를 지구로 돌려보았다. 그랬더니 거기엔 ‘창백한 푸른 점’이 있었다. 이 글은 천문학의 불세출의 고전 ‘코스모스’의 저자 칼세이건이 쓴 유명한 글이다. 이처럼 은하계의 구석, 태양계에서도 보석처럼 빛나는 지구를 멀리서 바라보면 푸른 행성으로 보인다. 푸른 행성인 이유는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구 표면 중 바다 면적은 70%가 넘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구는 물의 행성인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바다 위에서는 살 수 없다. 그래도 전 세계 인구의 2/3가 해변에서 100km 이내에 살고 있다. 제주도의 마을도 대부분 해변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물론 생활의 근거지인 용천수가 해안을 중심으로 분포한 원인이 크다) 이처럼 해변은 인류의 문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곳이다. 해변 중에서도 조간대는 핵심 지역이다. 수많은 생명활동이 일어나고 잉태되는 곳으로서 바다생태계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조간대는 밀물 때는 물에 잠겼다가 썰물 때는 물이 빠지는 지역을 말한다. 제주도의 모든 해안이 조간대에 해당한다. 제주도민들이 옛날부터 고둥,
탐라국(耽羅國) 개국 신화를 보면 고·양·부(高·梁·夫) 삼성(三姓)의 시조인 고을나·양을나·부을나 세 신인(神人)이 땅에서 솟아나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제주의 옛 이름이자 국가인 '탐라'의 시작을 보여준다. 백성이 불어나 나라의 기틀이 잡히고, 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탐라국 중심지에 '성'(城)이 있었을 것이다. 탐라의 최고 권력자가 섬을 통치했던 탐라국의 옛 성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 탐라국의 옛 자취 삼국사기와 신당서, 고려사 등 여러 기록에 따르면 탐라국은 삼국시대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탐라국은 고구려·백제·신라와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된 관계 속에 교역했고, 심지어 바다 건너 일본이나 중국과도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이를 입증할 만한 유물이 발견됐는데, 1928년 제주 산지천 하류 산지항(제주항) 축조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중국 한대(漢代)의 유물이다. 오수전(五銖錢), 화천(貨泉), 대천오십(大泉五十) 등 중국 화폐와 청동으로 만든 거울 등이었다. 오수전은 기원전 118년부터 약 900년에 걸쳐 사용됐는데 한국, 일본, 인도차이나반도 등에 걸쳐 두루 쓰이던 국제적인 무역 화폐였다. 탐라국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공무원-사업자간 유착 의혹, 엉터리 지질·동굴 조사보고 등을 자초한 동복리 제주자연체험파크의 이면엔 한 연구소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공무원 신분을 망각한 최씨가 그 스스로 소속이라고 밝힌 연구소다. 한국지질다양성연구소다. 한국지질다양성연구소는 2011년 1월13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등록 허가를 받았다. 등기에 명시된 수행 사업은 지질, 고고학 및 동굴을 조사하고 분석, 자료수집, 가치평가 등을 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다. 이와 관련한 학술조사 및 연구는 물론 학술 세미나도 개최하고 교육과 시민강좌 및 학술문화 교류도 한다. 또 정부 또는 외부로부터의 위탁연구용역도 벌인다고 한다. 연구소가 내세운 바대로 해당 연구소는 제주도내에서 다양한 용역을 수행했다. 제주도 수의계약 현황에 따르면 한국지질다양성연구소는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까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제주시, 서귀포시가 발주한 8건의 용역을 수행했다. 제주도에 따르면 1, 2, 3, 5번 용역은 장기계속 용역인 '서귀포 등록문화재 일제동굴진지 모니터링 용역'의 일부라 1~3차 분 모두 합해서 1건으로 본다. 8건 중 6건이 2016년부터 2018년 사이에 이뤄졌다. 표에 있는 8건의 계약금을 모두 합하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 8월 28일 제주성(濟州城)에 오래된 건물터가 발굴됐다. 제주고고학연구소가 제주성 동쪽 치성(雉城, 성 바깥으로 네모나게 돌출시켜 쌓은 성곽) 상부에서 문화재 시굴·발굴 조사 과정에 '凸'자형 기단석렬과 초석 6기를 확인한 것이다. 이 건물터는 고증을 거쳐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과 이원조의 '탐라지초본'(1841년) 등에 기록된 제이각(制夷閣)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제이각은 외적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제주성 동쪽 성곽 위에 세운 누각이다. 지형이 가파르고 험한 낭떠러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제이각에서 장수가 제주성을 내려다보면 성안은 물론 주변의 언덕과 하천, 해안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임진왜란 직후인 1599년(선조 32년) 제주 목사로 부임한 성윤문(成允文)이 제주성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건립했다. 건물터가 발견된 지 3년여만인 지난 2015년 12월 복원됐지만, 이것이 1990년대부터 이어진 제주성 성곽 복원의 마지막 사업이었다. 과거 오랜 시간 증축과 개축이 이뤄진 제주성은 그 둘레가 3.2㎞에 달했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돼 복원된 부분은 원형의 10%에도
수천쪽에 이르는 동복리 제주자연체험파크 환경영향평가서. 심사보류 끝에 도의회를 통과하고 사업승인 행정결정만을 남겨놓고 있지만 정작 이 영향평가서를 보는 전문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부실·엉터리로 일관하고 있는 황당한 보고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개별 조사는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 없었다. 지질·동굴분야 조사내용을 보면 그저 참고문헌 내용을 짜깁기 한데다 '동굴 측량도를 작성했다'고 해놓고 측량한 전문 측량기사는 누군지도 알 수 없다. 물론 동굴측량 도면도 첨부하지 않았다. <제이누리>가 입수한 ‘제주자연체험파크 조성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통합본’에는 희한한 보고서가 수록됐다. ‘제주 사파리월드 조성사업부지내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가운데 일부다. 해당 환경영향평가서의 다른 페이지와는 달리 보고서 4쪽을 1페이지로 ‘모아찍기’ 인쇄해 돋보기 없이는 알아볼 수도 없다. 앞서 <제이누리>는 지난 8일 제주자연체험파크 조성사업과 관련해 현직 공무원 및 사업자 간 유착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모아찍기’로 제본된 보고서의 조사 일부를 현직 공무원이 수행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내용이다. 현재 강원도청 환경과 자연공원팀에 속한 최돈원씨는 깨
국제적 멸종위기종, 바다거북은 우리나라 해안도 서식지로 삼고 있다. 하지만 산란 기록이 있는 곳은 국내에서는 제주도가 유일하다. 바다거북은 해안 개발문제, 기후위기, 쓰레기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지구의 지표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바다거북과 서식지 보전은 개별종의 보전을 넘어서 제주도 해안을 보전하는 길과 직결된다. 하여, 제이누리와 제주자연의벗은 바다거북에 주목했다. 제주자연의벗은 바다거북을 포함해 앞으로 생태환경 기획시리즈 연재를 통해 제주의 다양한 생태환경문제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편집자 주] # 제주도 해안에 서식하는 살아있는 화석, 바다거북 많은 이들이 제주 바다에 바다거북이 살고 있는 사실을 잘 모른다. 제주 바다에는 돌고래뿐 아니라 바다거북도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하기는, 바다거북은 돌고래처럼 물 위를 힘차게 솟구쳐 오르지도 않고 경계심이 강해 바다 속을 조용히 유영하는 동물이라 눈에 띄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육지에 올라오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것도 암컷이 알을 낳으러 밤사이에 모래해안에 올라오는 경우뿐이다. 이때도 밤에 올라와 알을 낳고는 황급히 떠나 버린다. 새끼들도 알에서 부화하자마자 새벽에 일제히
한눈에 봐도 사전보다 두꺼운 책자가 있다. 무려 2000페이지가 넘는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 조성되는 자연체험파크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서 통합본이다. 그러나 책자의 내용중 일부분은 묘하게 편집이 돼 있다. 다른 부분과 달리 돋보기를 들고 봐야 할 정도로 깨알같은 글씨로 처리된 부분이 있다. 4쪽 분량을 한 페이지에 우겨 넣은 대목부터 의문을 자아낸다. 환경영향평가서내 삽입된 문제의 부분은 ‘제주 사파리월드 조성사업부지내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다. 사업시행자인 (주)도우리가 발주한 해당용역을 수행한 곳은 제주문화유산연구원이다. 조사단장은 고재원 제주문화유산연구원장이고, 책임조사원은 방문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지원실장이다. 하지만 해당 보고서의 자연문화재(동굴유적) 분야 조사원은 또 따로 있다. 용역을 수행한 곳은 한국지질다양성연구소. 연구책임자는 최돈원 한국지질다양성연구소 책임연구원이다. 조사원으로는 최용근 한국동굴생물연구소 소장 단 한 사람만 이름을 올렸다. 의혹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책임연구원인 최돈원씨는 현재 강원도청 환경과 자연공원팀에 속한 현직 공무원이다. 주무관 신분이다. 8일 <제이누리> 취재를 종합하면 최씨는 제주용천동굴의
사람들은 '이어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부분 이어도의 존재를 전설 또는 문학작품을 통해 신비의 낙원, 이상향 정도로 기억하거나 제주도 남쪽 먼바다 어딘가에 있는 작은 섬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무심코 이어도에 대해 말은 하지만, 관련 전설이나 문학작품을 찾아 직접 읽어본 사람도, 이어도를 둘러싸고 어떤 논란이 이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 민요 속 '이여도'는 우리가 알던 '이어도'일까 '이여도사나 이여도사나!' 제주도민은 물론 관광객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 민요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호 '해녀노래'(해녀 노 젓는 소리 또는 물질소리 등으로도 불림)다. 노래의 후렴구에 등장하는 이여도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이어도'가 맞을까? 비단 해녀노래 뿐만 아니라 제주 민요 중에는 '맷돌 가는 소리', '방아 찧는 소리' 등에도 비슷한 후렴구가 등장한다. 조성윤 제주대 교수는 2011년 '이어도에 관한 제주도 주민들의 이미지'라는 논문을 통해 "민요를 부르던 제주도민들이 과연 이어도를 하나의 섬으로 인식했었는지에 대해 학자들 간 논란이 분분하다"며 1920년대 제주 민요를 채집했던 일본 학자 다카하시 도오루와 김진하 서울대 교수의 주장을
"어허! 어려려려려∼" 최근 제주의 한 대학 병원 로비에서 진료차 내원한 할아버지 한 분이 의자에 앉아 트로트도 가곡도 아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가 할아버지께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고 여쭤봤다. "몰라요." 실망스러운 대답이었다. 아쉬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기자의 모습에 미안하셨던지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젊었을 때 일하며 불렀는데 제목을 몰라. 그냥 부르는 거지…." 진료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무료함을 달래고자 습관적으로 할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건 다름 아닌 제주의 '일노래'(노동요)였다. 깊게 팬 주름과 검버섯, 듬성듬성 난 수염, 거친 손마디에서 지난한 세월, 고된 노동의 흔적이 묻어났다. 10일 제주의 풍습과 전통, 제주어를 고스란히 간직한 일노래의 의미와 가치, 전승 방안을 들여다본다. ◇ 고된 노동…제주 사람들의 숙명 "제주는 물로 뱅뱅 돌아진 섬(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 (사람들은) 밭이든 바다에서든 일만 했습니다. 그래서 일노래가 많았어요. 일노래는 일하면서 불렀던 소리라 반주도 없이 한(恨)으로 우려내며 불렀어요."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제주농요 2대 보유자인 김향옥(70) 씨는 제주 일노래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