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추념일 지정 후 처음 치러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느닷없이 '합창곡' 논란이 불거졌다.
4.3 영령에게 헌화·참배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식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행사에 등장, "추모의 취지가 퇴색됐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논란은 3일 오전 10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 공식 행사 가운데 추도사, 인사말 다음으로 진행된 추념식 합창곡 순서에서 벌어졌다.
문제의 합창곡은 성악가 신문희씨가 2008년 4월 30일 발매한 개인 2집 앨범 'The passion'에 처음 수록된 '아름다운 나라.'
'아름다운 나라'가 4.3사건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논란이 불거졌다, 가사도 억울하게 희생당한 제주도민 3만명의 4.3영령을 기리는 행사 취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가사를 살펴보면 '참 아름다운 많은 꿈이 있는 이 땅에 태어나서 행복한 내가 아니냐', '큰 바다있고 푸른 하늘 가진 이 땅위에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 아니냐' '강물빛 소리 산 낙엽 소리 천지사방이 고우이 즐겁지 않은가' 등 추모의 애잔한 정서가 깔려야 할 추념식 현장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밝은 톤이다. 멜로디 역시 애잔한 곡조라기 보단 밝은 분위기다.
'아름다운 나라'는 2010년 서울G20 정상회의 홍보영상,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폐막식, 올해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 폐막식 등 국가단위 국제행사에 사용될 만큼 사랑을 받은 곡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는 이의 자부심과 미래지향성을 잘 살린 노래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4.3희생자 추념식에 어울리는 지에 대해서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3일 4.3추념식을 찾은 고희범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와 관련한 내용을 올려 "근본도 모르는 이상한 노래가 울려 퍼졌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나 어울릴 노래를 국가기념일로 정해진 4.3위령제에서 공식 노래로 불리는 게 말이 되는가? 무슨 축제인줄 아나본데 그것이 아니다"라며 달갑지 않은 반응을 남겼다.
고 예비후보의 의견에 100여명이 넘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공감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형제들의 합동제사집에서 어머니은혜를 부른 격’, ‘불행한 분들을 행복한 사람으로 치장하는 놈들’ 등의 부정적인 댓글도 이어졌다.
이 노래가 추념식 현장에서 불리는 합창곡으로 선택된 건 행사를 주관한 4.3평화재단이 내린 결론 때문이다.
평화재단은 첫 국가추념일 지정에 따른 추념식에서 쓸 합창곡을 놓고 사전에 도내 도립합창단과 관악단 등 단체와 의견을 나눴다. 공식지정된 합창곡이 없어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잠들지 않는 남도' 등의 의견도 나왔지만 최종 단계에서 '정부차원 첫 추념식'이란 점을 감안, 최종 '아름다운 나라'가 행사곡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5.18민주화운동기념일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 실질적인 추모곡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국가차원에서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지정하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식순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이 빠지면서 관련 단체가 별도로 기념식을 개최하는 등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6월 27일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촉구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아직까지 국가보훈처의 후속 조치는 없는 상태다.
재단 측은 정부차원 첫 추념행사란 점을 감안, 광주의 사례처럼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의식해 합창곡으로 '잠들지 않는 남도'와 같은 운동권 노래는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이제 국가가 인정하는 제주4.3이니 만큼 이에 걸맞는 추모곡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 관계자는 "합창곡을 선택할 때 사전논의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며 "내년엔 예산을 들여 4.3을 대표하는 추모의 합창곡을 공모, 새로운 창작곡이나 기존의 노래를 검토하는 작업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강남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