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과 한파로 닫였던 제주공항이 재개장하며 정리 모드로 돌입했다. 발이 묶였던 체류객들이 급속히 섬을 떠나고 공항대합실에 널려 있던 박스와 스트로폼의 숫자가 현격하게 줄었다.
수 많은 제주 체류객들에 이번 사태는 제주관광의 추억보다 훨씬 더 생생한 기억이 될 것이다. 뜻하지 않게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들을 비롯해 발이 묶였던 이들에게 제주도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즐거운 추억도 있겠지만 악몽의 기억들은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양적인 관광객 증가와 공항의 포화상태에 직면한 제주도가 육지로부터 고립상황을 겪게 될 때 발생할 다양한 사건을 보는 듯하다. 분야별 대처방식과 운영시스템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들이다. 도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적 팽창에 몰입해 있는 제주도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예상대로 혼란은 상존했고 없었으면 하던 꼴사나운 모습과 훈훈한 미담 등이 뒤 섞이며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여 줬다.
몇몇 언론은 터무니 없는 바가지 상술을 앞 다투어 보도해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다행히 오해가 풀리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대형 종이박스가 1만원이었다며 폭리상혼을 고발했고 택시기사들의 터무니없는 바가지 요금도 보도됐다.
또한 제주도민들의 따스함도 훈훈한 화제가 됐다. 제주기업들과 의료시설 등 다양한 기관들은 의료, 먹거리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노부부가 삶은 계란과 고구마, 귤을 체류객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방송인이 쌍화탕을 돌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SNS를 통해 무료 숙박을 해주겠다는 자발적 노력도 줄을 이었다.
제주도정은 지난해 메르스 대처의 경험 때문인지 발 빠른 대처와 다양한 노력들로 일부 비판적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적절해 보였고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러나 제주공항 결항 사태를 보면서 그 상황의 발생이유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면 결항을 알면서도 많은 버스가 관광객들을 출국장에 내팽개치듯 던져놓고 가버렸다는 소리도 들린다.
무엇보다 전면결항 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서 왜 체류자들이 그 추운 겨울날 종이박스를 깔고 공항대합실에서 잠을 자야만 하는지 의문이 든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 공항에서 밤을 보낸 경우도 있단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장대기를 위해 밤새 잠을 청하며 줄을 서야 했다는 사실은 매우 뼈아픈 부분이다.
제주도는 스마트관광을 지향한다. 여행지와 렌트카, 숙소와 맛집, 비행기표 예약은 물론 짜장면 배달까지 모든 것을 스마트 폰 앱으로 하는 시대에 산다. 물론 이것만이 곧 스마트관광은 아니지만 그만큼 효율적인 정보와 대응, 서비스를 추구하는 의미다.
이같은 시절에 왜 일부 LLC(저가항공사)들은 관광객들을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대기시키며 밤새도록 공항대합실에서 줄을 세우는 것일까.
많은 경험을 쌓아온 대형항공사는 대기자 명단을 작성하고 각자 숙소를 잡거나 대체하도록 한 반면 LLC는 전통적인 방법을 따랐다. 현장에서 제공하는 대기표만 유효하다며 주먹구구식 운영을 고수했다.
J항공은 고객들과 문자메시지로 소통하는 시스템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화통화 역시 불통이었다. T항공은 당일선착순을 고수했다. 승객들을 밤새워 줄을 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뒤늦은 결항고객들의 항의로 대기리스트를 만드는 등 미봉책이 운영되기도 했지만 승객들은 자리를 지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머지는 항공사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구시대적인 위기대처의 행태만 있을 뿐 스마트관광과는 먼 이야기다.
LLC의 관리 매뉴얼과 현장 운영자들의 적절한 대처능력만 있었다면 공항노숙과 밤샘 줄서기는 일어나지도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있었겠지만 1만원짜리 박스판매나 불법상혼을 비판하며 제주도 전체가 싸잡아 비난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단지 저가항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위기관리 시스템조차 갖추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저가항공은 비본질적 비용요인을 줄여 가격인하와 효율을 높이자는 모델이지 수준미달의 ‘저질항공’과는 다른 것이다.
또한 이후 과장과 오해라는 해명이 나왔지만 수 천명의 체류자들이 공항에서 밤을 지새는데 공항공사는 왜 난방비 문제로 제주도와 논란을 벌여야만 했을까. 음식 제공이 입주 식당의 업무 종료시간인 10시 이후에만 가능하면 좋겠다는 발상의 근거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이같은 내용을 들으면 불쾌함이 가라앉질 않는다.
제주가 지난해 메르스 사태시 청정지역을 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도를 중심으로 지원 기관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훈훈한 미담과 생수와 모포 제공 등은 의미있는 대응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람들이 대합실에서 박스를 깔고 밤샘을 하도록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입주상인을 생각하는 이상으로 빠짐없이 공항이용료를 낸 체류객들도 고려의 대상이어야 한다.
전면결항이 결정된 후에 도정과 자치경찰단, 공항공사 제주본부, 각 항공사 담당자들이 바로 모여 대기자들의 운영방안, 교통운영, 숙소문제 등을 협의한 후 이후의 대응이 나왔으면 어떠했을까.
방송에서나 모든 SNS에서 텅 빈 제주공항 대합실과 차분한 대응, 눈쌓인 활주로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주를 찾은 방문객들이 악몽같은 공항대합실의 경험 대신 제주관광의 추억과 스마트 관광의 경험을 기억하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비용 절감과 낡은 관행이 만들어 낸 결과를 보면서 스마트관광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깨닫는다. 이것들이 스마트해져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재근=제이누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