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듯 처세하고 지혜롭게 거두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타인에게 자신이 무능해 자신의 존재를 등한시하게 만들고 중요한 때에 얼굴에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기선을 제압하여야 한다. 구름 속에 갇힌 듯 아리송하게 만들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처세술이다.
세상을 살면서 모든 일을 지나치게 따질 필요는 없다. 두리뭉실하게 할 때는 두리뭉실하여야 하고 애매모호할 때는 애매모호하게 지낼 필요도 있다. 당연히 똑똑하게 처리하여야 할 때는 확실하게 하여야 한다. 작은 일에는 애매모호하여도 된다. 약삭빠를 필요가 없다. 중요한 시점에서 큰 지혜를 보여주면 된다.
침묵은 금이다. ‘대지약우’1는 지혜로운 사람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재능을 숨길 줄 알아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듯 하지만 실제는 충만해 있는 것이다.
실제 세상사를 보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거나 온힘을 다하지 않아도 될 일이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여러 가지가 뒤엉키어 복잡하다. 나무뿌리가 휘감기고 줄기가 뒤얽힌 것처럼 복잡하여 해결하기 곤란한 일이 한둘이 아니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되어 혼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순리대로 맡겨둘 필요가 있다. 애매모호한 척 한다 하여도 원칙이나 인격을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을 위하여, 미래 발전을 위한다면 잠시 참을 수 있어야 한다. 약간 위축된다 하더라도 가치가 있다. 이길 자신이 있다면 황야에 선들 어쩌랴.
중국 고대의 도가와 유가 모두 ‘대지약우’를 주장하였다. 더 나아가 ‘수우(守愚)’〔재지(才智)를 감추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행동함〕를 얘기하였다. 여기서 ‘어리석음’은 정말로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대지약우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산골짜기만큼 깊을 정도로 대단히 겸허하다. 온유돈후(溫柔敦厚)하다. 재능이나 포부를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목눌(木訥)하기까지 하다. 사실 ‘약우(若愚)’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것은 진정한 지혜요 영민함이다. 대지약우, 이것은 병가의 책략이요 처세의 방략이다.
옛사람들은 말한다.
“지극히 미세한 것까지 살피는 것은 현명한 것이 아니다. 살필 것은 살피고 살피지 말아야할 것은 살피지 않는 것이 현명함이다.”(『채근담(菜根譚)』)
춘추시대 때에 제(齊)나라에 습사미(隰斯彌)라는 지혜로운 자가 있었다. 당시 권력을 잡고 있는 대부는 정권을 찬탈하려는 마음을 가진 전성자(田成子)2였다. 어느 날, 전성자는 습사미를 초청해 얘기를 나누던 중에 두 사람이 함께 고대(高臺)에 올라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쪽 서쪽 북쪽 3면에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로지 남쪽에 습사미 집의 수목이 울창해 그들의 시선을 막고 있었다.
만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습사미는 곧바로 하인을 불러 도끼를 가지고 나무를 베라고 했다. 몇 그루 나무를 베고 나서 하인에게 멈추게 하고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집안사람들이 그가 하는 행동에 어리둥절해 하면서 왜 순서 없이 갈팡질팡하느냐고 물었다. 습사미가 말했다.
“나라의 들판에 오직 우리 집에만 수목이 무성하였소. 전성자의 표정을 보니 그리 좋지 않는 얼굴이었소. 그래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급히 나무를 베려고 하였던 것이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당시 전성자가 어떤 불만도 내게 하지 않았소. 오히려 나를 구슬립디다. 전성자는 대단한 심계를 가진 인물이요. 야심만만한 인물이오. 제나라를 찬탈하려 하고 있소. 자신의 심사를 꿰뚫어보는 사람을 두려워할 게 분명하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면 내가 세세한 것까지 살피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겠소. 그러면 나에 대한 경계심을 가지게 만드는 것일 테고. 그래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한 것이오. 그러면 내가 그의 심사를 꿰뚫어보지 못하는 인물이 되는 게 아니겠소. 작은 죄는 있겠으나 재앙은 피할 수 있소. 나무를 다 베어버린다면 내가 사람의 심사를 능히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밀어닥칠 수도 있지 않겠소.”
이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전형적인 묘책이다.
“깊은 연못 속의 물고기를 아는 사람은 불길하다.”3
라고 한 말이 그것이다.
어느 날, 당태종(唐太宗)4이 부하 문관 중에 탐관오리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몰래 심복을 보내어 국고의 견직물을 가지고 뇌물 받는지를 살폈다. 궁문을 지키는 관리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한 필을 받았다. 당태종은 곧바로 붙잡아다 사형시키려 했다. 그러자 배구(裴矩)5가 당태종에게 그런 실험은 의롭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 것이라 말했다. 분명 황제가 사람을 시켜 그에게 보내놓고는 오히려 뇌물 받았다고 한다면 계략을 써서 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그렇게 한다면 이후에 누가 감히 관직에 앉으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하였다. 당태종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문문백관을 모아놓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선포하고 인심은 달랬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한다.
“좋고 싫은 마음이 너무 확연하면 사물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현명한 것과 어리석음을 구별하는 마음이 너무 뚜렷하면 사람과 오래 친해질 수 없다. 훌륭한 사람은 안으로는 엄하고 분명해야 하지만 밖으로는 언제나 원만하고 넉넉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좋은 것과 추한 것이 균형을 이루게 되며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모두 이익을 누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만물을 탄생하고 기르게 되는 생성의 덕이 되는 것이다.”(『채근담(菜根譚)·응수(應酬)』)
이것이 옛사람들의 변증법상 ‘활학활용(活學活用)’〔실제의 필요에 근거해 배우고 탄력적으로 적용함〕이라 할 수 있다. ‘대지약우’를 이와 같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리석게 행동할 때는 자기 체면, 자기 학식, 자기 지위, 자기 권세를 돌보지 말고 어리석게 행동하여야 한다. 지혜롭고 깨어있는 때에는 반드시 영민하여야 한다. 영민할 때와 어리석게 행동할 때를 돌아가며 표현하려면 능수능란하여야 한다. 불쾌해 하거나 걱정하지 말아야 하고 타인을 연루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행복하고 즐겁고 성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대지약우(大智若愚), 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현인(賢人)은 재능을 뽐내지 않아 어리석어 보일 뿐이라는 말이다. “매우 교묘한 것은 도리어 서툰 것 같고, 뛰어나게 말 잘하는 것은 마치 말을 더듬는 것 같다.”(노자『도덕경』 45장)
2) 전항(田恒), 즉 전성자(田成子), 가문이 진(陳)나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진항(陳恒)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漢) 왕조 때 문제(文帝) 유항(劉恒)을 피휘하려고 ‘전상(田常)’이라 불렀다. 제(齊)나라 전(田) 씨 가문의 제8대 수령이다.
3) 옛날 속담에 “깊은 연못 속의 물고기를 아는 사람은 불길하다”라고 하였다. 권력자인 전성자가 장차 큰일을 벌이려 하는데 내가 미묘한 심중을 알고 있는 것을 보이면 나는 분명 위험해진다.(『한비자(韓非子)·세림상(說)』)
4) 당(唐)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 598~649), 농서(隴西) 성기(成紀)〔현 감숙(甘肅)성 태안(秦安)현〕 사람이다. 당 왕조 제2대 황제(626~649 재위)로 걸출한 정치가, 전략가, 군사전문가, 시인이다.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의 둘째아들이다. 어머니는 태목(太穆) 황후 두(竇) 씨이다.
5) 배구(裴矩, 547~627), 본명은 세구(世矩), 자는 홍대(弘大), 하동(河東) 문희(聞喜)〔현 산서(山西) 문희〕 사람이다. 부위(北魏) 형주자사(荆州刺史) 배타(裴佗)의 손자요 북제(北齊) 태자사인(太子舍人) 배눌(裴訥)의 아들이다. 수당(隋唐) 시기 정치가, 외교가, 전략가, 지리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