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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역사에서 보는 중국인의 처세술(64)

가식 없는 말을 듣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즐겁지 않거나 타인이 꺼리는 일을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다른 각도에서 완곡하고 함축적이게 얘기를 꺼내어 듣는 사람을 편하게 만든다. 한 번 곱씹게 하여 그 뜻을 이해하게 만든다. 생각하면 할수록 함축된 뜻이 깊어지고 많아지게 한다. 그러면 흡입력이 갈수록 생기고 영향력이 강해진다. 동시에 갈등이 있거나 다른 의견이 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갈등이 완곡한 언어 속에서 자연스레 화력이 약해지고 갈등이 격화되지 않거나 모순을 해결할 수 있게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화목하게 된다. 자기의 말을 타인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

 

함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이다.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무궁하다.”
“남은 뜻은 말하지 않는 가운데에 다 있다.”
중요한 것, 말해야만 하는 부분을 고의로 숨기거나 아니면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타인에게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할 수 있다.
“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전달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함축은 이야기하는 예술이다. 언어를 부리는 기교를 체현하는 것이다.

 

구불구불한 작은 길이 한 눈에 들어오는 큰 길보다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완곡하고 함축적인 것’이, “대나무 통에서 콩을 쏟아 내듯이 마음속에 있는 말을 모두 털어놓은 것” 보다도 훨씬 훌륭하다.

 

‘완곡’은 직접적으로 자기 관점을 진술하지 못하는 어떤 일에, 시치미 떼듯이 주제를 빙빙 돌려 완약하고 함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다. 자신의 말을 더 확실히 전달할 수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말은 왕왕 이야기하는 장소, 말하는 사람의 신분, 말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 등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고대에는 신하가 왕의 과실을 보고 간언할 때 전달하는 말의 함축성에 대단히 주의했었다. 군왕은 지고무상한 존엄을 유지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신하가 왕의 ‘용안’을 훼손시킨다면 머리가 잘려나가지 않던가.

 

한무제(漢武帝)는 만년에 장생불로하기를 대단히 바랐다고 전한다. 어느 날, 한무제가 측근 동방삭(東方朔)에게 말했다.

 

“관상서에 말하기 코 밑의 ‘인중(人中)’이 길면 길수록 목숨도 길어진다고 하던데. ‘인중’이 1촌이 길어지면 100세를 더 살 수 있다고. 그 말이 사실이요 거짓이요?”

 

동박삭이 듣고는 황제가 또 장생불로의 꿈을 못 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얼굴에 비웃는 표정을 내비쳤다. 한무제가 동방삭이 비웃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언짢은 기색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소리쳤다.
“네가 어찌 감히 나를 비웃는다는 말이더냐?”

 

동방삭이 답했다.
“신은 너무 못생긴 팽조(彭祖)의 얼굴을 비웃고 있사옵니다.”

 

한무제가 물었다.
“왜 팽조를 비웃느냐?”

 

동방삭이 답했다.
“팽조는 800세를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황상께서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인중’이 8촌이나 된다면 팽조의 얼굴은 한 길 정도 더 길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한무제는 큰소리로 웃었다.

 

동방삭은 총명하기 그지없다. 팽조를 비웃는 방법으로 한무제의 황당무계함을 풍자해 일깨운 것이다. 홰나무를 가리키면서 버드나무를 비꼬는 방식과 닮았다. 함축적인 비평을 했기에 한무제가 웃으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특수한 장소에서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완곡하게 말하는 수단으로 간접적으로 의견을 표현하는 방법도 있다. 『고금담개(古今譚槪)』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

 

오대십국시대에 남당(南唐)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관부의 세금이 너무 가혹해 온 나라에 원성이 자자했지만 감히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 당시 도성 금릉(金陵, 현 남경)에 몇 년 동안 가뭄이 들었다. 백성의 삶은 설상가상으로 하루를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날, 남당 황제 이욱(李煜)이 국정을 시찰할 때 비가 내리지 않아 말라버린 논밭을 보고는 물었다.

 

“어째서 외지에는 비가 내리는데 유달리 경성에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인가?”

 

여러 대신 중에서 신조고(申潮高)라는 신하가 앞으로 나서서는 몸을 숙이고 예를 한 후 답했다.

 

“비는 감히 경성에 내리지 못합니다. 비 또한 세금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이욱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미소 지었다. 오래지 않아 과중하고 잡다한 세금을 모두 취소하였다.

 

우리 다시 현대 이야기를 살펴보자. 견니(甄妮)가 다롄에서 공연할 때 관중에게 말했다.

 

“제가 아는 운동이 있는데 다롄 친구들이 좋아할지 모르겠군요. 먼저 왼손을 들어주세요.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주세요. 양손을 왔다갔다…….”

 

그녀는 말하면서 손으로 박수치는 동작을 했다. 그녀가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관중의 박수가 요란하게 터졌다.

 

배우는 관중의 박수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견니의 공연이 아직 시작하기도 전에 관중은 그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완곡하게 말하면서 형상화한 동작을 생동적이고 재미있게 함으로써 관중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무궁한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가운데 무엇이 즐거움인지 체득할 수 있게 했다. 함축적인 응답은 깊은 뜻을 품고 있다. 숨기고 밖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생동적이고 재미있게 만든다.

 

 

1947년 초, 에이피 통신 기자 로드릭(Roderick,1914~2008)이 모택동(毛澤東)과 인터뷰하고 있었다. 그 당시 호종남(胡宗南)이 이끄는 50만 대군이 머지않아 연안(延安)을 공격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마오 주석, 현재 중국공산주의의 앞날을 생각해보면 정말 걱정이 됩니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한 말씀 해주십시오.”

 

로드릭이 급소를 찌르듯 질문을 던졌다. 모택동은 속에 이미 타산이 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2년 후에는 내가 북경에서 인터뷰하도록 당신을 초청할 것이오.”

 

모택동은 자신이 정세를 판단하는 관점을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호언장담도 하지 않았다. 일반인이 사람을 초청하는 말을 가지고 자신의 예견을 암시하고 있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념이 있던 것인가. 결국 모택동의 말처럼 역사는 흘러갔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동방삭(東方朔, BC161~BC93?), 자는 만천(曼倩), 평원군(平原郡) 압차현(壓次縣)〔현 산동 덕주(德州)시 능성(陵城)구〕 사람이다. 서한시기 유명한 문학가이다. 한무제가 즉위하자 동방삭은 상소를 올려 스스로 천거하였다. 상시랑(常侍郎), 태중대부(太中大夫) 등에 올랐다. 정치 득실을 논하고 부국강병의 계책을 논했으나 당시 황제는 배우로만 여기고 중용하지 않았다.

 

2) 팽조(彭祖), 선진 도가(道家)의 선구자 중 한 명이다. 전갱(籛鏗), 팽갱(彭鏗)이라 불리기도 한다. 육종(陸綜)의 셋째아들이다. 팽조는 제요(帝堯) 때에 팽지(彭地)에 봉해졌다. 자손은 국명으로 씨(氏)를 삼았다. 팽(彭)은 성이라 보고 축융(祝融) 8성(姓)의 하나라하기도 한다. 800년이나 살았다고 하는 중국 전설 속 인물이다. 다수의 역사서에 팽조에 대한 언급이 있다. 『사기·초세가(楚世家)』에는 팽조(彭祖)가 오제(五帝) 중 한명인 전욱(颛顼)의 손자라고 기록돼 있다. 하(夏) 왕조부터 상(商) 왕조에 걸쳐 그는 약 800년을 살았는데, 그의 장수 이야기는 일찍이 진한(秦漢) 이전에 전해졌다고 한다. 굴원(屈原) 장편시 『천문(天問)』 및 공자(孔子)와 장주(莊周)의 저서에도 팽조를 장수(長壽)의 모범으로 들고 있다. 진(晉) 의학자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은 팽조를 위하여 지은 저서다. 장수 노인의 전설은 도교의 양생(養生) 관념과 융합돼 탄생되었다.

 

3) 이욱(李煜, 937~978), 남당(南唐) 원종(元宗, 즉 중주中主) 이경(李璟)의 여섯째아들이다. 초명은 종가(從嘉), 자는 중광(重光), 호는 종은(鍾隱), 연봉거사(蓮峰居士), 금릉(金陵, 현 남경)에서 태어났다. 원적은 팽성(彭城)〔현 강소 서주(徐州) 동산(銅山)〕, 남당의 마지막 국군(國君)이다.

 

4) 견니(甄妮), 원명은 견숙시(甄淑詩), 다른 이름은 견이정(甄苡婷), 1953년에 마카오(澳門)에서 태어났다. 원적은 광동성 강문(江門)시이다. 가수이며 배우다.

 

5) 호종남(胡宗南, 1896~1962), 자는 수산(壽山), 원명은 호금재(胡琴齋), 절강(浙江) 진해(鎭海)사람으로 중화민국(中華民國) 1급 상장(上將)이다. 1950년에 대만(臺灣)으로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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