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제주도에서 '옥쇄작전'을 감행하려던 일본군이 구축한 동굴진지가 무려 448개에 달한다는 현장조사 결과가 나왔다.
옥쇄(玉碎)란 일본 본토와 명예를 지키기 위해 깨끗하게 죽음을 택한다는 뜻이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10만명 전원이 옥쇄했다.
한국동굴안전연구소와 제주도동굴연구소는 13일 광복 76주년을 앞두고 '근대전쟁유적 제주도 일본군 동굴진지(요새) 현황조사 및 증언채록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에 구축된 일본군 동굴진지(요새)의 수는 제주시 지역 75곳에 278개, 서귀포시 지역 45곳에 170개 등 모두 120곳에 448개다.
이들 가운데 어승생악 복곽진지, 가마오름 주저항진지, 서우봉 해군 특공대 기지, 섯알오름 전진 거점, 송악산 해군 특공대 기지, 일출봉 해군 특공대 기지, 송악산 지네형 동굴진지 등 7곳 73개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러나 그 외 375개의 동굴진지(요새)는 사실상 방치돼 있다.
패망 직전 일본군은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거점을 제주도로 정했다. 제58군 7만4781명의 병력을 배치하는 '결7호'(決七號)라는 작전명으로 제주도 전 지역을 요새화하는데 사활을 걸었다.
현재는 유명 관광지가 된 성산일출봉을 비롯해 송악산, 서우봉, 삼매봉, 수월봉, 추자도를 비롯한 주요 해안 거점에 동굴진지를 구축했다. 미군 상륙 함정을 공격할 해군 특공대의 소형 함정과 어뢰 등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일본군은 또 제주도 내륙지역 오름에는 복곽진지, 주저항진지, 전진거점, 위장진지 등으로 전술 용도를 구분해 포병기지, 보병기지, 지원부대와 관측소용 동굴진지, 고사포 진지를 구축했다.
일본군은 현 제주국제공항과 알뜨르비행장 등 4곳의 비행장도 건설했다.
보고서엔 구축 초기 단계에서 멈춰진 동굴진지 공사 현장도 제주시 삼의오름, 저지오름, 체오름, 거문오름 등 10여 곳에서 발견됐다는 내용과 천연동굴 다수도 군사시설로 이용됐던 증거를 발견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보고서에는 일제의 동굴진지 구축 과정의 강제노역에 동원됐거나, 수탈 등을 직접 목격한 13명이 2004∼2005년에 증언한 내용도 실렸다.
윤경도(1934년생)씨는 12세 때 일본군이 제주국제공항 인근의 도두봉에 진지동굴을 파는 과정을 지켜본 기억을 전했다.
윤씨는 “일본군이 진지동굴 굴착 공사를 직접 수행해 내부를 목격하진 못했지만, 공사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화산송이가 외부로 배출됐다”면서 “유사시 전투지휘를 할 수 있는 지휘본부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도두봉 내 진지동굴 내부가 상당한 규모”라면서 “그 동굴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고, 바다 쪽으로는 사격을 할 수 있는 총구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윤씨는 해방 이후 주민들이 진지동굴 내부의 갱목과 판자를 뜯어가 출입구가 모두 내려앉았는데 지금이라도 전쟁 유적지로 복원해 평화 교육에 활용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도 했다.
김기선(1928년생)씨는 “16세 때 청년훈련소에 입소해 제주시 애월읍 새별오름 일대에서 군수물자를 숨기기 위해 강제노역에 동원됐다”면서 “함바집과 비슷한 초가에서 쌀수수와 보리밥을 먹으며 지표면을 3m 깊이로 파내는 등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손인석 제주도동굴연구소장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동굴진지가 많은 것으로 추정돼 전 지역에 대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면서 "지질공학, 토목공학, 측량학, 군사학, 역사사회학 등 종합적인 학술조사가 이뤄져 선별된 시설에 대해 전쟁문화유적지로 지정해 원형을 복원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민족적 역사의식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