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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산다] 전통무예 탐구하는 이길우 전 한겨레 기자 “행복한 몸이 곧 건강"
제주 조천읍 바누힐링센터가 요람 ... 무예고수 발굴 언론인서 변신

 

“몸은 오로지 정신만 담는 수단이 아닙니다. 나의 역사가 담긴 그릇이죠.”

 

제주시 조천읍 ‘바누힐링센터’. 고요한 이 공간에는 수련생들의 깊은 숨소리가 간간이 채워진다. 이들이 하는 동작은 체조같기도, 무용같기도 하다. 맨손으로 가공의 활시위를 부드럽고도 힘차게 당기는 모습이 기운차다.

 

이들이 하고 있는 동작은 팔단금(八段錦). 여덟 단계로 이뤄져 있는 비단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운 동작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화타오금희’, ‘달마역근경’과 더불어 3대 양생 기공체조 중 하나다.

 

어찌보면 생소할 수도 있는 팔단금을 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이길우(62) 원장.

 

그의 긴 머리칼은 하얗게 세었지만 눈빛은 형형하고, 맑다. 이따금씩 내뱉는 기합소리는 심장이 울릴 정도로 우렁차고, 단단하다. 시범을 보이는 손끝은 세게 건드려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꼿꼿이 살아있다.

 

그는 팔단금을 비롯해 기천문과 혈기도 등 동양 전통무예를 수십년간 수련해 온 무도인이다. 혈기도 세계연맹 상임이사와 한국명상총협회 감사를 지낸 그는 서울 서초아버지센터 강사, 중국문화원 팔단금 지도강사, ‘깊은산속 옹달샘’ 팔단금 교실 강사 등으로 활약했다. <고수는 건강하다>와 <신과 영혼의 몸짓>의 저자다.

 

사실 이 원장의 본업은 기자다. 그는 중국특파원로서 광활한 대지를 취재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고교시절부터 기자를 꿈꿨다. 실제로 그는 연세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한겨레 신문 창간멤버로 입사해 33년을 기자로 활약했다. 사회부, 경제부 등 여러 부서를 거친 후 초대 북경특파원으로 중국에 3년간 머물러 꿈을 이루기도 했다.  

 

2019년 정년퇴직을 한 후 뉴스1에서 ‘이길우의 인사이트’라는 주제로 저명한 인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유능한 인터뷰어였다. 그야말로 대기자다.

 

그런데 그가 왜 제주에서 전통무예를 가르치게 됐을까?

 

 

“난 덩치는 큰데 왜 운동을 못할까”

 

충남 조치원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 살집이 꽤 있었다고 한다. 감당해야 할 몸이 커서 그런지 몸짓도 둔했다. 축구를 하고 싶어도 친구들이 끼워주지 않았다. 달리기 시합에서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점점 소심해졌고, 몸에 대한 한탄만 계속됐다. 

 

가족들의 권유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 하루에 땀에 젖은 도복을 세 번 짤 정도로 열심히 했다. 몇 개월이 지나니 몸은 가벼워졌고, 뒤돌려차기, 옆차기쯤은 아무 것도 아닌 동작이 됐다. 가끔 친구들과 싸우거나, 다투더라도 전혀 밀리지 않게될 정도였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를 원망했지만 몸이 바뀌니 나 자신을 존중하게 됐다. 자신감은 덤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많은 운동을 섭렵했다. 유도, 검도는 물론 스킨스쿠버를 배워 물속을 유영하기도 했다. 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빴지만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평소에 운동할 여유가 없으면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새벽에 운동을 했다.

 

‘몸 하나 바뀐건데 왜 마음까지 바뀌게 된걸까.’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건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답을 얻고 싶었다.

 

이를 시작으로 한겨레에서 ‘이길우의 기찬몸’을 연재했다. 단순히 건강 관련 지식을 설명하는 기존 건강 기사와 달리 건강한 사람들을 찾아가 취재하고, 직접 배운 내용을 기사로 풀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도 중국처럼 고유의 무예가 분명 있을 터였다. 하지만 계보 등 기록은 전무했다. 이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그는 직접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무술고수들도 발굴했다. 취재 과정에서 산속에 숨어사는 무술인을 발굴하기 위해 직접 산속으로 들어가 며칠간 살아보는 것은 기본이었다.

 

연예인 이효리의 요가선생으로 유명한 한주훈씨를 취재하기 위해 제주까지 왔지만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수 차례 거절당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간 수업에 수련생으로 참여하는 등 정성을 드러내 결국 인터뷰를 따내기도 했다.

 

수벽치기, 두람, 조선세법 등 ... 그가 발굴한 전통무예인만 30여명이다. 그만큼 그는 건강에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 행복의 부메랑 ... "나눔은 남들만의 행복? 결국 나의 행복"

 

1999년, 3년간의 북경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귀국한 이 원장. 산책을 하다 들린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에서는 노인들이 한쪽에서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모습이 펼쳐졌다. 다른 쪽에서는 입담 좋은 어르신이 젊은시절 무용담을 늘어놨다. 대낮이었지만 모두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불과 몇 달 전, 북경에서 보던 모습과는 상반됐다. 태극권을 하던 사람, 검술이나 춤을 추는 등 대부분 몸을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던 북경의 노인들은 비록 육체는 늙었지만 생기가 돌았다. 

 

“중국의 노인들과 한국의 노인들의 공원에서 보이는 모습이 차이가 있나 생각해 봤어요. 우리나라 어르신들은 열악한 여건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느라 자신을 돌볼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노동이 아닌 운동을 누가 알려주지도 않고, 조선시대 때부터 현재까지도 몸쓰는 것을 천한 것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있지요. 그 외 사람들도 공부해서 출세하는 것에만 집중하지, 몸을 쓰는 것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은 것 같기도 했어요.”

 

내가 그동안 배운 운동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싶었다. '노인들에게는 어떤 운동이 적합할까?',  '저분들 나이에 필요한 운동은 도대체 뭘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매주 두번씩 강사를 섭외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전통무예인 ‘기천문’ 을 알려주는 수업을 열었다. 바로 이거다!

 

“일주일에 하루, 저에게 시간을 주면 어르신들에게 운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2000년대 초, 일주일에 한번 수십명의 어르신들을 강당에 모이게 한 후 30분 동안 단상에 섰다. 사회복지관을 운영하던 매형이 흔쾌히 허락해준 덕에 봉사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역동적인 무술이지만 이 원장만의 방식으로 부드럽게 가르치니 배우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2011년 전국 기천문 대회에서 30명의 할머니들을 모시고 무대 위에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가 없이 내 능력을 나눠준 시간은 자그마치 8년.

 

“어르신들에게 ‘주먹 한번 쥐어보세요’라고 하면 쉽게 해내는 사람이 없었어요. 한번도 주먹을 의식적으로 쥐어본 적이 없었던 거죠. 손에 힘을 주지 않다가 나이가 들면 손을 떨게 되는 것을 이해하고, 계속 시도할 수 있도록 도왔죠. 그들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니까요.”

 

이 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철역 구석에 허리를 펴지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숙인, 법당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설법을 듣는 불교신자, 노트북 앞에 몸을 굽히고 손만 바삐 움직이는 동료 기자들도 그의 눈에 들어왔다.

 

정부나 지자체, 종교시설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매끼 챙겨먹는다고 해서 노숙인들의 자신감이 회복되는 게 아니다.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몸부터 건강해져야 했다. 이 원장은 교회와 절, 회사 강당에도 매주 운동 선생님으로 등장했다. 

 

“내가 운동을 알려줌으로써 그들이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것, 건강을 되찾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 그 자체가 즐거워요. 내 행위로 인해 남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은 보배롭고, 소중한 경험이거든요. 결국은 타인의 행복으로 제 자신이 행복해지는 거죠.”

 

 

◆ 인명재아(人命在我), 내 몸의 미래는 현재의 나에게 달려있다

 

우리는 휴대폰을 사면 애플리케이션이나 기능 등을 숙지하면서 탐구한다. 자동차나 노트북, 카메라 등 앞으로 사용할 물건을 꼼꼼히 공부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쓰고 있는 ‘몸’은 어떨까? 우리는 몸을 구성하는 뼈와 근육, 장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 

 

아마 관련 전공자가 아니라면 몸에 있는 뼈가 모두 몇 개인지 조차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 각종 영양제나 좋다고 알려진 식품 등으로 응급조치를 하기 바쁘다.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건강을 얻기 원하는 현대인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운동은 힘들다’, ‘운동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배워야만 한다’는 관념도 만연하다.

 

“몸이 과연 정신과 학식을 담는 도구에 불과할까요? 몸과 정신은 엄연히 다를 수도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분리되는 현상이 뚜렷해지죠. 뜻대로 몸이 움직여지지 않거나, 질병에 걸리는 것 처럼요. 현재의 몸은 과거의 감정과 경험, 체험이 모두 농축된 모습입니다. 지금의 몸은 새로 태어난 몸이 아니에요. 이 말은 현재 나의 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가 달려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널리 알려져 있는 사자성어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원장은 ‘인명재아(人命在我)'를 강조한다. 목숨은 자기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

 

인간이 언젠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그는 자의식이 있는 동안엔 스스로 몸을 조절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백세시대’를 강조하지만 100세까지 살아있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휠체어나 지팡이 같은 도구를 빌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힘, 산소호흡기가 아닌 직접 숨을 쉴 수 있는 힘이 핵심인 것이다.

 

“몸의 기운이 뭉친 곳 없이 잘 돌아간다면 기분(氣分)이 좋다고 할 수 있겠죠. 기분은 단지 감정과 정신상태를 뜻하지 않아요. 만약 다치거나, 오장육부에 탈이 나거나, 암 같은 질병이 생긴다면 정신이 상한게 아니지만 그 순간 행복은 사라져요. 육체가 정신을 앞서나가는 겁니다.”

 

이른바 ‘단.반.지’ 정신. 평생 건강을 위한 운동은 단순해야 하고, 혼자 반복할 수 있어야 하며, 죽는 날까지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원장은 말한다. 그는 이 철학을 바탕으로 ‘기찬몸’이라는 신체단련 체계를 구축했다. 

 

“몸은 꾸준히 단련하지 않으면 결국 낡게 되죠.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자유롭다고 해도 본질적인 자유는 누리지 못해요. 매일 새로운 나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몸을 닦고, 조이고, 기름을 치듯이 노력해야 해요.”

 

 

 

◆ 용기 내 건너온 제주 ... "육체행위는 힘든 만큼 솔직한 것"

 

‘건너가야 한다.’ 기자로 수십년을 살아온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최진석 철학과 교수의 한 마디는 유난히 또렷하다. 현재의 사고 수준에서 한 차원 건너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최 교수의 말대로 인간은 항상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현재의 나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건너가야 한다. 하지만 그를 위해선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 원장이 제주에 온 지는 6개월이 지났다. 이전까지는 건물이 빽빽한 곳에서 사람들에게 힘을 얻기도, 주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대도시에서 살아오던 그는 이제 집 문을 나서면 바다가 훤히 보이는 곳으로 건너온 상태다. 처음엔 외국에 온 듯 했다. 가끔 얘기를 나누는 이웃이 제주토박이라면 반절도 알아듣지 못하기 일쑤다.

 

일상생활도 180도 바뀌었다. 그는 요즘 카페를 청소하면서 여행 중 머무를 곳이 필요한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앞마당에 있는 나무에 물도 주기도 하며, 도장에서 수련자들을 가르치는 시간들로 하루를 꾸리고 있다.

 

본업은 정신노동자였던 그가 온전한 육체노동자가 된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과 다른 일상에 한동안 진통을 앓기도 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제주에 와서 절실히 알게 됐어요. 제가 직접 행동을 통해서 밭을 같지 않으면 결과가 나타나지 않죠. 반면 정신노동은 가시적으로 확인이 안됩니다. 몸을 쓰는 것은 그만큼 솔직한 행위에요. 하지만 힘든 만큼 어려운 것이기도 해요.”

 

하지만 삶은 공평한 것 아닌가. 그는 사람들과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대신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 마당인 삶을 얻었다. 힐링캠프라고 불리는 작은 도장에 오는 사람들은 평상시에도 해볼 수 있는 수련방법과 명상, 호흡, 신선술 등을 배워간다. 

 

“사람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행복을 느껴요. 그러려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하죠.”

 

그는 그동안 발굴해 낸 전통무예인에 대한 책을 어떻게 쓸 지 고민이다. 제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건강을 위한 운동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크다.

 

탐조경 너머로 카페 앞 섬에 있는 백로를 관찰하는 그의 뒷모습. 쓸쓸함이 아닌 새로운 호기심이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제이누리=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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