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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의료 관련 통계의 함정 ... 필수의료 붕괴 현상은 정책의 실패 탓이다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과 진짜 거짓말과 통계다.’ 통계는 해석하기 나름으로 진짜 거짓말보다 더 거짓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들이 일상 하는 얘기도 앞뒤를 잘라 언급하면 본인의 의사와 반대되는 표현이 되곤 한다.

 

필자가 애용하는 말에 ‘20대에 사회주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40대에도 사회주의를 생각하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가 있다. 이 말을 ‘사회주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하면, 필자는 영락없는 사회주의자가 된다. 필자의 의견은 경험이 적은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좋게 보이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사회주의란 실현하기 어려운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국가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적정의사 수는 얼마일까'하는 것이다.

적정의사 수는 한 마디로 정하기가 어렵다. 그 나라의 인구밀도, 의료제도, 경제 수준, 의료이용 행태 및 의료수준에 따라 다르다. 그것을 단순히 OECD 평균과 대비해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에서 발표한 대로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으로 OECD 평균인 3.6명에 비해 적은 편이다. 그러나 그 통계를 자세히 살펴보면 의사가 많은 그룹은 그리스(6.2명), 포르투갈(5.0명), 스페인(4.4명), 러시아(4.2명) 등 대부분 우리나라보다 의료수준이 떨어진 의료사회주의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의사들이 대부분 공무원 신분을 가지므로 상대적으로 의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공무원 신분인 의사들은 8시간만 근무하니까). 이런 나라에서는 의사가 많을수록 의사 개인의 일거리는 줄어드니까 의사 증원을 반긴다. 이런 나라들 때문에 OECD 평균 의사 수는 증가한다.

 

우리나라와 의료수준이 엇비슷한 미국(2.6명), 일본(2.5명) 캐나다(2.7명) 등은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왜 이런 나라들에서는 의사가 모자라다는 비명이 들리지 않을까? 심지어 일본에서는 의사의 증가가 국가 살림에 지장을 준다고 의사 수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 의사 수가 모자라다면 어떻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의료성적을 낼 수 있을까?

OECD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평균수명이 증가해 노령화가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의료기관 이용률, 의사 증가 속도, 의료의 질 등에서 최고를 달리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사망률이 가장 낮고, 영아사망률도 가장 낮으며, 수술 대기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예방가능 질환에서의 사망률은 10만명 당 97명으로 11위에 해당되지만, 이것은 흡연 등 국민들이 건강관리를 잘못해 생기는 현상이고, 치료 가능 질환으로는 42명으로 스위스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은 47명이며 OECD 평균은 73명이다. 뇌경색 사망률은 OECD 평균 12.0명인데 우리나라는 5.8명으로 네덜란드에 이어 2위이며, 자궁암 수술 후 5년 생존율은 77.3%로 아이스랜드, 코스타리카에 이어 3위, 식도암에서는 31.3%로 일본(36%)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토 10㎢당 의사 수는 11.40명으로 네덜란드(14.22명) 이스라엘(11.46명)에 이어 3위다. 연간 진료일수를 보면 우리는 17.2일로 단연 1등이며, 2등인 일본(12.5일)보다 많다. 인구 당 병상 수도 1000명당 12.4개로 1등인 일본(12.8개) 다음으로 많으며, 3등인 러시아(8)보다는 당연 많다. 경제가 낙후된 나라에서는 의료기관 이용률이 당연히 낮으므로 많은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어떻게 의사가 모자라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일본을 참고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의사 수에서는 의사 수를 줄이려고 애쓰는 일본을 참고하지 않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하나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필수의료의 붕괴 현상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응급환자가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이나 시골에서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하소연을 자주 본다. 이것이 우리나라 의사가 모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다. 

얼마 전만 해도 많은 국민들은 미국 교포들이 아프면 귀국해서 치료받는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세계에서 최고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가끔 응급환자가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대부분 특수한 상황이어서 그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니 의사가 부족해서 그런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책적 실패에 기인한 것이다.

현재 문제가 심각한 소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흉부외과의 절대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이런 과의 전문의 숫자는 충분하다. 다만 필수 전문과의 많은 전문의가 자기 전문 과목을 그만두고 다른 분야로 진출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의 기폭제가 된 것이 이대목동병원의 소아집중치료실에서의 환자 사망사건으로 담당 교수와 전공의, 간호사들이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특히 담당 교수는 아기 엄마인데도 법정구속을 당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고등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법정구속하지 않으면서,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된 사항으로 도주와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아기 엄마를 구속하는 것을 보고 의사들이 분노했다. 바로 다음 해에 소아과 전공의 지망율이 50%로 떨어졌고, 현재는 겨우 20%를 유지하고 있으니 대학병원에서 소아과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 사태 이전의 소아과 지망률을 보면 수도권에서는 119%에서 36%로 떨어졌고, 비수도권에서는 100%에서 5.6%로 더 떨어졌다. 그래서 가천의과대학 길병원에서는 소아과병동 폐쇄라는 극단적 조치까지 내리게 되었다.

또 산부인과에서는 해산 중에 양수색전증이 발생해 그 후유증으로 뇌의 발달이 지연된 어린이가 생겼다. 산부인과 의사라면 평생 몇 차례 당하는 일이다. 그런데 인정할 만한 과실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인데 1심에서 10억원에 이르는 보상금을 주도록 판결했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결혼 건수가 줄어 산모들이 드물어 병원 경영이 어려운 산부인과 의원들이 폐업을 해버리니 산부인과 의사가 한 명도 없는 군(郡)이 생기게 되었다. 산부인과 의원이 없으니 아기 낳기를 바라는 젊은이들이 살기를 꺼려 결국 지방소멸이라는 총체적 난국을 초래했다. 

더군다나 정부의 정책 실패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위험도도 높은 필수과보다 위험도도 떨어지며 비보험이 많아 수입도 더 많은 과로 의사들이 몰리는 현상을 초래했다.

우리보다 의료가 낙후한 영국에서 6명의 의사들이 형사 입건되는 기간에 우리나라에서는 500명이 넘는 의사가 형사재판에 넘겨지고 있으니,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는 응급의학과나 흉부외과 의료행위를 피하려는 풍조가 만연해진 것이다(학부모들의 민원이나 소송제기가 두려운 교사들이 학생들의 일탈에도 눈을 감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전문의라면 다 하던 수술도 소송이 두려워 세부전문의가 아니면 하지 않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서울중앙병원의 간호사가 뇌출혈이 되었는데, 아산병원에 신경외과 의사가 여럿 있었지만 개두술(머리를 열고 하는 수술)을 하는 의사는 둘 뿐인데 한 분은 학회 참석차 외국에 가 있었고, 다른 한 분은 시골에 가 있는 상황이어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고, 시간이 지체되어 환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한국병원 초창기(1980년대 전반)에 심장에 칼이 찔린 환자가 왔었다. 그런 환자는 당연히 흉부외과 소관이지만, 그 당시 제주도에는 흉부외과 의사가 없었다. 서울로 가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사망할 가능성이 거의 100%였다. 하는 수 없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반외과 의사가 수술해 살려냈다. 요즘 같으면 수술 후에 소송 당할 가능성 때문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대 신설을 요구하는 정치적 압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말도 되지 않는 40명 정원의 의과대학이 여럿 있다. 제주의대도 정원이 40명이다. 국회의원이나 도지사, 총장마다 의과대학 유치를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고 의과대학을 마구 유치하니 이런 현상이 생겼다. 그런데 40명 정원으로는 의과대학 유지가 어렵다. 그러니 일단 의과대학이 설립되면 정원을 늘리기 위해 애쓴다. 1990년대에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대학과 학과를 마구 늘린 정치권의 잘못으로 지금 얼마나 많은 대학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나. 일반 대학의 정원 줄이기보다 의과대학 정원 줄이기는 훨씬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는 것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의사는 변호사와 더불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대표적 직군이다. 변호사를 늘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큰 부담이 되듯(미국에서 ‘식코’ 현상이 생기는 것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히 많은 변호사 때문인데 시민단체에서는 영리병원 때문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의사 또한 너무 많이 불어나면 국가적 부담이 된다. 일본에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인데도 의사를 줄이려는 것이 바로 국가적 부담 때문이다.

둘째는 다른 곳으로 흩어져야 할 인재들이 의대로 몰려 국가의 올바른 발전에 해가 된다. 지금도 내년에 의대 입학정원이 늘어나면 진로를 바꾸려는 이공계 학생들이 수천 명 된다고 한다. 국가의 부(富)는 의대에서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과 공대에서 만들어 내는데, 이것이 지장을 받으면 정말 우리나라는 장래 희망이 없다.

셋째는 많은 돈을 들여 키운 의사들이 외국으로 나가버린다. 경쟁이 심해지고 대우가 나빠지면 대우가 좋은 외국으로 나가려고 한다. 두뇌의 유출이 심각해진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애써 키워놓으면 미국으로 빠져나가니(우리나라도 70년대에는 그랬다) 모자라는 의사는 동구권에서 온 의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러니 미국은 의대 정원에 비해 풍부한 의료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모든 정책에는 장점이 있으면 반드시 단점이 있다. 훌륭한 정치가라면 단점을 잘 살펴서 정책을 마련한다. 의사 증가율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에서 의대 입학정원을 더 늘리겠다는 것은 정말로 국가의 장래를 위해 삼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니 의사가 불어나면 의사 구하기도 쉬워지고 봉급도 줄일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다. 또 이번에 증원된 의사들이 현장에서 활동할 즈음이면 이미 죽고 없을 것이니 이익도 없고 손해 볼 것도 없다. 그러나 고향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나의 후손들이 미국의 ‘식코’와 같은 상황에서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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