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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령을 만나는 이, 신의 성방" … 학자마다 다양한 주장
제주의 굿 … '치유의 힘'으로 민중의 희로애락 함께해

올 초 개봉한 영화 '파묘'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상반기 극장가를 휩쓸었다.

 

 

무당 '화림' 역을 맡은 김고은이 서슬 퍼런 식칼을 든 채 신들린 듯 춤을 추며 굿을 하는 장면이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등 영화의 흥행 뒤에는 무속 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 이른바 오컬트(occult) 장르물인 '파묘' 이후 무속 신앙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무속 신앙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제주.

 

독특하게도 제주에선 다른 지역과 달리 무당을 '심방'이라 부르며 종교와 문화유산의 영역에서 보호한다.

 

제주에선 왜 무당을 심방이라 하는 걸까.

 

◇ "신령을 만나는 이, 신의 성방"…심방의 의미는?

 

"난 무당이라 불리는 게 싫어. 심방님 또는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제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여러 심방과 인터뷰하다 보면 '무당'이라 불리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다.

 

무속 신앙에 대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제주에선 여전히 종교와 문화 영역에서 중요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심방은 제주에서 활동하는 무당을 일컫는 명칭이다.

 

유독 제주에서 달리 부르는 '심방'이란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심방의 어원에 대해선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가 심방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며 다양한 주장을 펴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인문학자 무라야마 지쥰(村山智順)은 제주도 심방을 '神房'(신방)이라는 한자로 처음 표기한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조선의 무격'(朝鮮の巫覡)을 통해 무당을 일컫는 말 중 '심방'은 '신방'(神房)이 변한 말이며, 이는 절에서 나온 명칭으로 '僧房'(승방)이 변한 말이라고 했다.

 

절의 승려에 의해 무속이 전파됐다는 제주지역 전설을 근거로 이같이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속학자인 고(故) 진성기 전 제주민속박물관장은 '제주도무속논고 : 남국의 무속'(민속원, 1966)에서 제주어를 바탕으로 심방의 의미를 파악했다.

 

'붙잡다'는 뜻의 제주어 '심다'의 어근 '심'과 사람에게 붙는 존칭대명사의 어미인 '방'의 합성어라고 봤다.

 

그는 "심방은 신령과 신당과 인간의 삼자 사이에서 춤을 추며 주문으로 중매적인 구실을 맡아보는 초인적인 주술사이겠지만, 그 뜻에 있어서는 '신령을 붙잡는 이'라는 원의에서 파생돼 나와 결국 '신령을 만나는 이' 또는 '신령을 찾는 이'(尋房)이라는 뜻을 갖는 복합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신화와 전설을 연구한 고(故) 현용준 제주대학교 교수는 심방의 어원을 심방이 굿을 할 때 부르는 무가(巫歌)에서 실마리를 찾아 설명한다.

 

현 교수는 '제주도 무속연구'(1986년, 집문당)와 '제주도 무속과 그 주변'(2002, 집문당)에서 "굿을 할 때 무가에서 심방이 자기 자신을 '신의 성방' 또는 '신의 아이'라고 노래한다"며 "'신의 성방'은 '神의 刑房'(신의 형방)의 '형-'이 구개음화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신의 성방'이 '신방'으로 축약되고 다시 '신방'이 자음동화해서 '심방'으로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형방은 법률·형벌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관아의 벼슬아치이므로 '신의 형방'이라 함은 신의 형벌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란 뜻이 된다.

 

반면, 강소전 제주대학교 강사는 '제주도 심방의 멩두 연구'(2012) 논문에서 "현용준의 견해는 결국 심방을 한자어 신방(神房)으로 보는 것으로, 현재 학계에서는 이를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그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한글 표기로 심방이라는 단어가 기록된 조선시대 15세기 문헌인 '월인석보'와 '능엄경언해'를 예로 들어 보이며 "심방이라는 표기는 자연히 한글 고유어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며 "심방이라는 고유어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선행연구의 고민을 다시 보게 된다"고 말한다.

 

이어 "제주도 심방의 유래를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한국 무속과 일정한 연관성 속에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 치유의 힘…여전히 무속을 믿는 이유

 

영화 '파묘' 이후 무속 신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최근 다큐멘터리 '샤먼: 귀신전'(티빙 오리지널), 연애 예능 프로그램 '신들린 연애'(SBS) 등 무속 신앙을 소재로 한 콘텐츠가 잇달아 제작될 정도다.

 

자극적인 소재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일으키려 한다는 비판과 무속 신앙에 대한 현대적이고 새로운 접근이라는 긍정의 시각이 교차한다.

 

오늘날 무속 신앙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제주의 심방은 예부터 민중의 희로애락과 함께했다.

 

인간이 신과 만나기 위해 행하는 의례인 굿을 통해 뭇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염원했다.

 

또한 개인과 공동체에 닥친 커다란 문제를 도닥이며 마음에 맺힌 한(恨)을 풀고 함께 난관을 해결해나가는 힘을 불어넣었다.

 

치유의 힘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심방이 굿을 통해 행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한 일례로 '4·3 해원상생굿'이 대표적이다.

 

제주 4·3은 70여 년 전 해방 직후 이념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고한 제주도민 수만 명이 국가의 부당한 폭력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다.

 

4·3 해원상생굿은 해마다 제주 각 마을과 학살터 등에서 약 3만 명에 달하는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달랜다.

 

 

원통한 마음을 푼다는 뜻의 '해원'(解寃), 함께 공존하며 살아간다는 '상생'(相生)이 목적이다.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 굿은 아니지만, 제주 민간의 신앙과 굿의 역할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지난 2014년 4월 19일에는 4·3 해원상생굿 과정에서 세월호 사고 실종자들의 생환을 기원하기도 했다.

 

"세월호 273명 생명의 끈을 놓게 허지 마랑, 살려줍서. 구조자 눈에 띄게 허여줍서. 눈에 띌 동안 요왕(용왕을 뜻하는 제주어)에서 맑은 공기로 아기덜 살려줍서…."

 

당시 굿을 집전한 제주큰굿보존회장 서순실 심방은 제주도민 전체의 간절한 바람과 함께 제줏말로 용왕님께 정성을 다해 빌었다.

 

이것이 제주의 굿이다.

 

신에게 구원을 바라는 건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전 세계 널리 퍼진 종교에서도 공통으로 이뤄지는 일이다.

 

무속신앙 역시 믿음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종교다.

 

특히 제주에선 신앙을 통해 사람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돕는 공동체의 명맥이 도내 전역에 이어지고 있다.

 

지역 마을마다 신당이 남아있고, 단골(신앙민을 뜻하는 제주어)들이 여전히 신당을 찾는다.

 

물론 해마다 참여 주민의 비율이 줄어들고 있으나 마을제, 당굿의 전통은 살아있는 신앙으로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과 달리 다양한 신화가 고스란히 남아 종교적 믿음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큰 특징이다.

 

이 때문에 굿으로 대표되는 제주의 신앙이 다른 지역과 달리 독특한 위상을 가진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연합뉴스=변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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