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도내 주요 교차로에 지난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담은 정당 현수막이 잇따라 게시되면서 도민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서문사거리 인근 횡단보도에 설치된 정당 현수막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729/art_17526453492168_cc5f67.jpg?iqs=0.9867926965906907)
제주도내 주요 교차로에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정당 현수막이 잇따라 게시되면서 도민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현수막에는 허위 사실이나 특정 국가를 겨냥한 혐오성 문구도 포함돼 있으나 현행법상 제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선거관리위원회의 설명이다.
16일 <제이누리> 취재에 따르면 이날 제주시 삼도2동 서문사거리 앞에는 '6.3 한국 대선 부정선거 확실'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해당 현수막은 '내일로미래로당' 명의로 게시됐다. 게시 기간은 지난 13일부터 오는 27일까지로 명시돼 있다.
이 같은 현수막은 서문사거리뿐 아니라 도심 곳곳 교차로에 다수 걸려 있는 상황이다. '가짜 대통령인 줄 미국도 안다', '중국공산당 한국선거 개입' 등 자극적인 문구가 포함돼 있어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시민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6.26 워싱턴 발표'라는 문구는 마치 미국 정부가 부정선거를 인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는 실제로는 보수 성향의 민간단체가 워싱턴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을 지칭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단체는 과거에도 유사한 음모론을 반복적으로 제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현수막에는 중국에 대한 혐오를 유도하는 표현까지 포함돼 있어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제주도선관위는 해당 현수막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수막이 '옥외광고물법' 및 '정당법'상 형식 요건을 충족했기 때문이다. 2022년 관련 법 개정 이후 정당은 게시자 명의와 연락처, 게시 기간 등을 명시하면 최대 15일간 신고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현행 법령이 형식적 절차만 규정하고 있어 허위나 오인 가능성이 있는 내용이라도 제재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사실을 가장한 정치적 선전이 공공 공간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구조다.
제주의 한 변호사는 "현수막은 형식 요건만 충족하면 내용의 진실성과는 무관하게 보호되는 구조"라며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허위·과장된 정치 메시지가 시민의 피로감을 키우고, 여론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도 "현수막 정책은 후진적 정치 수단"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더라도 횟수나 장소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수막 난립에 대응해 일부 지자체들은 정당 현수막 수량이나 게시 위치를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했지만 대부분 대법원에서 상위법 위반으로 무효 판결을 받았다. 울산시가 시행했던 전용 게시대 강제 사용 조례 역시 이 같은 이유로 폐지됐다. 결국 지자체 차원에서 현수막 문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헌법소원도 제기됐다.
새로운미래를위한 청년변호사 모임 등은 "정당 현수막이 도시 미관을 해치고 보행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사실상 특정 정치 세력에만 특혜가 부여되는 구조"라며 옥외광고물법 개정 자체를 헌법소원 대상으로 올렸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 보호가 중요한 가치인 것은 맞지만, 왜곡된 정보나 혐오 표현까지 모두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횟수·장소·내용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2023년에도 제주 지역에는 특정 역사 사안을 왜곡하는 내용의 정당 현수막이 다수 게시됐으나 당시에도 선관위는 "정당의 의견 개진"이라는 이유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바 있다.
현행법이 현수막의 형식은 규제하면서도 내용에 대한 판단 기준은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허위 주장이나 혐오 표현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공공장소에 노출될 수 있다는 구조적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한 정당 관계자는 "도민들은 이런 정치 선전 문구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게시 기간이 끝나더라도 유사한 내용의 현수막이 계속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