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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소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6-2)

6. 목로주점2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양주는, 사오겠다던 양주는? 어어, 손이 놀고 계시네. 저 손에 뭐 잡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동조를 구하듯 역시 거드름을 피며 옆 동료들을 둘러보고 또 역시 두 명 다 고개를 아까처럼 꼭두각시이듯 끄덕거리고 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하시죠.”

 

노래가 그쳤고 기타가 멈췄다.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던 동렬이가 다가왔다.

 

 

“소주 안 사왔어? 소주 사러 간다고 나가지 않았던가? 그래에, 맥주만 마시고 있으니까 싱겁더라구. 우리도 이런데 젊은이들이야 더 어떻겠어. 어이 젊은이들, 우리랑 같이 한잔 합시다. 이 친구가 콱 막혀가지고 고집불통이거든.”

 

그 불량스러운 사내는 금세 히죽해 가지고는,

 

“그렇죠? 싱겁죠? 라이브카페가 뭡니까? 마시고 즐기자는 거 아녜요? 오늘 같은 밤 무엇을 하나, 뭐 이렇게 지르며 마시자고 차린 게 라이브 아니겠어요? 그래야 돈도 벌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과는 다르게 친구분께서는 탁 트이셨네, 트였어!”

 

이러면서 조릿조릿해 하는 아버지의 빈 손을 두 눈으로 훑는다.

 

“손가락만 빨고 놀 수도 없고, 형님들, 내가 후딱 내려가서 양주 한 박스 사 올릴까예?”

 

동행여자가 찻값을 치루고 있을 때도 이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친구 동렬이까지 개입되는 게 싫었다. 너희들은 저기 가 있어 했지만, 동렬이와 함께 온 또 다른 친구, 준석이가,

 

“이럴 줄 알고 너랑 마실라고 내가 한 병 사가지고 왔지. 같이 마십시다. 합석하죠?”

 

서울을 떠나며 오늘만큼은 문을 걸어 잠그고 셋이서 오랜만에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보자고 했었다.

 

“언제 이래 본 적 있었냐? 대학 졸업하고 없었지? 나도 이번 참에 회사 그만 때려치워야 할 것 같다. 마누라한테는 너랑 동렬이랑 이틀 밤 외박할 거라고 허가 받아 놨다.”

 

준석의 아내는 그의 아내가 되기 전 우리의 먼저 친구였고 또 우리랑 동갑내기다. 동렬이의 대학 과 동창이기도 했다.

 

“사장님하고는 통이 다르시네. 친구분들은 화통, 그 자체구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자리가 이렇게 합쳐졌다. 무언지는 모르지만 터져도 큰 일이 터지고 말 것이라는 우려는 일단 기우로 봉합되었다. 그러나, 언제 저들이 또 심술로 심통을 부릴지 모를 일이었다. 준석이가 내놓은 양주는 한 병이었고 그 한 병이 다하면 저들은 다시 짐승이 되어 돌아올 것이었다. 전쟁은 단지 조금 늦추어지고 있을 뿐, 휴전은 이런 것이었다. 휴전도 전쟁은 전쟁이었고 오히려 더 불안했다. 한반도 이 땅이 그러하듯.

 

“아빠, 동렬이 아저씨, 기자잖아. 경찰, 아니지 더 끗발 좋다는 검찰 불러서 그 놈들 혼내주라고 하지 그랬어. 그 동네 양아치 새끼들. 괌에서 이랬다가는... 미국에서 그랬다가는 단번에...”

 

“미국 영화 보니까 우리보다 더 하면 했지 안 그러던데? 더 개판이던데? 양아치란 말도 서양아치, 이거 준말 아닌가? 아니면 그만이고, 뭐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아버지 컵에 맥주를 채우며,

 

“헐리우드에서는 뭐든 다 가능하니까. 아빠, 양준 없어? 아빠 마시는 거!”

 

그냥 해본 소린데 아버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맥주가 아닌 다른 병을 가져왔다.

 

“중국술이 다음 날 머리가 덜 아픈 것 같더라. 독해서 많이 마시지 않게 하기도 하고. 딱 석 잔만 우리 공히 더 마시고......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네. 소파에서.”

 

 

꽤 양 많은 양주 한 병이 비워질 즈음 불량스러운 사내의 다른 동행이 화장실을 다녀온다더니 소주를 다섯 병이나 사왔다. 동렬이와 준석이를 말렸다. 취하면 취할수록 그 다음에 벌어지고 말 일은 술기운을 빌어 더 부풀려질 게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술은 도가 지나치면 비이성적 폭발을 하고 만다는 것쯤 잘 알고 있었다.

 

“좋아 좋아. 화끈한 젊은 친구들하고 마시니까 술맛도 더 나고. 친구들, 나 노래 하나 불러도 되겠나?”

 

동렬이는 또「목로주점」을 불렀다. 전염성 강한 노래는 금세 솔로가 아닌 합창으로 울려 퍼졌다. 나이가 먹어도 아직 우아하고도 우렁찬 동렬이의 목소리는 혼합과 혼동 속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혼돈은 질서를 어지럽혔다. 소란은 조화를 깼다. 혼돈과 소란이 뒤섞인 혼란의 세계가 길어지면서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좀 지나 개판 오 분 후일 것 같던 분위기는 한 순간에 차분해졌다. 양아치가 정색을 갖추고 알찐거리는 게 아닌가.

 

“사장님, 죄송합니다. 어린 놈이 너무 깝죽댔습니다. 용서해주시는 거죠? 여기 제 술 한 잔 받으시지요! 사죄의 술을.”

 

아버지는 약간 취한 몽롱한 눈으로 술잔을 받아 얼떨떨하게 소주를 넘겨받았다. 불량스러운 사내는 조금 당황한 아버지에게 손을 다시 내밀었다.

 

“용서의 술, 내게 따라 주시는 거죠?”

 

따라주면서도 아버지의 몸은, 손은 아직 떨고 있었다. 휴전 중일뿐이니까. 이해의 술, 배려의 술, 포용의 술, 관대의, 관용의 ... 술이 오가며 소주 다섯 병이 다 비워질 무렵, 그 사내가,

 

“형님. 이제부터 형님입니다. 사장님은 처음 볼 때부터 사장님이 사장님한텐 안 어울렸어요. 형님? 괜찮지요? 이렇게 맘 텄으니 이제 이 카페에서 나 같은, 나 같이 못되게 구는 놈 하나 더 들어와 행패거든 내가 다 알아서 손봐드리겠습니다. 이제 맘 푹 놓으시고 돈 버는 일에만 몽땅 정열을 쏟으십시오, 돈 버는 데에만, 형님!”

 

혀는 잔뜩 꼬부라져 있었고 몸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이 술이 깨면 또 어찌 변심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하루 공짜술이나 얻어먹고 보자는 심사겠지 하며 아버지는 대수롭게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순간만은 그를 받아줬다.

 

“그렇담, 마지막 이 한 잔은 보은의 술이 되는 건가? 나를, 이 형님을 잘 봐주겠다는?”

 

그래도 아직 불량한 그 사내가 술이 목에 넘어가기도 전에 와락 아버지를 끌어안았다.

 

“우리가 의리 하나로 죽고 사는 놈이 아닙니꺼. 우린 신세 고만지고 일어날라요. 얼마지유? 꽤 나왔을 튼디?”

 

영호남을 두루 섞은 말투마저 불투명한 깡패가 빌어먹고만 산 그 입으로 얼마라니? 아버지는 어리벙벙했다. 술이 다 깨는 것 같았다. 이 친구가 술에 취해서 취기로 저래 보는 거지 싶다가, 아니면 정말 제 정신으로? 진짜 내가 그의 형이 되는 건가? 동생으로 삼아줘도 되는 거야, 이거? 양아치의 객기는 주머니에서 뺀 지갑에서 만 원 지폐를 뭉치로 꺼내고 있는 게 아닌가. 이 때 동렬이가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봐, 이봐. 먼저 합석하자고 한 건 우리 쪽이잖나? 그러니까 술값은 우리가 냄세. 젊은이들은 우리 덕에 공짜술 받았다 치자구. 세상 살면서 기분 좋은 공짜도 더러 있어야 사는 재미도 있고 하는 거 아냐? 우린 술 사는 재미도 갖고...”

 

준석이도 거들었다.

 

“자네들도 아까 막판에 소주 냈지 않은가. 오늘 젊은 친구들 만나 정말 재미 끝내줬네. 그런데 방금 한 말, 이 친구, 꽉 막힌 이 순진한 내 친구, 뒤 좀 정말 잘 봐주겠나? 우리가 비록 하룻밤 술인연으로 맺었을 뿐이지만 그거 하나 부탁 좀 하세. 이 친구, 워낙 고지식해서 말야.”

 

이러자 더 신이 났다는 듯, 그 사내는 양아치티를 더 내며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히더니,

 

“염려는 저 밖 물영아리 늪지에다 썩 던져버리시고... 사내자식이 한 입으로 두 말 합니까? 그게 사냅니까? 한 입으로 두 말하는, 내가 그 까짓 못나빠진 정치인입니까?”

 

고개를 좌우로 반드레하게 저으며,

 

“오늘밤 술은 형님들이 동생들에게 쏜 거라 치고요, 처음 우리끼리 마시던, 맥주 몇 병이더라? 그 값어치는 우리가 치러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속이 편합니다. 이건 들어주십시오. 안 들어주면 나 양아치됩니다요.”

 

기자여서만은 아니다. 기자가 되기 전에도 동렬이는 순발력이 대단했었다. 그의 상황판단은 언제나 빨랐고 또 거의 정확했다.

 

“따지는 것 같으니 그러지 말고, 좋아 좋아, 그러면 이러자구. 이러면 어떤가? 한 명당 만 원씩만 내. 주인도 적자는 볼 수 없잖아?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 만 원씩 내면 모두 5만 원? 주인도 우리랑 마셨으니 만 원 낸다 치면, 6만 원, 오늘 술값 모두 6만 원? 됐지?”

 

 

불량스럽던 사내부터 좋다며 흔쾌히 만 원을 꺼내 놓았다. 졸지에 동생이 된 그 동네 양아치는 자기 핸드폰 전화가 박힌, ‘~컨설팅 대표’인가 ‘~프로덕션 대표’던가 적힌 명함도 함께 내놓았다.

 

“형님, 일 생기면 언제라도 불러주십시오. 나를 부를 일은 앞으로 없어야겠지만.”

 

그들이 문을 열고 나간 시간은 새벽 3시쯤이었다. 계단을 내려 마당으로 걸어 나가던 그들은 마당에다 오줌을 누고 있는 것 같았다. 나란히 서서 통바지춤을 잡고 있는 뒤품도 영락없이 양아치였다. “썩을 놈들. 마당에서 냄새나게.”

 

동렬이도 준석이도 그리고 아버지도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 ‘푸하’ 최불암 웃음을 토해낸다. 우리끼리 이제부터다, 며 준석이는 끼고 온 노트북 가방에서 작은 고량주병을 꺼냈다. 한 잔을 들이키고 또 한 잔을 마시는데 마당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이왕이면 마주 앉아 마시자 그랬지.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일제히 창밖으로 달려가 내다보니 그 양아치들이 아직 떠나지 않고 방금 전 오줌을 눈 그 마당에 눌러 앉아 이 쪽을 바라보며 <목로주점>을 기린처럼 목을 내놓고 질러대고 있었다. 우린 그 양아치, 이젠 동생들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여 술을 따랐다. 중국잔을 치우고 이왕 더 큰 잔, 글라스에다가 고량주를 따랐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의리 없이. 꼬부쳐 놓은 술이 있을 거라고 했지?”

 

주량을 훨씬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머리는 그 다음 날 개운했다. 중국술 때문이라고 그냥 여기기로 했다. 그 뒤 양아치의 핸드폰번호를 누를 일은 없었다. 나는 아직 그를 보진 못했지만 가끔 와서 딱 만 원어치만 마시고 간다고 한다. 아버지한테 형님 형님 하면서. 내게도 졸지에 삼촌이 된 그 얼굴이 보고 싶다. 어떻게 생겨 먹은 낯짝인지.

 

어쩌면 이 불량배삼촌을 믿고「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원칙을 깨트리려드는 손님에게 ‘안 됩니다’라고 아버지는 단호한 건 아닌지. 양아치도 빽이라고.

 

“술이 심술을 부리기도 하고 요술을 부리기도 하긴 하네. 아빠, 우리도 오랜만에 <목로주점> 불러볼까?”
“벌써 세 신 걸? 자야하지 않겠니?”

 

외동아들도 못 말릴 아버지는 기타를 가지러 가는 중이다. 늙어가며 늘어가는 아버지의 철면피를 어찌 말리겠나. 철면피가 때론 자신감으로 보여 보는 아들이 기분 좋다. <다음주 이 시간에>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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