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등병의 편지
편지
한 장에
담긴 우리 가슴
훈련소가 아닌 육지로 넘어가는 날, 떠나는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했다.
“여기에 묶여 밖을 나가보지 않은지 정말 오래 됐지? 몇 년 만의 외출인데 이틀은 너무 짧은가? 더 줘?”
나는 아버지에게 대단한 선심을 쓰듯 아버지의 외출을 허락했다. 아버지는 추방이라고 했다. 한 달 뒤쯤 입대하는 승철이와 여행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좋은 곳을 놔두고 멀리 갈 필요가 있냐고 했고 이래서 더 좋은 곳,「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입대하는 승철이를 환송해주기로 했다. ‘우리끼리만’으로 합의되면서 아버지에겐 여행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쫓겨나는 거지, 이게 휴가냐?”
아버지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매일 쉬는 거와 같았지만, 즐기는 것도 한참 하니 직장 같아지긴 했어. 매너리즘이라고 하니? 의례이즘? 그래, 아빠, 이틀 푹 쉬고 와도 되겠지?”
카메라를 챙기고 있었다.
“친구, 동행할 친구 없어? 여자친구!”
“이거 있잖아. 속 썩이길 하니, 괴롭히길 하니. 내 말 잘 들어주고 고분고분한 이게 내 애인인 걸. 내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니 이만한 친구가 어디 또 있을까?”
챙기고 있는 카메라를 가리켰다. 아버지는 몇 개월 전부터 사진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카페를 열기 전에는 억지 취미로라도 말하자면 기타치고 노래하는 것이라고 할 순 있었는데, 지금은 엄연히 직업이 되지 않았냐. 비록 판을 낸다든가 방송출연 등 절차 받고 정식으로 취입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서 무려 4년 넘게 굴러먹은 가수라면 가순데... 직업이 취미일 순 없고... 취미 없는 생활은 정말 난 취미 없는데, 뭐 좋은 거 없을까?”
이런 중에 장롱 안에 십수 년째 처박아뒀던 골동품 같은 카메라를 꺼내왔고 ‘이거 어때?’ 했더랬다. 필름을 사용해야 하고 필름을 돌리는 필름레버가 따로 있어 찍을 때마다 필름을 돌려줘야 하는 구닥다리 카메라였다.
“이래 보여도 이것 가지고 네 백일이며 돌사진을 찍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네 그 어릴 적 모습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을 수나 있겠니? 근데 요즘 필름을 팔긴 하니? 공장도 없어진 거 아냐? 그러게. TV에서 필름광고 못 본지도 오래...”
인터넷을 뒤졌더니 필름이 디지털에 밀려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행이다. 아버지는 디지털카메라는 싫다고 했다. 굳이 꼭 필름카메라, 구식을 택했다.
“야아, 아직 필름을 누군가가 쓰고 있다는 말 아니냐?”
직접 현상·인화도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으니... 불과 몇 년 사이에 쓸모없는 물건들이 많아진다는 말이기도 하지? 더 완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이것 가지고 놀아봐야겠는 걸.”
투박해서 묵직한 쇳덩어리고물 옛 카메라의 파인더 옆에 아버지는 날카로운 송곳으로 ‘生世之樂’이라고 새겼다. 친구로 삼으려한다며 이름까지 지어줬다. 生世之樂이라는 이름을 지닌 카메라.
“이왕 태어난 거 즐겁게 살아야하지 않겠니? 그전엔 기타와 입으로 즐겼다면 이번엔 카메라와 손, 그리고 눈으로 즐겨야겠다.”
이왕 시작하는 거 아버지가 대학 다닐 때 하고 싶었지만 끝내 못했다는 흑백암실작업에도 도전한다며, 인터넷 검색창에 ‘흑백현상’을 쳐보니 흑백필름 파는 곳에서부터 흑백 현상·인화하는 곳, 그리고 흑백자가현상법까지 별의별 정보가 줄줄이 다 올려있었다. 이 뒤, 카페 문이 닫히면 주방의 빨간등 아래에서 아버지의 서툰 흑백인화가 펼쳐지곤 했다.
“남도에 다녀오면 찍은 사진들을 묶어 사진집을 하나 만들어보련다. 세상에 단 한 개밖에 없는 사진집. 겉에다간 ‘남도기행’이라 적고... 어떻니?”
이러고 아버지는 떠났다. 남도로 배를 타고.
“갔냐? 친구들.”
“아니, 아직. 아빠 오면 인사드리고 가야한다며 기다리고 있는데, 모두. 지금 어디야?”
“응? 여기 목포역. 방금 기차에서 내렸어.”
“또 배 타고 오려고? 그럼, 여기 오려면 하루 더 걸리겠다. ... 친구들이 기다리겠데. 너무 재밌었는데 카페 비워준 이 집 주인한테 인사 안 하고 갈 순 없다는 걸? 천천히 와. 우린 느긋하게 놀면서 기다릴게.”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 절 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나의 친구들은 아버지가「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로 들어오자마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한 곡! 한 곡! 한 곡!’을 외치며 무대로 아버지를 끌어올렸다.
“어울려 잘 놀았다니 다행이구나. 너희들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나도 휴가를 얻어 쉴 수 있었단다. 나도 고맙다. 부모님 품에서만 지내다가 처음 떨어져 혼자 덜렁 던져진다 생각하니 군대가 끔찍할 거야. 2년이지? 너희 젊음에 2년은 너무 소중한 시간이기에 더 길게 느껴질 거구. 그래. 난 삼일 휴가를 받아 구식 카메라와 흑백필름 두어 통, 그리고 소설 한 권을 들고 떠났었지. <개미혁명>이란 소설을 남해바다를 바라보며 읽는 여유를 만끽했고. 근데 이 대목에서 내 가슴이 뜨거워지더구나. 오십이 훌쩍 넘은 이 나이에도 말이다. 들어볼래?
‘그대는 다른 세상을 꿈꾼 적이 없는가?
그대는 다른 삶을 꿈꾼 적은 없는가?
그대는 인간이 우주에서 본연의 자리를 찾게 될 날을 꿈꾼 적이 없는가?
그대는 인간이 자연과 대화하고 자연이 피정복자로서가 아니라 대화의 상대로서 화답할 그날을 꿈꾼 적은 없는가?
그대는 동물이나 구름이나 산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적대감이 없이 협력하며 살 수 있기를 꿈꾼 적은 없는가?
그대는 새로운 인간관계에 바탕을 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꾼 적은 없는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누구도 감히 남을 심판하려 들지 않으며, 저마다 자유롭게 행동하되 모두의 성취를 항상 염두에 두는 공동체를.’
어때? 이 구절을 읽으면서 군대 갈 너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단다. 이렇게만 된다면 군대도 없을 텐데... 그 소설은 학교에서 학업성적으로나 부모의 지위·집안형편으로 소외되고 왕따를 당하는 쥘리라는 여학생과 역시 비슷한 처지의 일곱 난쟁이들이 록그룹을 이끌어가며 자기들만의 곡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거든? 방금 읽어준 가사는 그 곡 중 하나란다. 정말 예쁘지 않니? 정말 고귀하지 않니? 이 여학생과 난쟁이들의 생각이 말이다. 나는 너희들이 준 사흘휴가로 동물이나 구름이나 산과 이야기를 나눴고 카메라를 통해 보니 자연과 내가 서로 적대감을 가질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단다. 아주 의미 있는 여행이었지. 카메라가 아주 좋은 동행이 돼줬구.”
아버지의 노래로 <이등병의 편지>를 이어갔다.
친구들아 군대 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 않게
열차시간 다가올 때 두 손잡던 뜨거움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여기에서 가진 너희들만의 사흘, 내 생각엔 오래 기억될 것 같은데. 이같이 나눈 뜨거움을 더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길 바란다. 하나 제안을 해봐도 되겠니? 노래를 노래로만 끝내지 말고, 소설의 좋은 구절을 소설로만 덮어두지 말고 하나만 실천하기 어때? 서로 편지 쓰기야. 급히 쓰고 즉시 보내지는 인터넷 메일이나 스마트폰의 문자 말고 연필로 꾹꾹, 또박또박 눌러, 더러는 연필심에 침도 발라 쓴 편지로 나누기. 어때? 군대 가서 이것 하나만 지킬 수 있더라도 너희들은 다른 삶을 꿈꾸게 될 거야. 너희들은 젊은 날의 꿈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걸 것이고 말이다. 모든 혁명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한다잖니? 작은 것을 소홀히 하면서 큰 것만을 얻어내려고 해선 결코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지. 이 나이 먹도록 살아보니 그렇더라. 오랜 동안 큰 것만 쫓아다녀 허황했다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들거든. 그래, 마저 들어볼까?”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마음까지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 마을 보일런지
나팔 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 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이등병 때만 편지 하지 말고 오히려 군에 적응해서 익숙해질 무렵인 상병이나 병장 때 더 자주 편지를 서로 쓰고 받도록 하렴. <이등병의 편지>도 좋지만 <상병의 편지>, <병장의 편지> 어때? 요즘 확장이란 말을 많이 쓰던데 이렇게 확장하는 거야, 너희들의 우정을! 너희들은 꼭 편지로도 이 뜨거움을 나누는 친구가 되면 좋겠다. 이 중 누구 한 명이 더 적극적이면 이것을 꼭 이룰 수 있을 것이야. 친구가 하겠지 하고 서로 미루지 말고. 소설 <개미혁명>은 개미들의 이야기이지만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개미와 같은 미미한 존재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만하는 인간들에게 멋진 무혈혁명을 저지르라고 고취시키고 있더구나. 너희, 눈을 감아보겠니? 우리 아버지들이 너희들에게 주는 입대선물이란다.
‘그대는 우리가 닮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 적이 없는가?
그대는 저마다 자기 장점을 찾아 자기완성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적은 없는가?
나는 우리의 낡은 습관과 관습을 바꾸기 위해 하나의 혁명을 꿈꾸었다. 그것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의 혁명, 곧 개미혁명이다. 아니, 혁명이라기보다는 진보라고 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새로운 선견자다.
우리는 새로운 발명자다.’
너희들도... 어때? 가능하겠지?”
아버지는 우표가 붙은 하얀 편지봉투를 친구들과 그리고 나에게도 하나씩 선물했다. <글.그림=오동명/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