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먼 훗날
그의
먼 훗날
꼭 이루어지길
그는 아버지 또래라고 했지만 거의 반백에 몸도 수척하여 나이가 더 들어보였다. 늘 혼자 카페를 찾았다. 꼭 <먼 훗날>을 아버지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의 집은 제주도 남원도, 그 너머 서귀포나 제주시도 아니었다. 서울이었고 서울 동쪽 끝자락의 천호동도 지나야 있다고 했다. 그 먼 길을 밟아 이곳까지 자주 왔다. 정확히 말하면, 카페는 그가 가는 길목일 뿐이다. 물영아리 오름 정상의 습지분화구에서 한참 머문 뒤 찾는 곳이 바로「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였다.
아버지와 나는 쉬는 월요일, 자전거를 타고 비좁은 간선도로 남조로 남원에서 물영아리를 지나 교래리까지 다녀오곤 한다. 목 하나만큼은 족히 더 큰 아들을 여전히 허리춤 키의 초등학생으로 아직도 여기고 있어서 자전거를 차도로 달릴 때면 언제나 나를 앞세운다. 뒤에서 안전을 봐주겠다는 것이다. 이젠 컸으니 자리를 바꾸자 해도, 이젠 내가 아버지를 지켜줘야 한다며, 아버지 얼굴 앞에 내 어깨를 으쓱해보여도 아버지는 끄덕도 안 했다.
“앞 서거라. 내가 뒤에서 쫓아가마.”
그렇게 해서 도착한 마을수호신 팽목 앞. 자전거를 받쳐 놓고 아버지를 따라 삼다수 숲길을 한 바퀴 돌고 온다. 아버지가 수령 삼백 년이 넘었다는 팽나무를 더듬는다.
“여자의 몸을 만지고 있는 거란다, 아빠가 지금.”
나이가 들었지만 더 적적하고 쓸쓸할 것이라는 안쓰러움에 아버지를 볼 때마다 아들의 도리는 더 가슴이 아려와, 새 장가 들지 그래? 이런 식의 말을 농처럼 내 진심을 꺼낼라치면 아버지는 남우세스럽다며 주위를 힐끗거리며 내 입을 막곤 했다. 이런 아버지가 다른 데도 아닌 고목을 어루만지면서 여자라고 하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엔 내가 남세스럽다며 주변을 둘러봐야 했다. 팽나무를 마주 보며 우린 큰 나무의 조영이 드리워진 툇마루 같은 벤치에 앉았다.
문득 아버지와 함께 갔던 강화도 전등사가 떠올랐다. 그들의 깊고도 세심한 사랑에 가없는 부러움을 받아오던 잉꼬부부가 있었다. 목수인 남편을 지극히 섬기며 정성을 다했던 아내는 어느 날 이러한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을 갔다. 그 뒤 목수는 대웅전을 짓게 되었고 대웅전의 네 귀 추녀를 여인이 받치게 함으로써 자기의 애처로움을 기둥에 담아야 했는데, 마치 남편을 버리고 간 아낙이 벌을 서고 있는 듯이 보였다.
“네 기둥 중 하나는 손을 내리고 있는 것 같지 않니? 목수는 그래도 떠난 아내가 다 밉지는 않았나 봐. 한 손은 쉬게 해준 걸 보니.”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하며 오래 전 대웅전 기둥을 어루만졌더랬다. 그렇듯 팽목을 방금 전 더듬었다. <먼 훗날>을 들으러 오는 그 아저씨도 전등사 대웅전 전설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그는 아내로부터 전등사 대웅전 추녀를 받치는 여인의 전설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아내를 같은 대학문학동아리에서 만난 그는 강화도 전등사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우리 결혼하자.”
아내가 이 전설을 들려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후 건축학과 출신인 그는 중동건설 붐을 타던 때 중동으로 발령이 나서 부부는 몇 년간 떨어져 있어야 했다. 돌아왔을 때는 아내는 그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몸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것만은 아니었다.
“글을 쓰고 싶어.”
아내가 심중을 털어놓았고,
“그래. 당신은 대학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었잖아. 특히 시는.”
“아니. 소설을 쓰고 싶어.”
소설에 전념하자면 다니던 학교를 휴직해야한다고 했다.
“선생하면서 쓰면 안 되겠니? 국어 교사니 전혀 다른 쪽도 아니고......”
내 집 마련을 위해 붙던 적금기간도 아직 남았고 여느 부부처럼 아이가 어릴 때 조금이라도 벌어두자고 부부는 전부터 의기투합했기 때문에 그는 아내의 뜻을 적극 지원하면서도 별 생각 없이 현실적인 얘기를 했다.
“당신,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맘껏 글만 쓰라더니.”
그는 돌이켜보았다. 하지만 암만 떠올려 봐도 그 스스로가 바뀌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래 전에도 아내는 글을 계속 써보라는 남편의 권유에,
“결혼은 현실이야. 글은 더 나중에 써도 충분해. 어떻게 합격한 임용고신데 포기해? 선생하면서도 얼마든지 글은 쓸 수 있어. 다 자기 하기 나름이지.”
이랬던 아내였다.
한 해만 더 학교를 다녀보자며 그런 후 몇 달이 지났다.
“진서 선배 있지? 거, 산인가 절인가 들어가 몇 년째 소설만 쓰던. 아마 십 년도 더 됐을 걸? 십년이 뭐야? 훨씬... 그 선배가 이번에 등단을 하게 됐다는데. 당신, 소설 쓰고 싶다고 했지? 같이 만나볼까? 도움이 될 거야.”
그는 소설가 선배를 아내와 함께 만났다. 그 뒤 아내는 부부간 구두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고 학교를 그만 두고 말았다. 그리고 자주 집을 비웠고 늦게 귀가하며 전에 않던 술을 마시곤 했다.
“문인들이랑 만나니까 정말 재미있다. 더구나 술이 이렇게 맛있는 줄은 또 몰랐네.”
아내는 소설을 쓰기 위해서 한적한 곳을 찾곤 했다.
“진서 선배는 대학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 글만 쓰고 살아서인지 세상물정은 어둡지만 문학소년을 그 나이에도 버리지 않고 사는 걸 보면 대단하지 않아? 얘기 나누다 보면 소년, 어린애랑 얘기하고 있는 것 같고 다시 대학생이 된 기분이라니까? 얼마나 순수한지 길가의 작은 들꽃 하나도 예사로 보지 않더라. 술에 취하면 더 천진해져서 더 소년 같아진다니까?”
아내의 이 말에 그 좋아하던 민들레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산지도 십 년은 된 듯해 가슴이 옴치러들었다.
그러나 누군 어디 이렇게 살고 싶어 사나? 싶었고, 누군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줄 아나? 좀 성이 났고 아무리 선배지만 치켜세우기만 하니 부아가 은근히 치밀어 올랐다.
“그 선배, 결혼은 했다니? 아참, 그렇지? 우리 애보다 더 큰 아이가 하나 있다고 했었지? 그럼, 그 동안 형수님이 벌어 생활했겠구나. 형수님도 당신처럼 고등학교 선생이라고 하지 않았나? 누군 팔자 좋아... 참.”
아내는 대꾸도 않고 서재로 돌아갔다. 아내는 더 소설에 집중했다. 하지만 신춘문예나 문학지로부터의 등단이 늦어지자 점점 초조해 했다.
“우리 적금 붙고 있는 거 있지? 해약하자. 그 돈으로 오피스텔 하나 구해 내 전용 집필실로 쓸 거야. 다들 그러더라고. 그렇게 한다.”
일방적이었다. 그 전엔 이러지 않았었다. 작은 일도 서로 협의했고 ‘함께 하자’는 식의 청유형을 대화 속에서 유난히 즐기기까지 한 아내였다. 그는,
“좋은 대로 해. 하지만......”
그는 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등단을 목표로 삼지는 마.’라고 말하려다 멈췄고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에선 신문사의 신춘문예나 문예출판사의 추천 없이 문인행세를 하기 힘들다는 것쯤 어누 누구보다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지만 뭐?”
아내는 히스테릭한 반응까지 보이기도 했다. 그는 아내를 집보다는 아내 소유의 집필실인 오피스텔에서 만나는 횟수가 더 많았고, 급기야 글 쓰는데 방해가 된다며 아내가 집으로 갈 테니 오피스텔로 오는 것도 막았다. 그리고 아내는 집에도 오질 않았다. 그리고 한참 뒤 편지를 집으로 보내왔다.
“우리 헤어지자. 아니 나를 이제 그만 놔줘. 당신은 내가 가정은 포기하고 글만 쓰고 있다고 하겠지만 난, 마음은 늘 두 곳에 왔다갔다 하며 방황해 왔어. 지금 난 극심한 공황상태야. 글이 써질 리가 없지. 글만 쓰게, 소설을 쓰게 나를 풀어줘. 헤어지는 길밖에 없어. 그리고 먼 훗날, 더 아름답게 더 우아하게 우리 다시 만나면 되잖아. 전등사 기억하니? 목수와 건축과 학생, 동질성을 가지고 있네. 나중에 목수의 아내마냥 내가 변심하면 목수가 그랬던 것 같이 저런 상징을 남길 거야, 범수 씨도?”
편지를 읽고 나자 그는 프러포즈하던 전등사 대웅전 앞에서 아내가 들려줬던 전설이 문득 떠올랐다.
아내는 편지 끝에,
“나는 절대 그럴 일 없을 것. 우둔할 정도로 일편단심 춘향이과잖아.”
아내와 헤어진 뒤 그 동안 연락이 거의 끊겼던 문학동아리 오비들과의 전화가 잦았다.
‘괜찮아?, 누가 누구랑......, 그냥 선후배 사이만은 아닌 것 같던데......, 내가 잘못 본 거면 좋겠다’ 등등, 나다분한 말들만 들려왔다. 아내의 생활을 다른 동문으로부터 듣고 살았다.
목수는 절간 추녀 밑 기둥에 제 아픔을 드러냈고, 그는 가슴에 <먼 훗날>을 심으면서 제 슬픔을 감췄다. 아내의 등단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고 있다. 그는 매년 신춘문예 당선자의 명단을 확인하는 것으로 새 해를 시작한다. 아내가 그녀의 이름을 신문에 올리는 날, 그 날이 먼 훗날이 될 것이라며... 먼 훗날은 우리의 해후의 날이 될 거라며...
‘먼 훗날 또 다시 만날 거라고’
먼 훗날이 길어지면서 찾게 된 곳이 바로 물영아리 오름이었고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다. 그에게 기다림이 있는 한 먼 훗날은 미래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아빠, 근데 아빠에게도 전등사 사연이 있지?”
아버지는 피식 웃기만 하며 즉답을 피한다. 아마도 아버지의 첫 사랑?
며칠 지난 뒤 아버지는 학창시절 엄마와 전등사를 갔던 때가 있었다고만 말했다. 하지만 아빠의 눈이 붉어지는 것을 어두운 전등 불빛 아래서도 볼 수 있었다. 엄마인 양 팽목을?
간직함이 있는 한 먼 옛날 역시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일 듯하다. 품고 사는 한 먼 옛날도 늘 이 날임을 아버지 그리고 엄마로부터 느낀다. <다음 주 이 시간에>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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