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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윤 화백, 1968년 제주신문서 첫선…국내 '고바우영감' 이은 진기록

 

제주도 시사만화의 대명사 ‘황우럭’이 오는 30일자로 1만회를 돌파한다.

 

'네 컷 촌철살인'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1968년 5월 10일자 제주신문(현 제주일보)에서 첫 인사를 한 양병윤 화백의 시사만화 ‘황우럭’은 장장 40여년이 넘는 세월을 도민과 함께 해왔다.

 

일간지 시사만화 1만회 돌파는 국내에서는 김성환 화백의 ‘고바우 영감’에 이은 두 번째 기록으로, 시사만화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구나 네 컷 시사만화와 만평을 동시에 연재한 화백은 국내에선 처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게 하고 있다.

 

시대의 대변자 ‘황우럭’을 탄생시킨 양병윤 화백은 어려서부터 만화광이었던 소년. 작가의 꿈을 키우며 독학 습작을 하던 고교 2학년 때는 서울에서 발간되는 학생잡지 『학도주보』에 만평이, 월간잡지 『아리랑』에 만화가 실리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24세(1968)에 제주신문 화백 겸 기자로 입사, 시사만화 ‘황우럭’을 연재하기 시작한 양화백은 제주신문 편집국장과 이사,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이어 제민일보·제주매일 논설위원 화백을 거치면서도 붓을 놓아본 적이 없다.

 

2009년부터 한라일보에서 시사만화 ‘황우럭’과 만평을 끈질기게 이어오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제 칠순을 목전에 둔 ‘황우럭 양병윤’은 오늘도 여전히 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향해 황우럭의 등가시 같은 붓끝으로 ‘황우럭’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황우럭’은 40여년 동안 민중의 애환을 함께 해오면서 민의를 대변하고, 부정과 불의에 목소리를 내온 격랑의 우리 현대사를 살아온 증인이다.

 

60~70년대 유신 독재정권과 80년대의 서슬 퍼런 신군부 시절에는 혹독한 검열과 탄압을 특유의 익살과 촌철살인의 기지로 이겨냈다.

 

1990년대 문민정부와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사만화 ‘황우럭’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1만회 대하를 집념과 열정으로 건너왔다.

 

간결한 선으로 표현되는 친근감 있는 얼굴, 때론 날카롭고, 때론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황우럭’은 이제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 숨 쉬는 인물이 되었다.

 

작가의 철학과 이념, 함축적으로 사회상을 풍자해온 ‘황우럭’은 언론 사료로서의 귀중한 가치는 물론 시대상을 꿰뚫게 하는 대하역사로 기록될 만하다.

 

‘황우럭’이 아침을 맞는 무대는 제주이지만 그의 시선과 움직이고 있는 공간은 전국이며, 세계이다.

 

‘황우럭’은 또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들며 시공을 초월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사회 풍자를 상징하는 문화콘텐츠가 될 만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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