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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브이 포 벤데타 (15)

영화 속 V의 캐릭터는 대단히 독특하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비밀경찰로부터 이비(Evey)를 구출하는 등장부터 남다르다. 16세기 복장으로 나타나 검 하나로 3명의 비밀경찰들의 총을 제압한다. V에게 구출된 이비가 깨어난 곳은 위치를 알 수 없는 V의 아지트다. 
 

 

사방에는 온통 빛바랜 고전 서적들이 쌓여있다. 인사동 고서점 창고 같다. V는 슈틀러 일당을 때려잡는 업무 외 시간은 오직 그 고서를 읽으면서 보낸다. 벽에도 모두 고전 회화들이 걸려 있다. 중세 기사의 갑옷도 있다.

V는 중세 기사의 갑옷을 상대로 검술을 연마하는 한편 흑백 브라운관 TV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다룬 영화를 보는 데 몰두한다. V는 대사를 모두 외울 정도로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쓴 알렉상드르 뒤마의 덕후다. 

그가 몰두하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은 영화사 박물관에나 소장돼 있을 법한 1930년대 작품이다. ‘몬테 크리스토 백작’의 최근 버전들은 모두 쓰레기로 치부한다. V의 ‘시그널 뮤직’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1812년이다. V가 구사하는 모든 어휘와 문장들은 모두 뒤마나 블레이크, 셰익스피어의 고전적이고 어마어마한 어휘와 문장들이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원작을 저술한 앨런 무어가 이처럼 16세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주인공을 내세운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앨런 무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명을 비판한 사람들 중 선구자격인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의 저술에 깊이 공감하는 듯하다. 

마르쿠제는 현대의 산업사회는 그 체제가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관계없이 모두 테크놀로지에 의해 전체주의화하며, 자본주의사회 역시 자본에 의해 전체주의화한다고 비판한다. 

이 때문인지 V가 꿈꾸는 사회는 그 체제와 무관하게 현대산업사회 이전의 사회다. 현대산업사회는 인간을 ‘일차원적’으로 만들 뿐이다. 마르쿠제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모든 인간의 욕망은 정신이 아닌 물질로 단순화해 ‘1차원적 인간(one dimensional man)’으로 전락한다고 몸서리친다. ‘일차원적 인간’은 지배하고 통치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V는 ‘정신줄’을 놓지 않기 위해 고집스럽게 현대산업사회 이전의 ‘고전’만 접한다. 마르쿠제는 본래 인간의 이상과 욕망은 숭고함(sublime)에 있었지만, 현대산업사회가 진행하면서 숭고함을 향한 승화(sublimation)가 멈추고, 반대로 탈승화(de-sublimation)해 ‘천박함’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개탄한다.

복잡한 이야기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승화’란 물질을 녹이고 기체로 만들어 그 물질의 정수만을 뽑아내는 과정이라면, ‘탈승화’란 거꾸로 그 물질의 정수는 날려버리고 찌꺼기만을 남기는 과정과 같다. ‘승화’란 본래 모든 금속을 금으로 만들고자 했던 ‘연금술사’들의 방법에서 기인한다. 

마르쿠제의 관점에서 산업혁명 이전 시대에는 인간성을 승화해 인간성의 정수인 ‘숭고함’을 추구하겠다는 꿈이 있었지만, 고도산업사회에는 ‘탈승화’가 일어나 인간성의 고귀함이나 숭고함은 날아가고 인간성의 찌꺼기인 식욕, 색욕, 물욕만 남고 만다. 20세기 최고의 저술 중 하나로 평가되는 1964년 마르쿠제의 저작 「일차원적 인간」의 요점이다.

영화 속 영국에서도 ‘일차원적 사회’의 면면을 엿볼 수 있다. 슈틀러 정권이 장악한 영국은 통제사회가 분명한데 조금은 의외의 장면들이 전개된다. 이비(Evey)가 일하는 국영방송사의 대기실은 방송출연 준비를 마친 ‘반라半裸’의 여자들로 발 디딜 곳이 없다.

고든이 진행하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인 ‘토크쇼’ 생방송에도 주제와 상관없는 벌거벗은 무희들이 무대를 장식한다. 모든 독재자는 모든 걸 통제해도 ‘일차원적’인 식욕, 색욕, 물욕만은 장려한다. ‘일차원적 인간’은 자본과 정치를 장악한 모든 권력자의 ‘밥’이다.

이비는 V에게 이런 케케묵은 책과 물건들을 어디에서 구했냐고 묻는다. V는 ‘숭고한’ 그 모든 것을 슈틀러의 압수물 창고에서 가져왔다고 대답한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숭고함’은 망각과 폐기의 대상을 넘어 아예 단속의 대상이 되는 모양이다.

 

 

우리사회는 ‘숭고함’과 ‘천박함’ 사이 어디쯤 와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방송과 인터넷, SNS에는 맛집, 명품, 관광여행 정보로 넘쳐나고 사건 사고는 온통 어이없는 살인, 강간, 음주, 마약 뉴스들이다. 

언젠가 문체부의 어떤 고위 관료가 ‘민중은 개돼지’라는 정의를 내려 많은 사람이 분노했는데,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을 알기 쉽게 표현하면 결국 ‘개돼지’가 되는 모양이다. 그 문체부 관리가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을 읽고 그것을 알기 쉽게 ‘민중은 개돼지’라고 풀어 설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 그 말에 분노했지만 우리의 꿈과 욕망 중에서 ‘개돼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숭고한’ 무엇이 남아있을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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