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와 개방, 한패가 되어 못된 짓하면서 해를 입히다

  • 등록 2025.08.13 11:20:44
크게보기

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58) 거지와 강호의 여러 부류 ⑦

역대로 강호(江湖)의 여러 부류는 어중이떠중이가 모여 있는 사회 단체였다. 사람들이 숭상하는 의협의 부류도 적지 않았으나 대부분은 불량배요 무뢰한 무리였다.   

 

근대의 거지 단체는 흑사회(黑社會)의 일원으로 변질된 후 불량배 단체의 본성을 드러냈다. 사회생활 중 거지 단체는 왕왕 관부를 이용했다. 여타 흑사회 단체와 서로 결탁하여 한패를 이루어서는 사회에 해악을 끼쳤다. 예를 들어 『청패류초』에 기록은 이렇다.

 

“하남(河南) 주현에서 총괄하여 체포하라는 문서를 내리면 해포(海捕)에 넘겼다. 해포는 대체로 걸식하는 거지들로, 관부도 표를 줬다. 서너너덧씩 무리를 이루어 향진으로 갔다. 상점에 가서 향가지 하나를 주면 반드시 10문이나 8문을 내줘야 했다. 평상시의 거지와 비교하면 다루기가 실로 쉽지 않았다. 일여 년이 지난 후 돌아와 표를 반납하고 조금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체포했는지 여부만 다루지, 원래 상황은 묻지 않았다.”

 

관부가 거지를 이용해 어물쩍 책임을 때워버리는 짓거리를 말하고 있다.

 

거지도 그런 기회를 이용하여 협박하고 재물을 손에 넣었다. 서로 이익과 혜택을 얻는 것이지만 재난을 당하는 것은 결국 평민이요 일반 사회인들이었다.

 

민국 이래로 청홍방(靑紅幇)은 신해혁명에 참가해 공을 쌓았다. 관부와 개방이 결탁하여 서로 이용하면서 근대 중국에서 일시에 창궐하여 흑사회 세력이 됐다. 사회에 커다란 재앙을 되었다.

 

그중 각지의 개방도 결탁하여, 거지 단체의 폭력배적인 성향을 확연히 드러냈다. 여기에서는 거지 기부금을 받는(활동을 시작하는) 것을 예로 들어 그 문제를 설명하려 한다.

 

 

기록은 이렇다1) :

 

방파를 이룬 도적〔방비(幇匪)〕들이 하는 사업은 대체로 정착해 있는 파와 떠돌아다니는 파, 두 파로 나뉜다. ……먼저 문차(文差)2) 중의 ‘개마두(開碼頭)’3)를 알아보자.

 

‘개마두’도 몇 가지로 나뉜다. 마술을 부리거나 무술을 시범보이거나 하는 등 모든 삼교구류를 포함한다. 종합적으로 그것을 ‘강호에 돌아다닌다’(走江湖)라고 한다. 이 무리는, 법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지라도 표면상으로는 범법행위가 적다.

 

그들이 얻는 소득은 대개 타인이 자원해서 한다. 처음에는 강압적으로 협박하여 재물을 얻지는 않는다. 다만 매년 2월, 8월 두 달 동안 무리를 이루어 각지로 잇달아 내려가 상인과 일반 백성에게 사취한다. 그 행태는 가증스럽기 그지없다.

 

원류를 따져보면 홍방(紅幇) 문차의 개마두 방법 중 하나다. 즉 분담하여 각지로 가서 여러 점포와 주민에게 억지스럽게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였다. 각 현에 거지 두목이 없으면 대부분 현지의 안면 있는 불량배로 충당하였다. 특별히 매년 두 번, 매번 매 집마다 2천 문(文)의 거지 헌납금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헌납한 집에는 거지 두목이 붉은 종이에 검은 도장을 찍은 개조(丐條)를 대문에 붙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개조를 붙인 집은 매년 2월, 8월에 거지들이 와서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매년 정월, 7월에 거지 두목은 공개적으로 무리들을 데리고 각각 어깨에 보따리를 메고서, 한 집 한 집 빠짐없이 찾아다니며 거지 헌납금을 받았다. 돈을 내면 개조를 새로 발급하여 문에 붙였다. 부잣집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부잣집이야 헌납금을 쉽게 낸다하여도 일반 백성의 집은 그리 쉽지 않았다. 헌납할 돈이 없으면 편의를 봐줘서 외상으로 해주고, 먼저 개조를 붙이게 한 후 약속한 기일 내에 돈을 받았다. 정말 가난한 사람은 헌납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중간한 집에서 요령을 부려 헌납하지 않으면 2월, 8월에 거지 떼가 몰아닥쳤다. 거지 두목은 고의로 무리에게 지시해 종일토록 방문하면서 강압했다.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최후의 해결 방법은 거지 두목을 초청하는 것뿐이었다.

 

거지 두목은 좋은 기회를 얻었기에 조건을 내세우기 마련이다. 특별한 가격을 불렀다.

 

원래 정한 2천 문 액수보다 수배 이상을 불렀다. 받아들이면 명령을 내려 철수하고 그렇지 않으면 개의치 않고 딴청을 부렸다.

 

상점과 민가는 그런 소란과 손해를 한 번씩이나마 받아봤기에, 다음에 헌납할 때에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집에서도 그런 상황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요령부리지 않고 제때 헌납하였다. 도시의 중산층 이상은 거지 헌납금을 내지 않는 집이 없었으니 거지 두목은 부자가 되었다.

 

2월, 8월에 개방이 도착하면 먼저 여러 거리를 돌아다니며 ‘개조’가 있는지 없는지를 시탐하였다. 만약 없으면 기회가 도래한 것이었다. 사기와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하는데 온갖 기기묘묘한 방법을 다 동원하였다.

 

표창을 상점 앞에 늘어놓고 길 가는 사람들에게 그곳에 가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알리거나 칼, 창, 검, 극 등 무기를 진열해놓고 문 앞에서 하나하나씩 가지고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패문, 높은 의자 등의 물건을 이마나 콧등에 세워 중심을 잡으면서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거나 경조, 곤곡 등을 노래하고 비파를 켜면서 주인에게 자신의 노래를 잘 들으시라고 강짜를 놓기도 했다.

 

그런 소란의 대가는 일이백 문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김노불(金老咈)이라 서명된 『삼교구류강호비밀규구(三敎九流江湖秘密規矩)』의 기록이다.

2) 거지나 깡패 집단을 두 부류로 나누는데, ‘문차(文差)’와 ‘무차(武差)’다. 강탈, 강도, 소매치기, 절도 등은 독자적으로 움직이거나 무리를 짓더라도 소수이고 기본적으로 개별적 기술(?)에 의존하기에 ‘무차’라 한다. 그 외의 주류를 이루는 부류가 ‘문차’다. ‘문차’에는 무리를 짓고 정착해 협박 등으로 재물을 얻는 부류가 있고, 돌아다니면서 상점이나 부잣집에서 재물을 얻는 부류가 있다.

3) 개마두(開碼頭)는 ‘마두를 열다’ 뜻이다. ‘마두’는 옛날에 특별히 깡패, 불량배들이 강점해 활동하는 장소, 근거지를 말한다. ‘개마두’는 근거지를 연다는 말로 ‘활동을 시작하다’ 의미를 갖는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ac82@naver.com
< 저작권자 © 제이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추천 반대
추천
0명
0%
반대
0명
0%

총 0명 참여


6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원노형5길 28(엘리시아아파트 상가빌딩 6층) | 전화 : 064)748-3883 | 팩스 : 064)748-3882 사업자등록번호 : 616-81-88659 |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제주 아-01032 | 등록년월일 : 2011.9.16 | ISSN : 2636-0071 제호 : 제이누리 2011년 11월2일 창간 | 발행/편집인 : 양성철 | 청소년보호책임자 : 양성철 본지는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Copyright ⓒ 2011 제이앤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jnuri@j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