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와 개방, 한패가 되어 못된 짓하면서 해를 입히다 (2)

  • 등록 2025.08.20 14:2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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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홍의 '중국, 중국인' ... 중국의 거지 (59) 거지와 강호의 여러 부류 ⑧

더 가증스러운 것도 있었다. 

 

거지 무리가 오고, 놀이를 끝내고 돈을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곧바로 지불해야 했다. 그렇지 않고 조금이나마 주저하는 기색이 있으면 욕설이 튀어나왔다. 심지어 시간을 지체했다고 힐책하면서 요구하는 돈의 액수를 올렸다.

 

예를 들어 처음에 100문을 요구했는데 일각을 지체했다고 곧바로 200문이 되고 400문이 되고 800문이 되었다. 줄 때까지 난장을 부렸다. 가끔 지들끼리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고 끝끝내 주지 않는 상대를 만날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 같은 무리가 어찌 한둘인가.

 

A무리가 가기도 전에 B무리가 오고, B무리가 오자마자 C무리가 오고 D무리도 잇달아 도착했다. 매 무리를 4명으로 계산한다해도 네다섯 무리 이상이면 거지 떼가 이삼십 명에 이르렀다. 사람이 많으면 세력도 크다고 하지 않던가. 문 밖에 진을 치면 상가는 장사를 그만 둬야 할 지경에 이르니 어찌 근심이 크지 않겠는가.

 

 

제각기 조직된 거지 무리가 처음 도착하면 먼저 거리를 한 바퀴 순찰했다. 거지 두목이 거지 헌납금을 받아오는 곳을 정하는데 그 수는 우두머리와 친분관계에 따라 결정되었다. 조직된 무리 당 삼사 명 혹은 오륙 명씩으로 똑같지 않았다.

 

무리 내에는 우두머리가 또 있었다. 거지 헌납금은 그 우두머리가 받았다. 매 계절마다 적어도 사오십 무리가 같이 다녔다. 두목이 지출할 총액은 수백 수천 문이었다.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기가 막힐 정도로 많았다.

 

한 도시의 점포를 1천이라 가정하면 거지 헌납금은 2천 문이나 됐다. 10분의 3을 지출한다 하여도 천수백 문은 남았다. 가장 천한 직업인 거지가 받아먹는 봄, 가을 두 계절의 잉여금이 이삼천 문이나 되는 거금이니, 어찌 괴이하다 하니 할 수 있으랴.

 

물론 이삼천 문이나 되는 거액은, 일 년 동안의 비용이기에 모두 잉여금이라고는 볼 수 없기는 했다. 일시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거지 두목 한 명에게는 부두목 몇 명이 보좌했다. 이외에 다시 전문적으로 거지를 관할하는 인원을 적지 않게 고용도 해야 했다. 그들은 종일 아편을 피웠다. 계집질에 미쳐 있었다. 도박에도 미쳐있었다. 그런 자금 역시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 근교 몇 군데에 거지 천막을 쳐서, 현지의 병이 들거나 능력이 미약한 거지에게 서식처로 제공하였다. 겨울에 찬바람 불고 눈보라가 몰아쳐서 거지들이 구걸할 수 없을 때에도 죽을 제공해 주었고, 간식거리를 살 수 있는 금액을 나누어줘서 구제했다. 도시에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거지는 수천이나 되니 매일 그들에게 지불하는 액수도 적지 않았다.

 

개방이 떠돌아다니듯 구걸하지만 규칙 없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중등인물을 기준으로 하면 일정한 지역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강소성 오송(吳淞) 각 상업지역에 A무리가 갔다고 하면 B무리는 다시 가지 않았다. 상태(常太) 지역이 B무리에게 돌아갔다면 C무리는 발을 붙일 수 없었다. A주, B현, C촌, D진마다 개방 조직이 움직이는 경계선이 있었다.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구걸할 수 없었다.

 

상업지역을 돌아다니는 개방은 자신들이 돌아다니는 지역을 고정적인 부동산으로 봤다. 자기 지역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법도 대단히 엄격했다.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다가는 죽음의 땅이 될 경우가 많았다. 그런 까닭에 매해 2월, 8월이 되면 각처에서 개방 간에 고투하는 활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지난 해 2월에 모모 진에서 마음대로 지역을 돌아다니던 개방 A두목이 오륙 명의 형제를 데리고 길거리에서 협박하며 구걸하였다. 그곳의 두목 B가 자기 구역을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자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나가라고 했으나 A는 못들은 척하며 계속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혼란스럽게 했다. 거지 두목의 체면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B가 가만히 보니 개방의 법도도 먹히지 않고 무력으로도 제압할 수 없으니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었다. 당시 시내의 상인 모두 매우 놀랐다.

 

다음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인들이 일어나 등을 켜고 보니, 새벽의 동터오는 햇빛이 나기 시작했는데 오륙 명이 벌거벗겨진 채로 10여 명에게 에워싸여 동쪽으로 끌려가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살려달라는 소리가 계속 울려왔다.

 

잠깐 있으니 날이 밝았다. 주민들이 문을 열고 살펴보니, 거지 무리가 동쪽에서 보무당당하게 몰려오고 있었다. 어제 거지 B두목이 이끄는 부하 거지 무리였다. B두목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 살려달라는 소리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B두목이 대답은 이랬다. 어제 반항하면서 명령을 듣지 않는 강도 같은 거지들을, 오늘 생매장해 버렸다고 했다. 듣는 사람 모두 놀랐다. 그것이 거지의 법이었다.

 

 

이처럼 당시 거지 집단인 개방, 강호의 흑사회, 부패한 관부는 한통속이었다. 서로 이용하면서 무뢰하고 강도 같은 짓을 저질렀다. 그런 깡패 무리들 앞에서 무슨 강호의 의협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강소, 절강 두 성 백여 주현은, 거지와 방회 무리가 거지 헌납금을 받으러 다니지 않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시달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권홍 제주국제대 교수 leeac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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