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을 일컫는 지천명(知天命). 제주의 도지사 당선인도 그렇거니와 소위 386세력으로 불리던 이들이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 공자의 뜻대로라면 천명을 알 나이다. 하지만 그 천명(天命)은 또 무언지 도통 철학적 의문으로 다가오는 시기다. 중국문학 전문가인 이권홍 교수가 다시 지천명의 세상을 돌아봤다. 스스로가 이른 나이에 대한 자아성찰적 고심과 고민이다. 10여차례에 걸쳐 ‘지천명’을 풀이한다. /편집자 주 |
공부가 직업인지라 한 단어나 어떤 개념에 얽매여 헤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그중 공자(孔子)가 50세가 되어 알게 됐다는 ‘천명(天命)’이란 개념이 현재 나를 속박하고 있다. ‘지천명’이란 공자가 말년에 스스로 뒤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내뱉은 말이다.
과연 공자가 말한 ‘천(天)’은 무엇이고 ‘명(命)’은 무엇일까?
내 나이도 얼추 비슷한데. 왜 나는 이 말을 감득하지 못할까? 실로 ‘명(命)’이란 운명이요, ‘천(天)’이란 하느님일까? 속에 엉킨 실타래를 『논어(論語)』를 가지고 풀어보기로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면서 삶을 음미하기로 했다.
그 결과, 하나의 문장으로 엮어놓고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공유하기로 결정했다. 부족함은 많으나 같이 더불어 사색하다보면 틀린 부분을 수정할 수 있겠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키워갈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자본을 위주로 사는 우리에게 동양적 사고인 하늘과 명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 싶기는 하다. 그러나 삶은 재화로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가 어디에 있으며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숙고해야 삶의 참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다만 밝혀둬야 할 게 있다. 이 문장은 『논어』를 중심으로 풀어본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문(孔門)들이 정리하고 완성한 다른 경전들은 필요한 부분만 절취했다. 따라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공자(孔子) 생전에 자신 스스로 저서를 남긴 것은 없다. 『논어』도 그가 쓴 책도 아니요 생존해 있을 당시에 편집된 책도 아니다. 그의 제자, 제자의 제자들이 공자가 세상을 뜬 후 엮은 것이다. 그래서 『논어』의 ‘논(論)’은 편집, 순서에 따른 배열이라는 의미이고 ‘어(語)’는 어록, 언론의 의미다. 즉 ‘논어’는 ‘순서에 따라 배열한 어록’이란 말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논어』는 실제로 끊임없이 빼고 넣는 작업을 포함한 일정한 개정작업을 거쳐 공자가 돌아가신 후 대략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다음에 새롭게 편집된 언행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논어』는 누가 언제 편찬한 것인가? 전국(戰國) 중기 유학자들이 지속적으로 편찬했다는 게 정설이다. 총 20편이 있는데 전 10편은 비교적 초기에 편찬된 것이고 후반부 특히 뒤에 실린 5편은 비교적 늦게 편찬한 것이라 보는 견해가 많다. 분명 『논어』는 공자가 직접 살피고 다듬어 편찬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으로 공자의 사상을 논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료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공자를 어떻게 평가했는가? 다음 문장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선진시대의 고서에 의하면 공자는 도덕적인 사상가로 그의 말은 다정다감하면서 이치가 뚜렷한 노 교수와 같았다. 그러나 신비주의가 흥궐하던 한(漢)대에는 심오함의 극치로 평가되어졌고, 도참과 위서에서는 온통 박수무당과 같은 분위기의 예언가가 되었다. 당, 송 이후에 공자는 엄숙하고 단정한 인물로 회복됐으나 그 지위가 점차 높아지면서 다시금 영혼을 구원해주는 신과 같은 존재로 변하여 그의 평상시 말조차도 심오한 철학적, 심리적인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러다가 5.4운동이 한창일 때에는 다시 염라대왕전의 우두머리인양 ‘사람을 잡아먹는 예교’로 사람들의 발목을 잡아매어 절망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다행히도 현재는 다시 그 권위를 되찾아 중국문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받들어지고 있다.”(『중국 경전의 이해』)
사실 역사 속에 존재했던 위대한 인문들은 후대에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가치가 좌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는 어떤 평가를 기준으로 하는지는 차치하고자 한다. 평가하는 사람들의 주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인물이라는 것에 한정하고 얘기를 하고자 한다. 그리고 설령 사후 100년이 지난 후에 편집된 것이라고는 하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료 중에는 그나마 『논어』가 공자의 원래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얘기를 펼쳐가기로 한다.
‘지천명(知天命)’은 『논어』의 다음 구절에 보인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學問)에 뜻하였고, 서른 살에 자립(自立)하고, 마흔 살에 사리(事理)에 의혹하지 않았으며, 쉰 살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됐으며,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法度)를 넘지 않았다.”(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爲政』)
이는 공자 만년에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한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을 더 간단하게 풀이를 하면, 공자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제주 출생. 한양대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중국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종문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는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