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바 중위는 한밤중에 외로운 요새에서 홀로 잠들어 있다가 들소떼의 질주 소리에 잠을 깬다. 수우족 인디언들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들소떼다. 인디언들에게 들소는 비에 버금가는 생명줄과 다름없다. 인디언을 몰아내려는 백인들은 이런 들소를 전쟁의 도구로 삼는다.
1860년대에 미국 대륙에서 들소 개체수는 이미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인디언들이나 백인들이 마구 잡아먹어서 아니라 백인들 ‘전략’의 희생양이 돼서다. 백인들은 온갖 당근과 채찍을 들이대도 자신들의 거주지역에서 물러나지 않고 저항하던 인디언의 특성을 알아냈다.
‘생명줄’인 들소떼가 사라지면 어쩔 수 없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다는 거였다. 인디언들과 전쟁을 하기보다 들소를 몰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백인들의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둔다. 들소도 슬프고 인디언도 슬프다.
던바 중위는 한밤중에 말을 달려 인디언들에게 들소떼가 나타났음을 보디랭귀지를 총동원해서 알려준다. 수우족 인디언들은 환호한다. 곧바로 던바 중위를 앞세우고 전 부족이 들소 사냥에 나선다. 평원을 뒤덮은 어마어마한 들소떼를 발견하고 한 해를 넘기기에 풍족한 들소의 가죽과 고기를 얻는다.
던바 중위는 들소떼 발견과 신고에 이어 들소의 공격을 받는 인디언 소녀까지 구한다. 영웅의 탄생이다. 영웅의 사주를 타고났는지 남북전쟁에서도 영웅이 되고, 인디언 마을에 와서도 영웅이 된다. 한바탕 축제가 벌어진다. 모두의 얼굴에 풍년을 수확한 농부 같은 소박한 웃음이 피어난다. 부족의 지도자 ‘발로 차는 새’의 얼굴에도 모처럼 100포기 김장의 ‘대역사’를 마친 종갓집 마님 같은 뿌듯함이 묻어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부족의 지도자 ‘발로 차는 새’는 또 다른 근심에 사로잡힌다. 백인들 못지않게 자신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포니(Pawnee)’족의 습격을 예감한다. 들소 사냥에 실패한 포니족은 들소 고기와 가죽이 넘쳐나는 자신들 부락으로 쳐들어올 수밖에 없다. ‘발로 차는 새’는 예방전쟁을 결심하고는 전사들을 이끌고 포니족 기지의 원점타격에 나선다. 그러나 ‘발로 차는 새’의 수우족 전사들이 떠나자마자 ‘포니족’이 들이닥친다.
군인들 없이 민간인들만 남은 무방비 상태의 마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또 한 번 ‘타고난 영웅’ 던바가 나선다. 던바는 요새에 숨겨둔 미군 총기들을 운반해서 인디언 시민군에 나눠준다. 활과 창을 들고 꽥꽥거리며 몰려든 ‘포니족’ 전사들은 수우족 시민들이 쏘아대는 미제총에 추풍낙엽이다. 수우족 할아버지와 아줌마들은 이미 논산훈련소에서 사격훈련을 받은 듯하다. 사격자세 좋고 탄착점 정확하다.
대승을 이끈 던바 중위는 군인으로서 처음으로 보람과 존재감을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정의로운 전쟁이다. 여기엔 정치도 없고, 포로도 없고 어떠한 요구도 없다. 단지 소중한 식량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플라톤이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볼 수 있다’고 한탄한 것처럼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인류는 참으로 오랫동안 어떤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인지 고민해왔다.
어떤 경우에 전쟁은 정의로울 수 있는 것이며(jus ad bellum), 어떤 방식으로 전쟁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jus in bello)일까. 던바 중위도 남북전쟁의 명분과 전쟁의 방식에 진저리를 치면서 전선을 버리고 떠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수우족 인디언의 일원으로 포니족을 맞아 싸우면서 비로소 ‘정의로운 방식으로 정의로운 전쟁’을 했다는 기쁨을 맛본다.
많은 종교와 사상가는 ‘정의로운 전쟁’을 이렇게 규정한다. 첫째, 예방전쟁처럼 무고한 인명과 인간의 존엄성을 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둘째, 한쪽의 고통이 상대의 고통보다 너무나 클 때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셋째, 구할 수 있는 인명이 희생되는 인명보다 적아야 한다.
넷째, 모든 방법을 모두 동원해 보고 난 뒤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 다섯째, 어떠한 물질적·경제적 욕망의 충족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여섯째, 살생은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목적 달성에 필수적이고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일곱째, 적들이 살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싸우게 해서는 안 되고, 통제불능한 무기를 사용해서도 안 된다.
던바 중위에게 미군들끼리 총부리를 겨눈 남북전쟁도 인디언들과 벌이는 인디언 전쟁도 모두 ‘정의로운 전쟁’의 조건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남의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무고한 민간인들을 살육하는 포니족의 작태도 정의롭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의로운 전쟁’을 고수하는 인디언 부족 수우족은 결국 물질적·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의롭지 않은 전쟁’도 불사하는 미국에 의해 전멸하고 만다.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것을 믿고 싶지만 정의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