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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2)

영화 속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왕년의 스타 릭 칼튼과 그의 분신과도 같은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는 베이비 붐 세대라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특히 모든 걸 포기한 듯한 히피족은 극혐한다. 그런데 모든 베이비 붐 세대에게 그런 건 아니다. 히피족과 똑같은 세대이지만 성공한 감독과 여배우에겐 존경을 보낸다. 성공한 사람의 곰보자국은 보조개로 보이는 모양이다.

 

 

영화 속에서 내리막길을 걷는 왕년의 스타 릭 칼튼과 그의 분신과도 같은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의 정확한 나이는 드러나지 않지만 대략 40대 중반에서 후반쯤 된 듯하다. 릭이 잘나갔던 시절은 1950년대 할리우드 황금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클리프는 왕년의 전쟁영웅으로 등장한다. 

 

그의 연배로 보아 그가 참전했던 전쟁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은 아닌 듯하고, 그보다 앞선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이나 2차 세계대전이 아닐까 한다. 궁금하지만 감독이 얼버무리니 알 길이 없다. 영화의 배경인 1969년에 40대 중후반에 이른 이들을 굳이 미국 세대 분류에 따라 나눠본다면 조금은 애매한 인물들이다. 

2차 세계대전 참전 세대인 소위 ‘G.I.세대: 1900~1924년 출생)’의 끝자락에 속할 수도 있고, 그 이후 세대인 ‘침묵의 세대(Silent Generation: 1925~1945년 출생)’ 선두에 포함될 수도 있을 듯하다.

 

미국이 치른 최대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G.I.세대’나 그 시절에 청소년기를 보내며 부모 세대들의 전쟁의 참상을 지켜보며 성장한 ‘침묵의 세대’ 모두 어려운 시절을 보낸 만큼 역경을 헤쳐 나가는 힘이 강하다. 그 세대의 특징을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사소한 일에 침묵하고 불평불만 없이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고 한다. 

 

릭은 내리막길에 들어선 배우이지만 자신의 처지에 크게 분노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악역과 조연이라도 주어진 일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분노와 좌절감에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약물에 빠지지도 않는다. 할리우드 스타이지만 그의 생활은 비교적 검소하다. 요란스러운 슈퍼카가 아닌 실용적이고 큼지막한 캐딜락을 타고 다닌다. 

 

 

운전기사도 안 두고 스턴트맨이자 절친인 클리프에게 운전도 맡기고, 소소한 집안일도 맡긴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클리프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자신이 출연한 TV 드라마 챙겨보는 게 낙이다. 클리프 역시 큰 욕심 없이 촬영장에 릭을 데려다 주고 릭의 집에 돌아와 지붕에 올라가 웃통을 벗고 무너진 안테나를 고친다. 

 

스턴트맨인 자신에게 이런 잡일까지 시키는 릭에게 불만을 품지도 않는다. 또 다른 ‘침묵의 세대’인 조지 스판은 한때 촬영장 주인이었지만 시력을 잃어가는 지금은 히피족들에게 촬영장을 모두 내어주고 그들에게 의탁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적극적으로 ‘나의 것’을 지키려 하지도 않는다.

 

이웃에 사는 ‘베이비 붐 세대(Baby Boom Generation: 1946~1964년 출생)’는 이들과 다르다. 베이비 붐 세대가 사는 때는 급격한 출산 증가로 경쟁이 치열해진 시절이며, 풍요의 시절이고 도전하고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던 시절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성공한 베이비 붐 세대의 스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은 스포츠카에 애인을 태우고 날아다니고 플레이보이 클럽을 통째로 빌려 스타들을 불러모아 요란한 파티를 즐긴다. 

 

릭이 촬영장에서 만난 베이붐 세대의 막내격인 8살짜리 트위디는 도전적이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기 주장 또한 강한 베이비 붐 세대의 전형을 보여준다. 밥을 먹으면 나른해진다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밥을 안 먹는다. 

 

자기 역할에 몰입하기 위해서 촬영장에서는 본명을 쓰지 않고 극중 인물의 이름만 쓴다. 한물간 배우라고 무시했던 릭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자 당장 태도를 바꾸어 릭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이 풍요롭지만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모두 폴란스키 감독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트위디처럼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물질적인 풍요는 넘쳐나지만 너무나 치열한 경쟁과 삭막함에 환멸을 느낀 많은 베이비 붐 세대는 히피족이 돼 풍요를 거부하고 세상을 조롱하고 몸 가고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어 한다. 

 

 

히치하이킹으로 클리프의 차를 얻어탄 미성년 히피 푸시캣에게 성적 도덕성이란 1도 없다. 푸시캣과 ‘공동체적 삶’을 사는 히피족들은 무료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G.I.세대’이자 ‘침묵의 세대’인 릭과 클리프에게 베이붐 세대의 폴란스키 감독이나 트위디, 그리고 히피족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족속들이다. 모두 마땅치 아니하다.

 

그러나 기묘한 건 릭이나 클리프가 베이붐 세대 모두에게 ‘균질적’으로 적대감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릭이나 클리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베이비 붐 세대 히피족은 ‘극혐’하지만, 같은 베이비 붐 세대이고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며 성적 도덕심은 1도 없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그와 동거하는 여배우는 인정하고 동경한다. ‘선택적 분노’인 셈이다. 

 

난데없이 집에 쳐들어온 히피들을 때려죽이고 태워죽인 밤, 릭은 옆집 사는 성공한 베이비 붐 세대 폴란스키 감독과 동거하는 여배우의 초청을 받고 황송해하며 그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씁쓸하다. 결국 ‘성공’은 모든 비난의 화살을 막아주는 ‘아이언 돔(iron dome)’과 같은 것이다. 아무도 대기업 회장님을 ‘틀딱’이라 부르지 않는다. 명문대를 나와 잘나가는 잘생긴 청춘남녀를 ‘한남’이나 ‘메갈’이라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성공하면 굳이 틀딱거릴 필요도 없고 한남스럽거나 일베스럽고 메갈스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들이 혹시 ‘틀딱’이나 ‘한남’ ‘일베’ ‘메갈’짓을 해도 ‘쿨’하다고 엄지척하기도 한다. 성공한 사람의 곰보 자국은 보조개로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요즘 베이비 붐 세대에 속하는 모 유통재벌 회장님이 불러일으킨 ‘멸공 챌린지’ 소동을 보는 입맛이 쓰다. 재벌 회장님이 외치는 ‘멸공’은 촌스럽거나 틀딱스럽지 않고 뭔가 ‘쿨’한 모양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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