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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복수는 나의 것 (2) 악마 짓 저지르는 착한 주인공들
착한 놈이 착한 놈을 죽이는 비극 ... 현실선 엘리트 집단들의 악마화
의대 증원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 상대 악마화하며 타도하기 바빠

금지옥엽 유치원생 외동딸 유선(한보배 역)을 납치당한 평범한 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 역)은 상상 못할 아픔을 겪는다. 딸을 납치한 류(신하균 역)와 영미(배두나 역)의 요구대로 1000만원을 전달했지만, 유선은 강가에서 익사체로 돌아온다. 주검으로 돌아온 어린 딸의 부검 현장을 지켜봐야 했던 동진은 지옥의 고통을 느낀다. 아내도 없이 홀로 키운 딸은 동진에게 삶의 유일한 희망이자 이유였다.

 

 

동진에게 남은 황폐한 삶의 유일한 이유는 복수밖에 없다. 회사, 집 등 모든 자원을 처분해 만든 돈을 복수에 쏟는다. 그 돈으로 경찰을 매수해 범인 추적에 나선다. 경찰을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경찰보다 앞서 범인을 잡아내야만 한다. 법의 심판에 맡겨서는 도저히 풀리지 않을 원한이다. 그렇게 동진은 악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본인도 악마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동진이 저주하는 납치범 류도 본래는 ‘착한 놈’이었다는 것이 박찬욱 감독이 던지는 문제다. 영화 속에서 청각장애인 류는 고된 공장 일을 마치고 사무실로 호출당해서 해고통보를 받는다. 집으로 가는 달동네 비탈길을 오른다. 집에 가면 신부전증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세상에 유일한 피붙이 누나를 돌봐야 한다.

암담한 일상은 절망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가던 길에 골목 어귀에 바지를 내리고 홀로 앉아있는 치매노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일으켜 세워 바지를 올려주고 착한 미소를 짓는다. 분명히 ‘착한 놈’이다. 

동진 역시 다르지 않다. 그는 자신이 해고한 팽 기사(기주봉 역)가 생활고로 가족과 동반자살한 현장에서 발견한 팽 기사의 어린 아들을 직접 둘러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린다. 자기 자식이 아닌 다음에야 그러기 쉽지 않다. 더 나아가 병원에서 망설임 없이 자신을 아이의 보호자로 등록한다. 동진도 그만하면 착한 놈이다.

본래 그렇게 착한 놈이었던 류와 동진이 서로 ‘악마’가 돼 부딪힌다. 나름 착했던 동진은 우선 영미를 붙잡아 가장 잔혹한 전기고문을 가한다. 영미가 기절한 틈에 동진은 태연히 짜장면을 먹는다. 

기절한 영미의 몸을 타고 내리는 피오줌이 동진이 앉은 자리까지 흘러오자 동진은 짜장면 면발을 입에 문 채 자리를 옮겨 계속 짜장면을 먹는다. 그렇게 영미는 숨을 거둔다. 착했던 동진이 어느 순간에 악마로 돌변했다. 
 

 

류 또한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구하러 찾아간 장기밀매업자에게 자신의 멀쩡한 신장만 털리고 누나의 수술비까지 털린다. 그 복수를 위해 장기밀매업자의 아지트를 급습해 그 일당을 드라이버를 목에 꽂아 경동맥을 끊어버리고 야구방망이로 머리를 짓이긴다. 그 시신들에서 ‘한 맺힌’ 신장까지 털어간다. 류는 그 신장을 씹어먹는다. 악마도 이런 악마가 없다. 

그 사건현장은 웬만큼 험악한 꼴에는 무덤덤할 베테랑 형사마저 혼비백산할 만한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형사는 동진에게 ‘그 새끼 보통 잔인한 새끼가 아니고, 인간도 아닌 악마’라고 알린다.

복수를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새끼’라고 복수를 포기할 것을 종용한다. 동진은 영미를, 류는 장기밀매업자들을 ‘악마화’하고 응징한다. 악마화한 대상의 제거에는 어떠한 도덕적 고려나 제한도 있을 수 없다. 그 제거는 도덕적 책무로까지 승화한다.

영화의 마지막, 마침내 ‘악마’ 동진이 또 다른 ‘악마’ 류를 붙잡아 처형장으로 미리 정해둔 자신의 딸이 익사체로 발견된 강으로 압송한다. 강 한가운데로 류를 묶어 끌고 들어간 동진이 류를 마주 보고 선다. 그런데 묘하게도 동진의 표정에는 이미 광기어린 분노가 없다. 그저 참담하고 슬픈 눈빛이다. 

동진은 류에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를 날린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동진의 말투와 표정은 자신의 승리에 의기양양한 것도 아니고 류를 조롱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참담하고 슬프다.

이럴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류에게 하소연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류에게 오히려 용서를 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증오할 수 없는 상대를 증오해야만 하는 딱한 상황이다. 

동진은 류를 추적하면서 류의 집에서 자신의 딸이 류가 만들어 준 목걸이를 걸고 류, 그리고 영미와 함께 세상 행복하게 해맑게 웃으면서 찍은 사진을 봤다. 그 사진 한장이 류가 악마가 아니라 착한 놈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를 용서할 수 없고 죽여야만 하는 자신이 괴롭고 슬프다. 류가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게 더 괴롭다. 동진 자신도 착한 놈이었지만 딸의 죽음으로 그렇게 악마가 돼버린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악마가 돼버린 착한 놈 둘이 서로 마주 보고 비통해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류도 그 표정만으로 동진의 ‘하소연’을 알아들은 듯한 표정과 눈빛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빨갱이’를 악마화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 엘리트 집단들도 악마화의 대상이 되는가 싶더니, 이제는 엘리트 집단들끼리 서로를 악마화한다.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의대 증원 문제를 놓고 정부 관료들과 의사들이 서로를 악마화하고 상대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도덕적 제한도 없고 상대의 일망타진이 자신들의 숭고한 도덕적 책무라도 되는 양 살벌한 싸움을 벌인다. 

어쩌면 서로 상대가 정말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를 악마라고 규정해야만 하는 듯해서 딱하기도 하다. 어쩌면 정부관료들과 의사들 모두 서로에게 비수를 겨누면서 영화 속 동진과 같은 하소연을 하고 있는 듯도 하다. “너 착한 놈인 거 안다. 그러니까 내가 너 죽이는 거… 이해하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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