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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복수는 나의 것 (4)
역사 속 의적들의 ‘좋은 도적질’ ... 3대 의적 임꺽정 · 홍길동 · 장길산
그들은 정말 정의로운 도적떼였나 ... 덜 나쁜 놈 찾아야 하는 비극 여전
착한 나쁜놈, 착한 음주운전 뺑소니 … 얼토당토않은 논리 판치는 세상

류(신하균 역)는 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매는 유일한 혈육인 누나에게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 살리고 싶지만 혈액형이 맞지 않는다. 장기 밀매업자를 찾아가 자신의 신장을 주고 대신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얻으려 했지만, 그들은 류의 전 재산 1000만원을 챙기고 류의 신장만 빼어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류는 ‘목숨줄’과 다름없던 공장에서 해고까지 당한다. 그야말로 한계상황에 봉착한다.

 

 

류의 유일한 친구인 영미(배두나 역)는 절망적인 류에게 위기 극복의 해법을 제시한다. 부잣집 아이를 유괴하는 거다. 가장 악질적인 해법이다. 사회적 규범과 양심의 저항으로 망설이는 류에게 영미가 유괴의 당위성을 일타강사의 그것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한다. “잘 봐. 세상에는 두가지 유괴가 있어. 나쁜 유괴와 좋은 유괴.” 

영미는 그렇게 ‘유괴’를 제멋대로 두가지로 분류해놓고 ‘좋은 유괴’란 무엇인지 설명을 이어간다. 첫째, 돈만 받고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내면 좋은 유괴가 된다. 둘째, 1000만원이라는 돈은 우리에겐 절실한 것이지만, 부자들에게는 있으나 없으나 아무 상관없는 돈이다. 1000만원만 받고 아이를 무사히 돌려보내면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좋은 유괴’가 된다. 

셋째, 부자들의 돈이란 따지고 보면 우리처럼 없는 사람들에게서 뺏어간 것이다. 결국 우리 돈 우리가 찾아오는 것이다. 영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이런 유괴는 ‘좋은 유괴’를 지나 반드시 해야만 할 ‘정의로운 유괴’가 된다.

착하기 짝이 없던 류도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 단원이라는 영미의 ‘혁명적’인 ‘좋은 유괴’ 논리에 교화(敎化)됐는지 결국 부잣집 아이 유괴에 나선다. 원래 타깃은 자신을 해고한 사장의 딸이었지만,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해고당한 자신이 용의자 최우선 순위에 오를 것 같아 위험하다. 타깃을 바꿔 타깃과 같은 차를 타고 유치원 등교하는 동진(송강호 역)의 딸을 납치한다. 

동진은 ‘나쁜 놈’ 옆에 서 있다 날벼락을 맞는다. 류를 무자비하게 해고해버린 류의 사장은 혹시 ‘나쁜 부자’여서 ‘의적’의 응징대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편의상’ 일면식도 없는 동진의 딸을 납치한다는 것은 떳떳지 못한 일이다. 그러나 동진도 자기 딸을 고급승용차에 태워 등교시키는 ‘부자’다. 영미의 ‘혁명적 무정부주의’ 관점에서는 죄가 있든 없든 부자는 모두 ‘나쁜 놈’임에 틀림없으니 상관없는 모양이다. 

영미는 그렇게 ‘아동 유괴’라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를 임꺽정이나 홍길동, 장길산과 같이 우리 역사 속 ‘의적(義賊)’들의 ‘좋은 도적질’로 포장한다. 아마도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 등 조선시대 ‘3대 의적’도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영미와 같은 논리를 설파했을 듯하다. 이들 3대 의적도 현대 정치학적 용어로 분류하자면 모두 ‘혁명적 무정부주의자’쯤 되겠다.
 

 

그러나 역사에 기록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적의 실제 행적을 살펴보면 이들이 정말 ‘정의로운 도적떼’였는지 어리둥절해진다. 임꺽정이나 홍길동, 장길산 모두 여타 도적떼처럼 양민의 살림도 털고, 자신들의 거처를 관가에 고변하는 양민을 무참히 도륙하기도 한다.

다만 이들과 다른 도적떼의 차이는 간이 배 밖에 나와 관가의 창고까지 털었다는 것뿐이다. 조선시대에 이들 3대 의적이 있다면, 영국에는 로빈 후드(Robin Hood)라는 동화 같은 의적이 있었고, 콜롬비아에는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라는 ‘마약왕’이 의적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이들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는 공통적으로 정부와 권문세가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백성 입장에서는 치가 떨리는 정부와 권문세가를 괴롭히는 그 도적떼를 은근히 응원하고 싶어졌을 뿐이지 결코 그 도적떼가 하는 패악질이 정의롭거나 자신들의 살림살이에 보탬을 준 건 아니다. 

‘나의 적(敵)의 적(敵)은 나의 동지’가 돼버리는 심리현상이 발동한 모양이다. 사악한 정부의 적은 그것이 도적떼일지라도 나의 동지처럼 느껴질 뿐이다. 우리는 월드컵 예선이든 본선이든 일본과 맞붙는 상대는 일단 무조건 응원하고 본다.

영미가 설파하는 ‘좋은 유괴’란 ‘좋은 도적’이라는 말처럼 사기에 가까운 말장난일 뿐이다. 임꺽정이나 홍길동, 장길산이 ‘조금 덜 나쁜’ 도적일 수는 있어도 결코 좋은 도적이라고 할 순 없다. 마찬가지로 영미의 유괴도 ‘조금 덜 나쁜 유괴’는 될 수 있을지언정, 어떤 경우에도 유괴를 좋은 유괴라고는 할 수는 없다. 도적질과 유괴는 모두 나쁜 것일 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을 의적이라 불러주고, 영미가 당당하게 자신이 기획하는 유괴를 좋은 유괴라고 들이대는 것은 단순한 ‘배경효과’에 기댄 착시현상일 뿐이다.

검은 바탕 종이에 회색을 칠하면 제아무리 짙은 회색도 밝아 보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하얀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이 하도 막장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덜 흉악스러운 도적떼는 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슬픈 일이다. 

영미가 말하는 좋은 유괴란 것은 결국 유괴한 아이를 돈만 받으면 죽이지 않고 돌려주기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할 정도로 세상이 막장이란 뜻이다. 사실 장기밀매범이 류의 돈만 먹고 튀는 게 아니라 류의 신장까지 꼼꼼하게 털어가는 세상이 아니던가. 이런 극악무도한 ‘나쁜 놈’들에 비하면 영미의 유괴는 착한 유괴로 보일 수도 있겠다.
 

 

우리네 위정자들도 영미처럼 모두 검은 바탕 위에 자신을 올려놓고 자신도 이만하면 ‘착한 나쁜 놈’ 아니냐고 부득부득 우기는 듯하다. 자신을 더 하얗게 만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고 배경색을 더욱 까맣게 만들어 자신이 ‘비교적’ 하얗게 보이는 착시효과에 모든 것을 걸어버린 듯하다.

임꺽정이나 홍길동, 장길산같이 분명 흉악하지만 다른 도적떼보단 그나마 조금 덜 흉악해보이는 ‘도적놈’들을 ‘의적’이라고 미화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막장의 시대를 살았던 그 시대 우리 선조들이나 ‘조금이라도 덜 나쁜 정치인’을 찾아 열광해야 하는 지금 우리의 처지나 매한가지인 듯하다. 

오늘도 음주운전 사고에 뺑소니 친 어느 트로트 가수의 팬들이 ‘호중이보다 더 나쁜 놈들도 많은데 왜 우리 호중이만 못살게 구냐’고 울부짖는다. 그들에게 이 정도면 ‘착한 음주운전 뼁소니’인 모양이다. 정치 팬덤이나 연예인 팬덤이나 다르지 않아 보이니 딱한 일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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