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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복수는 나의 것 (8)
자본주의 자체 악惡 아니지만 … 욕망 통제 못한 천민자본주의는 악
날로 심각해지는 인구 절벽 문제 ... 근본 원인 천민자본주의 아닐까
무제한적으로 풀린 욕망과 경쟁 ... 사랑 · 결혼 · 교육마저 사고팔아
“노예 낳아줄 수 없다”는 젊은층 ... 21세기 대한민국 참담한 현실

맨얼굴은 어찌 보면 ‘불편한’ 구석이 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진하게 화장하는 게 ‘거짓의 탈’이라고 매도당할 일인지 아니면 ‘예의’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인지는 각자의 판단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박찬욱 감독이 영화에서 ‘자본주의의 맨얼굴’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걸 진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기에 따라선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 장면➊ = 류(신하균 역)에게 이 세상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는 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맨다. 이제 신장 이식밖에는 길이 없다. 신장 기증자를 기다려보지만 기약 없다. 류는 피가 마르고 절망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류 앞에서 검은 옷 입은 덩치 좋은 ‘형님’들이 권태롭게 ‘신장 사고팝니다’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이고 지나간다.

류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들을 찾아간다. 혈액형 맞는 ‘인간의 신장 1개’를 ‘단돈’ 1000만원에 사고파는 시장이 있다. 아마 매도가는 500만원쯤 되고 매입가는 1000만원쯤 될 것 같다. 그래야 ‘형님’들도 먹고살지 않겠는가.

조영남이 부른 ‘화개장터’라는 노랫말처럼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어야 할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라면 그것은 아마도 건전한 자본주의 시장일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 ‘없어야 할 것도 다 있답니다’가 돼버리는 순간 자본주의는 ‘천민자본주의’로 돌변한다. 장기는 물론 인신(人身)도, 성(性)과 영혼까지 돈과 맞바꿀 수 있는 시장이다. 시장에 ‘없어야 할 것까지 있는’ 자본주의는 분명 잘못된 자본주의다.

■장면➋ = 동진(송강호 역)은 유괴당한 외동딸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오자 경찰서 베테랑 현직 형사를 매수해 유괴범을 추적한다. ‘돈이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 말 그대로 공장과 집을 처분한 정도 액수의 돈이면 귀신까지는 아니어도 현직 형사의 ‘공권력’ 정도는 사서 부릴 수 있는 것이 천민자본주의 시장이다. 

형사의 공권력 역시 사장에 매물로 나와서는 안 될 ‘없어야 할 것’임에 분명한데, 장마당에 버젓이 나와 있다. 중소기업 사장쯤만 돼도 현직 형사 하나쯤 살 수 있다면 아마 재벌회장쯤 되면 정말 경찰청장도 부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자본주의는 아마도 인간의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사회시스템인 듯하다. 세상에 수많은 ‘이즘(~ism)’들이 존재하지만 자본주의야말로 모든 이즘을 압도한다. 미국 등등에서는 민주주의를 잡아먹고 중국과 베트남에 들어가면 그 기세등등한 공산주의까지 찜 쪄 먹는 그야말로 이즘계의 ‘최종 보스’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자체가 악(惡)은 아니다. 다만 인간의 본성과 끝없는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끝내 ‘천민자본주의’로 귀결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악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죄와 벌의 무게를 법률시장에서 재단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일상화할 정도면 그것 역시 천민자본주의 사회다.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돈(富)의 윤리와 도덕, 그리고 정부의 고삐가 풀려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없어진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로 정의한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는 그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붕괴한다’고 예언한 이유도 자본주의 앞에 도사린 천민자본주의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결혼도 출산도 안 하는 ‘인구 절벽’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는 모양이다. 2005년부터 17년간 결혼과 출산 촉진을 위해 무려 320조원을 쏟아부었는데도 출산율은 점점 떨어져 급기야 지난해 0.78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당연히 여러 원인이 중첩한 결과겠지만 아마도 욕망과 경쟁이 무제한적으로 풀려버리고, 사랑과 결혼, 교육까지 모두 시장에서 사고파는 것이 돼버린 천민자본주의가 근본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연애와 결혼, 교육 모두 시장에서 구할 수 없어야 할 것들이 장마당에 나와 있다. ‘없는 사람’들에게 연애, 결혼, 출산, 교육 모두 언감생심이다. 그것들도 능히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있는 사람’들만의 리그가 돼버린 지 오래인 듯하다. ‘혁명적 무정부주의 동맹’의 영미(배두나 역)도 결혼과 출산은 생각도 않는다.

‘없는 사람들(무산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참으로 참담하다. 라틴어에서 ‘proles’는 ‘자식’ ‘자손’이다. 재산은 없고 가진 것이라곤 자식(새끼)들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멸칭’이다. 영화 속에서 쥐약 먹고 자살하는 팽기사(기주봉 역)도 가진 것은 쥐뿔도 없고 ‘새끼’들만 주렁주렁하다. 그는 다시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새끼들과 동반자살한다. 

로마시대에 노예는 물론 없는 사람들은 전쟁에도 나갈 수 없었다. 전쟁에 나가는 시민들은 말과 병기까지 본인이 자비로 구입해서 가야만 했다. 당연히 말도 없고 병기 살 돈도 없는 노예들이나 없는 사람들은 전쟁에도 못 나갔다.

대신 없는 사람들을 총칭하는 노예는 ‘애라도 열심히 낳아 노동력이라도 생산하는 것이 국가에 봉사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16세기 이름이다. 16세기 유럽은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부(富)’를 통제하는 어떠한 방법도 없던 난장판에 가까운 천민자본주의 사회이기도 했다. 

요즘 결혼도 출산도 거부하는 젊은 사람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너희들에게 노예를 낳아주고 싶지 않다’는 말들이 들린다. 로마시대나 16세기 유럽 난장판 자본주의사회에서 나올 법했던 가진 것 없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참담하다.
 

 

너희들에게 더 이상 또 노예를 낳아주고 싶지 않아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면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가 야기한 사회양극화를 완화하고 ‘개천에서도 용이 나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그 근본적인 해법이지, 출산장려금이나 육아휴직, 무상교육 지원 따위로 또다시 320조원을 쏟아붓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출산을 획기적으로 늘리겠다면서 한편에서는 ‘상속세 면제’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이다. 정부의 고충이야 이해는 하겠지만 왠지 ‘따끈따끈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메뉴로 내건 커피집 같은 느낌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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