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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복수는 나의 것 (11) 끔찍한 살인 저지른 류와 동진
이들 동정하는 관객도 적지 않아 ... 법적 체계와 국민감정 서로 달라
민주정치, 법치와 국민정서 연결 ... 권력자는 둘 사이서 균형 잡아야

영화 ‘복수의 나의 것’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정심을 품을 만한 ‘사연’을 갖고 있다. 류(신하균 분)는 장기밀매업자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동진(송강호 분)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을 잃는다. 문제는 류나 동진이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이고, 이를 동정하는 관객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법적 체계와 국민감정은 이렇게 다르게 마련이다. 이럴 때 법이 먼저일까 감정이 먼저일까.

 

 

■살인➊ = 장기밀매업자들은 허름한 ‘작업장’에서 류의 신장을 적출한다. 그후 배터진 봉제인형 꿰매듯 류의 배를 대강 꿰매놓고 공터에 버리고 줄행랑친다. 류가 한 맺힌 추적 끝에 장기밀매업자들의 ‘떴다방’식 작업장을 덮쳤을 때, 일당은 마침 또 다른 여자를 마취시켜 놓고 장기를 적출하려 하고 있다. 류는 야구 방망이로 그들의 머리통을 부수고, 드라이버를 목에 꽂아 죽인다. 그다음 그들의 신장을 꺼내 집에 와 생으로 씹어 먹는다. 처절과 잔혹을 넘어 엽기적인 살인극이다.

■살인➋ = 유치원생 외동딸이 유괴당해 결국 시신으로 발견된 동진은 유괴범인 영미(배두나 분)를 전기고문으로 처형한다. 공범인 류도 붙잡아 딸이 시신으로 발견된 강으로 끌고 가 강물 속에서 아킬레스건을 끊어 딸처럼 익사시키고, 시신을 토막 낸다. 류의 복수극 못지않은 엽기적인 살인이다. 

■살인➌ = 동진이 류의 시신을 토막 내 비닐봉지에 담는 것으로써 복수를 완수했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혁명적 무정부주의자 동맹’이라는 영미의 ‘동지’ 한 무리가 나타나 동진을 돌아가면서 칼로 쑤시고, 마지막에 가슴팍에 ‘판결문’을 대고 칼을 꽂는다. ‘영미 동지’를 위한 복수극이다. 류나 동진의 복수극에 비하면 그나마 덜 끔찍하지만, 아마도 영문도 모르고 칼질을 당하는 동진이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결코 덜 끔찍하지 않을 듯하다. 

류나 동진이나 이미 죽어버려서 그들의 살인극이 밝혀진다 한들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겠지만, 그들이 모조리 법의 심판대에 선다면 검찰이 그들에게 각각 어떤 형량을 구형하고 법원은 최종적으로 어떤 선고를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 방송, 인터넷에 온갖 끔찍한 폭행과 살인사건이 보도되고 조금 시간이 흐르면 그 사건을 법적으로 심판한 내용이 알려지는데,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결이 나올 때가 많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만약 영화 속 3개의 살인극을 심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행법에 따르면, 엽기적인 살인극을 벌인 류나 동진에게도 가장 무거운 형벌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류나 혹은 동진에게 ‘동정심’을 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럴 만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법과 국민정서는 이처럼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한번 정해놓은 법조문대로 기계적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법치’도 완벽할 수는 없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국민 정서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도 문제적이긴 마찬가지다. 다수 ‘감정’에 따라 법을 무력화한다면 ‘헌법 위 국민정서법’이나 ‘헌법 위 떼법’ 세상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여전히 ‘세월호 특별법’이나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법치에 어긋난 국민정서법이나 떼법의 산물이라고 비분강개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의 거듭되는 각종 ‘거부권 행사’를 두고도 한쪽에선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당연한 권한 행사라고 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다수 국민의 요구를 짓밟는 천인공노할 행위이며 탄핵까지 거론한다. 

“국민의 소리는 곧 신의 소리다(Vox pop uli, vox Dei)”는 말은 영국 민중이 1300년대부터 사용했다. 절대왕권을 향한 민중의 외침이었다. 영국의 ‘진보정당’이라 할 수 있는 자유당의 전신 ‘휘그(Whig)당’의 모토(motto)이기도 했고, 현재도 자유민주당의 구호로 사용된다. 

휘그라는 이름은 영국의 보수당이 자유당에 붙여준 이름인데,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스코틀랜드 말 도둑놈’이라는 뜻이다. 법치를 강조하는 보수당이 보기에 사사건건 국민의 소리가 신의 소리라고 법을 깔아뭉개는 자유당 것들은 그야말로 ‘말 도둑놈들’처럼 흉악한 놈들로 보인 모양이다. 우리말로 하자면 ‘소도둑놈’쯤 되겠다. 민주주의의 원조라 하는 영국에서도 법과 국민정서를 둘러싼 갈등은 대단히 뿌리 깊고 첨예한 갈등의 역사를 갖고 있다.

민주정치란 본질적으로 법치와 국민정서가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인지 모르게 연결돼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행정부의 수반과 입법부의 국회의원 모두 국민들이 직접투표로 선출한다. 선거 자체가 엄격한 법의 잣대로 후보자를 걸러내는 게 아니라 사실상 국민 정서로 선택하는 셈이다.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당연히 감방에 있어야 마땅한 많은 정치인이 선거에서는 국민 정서에 의해 당당히 권력자가 되기도 하고 의회에 입성하기도 한다. ‘국민의 지배(민주정치)’는 중우정치(衆愚政治)로 흐르기 십상이라는 플라톤의 걱정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모양이다. 

‘악법(惡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의 수제자다운 걱정이다. 우리의 민도(民度)가 아테네 시민들의 그것보다는 월등하다는 보장도 없는 한 플라톤의 걱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국민 정서에 무조건 휘둘려선 안 되지만, 오로지 법치만 신주단지처럼 붙잡고 있어서도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정서를 헌법 이상으로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지 못하면 역사의 발전이 막히기도 한다. 법치를 수호해야 할 때와 국민정서에 길을 열어줘야 할 때를 아는 지혜야말로 통치자에게 필요한 덕목일 듯하다.

법치를 유난히 강조하던 대통령이 불쑥 ‘국민은 항상 옳다’고 선언하는가 싶더니, 다시 국민 70% 가까이 찬성한다는 사안엔 거부권을 거듭 행사한다면 국민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결국은 ‘국민은 항상 옳다’는 선언이 ‘나를 지지하는 국민은 항상 옳다’는 말의 변주에 불과했다면 우리는 이를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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