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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제주] '연구는 즐기는 사람만 지속할 수 있다' ... "제주도, 버섯 산업 중심지 되길"
"연구 환경 열악하고 지원 부족한 현실 안타까워" ... "손주까지 이어지면 3대가 버섯 연구"

 

누구나 삶의 원동력을 품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연구실에서, 또 다른 이는 가족의 곁에서 내일을 꿈꾼다.

 

"어머니의 길을 잇되, 나만의 연구를 펼치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 버섯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이승학(32) 박사는 지난 8월 21일 제주대에서 버섯 분류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모자(母子)가 같은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국내 첫 사례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사랑했던 그는 산과 들에서 곤충과 식물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좋아했어요. 산에 가서 식물이나 곤충을 보는 게 참 재미있었죠. 그래서 자연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의 이러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버섯 연구로 이어졌다. 이 박사는 제주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버섯의 유전자 분석과 분류학에 집중했다. 어머니가 주로 현장에서의 분포 조사와 종 동정에 주력했다면, 그는 분자생물학적인 접근으로 버섯 연구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버섯의 분류와 진화 과정을 연구하고 있어요. 제주는 곶자왈의 독특한 생태계와 한라산의 고도별 버섯 분포 등 연구 주제가 무궁무진합니다."

 

어머니와 같은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 되어 기쁘지만, 동시에 부담도 크다고 그는 말했다.

 

"어머니는 현장에서 버섯을 보면 바로 종을 알아맞힐 정도로 경험이 풍부하세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비교를 하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연구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 박사는 연구자로서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연구 환경이 열악하고,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연구는 정말 즐기는 사람만이 지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도 어머니를 따라 연구를 즐기며 꾸준히 나아가고 싶습니다."

 

그는 버섯 연구의 미래에 대해 열정을 보였다.

 

"버섯은 아직 연구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특히 산업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큽니다. 버섯으로 만든 가죽이나 대체육 등 친환경 소재는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거예요."

 

실제로 버섯은 다양한 산업에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버섯 균사체를 활용한 신소재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버섯 균사체로 만든 가죽은 이미 해외에서 생산되고 있어요. 가죽 가방이나 자동차 시트 등 다양한 제품에 적용되고 있죠. 버섯으로 만든 스티로폼 대체재도 개발되고 있어서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는 제주도가 버섯 산업의 중심지가 되길 바란다.

 

"제주는 친환경 섬으로서 버섯 균사체 산업을 발전시키기에 최적의 장소예요. 감귤 농사나 관광 산업의 한계를 보완할 새로운 산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 중심에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가족 모두가 학문에 종사하고 있어 가족 모임에서도 학문적인 대화가 많다고 한다.

 

"형은 물리교육을 전공했고, 누나는 곤충 분류학을 전공했어요. 가족들이 모두 학문적인 분야에 있다 보니 서로의 의견이 강하고 토론도 많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의 주장이 강해서 쉽게 꺾이지 않아요." 웃음 섞인 그의 푸념이다.

 

 

이 박사의 어머니, 고평열(여.62) 박사는 아들이 자연 속에서 성장하며 버섯에 대한 흥미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음을 회상한다.

 

고 박사는 2013년 제주대에서 '제주 자생버섯의 종다양성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1년간 제주 유일의 버섯 박사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렸다. 

 

고 박사는 2006년부터 직접 채집한 버섯 건조 표본 2000여점과 균주 표본 300여개를 제주테크노파크에 기증한 데 이어 탐라광대버섯과 관음흰우단버섯 등 10여 종의 미기록종을 발견한 바 있다.

 

"승학이가 어릴 때부터 저와 함께 오름을 자주 다녔어요. '맛있는 것을 사줄게' 하면 줄레줄레 따라왔죠. 특별히 버섯을 하고 싶다는 건 아니었지만, 자연 속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버섯에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고 박사는 아들이 버섯 연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아들의 선택의 폭을 좁힌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제 자녀들이 각자의 길을 걷기를 바랐어요. 큰아들은 물리, 딸은 곤충학을 선택했죠. 승학이는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제가 걸어온 길을 권유하게 됐어요. 하지만 가끔은 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 부분이 미안해요."

 

 

고 박사는 또 아들의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여전히 연구 환경이 열악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우리 세대는 후진국에서 태어나 주로 몸으로 일하는 삶을 살았지만 승학이 세대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여전히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을 보면 우리 세대가 더 나은 길을 마련해주지 못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아들이 연구를 즐기며 꾸준히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승학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긴 시간이에요. 꾸준히 연구하면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거예요."

 

고 박사는 버섯 연구의 3세대를 꿈꾸며 손자에게도 버섯에 대한 흥미를 심어주고 있다.

 

"손자를 데리고 곶자왈에 가서 버섯을 보여주면 너무 좋아해요. '할머니, 버섯 보러 가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마다 뿌듯하죠. 버섯 박사 3세대가 탄생하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하지만 고 박사는 역시도 손자의 선택이 우선이다.

 

어머니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이승학 박사, 그의 버섯에 대한 열정은 제주의 자연 속에서 계속해서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들을 묵묵히 응원하는 어머니 고평열 박사가 있다.

 

"승학아, 너는 긴 시간이 있어. 꾸준히 나아가면 원하는 만큼 갈 수 있을 거야. 삶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너만의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응원이 더해 모자(母子) 버섯 박사가 새로운 세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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