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분히 계산적이고 집요한 트럼프 수법에 대응하려면 여야 정치권이 초당적이고 거국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더스쿠프 | 뉴시스] ](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7/art_17391473913099_6fd2d5.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카드 활용술이 실체를 드러냈다. 4일(현지시간) 시행하려던 멕시코·캐나다 대상 25% 관세 부과는 한달 유예하기로 했다. 대신 캐나다와 멕시코는 펜타닐 마약 유입 및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의 요구사항을 들어줬다. 당사국들이 밀고 당기기 협상을 한 결과다.
트럼프가 일단 한발 물러선 데는 이유가 있을 게다. 미국산 농산물 수출이 영향을 받는 등 자국 경제에 미칠 타격과 수입물가 상승을 우려했을 것이다. 시간을 끌며 상대국으로부터 얻을 것은 얻어내자는 계산도 작용했을 수 있다.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유예했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명확하다. 관세를 활용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세수를 늘리며, 제조업 기반을 미국으로 회귀시키겠다는 것이다. 달래고 어르면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끌어내려는 속셈이다.
멕시코·캐나다와 달리 중국 제품에는 미국이 4일 10% 추가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중국도 10일부터 미국산 품목에 10~15%의 보복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트럼프 1기 정부 때 벌어졌던 미·중 관세전쟁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집중한 수출 전략을 펴기도 어렵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557억 달러로 세계 8위다. 게다가 최근 대미對美 수출 비중은 늘어나고 대중對中 수출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그만큼 트럼프 2기 정부의 관세 공격 타깃 등 더 큰 보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중 관세전쟁 여파로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어들면 중국 내 생산 감소로 우리나라 대중 수출의 86%를 차지하는 중간재 수출이 타격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한국으로선 1·2위 수출국인 중국과 미국으로의 수출이 동반 감소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특정 시장과 품목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수출구조의 약한 고리도 드러난다.
트럼프의 협상 방식은 글로벌 관세폭탄을 터뜨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불법 이민과 마약 유입 근절이라는 비경제적 이슈를 관세협상 카드로 삼았다. 전통적 외교 질서와 동맹 관계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며 무력화했다.
트럼프는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해 소유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뒤 지중해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까지 밝혔다.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발언으로 중동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 내 여론도 부정적이다.
200만명의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고 군대를 주둔시키겠다는 발상은 제국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이다. 그의 발언은 충격적 제안을 통해 가자지구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극대화함으로써 기존 상황을 바꾸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극단적인 선택지로 몰아넣은 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것이 트럼프 스타일이다.
북핵 문제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도 이런 충격요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이미 한국을 ‘현금 인출기(money machine)’로 비유했다. 최근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하면서 북한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뒀다.
과거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해안가에 콘도를 지으라고 권유한 사실도 공개했다.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한국이 패싱당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한국에도 적용되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 중반으로 주저앉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미·중 무역 갈등이 심해지면 우리나라 성장률이 0.2%포인트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우리는 이미 트럼프 1기 정부 시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에서 강한 압박을 경험했다. 트럼프가 구사할 수 있는 시나리오별 정책 전개에 맞춘 대책을 치밀하게 세워야 할 것이다.
정부는 통상 외교력을 총동원해 아세안·인도·중동·중남미 등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고 경제영토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 민관이 힘을 합쳐 반도체·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꾀하는 동시에 방산·원전·바이오와 같은 차세대 산업을 키워 미래 수출 기반을 넓혀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거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더스쿠프 | 뉴시스]](http://www.jnuri.net/data/photos/20250207/art_17391473906438_4ef37d.jpg)
트럼프가 실력을 인정한 조선 외에도 반도체·배터리·인공지능(AI) 등으로 미국과 산업 협력 분야를 넓히는 ‘상생 패키지’를 제시하는 지혜도 발휘해야 한다. 트럼프의 ‘밀당’에 흔들림 없이 방어함은 물론 우리가 경쟁력을 갖춘 산업을 지렛대로 삼아 공격하는 협상 전략이 요구된다.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해 미국의 이익을 옹호하는 트럼프로선 한국의 내란 사태에 따른 정치위기도 거래적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높다. 다분히 계산적이고 집요한 트럼프 수법에 대응해야 할 한국의 협상력은 비상계엄-탄핵 정국 여파로 취약하다. 경제가 망가진 뒤 집권하면 뭐하나.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진행 중인 헌법재판소의 질서 있는 심리 및 결정이 요구된다. 어떤 결정이든 이를 승복해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노력도 수반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운 때일수록 여야 정치권은 초당적이고 거국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본사 제휴 The Scoop=양재찬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