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논농사 아허이 놀레로다 요 밀레야 놀고 나가라 어석비석 잘도 간다 아허이 놀레로다 물결소리는 처량도 허게 와랑지랑 나는구나 ᄒᆞᆫ(한) 질 가나 ᄒᆞᆫ 질을 오나 농부들이 ᄒᆞᆫ는(하는) 일이지 아하 먼 딧(데) 사람 듣기도 좋고 어허야 놀레로다 밑엣 사름은 보기도 좋고 어허어 놀레로다 곁에 사름 보실 제(때)는 두 번 일억 ᄒᆞ염시면은(하고 있으면) 어깨춤이 저절로 나네 농부 소리를 불러나 보라 실픈(싫은) 일을 그리운 듯(하고픈 듯) ᄒᆞ면 성도 얼마나 가실 소냐 어허어 놀레로다 밀레소리 와랑지랑 잘도 난다 잘도 난다 요 밀레야 저 밀레야 어서 살살 놀고나 가라 어허어 놀레로다 젊은 사람 알만ᄒᆞᆫ(한) 일 내가 ᄒᆞ다가 버치면은(힘들면) 어느 누가 ᄒᆞᆯ(할) 것이냐 어허어 놀레로다 어허 요 밀레는 지(자기)가고 싶은양 잘도나 간다 물결 소리는 와랑지랑 요만 ᄒᆞ면은
▲ 써레질하는 농민. [사진=뉴시스] 제주도는 밭농사가 대부분이고 논농사는 전체의 1.5%~2% 수준이다. 서귀포시 대포동과 법환동 일대에서 강정천(江汀川)을 이용하여 논농사가 일찍부터 가능했다. ‘써레질 소리’는 서귀포시 강정동에서 논농사 지을 때 써레질 하면서 논을 평평하게 고르는 일하며 부르던 노동요다. ‘써레질 소리’는 대포(大浦)나 위미(爲美)마을의 ‘밀레질 소리’와 함께 강정마을에서 전승되고 있다. 써레질은 논을 갈고 물을 댄 다음 일차적으로 논을 고르는 작업이다. ‘밀레질 소리’는 써레질로 어느 정도 골라진 밭을 밀레를 이용하여 바닥을 고르는 일을 하며 부르는 노래다. 써레를 소에 매고 논을 돌면서 고른다. 이때 부르는 민요가 ‘써레질 소리’이다. 써레질은 힘든 노동이라 대부분 남자 ‘장남’들이 이 일을 맡았다. 이 작업은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종종 여러 명이 각각 써레를 소에 매고 일을 한다. 써레질 하는 사람 옆에 몇 사람이 이 노동을 보조(補助)한다(한국학중앙연구원, 향토문화전자대전)
▲ 벌초하는 시민들. [뉴시스] 오월이라 단오일에 송백섭(잎) 푸린(푸른)가지 높닥지 끈을 달고 무삼 얘기 구름 타듯 백릉 보선 두발 질에 양대선이 가시는디 일주 낭군 어딜 가서 양대선이 못가시나 그ᄃᆞᆯ 그름 하송 ᄒᆞ야 유월이라 유두일에 남의 집도 소년님네 드르는 건 양산이요 받치는건 선ᄌᆞ(자)로다 일주 낭군 어딜 가서 선ᄌᆞ ᄒᆞᆯ(할) 줄 모르시나 그ᄃᆞᆯ 그름 하송ᄒᆞ야 오월이라 단옷날에 송악낭긔(나무) 추척이도 창신 보선(버선) 신건마는 설룬(서러운) 님은 어딜 가난 창신 보선 못 신는고 그도 설루와 못 살더라 그 ᄃᆞᆯ도 구뭄 다 보네고 유월이라 유둣날에 놈의 집도 소년덜(들)은 들르는 건 양산이곡 받치는 건 선제(자)인듸 설룬 낭군 어딜 가난 선제들 충(줄) 몰르는고 그도 설루와 못 살더라 그 ᄃᆞᆯ도 구뭄 다 보네고 * 추척이=송악나무 줄기 군데군데 하얗게 돋아나는 모
▲ 새해 맞이 연 날리기.[사진=뉴시스] 세시(歲時)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1년 단위로 시간적 주기에 따라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전승의례(傳承儀禮)이다. 태음력(太陰曆)을 기준으로 한 해를 춘(春), 하(夏), 추(秋), 동(冬) 사(四)계절, 3개월 단위로 나눈다. 음력 정월부터 3월까지 봄, 음력 4월부터 6월까지 여름, 음력 7월부터 9월까지 가을, 음력 10월부터 12월까지 겨울로 삼는다. 1년을 24절기로 나누어 한 달을 2절기(節氣)로 구분해 15일 마다 한 절기를 맞이한다. 세시풍속은 생활공간과 생산 활동에 따라 다르다. 제주도 세시풍속은 절기, 물때, 달거리 등 시간 주기에 따라 산간, 중산간, 해안이라는 생활공간에서 농사, 목축, 어로, 수렵 등 생업(生業)활동 관행(慣行)이 반영된 지역적 특수성이 나타난다. 제주도 세시풍속은 농사와 어로(漁撈), 의례(儀禮) 등의 생활에서 서로 분리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정월이라 상한 일에 청산녹형 노픈 곳듸(높은 곳에) 구름 새로(사이로) 연(鳶)만 둥실 뜨엇구나(떳구나) 남의 집도 소년님네 묵은 옷일 ᄇᆞ려(버려)두고 새옷일 들겨 입
▲ 칠머리당 영등굿. 서우제소리(산신 서우제소리, 요왕 서우제소리, 영감 서우제소리)는 무(巫)의식에서 부르는 놀이 무가(巫歌)로 신(神)을 즐겁게 하고 기원(祈願)하는 석살림 제차에서 부른다. 곡(曲)이 흥겨워 노동요화(化) 됐거나 놀 적에 춤 추며 불러 유희요(遊戲謠)로 변이(變移)된 경우다. 서우제 소리는 본래 제주도 영등굿 할 때 석살림이나 영감놀이 등의 제차에서 불렀다. 이 노래는 제주도 무속(巫俗)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제주 전역에 그 공감대가 퍼져 있다. 이 노래는 가락이나 사설 엮음이 고정이고 유창한 맛을 준다. 무속에서 사용되는 노래들은 그 가락이 창민요(唱民謠)처럼 발달되어 있다. ‘서우제’ 라는 의미는 아직까지 분명하지 않다. 영감놀이 등에서 불려 지다 민간(民間)에 전이된 이 민요는 여흥(驪興)적인 장에서 가창(歌唱)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이 노래를 꺼려하여 일반 사람들은 부르기 꺼려한다. 그 가락 구조는 아외기 소리와 거의 동일하지만 사설은 다르다. 아외기 소리는 김매는 작업과 관련된 노동적인 사설을 주로 엮어 가는데 반하여 서우제 소리로 가창된다. 영등굿 등에서 바다
▲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된 '베 짜는 모습' 모형이다. ‘베틀노래’는 ‘베틀가’라고도 한다. 베 짜는 일이 지루하게 계속되어 자연 ‘베틀노래’는 장형 많은 박자 위주의 음영(吟詠) 민요이다. 다양하게 불리며 주로 베틀 구조와 기능을 아름답게 노래한다. 베틀 위에 앉은 부녀자들을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仙女)에 비유한다. 베틀다리에서부터 시작해 ‘앉을개’, ‘부테’, ‘말코’, ‘버거미’, ‘용두머리’ 등의 모양과 율동적인 작업을 의인화(擬人化)한다. 혹은 자연계(自然界)의 실재, 동물의 생태, 기타 현상들에 비유하여 형상화(形象化)하고 있다. 아름답다고 생각한 모든 사물들을 끌어다 자기 노동 도구를 찬양하는 찬가(讚歌)라 할 수 있다. ‘베틀노래’는 부녀자들이 베 짜며 부르는 여성 노동요다. 사설이 풍부하고 일정하게 짜여있으며 비유가 뛰어나다. 서사적 요소가 많고 베틀의 부분명(名)을 낱낱이 들어 비유하고 있다. 베 짜
▲ 고구마 썰어 말리기.[사진=제주도] 제주민요에 별로 많지 않은 ‘농부가’다. 아마 제주민요가 작업이나 노동별로 세분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래 내 꿈은 농사짓는 교수였다. 지금도 그렇다. 다만 전임이 안 되고 겸임이어서 ‘농사짓는 학자’로 약간 수정했다. 제갈량만큼은 아니더라도 주말농사로 농지원부 등록 한지도 오래됐다. 지금은 콜라비, 배추, 무, 시금치, 브로콜리를 키우고 있다(한사람이 1년 동안 소비하는 브로콜리에는 평균 1,660여 마리의 벌레가 들어있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주장이다. 그래서 브로클리는 먹기 전에 잘 씻어야 한다. 그 애벌레와 알도 단백질이긴 하다.) 농부로다 농부로다 천하지대부가 농부로다 엉허어요 상사대야오 요 농사를 지어다가 늙은 부모님 공양 ᄒᆞ(하)세 요 농사를 지어다가 어린 자식 먹여 살려 검질(김)짓고 골 너른(넓은)밧디(밭에) 곱은쉐(굽은쇠, 호미를 말함)로나 우겨 가자 앞 멍에야 들어나 오라 뒷 멍에야 나고나 가라 앞 문 열고 바루(파루)를 치니 대명산천에 ᄃᆞᆯ(달) 솟아온다 하영(많이
▲ 꼴베기.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어릴 때 할아버지가 나에게 ᄆᆞᆼ생이 한 마리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난 실망했다. 그러나 그간 할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이제야 할아버지 본심을 알게 되었다. 지금 와 생각하니 할아버지는 정말 말을 키울 여건이 되는 사람에게 그 반려마를 주고 싶었던 거 같다. 지금이야 반려동물이 보편화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어린 망아지를 아버지가 근무하는 학교 따라 이사 다니던 어린 나에게 맡기기가 몹시 우려되셔서 그러셨던 거라 이해한다. 그게 맞다. 지금과는 달리 예전 제주에는 말을 기르거나 소를 기르는 사람이 많았다. 목장에 올려 키우던 말이나 소가 3살 정도 되면 집으로 내려 말과 소를 부릴 사람이나 마을에서 잘 다루는 분에게 의뢰해 마차나 쟁기질을 가르쳤다. 그렇게 해야만 쟁기질이나 마차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 철 소를 키우기 위해 많은 ‘ᄎᆞᆯ(꼴)’이 필요했다. 한 마리에서부터 비육(肥肉)을 전문으로 하지 않더라도 많게 5마리를 한꺼번
어느 TV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가위개미는 무려 5500만년 동안이나 농사를 지어왔다고 한다. 중남미 열대에서 아래턱뼈를 가위처럼 사용하여 식물 잎을 뜯어다 버섯에게 먹이며 길렀다. 이에 비해 인류가 농경을 하며 산 기간은 고작해야 1만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현생 인류는 크게 농사 지어본 사람과 안 지어본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농사지어본 사람은 다시 밭 갈아본 사람과 안 갈아본 사람으로 나누어진다. 그 중 단 한 번도 밭은 안 갈아 봤지만 한번이라도 농사 지어본 사람은 밭갈이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바로 밭은 갈아 봤지만 씨는 안 뿌려본 사람들이다. 우리 아버지는 일곱 형제 중 셋째고 아들 형제 중 둘째다. 중학교 졸업 이후 공부하러 집을 떠나 타지를 전전하셨다. 이후 군 생활, 교직 생활 하시느라 다른 삼촌들에 비해 집안 농사일이 서툴고 적성도 안 맞으셨던 거 같다. 그래서인지 할머니가 생전 하신 말씀이 “느네 아방이 제일 밭 못 갈아 나져. 밭에 금만 긋으멍 쇠만 얼 메이고.” 밭을 깊게 갈지 않았다는 말씀이셨다. 할머니와 두 분 고모는 아버지가 허술하게 밭 갈은 덕분
▲ 맷돌 제주여성들의 대표 노동요인 맷돌노래는 ‘맷돌 가는 노래’, ‘ᄀᆞ레 ᄀᆞ는 소리’라 한다. 맷돌노래는 보리나 조 등 곡물을 갈기 위해 맷돌 돌리며 부르는 제분(製粉)노동요다. 곡식을 빻거나 가루 만드는 일과 더불어 불러지는 노래라 제분요라 한다. 힘이 적게 들고 장시간 적은 인원에 의해 이루어지므로 개인 감정과 정서를 풀어헤친 문학성 뛰어난 사설이 전개되며 그 노래 수도 많다. 이를 제주 민요 연구 1세대인 고 김영돈 교수님은 자립과 근면의 노래, 팔자와 한탄의 노래, 사랑과 원한의 노래, 시집살이 노래, 집안노래, 경세(警世)의 노래, 꿈의 노래, 신앙과 풍토의 노래로 구분지어 정리하였다. 이에 따라 이 연재물에서는 우선 전체 가사를 음미하고 나서 자립과 근면, 팔자와 한탄, 사랑과 원한, 시집살이, 집안, 경세(警世), 꿈, 신앙과 풍토 순으로 작성하려 한다. 이번은 사설 중심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일단 충분히 시간 내어 가사를 여러 번 음미해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지난한 삶의 질곡은 물론 해학(諧謔)과 풍자(諷刺)가 심사(深思)
예전 한국영화에는 방앗간이 남녀가 밀회를 하는 장소로 자주 등장했다. 방앗간은 어둡고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 들킬 염려가 적었다. 제주에서는 ᄆᆞᆯ방에가 그 역할을 했다. 그러다 보니 “고라불켜, 작산 비바리가 밤중 들언 ᄆᆞᆯ방애 강 놀암서랜” 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여간 아니었다. 연자매인 ᄆᆞᆯ방에는 ‘ᄆᆞᆯᄀᆞ랑’, ‘ᄆᆞᆯᄀᆞ레’, ‘ᄆᆞᆯ구레’, ‘ᄆᆞᆯ방아’, ‘ᄆᆞᆯ방애’, ‘몰방이’라고도 불렸다. 소를 이용하면 ‘쉐방에’라 한다. ᄆᆞᆯ방에는 탈곡한 보리나 조 등을 도정(搗精)할 때 쓰였다. 마을마다 4~5개씩, 2~30호에 1
따비는 돌이 많은 화산섬인 제주지역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농기구로 주로 황무지를 개간할 때 사용했다. 보통 두세 사람이 횡(橫)을 맞추면서,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밟아 삽질하듯 손잡이를 뒤로 눌러 떠엎거나 손잡이를 옆으로 비틀어 땅을 일구었다. 이를 ‘따비갈이’ 라고 했다(띠밭을 제주에서는 ‘떼왓’이라고 한다). 따비를 들어 올린 후 내리찍고 좌우로 힘차게 흔들어 땅을 일구면서 노래를 했는데 이를 ‘따비질 노래(소리)’라고 했다. 이 소리는 작업하는 사람의 힘을 한 곳에 집중시키는 구호(口號) 기능을 했다. 농경문화 발생 이전 수렵 채집인이 사용했던 굴봉(掘棒)이 발달해 따비가 나타났다. 제주도에서 극젱이로 갈고 남은 구석진 땅이나 돌밭을 가는 데 사용되었다. 선사시대 땅 속을 뒤져 먹을 수 있는 알뿌리 식물을 파내는 데 쓰였던 ‘뒤지개’가 발전한 농기구가 ‘벤줄레’이다. 벤줄레는 땅을 일굴 때 땅 속에 묻혀 있는 돌을 캘 때 주로 사용했다. 혹은 장지(葬地)에서 산담 쓸 돌을 캘 때도 쓰였다. 어기두리 더럼마 힛 일어나라 일어나라 따비 아닌 산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