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 제르맹 드로오헨브로트(Germain Droogenbroodt) 인생에는 좌절이 찾아오는 법이다. 심한 좌절이, 내가 더는 알 수 없을 정도의! —César Vallejo 인생의 나날에는 천장도 없고 음울한 그런 날들이 있지 그 자신의 슬픔에 잠기는. 비록 어느 곳에든 어떻든 피난처와 빛이 있겠지만 항상 눈에 띄지 않을 때도 있다. 출처: '존재의길' 서던애리조나프레스, 2023 SETBACKS There are setbacks in life, so fierce, I don't know anymore! —César Vallejo There are days in life so roofless and gray that in their own sadness they threaten to drown. Although somewhere —how or wherever?— there must be shelter and light but not always in sight. Germain Droogenbroodt from “The Road of Being” Southern Arizona Press, 2023 ◆ 제르맹 드로오헨브로트(Germain Droogenbroodt) = 벨기에의 시인, 에세이스트 및 번역가이다. 그는 20여 권의 시집을 출판하였으며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드로오헨브로트의 시는 종종 존재의 본질, 의미 탐구 및 인간의 삶에 대한 주제를 탐구하고 있으며 그의 작품은 철학적이고 사유적인 성격과 선명한 상상력과 음악적인 언어 사용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인도 및 아프리카 시인들의 작품을 포함한 많은 시인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국제 시 번역 및 연구를 촉진하는 문화 기관 IPTR (International Poetry Translation and Research)의 창립자이다. 1985년 몽스시에서의 Grand Prix de la Ville de Mons, 2003년 Nosside International Poetry Prize, 그리고 2015년 Nosside Lifetime Achievement Award를 포함한 수많은 상을 받았다. 또한 30년 이상의 기간 POINT 출판사(POesie INTernational)에서 세계 여러 지역의 현대 시인들의 수많은 시집을 출판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최근 형사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후 2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선고된 형사사건이 있다. 이를 소개한다. A씨는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게 되었다.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B씨에게 경찰에 “내가 운전을 했다”고 허위진술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B씨는 경찰서에 자신이 운전을 했다고 허위진술을 한 후 위 피해자와 합의서도 B씨 명의로 작성을 하여 경찰에 제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A씨와 B씨 사이가 악화되었고, 이에 B씨는 변심을 하여 실제 운전을 한 자는 A씨이고 본인은 A씨의 사주를 받고 허위 진술을 하였다고 지속적으로 자백을 했다. 그런데도 형사 1심 재판부는 A씨와 B씨에게 둘 다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형사소송법 제310조에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피고인이 임의로 자백을 한 경우에 법관이 유죄의 심증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보강증거가 없다면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이에 위 형사 1심 재판부에서는 B씨가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을 하는 상황에서도 B씨의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살피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형사감정결과, B씨 명의로 작성된 교통사고 피해자와의 형사 합의서의 필적이 A씨 것인지, B씨 것인지 불분명하게 나와서 B씨 자백을 보강할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B씨 본인 자백의 진술도 지속적으로 번복되었기 때문에 신빙할 수 없다는 이유로 B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그리고 A씨는 애시 당초 범죄사실을 부인하고 있었고, A씨의 범죄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A씨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결국 A씨와 B씨가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사소송법상의 자백 보강 법칙에 따라 A씨, B씨에 대해서도 무죄가 선고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위 형사사건 2심 재판부에서는 다시 위 허위로 작성된 합의서에 대하여 법원 감정을 진행하여 결과를 바로 잡아 A씨와 B씨에게 유죄를 선고(A씨도 결국 자백을 하였음)하여 정의로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렇다면 왜 형사소송법에서는 피고인이 자백을 하더라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것일까. 이는 과거부터 여러 이유로 피고인이 허위 자백 또는 강압적인 자백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여 잘못된 재판을 바로 잡고, 형사 피고인의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오랜 과거부터 피고인에 대한 인권 침해가 다수 이루어져 왔고, 실무상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방어권의 행사에 사실상 제약이 많은 점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타당한 제도인 것으로 생각된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셋째, 기회 앞에서는 모호하게 행동하지 말자. 당당하자. 직업 생애 중에서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상사나 경영자가 일부러 자신을 발탁할 때에는 반드시 용감하게 나서야 한다. 자립, 자신, 자강의 태도와 업무 능력을 통하여 상사에게 희망을 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자기 발전에 지극히 중요한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신속하게 나서야 한다. 용감하게 기회를 포착하여야 한다. 주동적으로 그 ‘수놓은 공’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코 과도한 겸손으로 자아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넷째, 적당하게 자신을 선양하자. 업무 중에 적당한 때에 상사에게 자신이 이미 이루어놓은 성적을 펼쳐 보여줘야 한다. 창신적이 방법과 독창적인 업적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성장 잠재주’이니 자신을 육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금’과 같은 자신을 빛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판매책이 우회로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재능이 있으면서도 펼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 불운을 피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자기 자신을 잘 홍보할 줄 알아야 한다. 상사와 ‘친밀한’ 접촉을 통하여 자기의 빛나는 점을 끊임없이 상사 앞에서 번쩍이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전제는 먼저 자신을 우수한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끊임없이 스스로 새로이 창조해 나가야 한다. 다섯째, 책략을 강구하여 겸손하자. 겸허는 열등감이 아니다. 그런데 과도한 겸허는 왕왕 열등의식으로 변한다. 열등의식에 빠진 사람은 업무 중에 상사의 인정을 받기 힘들다. 겸허는 적당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지나치게 겸손하면 나약하게 된다. 조금 겸손하지 못하면 시건방지거나 경망스럽게 된다. 겸허는 상대를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 겸손한 상사나 경영자에게 적절하게 겸손하면 상사의 공감을 얻어내 호감을 살 수 있다. 자신감이 넘치고 선양하기를 좋아하는 상사나 경영자에게 당신의 겸손은 무능하다고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여섯째, 개인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적당한 시기에 독특한 자기 개성을 표현하고 자기의 중요한 가치를 나타내어 자기만의 ‘황금’을 때때로 빛을 발하게 하여야 한다. ‘함축’적으로 ‘지하’에 묻어 놓아서는 안 된다. 겸손도 좋고 자신감도 좋다. 모두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우수한 인재는 개인 브랜드를 만드는 데에 용감하고 강하다. 겸손은 개인이 성장하는 데에 보조 추진 장치라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적당한 자아 발양도 자기 발전의 단계를 높여 준다는 것도 명백하게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이 출류발췌, 같은 무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려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을 발휘해나가야 한다. 어떤 사람이든 지나치게 겸손하면 위축된 생활을 하게 된다. 매일 “전전긍긍하게 되고 얇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살게 된다.” 이러한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이상은 물거품이 된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주역』은 말한다. “‘자주 겸손하니 부끄러움’은 뜻이 궁한 것이다.” 무슨 말인가? 변덕스러운 사람은 누구를 따라야 할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좋을지 모르게 만든다. 뜻을 실현시키기 어렵게 만든다. 자기의 뜻을 실현시킬 생각이라면 생활의 자세한 부분에 주의하여야 한다. 일하는 데에 시종일관 하여야 한다. 변덕스러워서는 안 된다. 일할 때는 철저히 끝을 내어야 한다. 물론 훌륭하게 끝을 내는 것은 더 좋다. 한나라 때 유향(劉向)의 저작 『열녀전·모의(母儀)』의 기록이다 : 어릴 적 맹자 이야기이다. 어느 날 어린 맹자는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맹자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다가 물었다. “공부, 어땠니?” 맹자가 답했다. “어제와 같았어요.” 어머니는 맹자의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칼로 짜던 베를 잘랐다. 맹자가 까닭을 묻자 어머니는 간곡하고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공부는 베를 짜는 것과 같다. 한 촌 한 촌이 모여 한 척이 되고 한 척 한 척이 쌓여 한 장이 된다. 네가 향상하려 하지 않은 것이 내가 이 짜던 베를 자르는 것과 같다!” 맹자는 문득 모든 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공부하였다. 마침내 유명한 사상가, 교육자, 문학가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 다양한 인생 역정을 가지고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보자. 모든 일을 완전하게 했는가? 후회는 없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까. 어떤 일을 하는데 우리 능력을 벗어났다면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하여도 정상을 참작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 능력이 닿는 범위에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 유감이다. 그것 때문에 중도에서 그만두는, 변덕스러운 습관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염려되는 일이다. ***** 巽卦 ䷸ : 손위풍(巽爲風) 손(巽: ☴)상 손(巽: ☴)하 손(巽)은 조금 형통하니, 가는 것이 이로우며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巽,小亨,利有攸往,利見大人.) 구이는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으니, 사관(史官)과 무당을 쓰기를 많이 하면 길하고 허물이 없을 것이다.(九二,巽在牀下,用史巫紛若,吉,无咎.) 「상전」에서 말하였다:“자주 겸손하니 부끄러움”은 뜻이 궁한 것이다.(象曰,頻巽之吝,志窮也.) 상구는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서 물자와 도끼를 잃으니, 곧음에 흉하다./ 상구는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서 물자와 도끼를 잃으니, 곧더라도 흉하다.(上九,巽在牀下,喪其資斧,貞,凶.) [傳] 손괘(巽卦)는 「서괘전」에서 “나그네가 되어 받아들일 곳이 없기 때문에 손괘로 받았고 손(巽)이란 들어감이다”라고 했다. 나그네가 되어 친한 사람이 적으니 공손하고 유순하지 않으면 어디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진실로 공손하고 유순할 수 있다면 비록 곤궁한 나그네 일지라도 어디를 간들 들어갈 수 없겠는가? 손괘가 여괘(旅卦) 다음에 오는 까닭이다. 괘는 하나의 음이 두 양의 아래에 있어서 양에게 공손하고 유순하니, 이 때문에 손괘가 됐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당신은 숙녀입니다 - 안젤라 코스타(Angela Kosta) 숙녀 여러분, 연약한 순교자, 속삭임이 없는 잃어버린 길에서 돌아와, 더러운 삶에 필사적으로 울부짖고, 피눈물, 고통받는 영혼을 지닌 손톱 긁힌 몸; 숙녀 여러분, 일어나세요! 당신 안에 있는 "여신"을 부정하는 모든 것을 멀리하십시오. 인내와 폭력의 경계를 넘어 빛바랜 베일을 벗겨내세요. 어둠의 영원한 가면; 당신에게 합당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입술에 촉촉한 미소; 숙녀 여러분, 다시 살아가세요! 머리를 들어보세요 생명의 힘을 쥐고 주먹을 펴세요. 다시 피어 노래를 부르세요… 미소를 지으세요… 증오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려보세요. 숙녀 여러분! 당신은 훌륭해요 당신은 독특합니다 당신은 거룩해요.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요! YOU ARE A LADY... (By Angela Kosta) You ladies, A fragile martyr, Return from the lost path where there is no whisper, Desperate crying of dirty life, tears of blood, nail scratched bodies having distressed soul; You ladies, Rise! Stay away from everything that negates the "goddess" in you; Cross the border of patience and violence Tear off your faded veil. The dark eternal mask; Free yourself from people who don't deserve you, your moist smile on the lips; You ladies, Live again! Raise your heads Open fists holding the power of life; Bloom again to sing…. Smile…. Enjoy your freedom coming out of the prison of hatred. You ladies! You are great You are unique You are holy; Enjoy and live happily! ◆ 안젤라 코스타(Angela Kosta) = 1973년생으로 알바니아의 엘바산(Elbasan)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이탈리아와 모국인 알바니아에서 출판된 다양한 소설, 시집, 동화의 저자이다. 그녀는 1995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번역가, 시인, 작가, 홍보 담당자이자 Albania Press 신문의 부편집장이다. 그녀는 칼라브리아 라이브 신문 (Calabria Live Newspaper)에 기사를 쓰고, – 예술과 문화의 세계 국제 비월 잡지 "Le Muse"를 위해 이탈리아 시인들의시를 알바니아어로 번역하고, 이탈리아 알바니아 신문 "Le Radici-Roots"에서 이탈리아 역사가와 학자 및 알바니아 학자의 다양한 기사를 번역한다. – 국제 문학 잡지 "Saturno Magazine"에 글을 쓰고 있으며 알바니아 신문 "Gazeta Destinacioni", Alb – Spirit, Word, Approach과 잡지 "Orfeu – Pristina" 등에 기사와 시를 쓰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최근에 상담하였던 사건이다. 편의상 내용을 일부 각색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의뢰인은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허리를 다치게 되어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치료 이후 사고 부위인 허리는 이제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전신에 견딜 수 없는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어 여러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아보았다. 의뢰인은 예전 교통사고의 후유증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의사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계속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전신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일단 통증이 생기면 너무 고통스러워 서있을 수조차 없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의뢰인은 이러한 후유장애를 근거로 가해차량의 보험회사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은데 사건을 맡을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나는 사건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였고, 그 이유는 과거 교통사고와 현재 전신통증의 연관성, 즉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의뢰인은 과거 교통사고도 사실이고,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전신통증도 사실이며, 그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담당의도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였다. 문제는 소송절차에서 교통사고와 전신통증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다는 신체감정을 받는 부분이다. 신체감정을 통하여 인과관계에 대하여 인정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에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으로 보여 맡기 어렵다고 추가적으로 이야기 해 주었다. 의뢰인이 겪고 있는 후유장애인 전신통증을 의학적으로는 ‘신경병증성 통증’이라고 부르며, '통증을 지속시키는 기전이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의 체감각성 과정의 이상으로 기인된 어떤 종류의 급성 또는 만성병적 통증증후군'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 주요 증상은 ‘전신통증, 이로 인한 수면장애 및 정서장애, 우울증, 사회적응력 저하’이며, 그 병인으로는 ‘당뇨병, 영양 불균형, 알코올, 항암화학요법, 감염, 자가 면역, 신경외상 등’ 다양한 원인들이 환자별로 개별적으로 작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신체기관이라는 것은 유기적으로 연관된 것이기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다른 부분에도 충분히 이상이 생길수도 있다. 비록 의뢰인의 허리 부상은 완치되었지만 사고 과정에서 손상된 신경계가 치료 이후에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아 전신통증으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소송에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증거가 되지 않으며, 전문가의 견해를 담은 ‘신체감정서’가 증거로 쓰여 소송의 결과를 좌우한다. 그 중요한 ‘신체감정서’에 어떠한 내용이 담길지 확신할 수 없다. 허리 부상이라면, 허리에 통증이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허리를 다쳤는데 전신이 아프다고 하면, 이러한 인과과정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교통사고 이후 통증이 다른 부분으로 옮겨질 수 있고, 현재 그러한 통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은 교통사고 환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더라도 구체적인 사건에서 판결을 받기 위해서는 ‘신체감정서’가 필요하다. 실제 후유장애에 관하여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 상대방인 보험회사는 교통사고와 전신통증과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답변한다. 그러면 소송에서 원고가 된 의뢰인에게 입증책임이 생기며, 교통사고와 전신통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한 입증을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서 ‘신체감정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공정성을 위하여 법원에서는 치료한 병원을 감정기관으로 지정하지 않는다. 치료한 병원에서는 그동안 환자로서 형성된 관계가 있으니, 사실이 아님에도 교통사고와 전신통증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의뢰인이 담당의를 통하여 교통사고와 전신통증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신체감정을 맡아 감정서를 작성하는 의사는 다른 사람이기에 감정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 만약 의뢰인이 당뇨병이나 뇌경색 등의 다른 질병을 앓고 있다면 이러한 질병을 기왕증이라고 부르며, 이러한 기왕증이 호르몬이나 혈관 등에 영향을 주어 중추신경계나 말초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의뢰인이 후유장애라 생각하는 전신통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되어 감정에 불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법정에서 대기하다보면 다른 재판을 방청하게 되는데, 유사하게 후유증으로 인한 전신통증이 문제가 되는 재판에서 감정인으로 지정된 의사들이 재차 감정을 거절하여(아무래도 감정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피해자 측에서 입증이 어려워져 소송대리인이 재판부에게 입증의 곤란함을 호소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전신통증을 느낀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송을 제기하면 소멸시효의 문제도 숨어 있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다가 별다른 차도가 없다가, 주변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뒤늦게 소송을 준비하다 보면 3년의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당사자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일지라도, 그 사실이 재판에서 인정되는 것에는 생각지도 못한 난관들이 있다. /한동명 법무법인 더바로 변호사
◆ 손괘(巽卦) 손(巽)은 순종, 비천이다. 겸허는 필요하다. 그러나 과한 겸허는 순종, 비천하게 된다. 순종하는 게 있고 비천하게 되면 노예 성품이 생기게 된다. 창조성이 없어지며 성과를 이룰 수 없다. 포부가 없어지게 된다. 과도한 겸손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 겸허는 물론 좋다. 그러나 과도한 겸허는 나약함이다. 인생에서 여러 가지를 선택할 때 어떤 때에 겸허하여야 하고 어떨 때에는 선양하여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신축성 있게 대처하여야 한다. 힘들이지 않고 여유 있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 자신이 개인 직업 발전에 최고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겸손함이 상(牀) 아래에 있어서 물자와 도끼를 잃으니, 곧더라도 흉하다.” 무슨 말인가?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고 고분고분 하는 것이 극에 달하여 침대 아래까지 굽히면 생계를 도모해야 할 자본을 잃게 되고 강인한 본성을 잃게 되기에 결과적으로 흉험하다. 사람은 강한 면도 있고 약한 면도 있다. 강하고 부드러운 두 가지에 조화를 이루어야 인생의 큰길에서 어디에 가서 승리할 수 있다. 사람이 강한 일면을 일단 잃어버리면 나약하고 무능하게 변해 버린다. 과도한 겸손은 강한 성품을 잃게 되어 비굴하게 된다. 열등의식에 빠져버린다. 열등의식이란 자아를 너무 지나치게 부정하면서 생성된, 남보다 못함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정서적 체험이다. 자기의 능력, 학식, 품격 등 자신의 요소를 너무 낮게 평가하면서 나타난다.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이 연약하면 비교적 강한 자극을 견디어 내지 못한다. 너무 신중한 나머지 소심하게까지 된다. 늘 애수에 잠기고 감상적이어서 자주 의심하는 심리가 생겨난다. 행위가 위축되고 앞뒤를 너무 재어 우유부단하게 된다. 열등의식은 모든 연령에서 나타나고 다양한 신분에서도 나타난다. 재덕(才德)이 평범한 사람도 일생 중 ‘눈부신 성과’와 ‘뛰어난 점’이 도드라져 빛을 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왕왕 “속세를 달관”하거나 “속세의 덧없음을 깨닫는” 감탄을 쉽게 발하여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에 봄이 간다”1)와 같이 어찌할 수 없다는 심리를 표출한다. 심지어 비관적 실망을 인생의 기조로 삼기까지 한다. 전력을 다하여 분투해 사업에 성공하고 빛을 발했지만 이후에 ‘성공’이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걱정하여 앞길이 막연하고 ‘세상 모든 현상은 공허하다’는 애탄에 쉬이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겸허는 겁 많고 나약한 것과 같음표가 아니다. 심지어 겸허는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대할 때 하는 행위다. 겸허의 척도는 알맞게 파악하여야 한다. 모태동(毛澤東)이 말한 적이 있다. “지나친 겸허는 교만함과 같다.” 그렇지만 사실적으로 말하면 지나친 겸허는 나약함과 같다. 겸허의 품격은 자신의 성취에 대한 평가 위에 체현 되어야 한다. 자기 앞에 놓인 사람과 일에 대해서 겸허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겸허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공경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절은 있어야 한다. 자기의 재능을 믿고 남을 깔보지도 말고 자신을 멸시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겸허다! 어떻게 해야만 겸손이 지나치지도 않고 지극히 적당하게 할 수 있을까? 첫째, 공구를 적당하게 운용하자.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금강찬(金剛鑽)이 없으면 도자기 수리를 맡지 않는다.” 무슨 말인가?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없다면 함부로 일을 착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금강찬’을 구비한 후에야 인생의 길을 걸으면 좋은 상품이 잘 팔리듯 인기를 누릴 수 있다.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 얘기하면 된다. 허풍 떨지 말고 책임을 회피하지도 말자. 이런 관계가 시간의 검증을 가장 잘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러한 서로의 관계가 일단 형성되면 당신은 기쁘고 즐겁게 된다. 업무 효율과 업무 생산력도 시간에 따라 변할 것이고 하루하루 발전해 나갈 것이다. 둘째, 겸허한 태도를 보여주자. 상사가 당신을 과장하며 칭찬할 때 자신은 상사에게 배울 점이 아직도 많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동료가 당신을 찬양할 때면 성적을 내는 데에는 상대방의 협조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어야 한다. 부하가 당신을 봉찬할 때에는 좌우 양쪽 팔이 병립해 호응해야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발전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마음속으로 명확하게 알고 입으로 정확하게 표현하여 상대방에게 당신의 성실함을 알게 하여야 한다. 늘 당신의 겸허한 태도를 표현하라. 그러면 당신은 상사의 찬동, 동료의 감탄, 부하의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1) ‘낙화유수(落花流水)’,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이란 뜻이다. 가는 봄의 풍경을 묘사한 말이다. 뜻이 확대돼 힘이나 세력이 쇠퇴해가는 것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인다. 당나라 때 이군옥(李群玉)이 은사 진련사(秦煉師)가 잠공산(岑公山)으로 돌아가는 것을 송별하면서 쓴 시 「봉화장사인송진련사귀잠공산(奉和張舍人送秦煉師歸岑公山)」 마지막 구절 ‘낙화유수원리금(落花流水怨離襟 :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 떠나가는 게 원망스러워)’에서 유래하였다. 오대 때 남당(南唐) 이욱(李煜)의 사(詞) 「낭도사(浪淘沙)」에도 ‘유수낙화춘거야,천상인간(流水落花春去也,天上人間 : 흐르는 물 떨어지는 꽃에 봄이 가니 하늘의 인간 세계로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르네상스, 만물의 중심은 인간 우리 인류세의 한 점인 르네상스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 혁신적인 일로 보이면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우리 마음에는 늘 어떤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란 이탈리아어 리내시멘토(Rinasimento)라는 어원을 가진 말로 프랑스 역사가인 미슐레가 프랑스어 Renaissance라는 말로 확립시켰다.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생이라는 관념이 이탈리아에서 확실한 토대를 가지게 된 것은 지옷토(Giotto, 1266~1337) 시대의 일이었고 지옷토는 고대 그리스 로마 미술의 진정한 부활을 유도해낸 인물로 칭송됐다. 다시 말해 중세의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지역보다 낙후되었기 때문에 지옷토의 새로운 업적들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혁신으로 보였고, 예술에 있어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모든 것이 부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14세기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예술과 과학과 학문이 고전시대에 번창했었으나, 이 모든 것들이 거의 다 북쪽의 야만인들에 의해서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이 영광스러운 과거를 다시 부흥시켜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피렌체는 단테와 지옷토의 출생지이며 부유한 상업도시였기에 바로 이곳에서 15세기 초에 일단의 미술가들이 과거의 미술개념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E.H.곰브리치, 1999). 이와 같이 르네상스 운동은 이탈리아 피렌체가 그것의 근원지가 되었다. 이 운동은 과거의 노스탈쟈가 아니라 현재 현실의 절박한 과제로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피렌체 인문주의 정신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만물의 중심은 인간이다.”라는 것이었고, 신 중심의 중세의 가치와는 달리 인간이 역사와 사회의 주역이 되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단테와 지옷토는 인문주의의 기초를 놓았던 것이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중세의 긴장된 종교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 회복의 운동이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 hardt, 1818~1897)에 의하면, “중세에는 인간 의식의 양면(兩面)이 있었는데, 바깥 세계를 향한 의식과 인간 내면을 향한 의식, 이 두 가지가 안팎으로 베일을 쓰고 꿈을 꾸거나 반쯤 깨어난 상태로 신앙과 어린애 같은 집착과 망상으로 짜여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바라본 세계와 역사는 기묘한 색채를 띠었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종ㆍ민족ㆍ당파ㆍ 단체ㆍ가족 따위의 보편적인 범주로만 이해하였다.” 14세기 초부터 유럽은 온갖 종류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여러 차례의 기근은 사람들을 약하고 병들게 만들었고,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엄청난 인구가 죽어나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전쟁 또한 잇따라 일어나 행정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시민들은 가중된 세금과 군인들의 약탈을 견뎌내야 했다. 사회적 상황이 극에 달하다보니 경제 성장은 곤두박질치고, 경제적 타격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농촌의 농민들에게 전가되었다. 농민들은 농토를 영주들에게 뺏기듯 팔고는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이루고자 했으나 거기에서 마주친 것은 오로지 빈곤과 고생뿐이었다. 결과는 모든 게 사회적 혼란으로 되돌아왔으며, 이런 현상은 전체 유럽 전역에 되풀이해서 나타났다. 13세기 유럽을 특징 지었던 통일성은 사라졌으며, 제국과 교회는 모두 분열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륙의 이 시기를 그저 파괴와 쇠퇴의 과정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 13~14세기 두 세기의 걸친 봉건적 분열은 왕권국가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이로부터 다른 유형의 행정체계가 서서히 발전해 나갔다. 유럽의 번영이 점점 회복되어 상업과 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맞이했다. 1378년 프랑스 아비뇽에 새 교황청이 생기고, 또 로마에 교황청이 생기면서 두 명의 교황이 탄생하는 교회의 대분열(1296년~1417년)을 맞았지만 교회의 통일성이 회복되면서 다시 제자리를 차지하면서 종교생활과 관계된 새로운 표현양식들도 발달하게 되었다. 바자리의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에는 르네상스 시대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브루넬레스키, 마사초, 도나텔로 등 세 명의 예술가가 있는데 젊은 예술가의 지도자는 필립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였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적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가 만든 주요 작품은 모두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으며, 르네상스 건축의 창시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미술의 조형적 영역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은 브루넬레스키가 발견하고 알베르티가 체계적으로 이론화했다. 이 원근법은 그 후로부터 600년 가까이 오늘날까지도 서양미술에서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원근법과 환영주의 “Perspectiva라는 말은 라틴어로서, ‘통해서 봄(透視, Durchsehung)’이라는 의미이다.” 알프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의 개념을 독일어로 처음 의역하고 있으며, 완벽한 원근법과 인체비례를 처음으로 북유럽에 들여온 이도 바로 뒤러였다. 그런데 이 라틴어는 보에티우스(Boethius)에게도 나타난다. 뒤러는 말한다. “눈은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각이다.”라고. 미술사학자 어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 1892~1968)는 투시법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투시법은 인간과 사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게 한다. 그러나 인간과 맞서고 있는 이 자립적인 세계를 인간의 눈으로 끌어옴으로써 인간과 사물의 거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파노프스키는 이 투시법을 화가가 자신을 들러싼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론적 행위로 이해하고 있는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이 사실적인 그림이 아니라 그것은 인위적으로, 또는 수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재현한 그림으로 인식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시기에 들어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 세계에 대해 거리를 두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그것을 자신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재현하려는 시도로 만들어 낸 것이 투시원근법이라는 사실이다. 레오나르다빈치는 원근법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선 원근법(線遠近法, perspective liniale):눈으로 볼 때 물체가 작아지는 크기를 다룬다. 색채원근법(色彩遠近法, perspective di colore):눈에서 멀어지면서 색이 변화하는(감퇴하는) 방식을 다룬다. 소멸원근법(消滅遠近法, perspective speditione):물체가 거리에 비례하여 덜 완성된 것(외곽선의 명확성으로 떨어져 보이는 것)을 다룬다. “회화에서의 으뜸은 물체가 튀어나오듯 보여야 하고 그 물체를 둘러싼 상이한 거리에 있는 바탕이 그림의 전경과 수직면상에 있듯이 보여야 한다.” “선 원근법은 눈의 구조에 의한 것이고, 색채원근법과 소멸원근법은 눈과 눈에 보이는 물체 간의 거리 사이에 존재하는 대기(大氣:공기)에 의한 것이다“라고 다빈치는 말한다. 사실 투시도법(선 원근법)은 3차원의 대상물을 평면에 그리고 입체효과와 원근감을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기하학적 원근화법이다. 즉 소실점(vanishing point)의 기하학적 의미를 명확히 포착하는 기법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의하여 1410년경에 발견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원근법에 있어서 우리가 마사초((Masaccio, 1401 ~ 1428)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가 그린 <성 삼위일체>가 처음 원근법을 이용하여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낸 프레스코 벽화로써 환영주의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스물일곱 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성 삼위일체> 그림을 보면 십자가의 예수를 중심으로 위에는 하나님이, 좌우로는 왼쪽에 성모마리아, 오른쪽에 사도 요한이 있고, 아치 문 입구 좌우로 주문한 가문의 부부가 서 있는 모습이다. 천정은 원근법을 이용하여 공간의 환영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두운 하단에는 석관 위에 해골의 시신이 누워 있고, 바로 그 위로 작은 글씨가 씌여있다. “나도 한 때는 그대였고, 그대 또한 내가 될 것이다.” 곧 당신도 나와 같이 죽어서 이런 해골의 모습이 될 것이다. 라는 경구이다. 미켈란젤로 제자이자 건축가이며 화가였던 지오르지오 바자리(Georgio Vasari, 1511~1574)는 브루넬레스키에 대해 말한다. “옛날 피렌체에는 명성이 자자하고 근면한 생활을 즐기던 사람이 있었다. (……) 피렌체의 건축가 겸 조각가 필립포 브루넬레스키는 원근법에 대해서도 열심히 연구하였다. 그 당시 원근법은 사람들에게 잘못 이해되고 있었으며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그는 이 원근법을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한 끝에 투시도의 기본 지평선(地平線)과 표고(標高) 등의 교차선을 사용하였다. 이 천재적인 발견은 데생 기술의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앞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회화에서의 으뜸은 물체가 튀어나오듯 보여야 한다"는 이론은 원근법을 극대화한 효과를 말하는 것이다. 서양미술에서 환영주의(幻影主義)라고 하는 것은 바로 비례의 정확성과 생생한 사실성에 기반을 둔 그림을 말하는 것이다. 환영주의의 시초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 탄생한 원근법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화면이 2차원이라면 거기에 입체적인 형태를 그려 3차원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의 사물인양 착각하게 만드는 미술의 기법을 가르쳐 환영주의라고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하게 된 원근법의 영향으로 거리감과 형태를 3차원으로 표현함으로써 19세기까지 줄곧 대세를 이루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우리는 눈앞의 현실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미술에 매우 익숙해 있다. 1861년 구스타프 쿠르베는 사실주의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 “무릇 회화란 본질적으로 구체적인 예술이며, 실재하는 현실을 표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회화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을 단어로 삼는 물리적인 언어이다.” 사실주의 화가들은 현실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형상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자세하고 촘촘하게 생동감 있도록 묘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라파엘로나 다빈치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이런 사실적인 그림이라도 결국 2차원의 평면에다가 실재의 세계처럼 눈속임에 불과한 그림인 것이다. 환영주의란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짜 현실세계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환영(幻影)’을 준다는 의미에서 환영주의(illusionism)라고 부른 것이다. 그림에 대한 환영주의의 이론적 기원은 르네상스시대 원근법 옹호자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그림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창(窓)이라는 생각을 처음 암시한 사람은 L. B.알베르티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러한 생각에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했다. “원근법이란 아주 투명한 유리창 뒤에 서서 보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유리창 표면에는 유리 뒤에 위는 물체들이 그려지게 될 것이다.” 서양미술의 전통은 20세기 현대미술이 도래하기까지 이 환영주의가 화면을 지배했다. 원근법에 기반을 둔 이 환영주의 미술은 19세기가 되면 초상화의 대체 수단으로써 마침내 화가들의 새로운 시도인 사진술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김정숙, 『연표로 읽는 서양미술사』, 현암사, 2021.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노트북』, 장 폴 리히터 편집, 루비박스, 2015,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강대진 옮김, 아카넷, 2012. B.크로체, 『사고로서의 역사 행동으로서의 역사』, 최윤오 옮김, 새문사, 2013.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고봉만 옮김, 한길사, 2013. 박정자, 『마네 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 조각』, 기파랑, 2014. 스테파노 추피, 『신과 인간 르네상스 미술』, 하지은 외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1. 신준형,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 사회평론, 2015. E.H.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백승길외, 예경, 1999. E.H.곰브리치. 『예술과 환영-회화적 재현의 시리학적 연구』, 차미례 옮김, 열화당, 2003. E.H.카, 『역사란 무엇인가』, 김택현 옮김, 까치, 2015. 알베르티, 『회화론』, 김보경 옮김, 에크리, 2020.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이기숙 옮김, 한길사, 2003. 에르빈 파노프스키,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b. 2014. 위르겐 카우베, 『모든 시작의 역사』, 안인희 옮김, 김영사, 2019. 이언 자체크 책임편집, 『미술사연대기』, 이기수 옮김, 마로니에북스, 2019. 이상현,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 삼화, 2017. 지오르지오 바자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 李根培 譯, 한명, 2000. G.G.콜링우드, 『서양사학사』, 김봉호 옮김, 탐구당, 2017. 프레데리크 들루슈 편, 『새 유럽의 역사』, 윤승준 역, 까치, 2009.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바다는 꿈꾸고 있네 - 첸밍커(陳明克, Ming-Keh Chen) 바다는 꿈을 꾸고 있다 짙은 구름 틈으로 비스듬히 햇빛이 내리네 잠든 바다 위에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곳에서 한 줄기 빛이 깜박이고 있네 오! 바다가 눈을 깜박이네 물이 모이는 바다 하지만 꿈은 그것은 이슬방울이지 풀 끝으로 떨어지는 모든 동물과 식물들도 바다의 꿈을 꾸지 그들 사이에 전쟁이 없는 것은 당연해 하지만 나는 인간이어서 이슬방울 속에서 일어서는 것을 꿈꾸지 잔디 끝에서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네 내가 또 누구를 찾을 수 있는지 The Sea is Dreaming (By Ming-Keh Chen) From the gaps of dense clouds the slanted sunlight falls upon the sleeping sea Where the sea meets the sky a beam of light is flickering Oh! The sea is blinking The sea has gathered so much water but dreams it is a dewdrop falling to the tip of a grass All animals and plants Also dream the sea’s dream No wonder no war is amongst them But I, a human being Dream I stand up from a dewdrop On the tip of a grass And look around Whom else I can find 海的夢 - 첸밍커(陳明克, Ming-Keh Chen) 密佈的烏雲縫隙 陽光斜斜落向 熟睡的海 海天相接處 一道光 忽亮忽暗 海眨著眼睛啊 匯集眾水的海 竟夢見 它是一顆露珠 飄落到草尖 所有動植物 也都夢見海的夢 難怪牠們沒有戰爭 做為人的我 卻夢見從草尖的露珠 站起來 張望 還有誰? ◆ 첸밍커(陳明克) = 1986년 칭화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87년에 그는 ‘립시(笠詩)’문학단체에 가입했다. 현재 그는 ‘립시(笠詩)’문학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12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1권의 시선집, 2권의 이중 언어 시집(중국어-영어 1권, 중국어-스페인어 1권), 중단편소설집 2권이 있다. 8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은유적이며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간통죄는 2015년 2월 26일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라졌다. 간통행위를 국가가 개입하여 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야 할 것이지 형벌을 통하여 강제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호는 형법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하여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나, 어찌 됐든 위 결정 이후에는 상대 배우자의 보호에 관하여는 민사소송에 그 해결이 맡겨져 있다. 외도문제를 민사소송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책 배우자 또는 외도 상대방(상간녀 혹은 상간남)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다. 외도 상대방에게 소를 제기한 경우 상대방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상대방이 결혼한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불법행위의 고의가 없었다(자신은 불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남의 기간이 짧고 횟수가 적으며, 유책 배우자와의 공동으로 한 점을 고려하면 원고가 청구하는 위자료 액수는 과다하다는 주장이다. 전자라면 결혼 사실을 알 수밖에 없었다는 전후 사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야 할 것이고, 후자라면 유책 배우자와 상간 상대방의 만남의 기간과 횟수가 잦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만남의 기간과 횟수를 입증하기 위한 중요 증거 중 하나는 통신기록이다. 그간 통신사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통신기록을 제출을 거부하여 입증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지난 7월 17일 대법원은 통신사가 법원의 문서제출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결하여 향후 유책 배우자와 외도 상대방 사이의 통신기록을 조회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 인용되는 위자료 액수를 고려하면 민사소송으로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호가 충분한지에 관하여는 의문이다. 위자료는 통상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사이로 형성된다. 최근 이혼소송에서 유책 배우자가 위자료 2억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되긴 하였으나, 상당히 이례적인 판단이고 통상 3000만 원을 초과하기 어렵다. 배우자의 불륜으로 인해 얻은 정신적 충격은 평생의 상처가 되는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더 나아가서는 외도 상대방에게 면책권을 부여해주는 꼴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배우자 상간의 사법적 해결방법이 손해배상청구가 유일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위자료 액수를 상당 부분 증액할 필요가 있다. ☞김대현은? = 제주도 감사위원회, 법무법인 현답에서 근무하다 제주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호사협회 대의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헌법재판소 국선대리인, 제주지방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 중이다.
“고향을 염려하지만 고향만을 지키지 않는다. 감히 뛰어들며 나아갈지 물러설지를 안다. 자신은 하지만 자만하지는 않는다. 이익을 중시하지만 재물만을 지키지는 않는다.” 이런 정신으로 온주인은 중국에서, 세계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밖으로 나아가’는 전략을 세웠다. 온주의 민간자본으로 ‘금지하지만 않으면 한다’1)는 다중 증식 형식을 형성시켰다. 온주 사람이 나가고, 온주 상품이 나가고, 온주 브랜드가 나가고, 온주 시장이 나가고, 온주 기업이 나가고, 온주 자본이 나가는 등 다양하면서도 생동적인 나가는 이상적인 경관을 창출하였다. 온주 사람은 어떤 것이나 다 생각하고 어떤 것이나 다 한다. 작은 것은 단추 구멍, 신발과 모자, 안경, 상표에서 큰 것은 복장, 가정용 전기기구, 물류센터까지 사람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업무라면 모두 고생을 감내하는 온수 사람들의 그림자가 있다. “작은 상품, 큰 시장, 소규모, 큰 협력, 작은 기계, 큰 동력, 작은 사람, 큰 기백” 온주 유형은 온주 사람 특유의 지극히 강한 치부 욕망과 창업 정신이 결합해, 감히 생각하고 감히 행동하는 온주 사람을 평범한 사회에서 뛰쳐나오게 했다. 온주 특색의 발전해 나가는 길을 개척하였다. 온주의 신발 제조 기업, 의류 기업, 안경 생산 기업, 라이터 공장 등, 유시(柳市)의 저압 전기기구, 금향(金鄕)의 배지 휘장, 용항(龍港)의 인쇄, 영계(靈溪)의 포장 등 사람들의 눈에 차지 않는 것들을 온주 사람은 중국 제일, 아니 세계 제일로 만들어 냈다. 이것은 바로 ‘작은 상품, 큰 시장’의 승리다. 온주의 기업은 온주, 절강, 중국 시장을 뛰어넘어 모든 국제시장으로 시야를 넓혔다. 온주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저 중국 내 어떤 지역 시장만을 자신의 경영 대상으로 삼는다면 4000여 신발공장, 3000여 의류 기업은 생존할 수도 발전할 수도 없다는 것을. 온주 사람들이 자신의 발전 경험을 이야기할 때 다음과 같이 개괄하였다. “천산만수(千山萬水)를 돌아다녔고 천신만고(千辛萬苦)를 겪었으며 천방백계(千方百計)를 생각하였고 천가만호(千家萬戶)를 걸어 들어갔다.” 여기에서 ‘천산만수’와 ‘천가만호’는 실제로 시장 반경을 가리키는 것이고 온주 사람이 ‘돌아다녔고’, ‘걸어 들어갔다’는 말은 시장에 다가가고 끊임없이 시장을 개척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16세 때에 조지 워싱턴은 집을 나서 스스로 세상을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버지니아 서부로 가는 탐험대 중 측량원의 학도가 됐다. 1년 후에 버지니아 컬페퍼 카운티를 측량하였다. 1753년, 21세 조지 워싱턴은 버지니아 당국에서 서부 펜실베이니아로 파견되었다. 프랑스 정부가 오하이오 주에서 손을 떼도록 요청하는 일이었다. 이런 경험을 탐험일기 『조지 워싱턴 소령 일기』를 발표하였다. 이 일기를 빌어 조지 워싱턴의 대담, 지혜, 책략 등 명성이 식민지 지역과 유럽에 알려지게 됐다. 조지 워싱턴이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눈앞에 있는 대지만 마음속에 두고 단조로운 분위기와 사유 중에 자신을 가둬서 여가가 없어 나가지 못하는 것에서 나가려 하지 않는 것으로, 다시 나갈 수 없는 것으로 변하면 결국 어떤 발전성도 없게 된다. 밖으로 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광활한 대지로 뛰쳐나간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그러나 발전하고 싶거들랑 성공하고 싶거들랑 반드시 밖으로 나가라. 바깥세상을 받아들이라. 자기 사상과 세상을 합성해 보라. 그러면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旅卦 ䷷ : 화산려(火山旅) 리(離: ☲)상 간(艮: ☶)하 초육은 나그네가 자잘하니[쇄쇄( )], 이는 그 재앙을 취함이다.(初六,旅瑣瑣,斯其所取災.) 구사는 나그네가 거처하고 물자(物資)와 도끼를 얻으나 내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九四,旅于處,得其資斧,我心不快.) [傳] 려괘(旅卦䷷)는 「서괘전」에 “풍(豊)은 큼이니, 큼을 다 한 자는 반드시 거처를 잃는다. 그러므로 려괘로써 받았다”라고 했다. 풍성함이 궁극에 이르면 반드시 편안한 바를 잃으니, 려괘가 이 때문에 풍괘(豊卦)의 다음이다. 괘가 리괘(☲)가 위에 있고 간괘(☶)가 아래에 있으니, 산[山]은 멈추어 옮기지 않고 불[火]은 행하여 머물지 아니하니, 떠나가서 거처하지 않는 상이다. 그러므로 나그네가 되고, 또 밖에 걸려 있으니, 또한 나그네의 상이다. 1) 법률, 행정 법규로 금지 하지 않은 기업 혹은 개인 경영의 업종과 항목에 그 경영을 허락하는 것을 말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법률상담을 위해 찾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하지도 못하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연을 자주 접하게 된다. 당사자는 그 과정에서 느꼈을 억울함과 황망함을 끝없이 쏟아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대한 도움을 드리려 하지만, 정작 그런 사실관계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상당하다. 우리 모두 당장 축의금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금이 없어 급하게 빌린다거나, 지인 물건을 잠깐 빌려 썼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사소한 일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모두 법률행위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자질구레한 법률행위까지 모두 계약서, 각서, 차용증 등의 문서를 써야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굳이 문서로 그 내용을 남기기 애매한 일상적인 법률행위의 범위는 모든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상대방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런 사실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차용증을 쓰자’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여 찜찜한 마음으로 돈을 빌려줬다면, 말을 꺼내지 못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도움을 드리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나 못 믿어?’, ‘우리 사이에 그런게 필요해?’, ‘일단 급하니깐 나중에’라며 문서 작성을 회피하면서 일단 먼저 빌려달라고 하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 사실, 빌린 돈을 제때 갚을 사람이라면, 차용증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차용증 작성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돈을 제때 갚을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이라는 추상적인 이유로, 차용증 작성을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에게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빌려준 돈이 얼마인지, 언제까지 그 돈을 갚을지를 표시한 문자메시지 또는 카카오톡이라도 남겨놓을 필요가 있다. 통화내용을 녹음하는 것도 좋다. 가장 흔한 대여금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했지만, 금전 대여가 아니더라도 계약서는 당연히 필요하다. 일을 며칠 도와주면 수고비로 얼마를 지급하겠다거나, 물건을 빌려 쓰고 돌려줄 때를 정하는 경우 등, 정확하게 정해두어야 하는 사항이 있다면 반드시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정해졌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세상이 팍팍하니 사람을 믿지 말고, 모든 것을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당사자 간에 발생할지 모를 분쟁을 예방하고, 신속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겉과 다른 속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장치가 당사자 모두를 보호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계약서가 있더라도 억지를 쓰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과 엮였다면, 어쩔 수 없이 소송을 통하여 내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밖에 없다. 소송과정에서, 계약서는 아주 든든한 내 무기이자 방패가 된다. 제대로 작성된 계약서만 있다면,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로부터 어떤 손해가 발생했는지를 증명하는 것은, 아주 수월하다.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가장 필요하고 효과적인 증거다. 이런 계약서를 굳이 필요없다며, 쓰지 말자는 사람은 다른 꿍꿍이가 있음이 분명하다. 항상 조심해서 속상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자. ☞이용혁은? =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변호사. 변호사시험 합격 후 제주도청 특별자치법무담당관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제주지방법원 사거리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협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제주지방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제주도 지방노동위원회, 제주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의 국선변호인/국선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공익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지검 청원심의회 등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도민로스쿨 특별강연과 제주도 공무원을 위한 특강에도 힘쓰며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노력 중이다.
◆ 여괘(旅卦) 여(旅)는 외출하다, 집을 떠난다는 뜻이다. 자신이 아직 성숙하지 않았을 때 밖에 나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아를 연마하면서 점차 성숙해 진다. 기술이 낙후됐으면서 밖에 나갔거들랑 돌아오시라. 선진 경험을 얻어 자신을 위하여 쓰라. 시계, 식견이 넓지 않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오늘 날 세계는 개방의 시대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세상을 보고 기량을 닦아야 한다. 현상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낡은 것을 답습하는 전통 관념을 없애야 한다. 시장 관념과 치부(致富) 의식을 수립하여야 한다.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용감하게 뛰쳐나가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나그네가 거처하고 물자(物資)와 도끼를 얻으나 내 마음이 유쾌하지 않다.” 무슨 말인가? 몸이 타향에 있기에 잠시 외지에 머무니 안거할 수 없다. 자기를 발전시키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다.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낡은 자동차가 임시로 길가에 서있다. 먼지가 두텁게 쌓여 있다. 차에 탄 사람들이 초췌한 기색으로 멍하니 앞을 보고 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멀리 떠나는 것인가? 그런데 귀가(歸家)하나 원행(遠行)을 하나 기본적으로는 사실은 하나다 : 그들은 길 위에 있다는 것이다. 귀가한다면 그들은 이전에 집을 떠나 원행했었다는 것을 말한다. 원행은 집을 떠났다는 말이 된다. 밖에는 광대무변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간난신고가 가득하다. 위험이 충만하다. 그러면서도 다채롭고 자극적이다. 외면의 세계는 시야를 넓혀준다. 자신을 키우고 발전시킨다. 바깥세상은 늘 집을 떠나 멀리 떠나도록 유혹한다. 사람은 세계를 떠돌아다니면서 생명의 쾌감을 얻는다. 억누를 수 없는 허영심을 만족시킨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늘 외친다 : 가자, 나가자! 어쩔 수 없기에 집을 떠난다. 집이 그를 받아들일 수 없거나 그가 집을 받아들일 수 없을 때에 떠난다. 그의 마음이나 몸이 짓눌렸거나, 몸과 마음이 억압을 받았거나, 떠날 수밖에 없었기에 떠난다. 멀리멀리 떠나간다. 그렇기에 인류에게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집에서 뛰쳐나가 동행이 되어, 고된 여정을 겪고 지치고 초췌해졌던 이야기가 생기지 않았던가. 사람의 눈에는, 마음속에는 늘 앞쪽이 있다. 앞쪽 상황이 불명확하다. 안개 속의 달처럼 몽롱하고 물속의 부스러기처럼 가물거린다. 그런 불확정성이 오히려 앞쪽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조장한다. 앞쪽은 사람을 흥분시킨다. 행동하게 만든다. 취한 듯 홀린 듯한 상태로 빠져들게 만든다. 창망한 앞쪽에서 자신에게 앞으로 오라는 종소리와 마음을 격동시키는 북소리를 들려오는 듯, 사람들은 피곤함도 모르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세상에는 길이 생긴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더 먼 곳까지 가기 위하여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든다. 그렇기에 앞서 말한 낡은 자동차도 길가에 서있는 것이다. 길은 집과 연결돼 있다. 사람들은 길을 빌어 앞쪽으로 나아가며 유랑한다. 예부터 인류는 유랑하기를 좋아하였다. 당연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유랑한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유량은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고 운명이기도 하다. 운명은 사람을 길 위에 세워놓는다. 사람들은 한 평생 집밖을 나서보지 않았거나 먼 길을 떠나보지 않았더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돌아갈 집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도 끝도 없는 길 위에 있다. 넓은 들판은 망망하다. 사방이 텅 비어 있다. 눈앞과 마음속에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길만 놓여있다. 노신은 얘기한 적이 있다.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어렵고 없는 것이라 얘기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희망만 가지고 있다. 노력하지 않고 추구하지 않으면 그 희망은 ‘원래부터 있다고 얘기가 어렵다.’ 희망이 있으면 그 희망을 위하여 게을리 하지 않고 분투하면 그 희망은 ‘없는 것이라 얘기하기도 어렵다.’ 희망을 향하여 쫓으면 새로운 생활이 다가온다. 우리 인생길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게 간난신고다. 간난신고의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경험이 생긴다. 지혜가 쌓인다. 방향이 보인다. 자기 개척의 길이 열린다. 『주역』은 말한다. “나그네가 자잘하니, 이는 그 재앙을 취함이다.” 무슨 말인가? 길 위에서 심할 정도로 쩨쩨하고 옹졸한 것은 자신이 부른 재앙이다. 그렇기에 인생의 길에서는 절대 쩨쩨하거나 옹졸하지 말아야 한다. 바른 길을 걸어야 한다. 올바르게 서야 한다. 공명정대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한다. 감히 나아가고 감히 뛰어들고 감히 견뎌내야 한다. 나아갈 수 있어야 발전이 있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어야 세상의 앞 열에 설 수 있다. 이 방면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온주(溫州) 사람일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온주 사람은 장사를 잘한다고 알고 있다. 산을 끼고 바다에 연해있어 개방적인 정신, 모험적인 정신을 가지게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온주 사람은 고생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시장이 있는 곳에는 온주 사람이 있다. 시장이 없는 곳에는 온주 사람이 나타난다. 감히 밖으로 나아가는 것은 온주 상인이 성공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온주 사람들은 자랑삼아 말한다. “공기가 통하는 곳이라면 발전을 추구하는 온주 사람의 그림자가 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