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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신개념 웹연재소설] 옛 우표첩(21)

15 이길영 목사가 오빠 방에서 나가고 다시 혼자 남았다. 졸립다. 눕고 싶다. 몸을 뉘면서 베개로 삼을 것을 찾았다. 방바닥에 두꺼운 한자사전이 놓여있다. 이것을 베고 눕는다. 책들은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앉은뱅이책상 위에 펜과 잉크병 외에 책은 없다. 아직도 잉크를 찍어 쓰고 있구나 생각하며 문득 오빠의 베개가 이 사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방에 이불이 없다. 이불을 다른 방에 넣어두고 사는 것일까. 작은 방이기에 드는 상상이다. 이불을 놓을 만한 공간이 없다. 오빠의 방은 의사놀이를 하며 오빠 앞에서 누웠던 어릴 적을 떠오르게 한다. 과거는 졸립다. 아득하고 아련한 과거를 되새기는 일은 아늑한 기분에 빠져들게 한다. 환상 같기도 하다. 내 몸은 오빠 앞에서 다 벗겨져 있었다.

 

“넌 부끄럽지도 않니?”

 

붉게 상기된 오빠가 물었다. 내 몸에 닿은 오빠의 손이 따뜻한 물로 씻은 손을 방금 닦은 것처럼 촉촉했다.

 

“아니. 왜?”

 

오빠가 진짜 의사 같기도 했지만 오빠가 의사가 아니어도 부끄러울 게 없었다. 부끄러움을 느낀 때는 한참 지나 중학생이 되어서 였다.

 

“넌, 어째 여자애가 그러냐? 정말 아무렇지도 않단 말이니?”

 

오빠가 내 가슴을 만지며 말했다. 진찰로 알았지만 더듬은 것일 거라는 걸 느낀 때도 그 중학생 무렵이었다.

 

“응. 오빤 어떤데?”

 

약을 갖고 올 거라고 말하며 방을 나가면서 옷을 입으라고 했다.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벗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오빠 방에서 난 다시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 꿈인가. 어릴 적 그 때인가. 눈을 부비며 일어나려하자,

 

“제주도에서의 일은 다 마치고 왔니?”

 

꿈도 아니고 어릴 적도 아니다. 지금이다. 나는 일어나 오빠를 와락 안았다. 한참 안았다.

 

“미국사람이 다 됐구나. 않던 버릇이 생겼네.”

 

오빠의 이 말은 틀렸다. 나는 악수도 절대 먼저 못하는, 아니 안 하는 사람이다. 하물며 포옹은. 어렸을 적부터 우리 남매는 서로의 안부 따위는 묻지 않았다. 잘 지내니? 어떻게 지내니? 묻기 전에 우린 서로 이미 잘 지내고 있다는 가정 하에서 길들여져 있었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왜 왔니?”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를 잘 알고 있지만 나는 13년 만에 만난 여동생에게 용무로 첫 인사를 하는 오빠에게 짜증이 나고 미웠다. 오빠는 전과 달라진 게 없는 듯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짜증나고 밉지만 13년과 똑같이 오빠처럼 대응하지 않도록 달리 길들여져 있었다. 이것은 바뀐 것일 게고, 달라진 것일 게다.

 

“오빠가 보고 싶어서 왔지.”

 

세미나 따위로 답할 것이라고 기대했는지, 아님 보고 싶다는 여동생이 그저 반가워서였는지, 오빠도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이제 오니? 그 긴 동안 보고 싶지도 않았니?”

 

오빠가 이제 나를 안는데 이내 흐느끼는 듯했다. 말을 않고 오빠의 가슴에 안겨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오빠도 보고 싶었구나. 오빠를 꼭 안았다. 의사놀이 때 잠깐 잠이 든 나를 안아주던 따뜻한 오빠의 가슴이 다시 느껴진다.

 

“옷 입고 있으라니까 뭐 하고 있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잠이 들 수가 있니? 어서 일어나.”

 

나는 오빠의 품에 안겨 일으켜지면서,

 

“엄마 오기 전까지 더 좀 자면 안 돼?”

 

내겐 참으로 편한 잠이었다. 하지만 그 후 오빠에겐 괴로운 의사놀이였다. 같은 경험이라도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그 기억은 과거를 통제한다. 통제된 과거는 미래를 억압하며 장악하기도 한다. 과거가 미래까지 관리한다.

 

오빠가 내가 보고 펼쳐놓은 우표첩을 책장에 바로 꽂으며,

 

“내 과거는 상실돼가고 있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오빠는 과거를 지우려하고 있고 나는 되돌리고자 한다. 오빠의 과거란 말에 셀마가 떠올랐다.

 

“산타페에 꼭 갈 것이다. 그 때 또 보자.”

 

약속하고 헤어진 셀마다. 그녀를 떠올렸다기보다는 그의 가족을 생각나게 했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엄마 헬레나의 몸 속에 있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딸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기억하지 못하는 딸은 순전히 여자의 몸에서 여자 혼자의 힘으로 잉태되고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처럼. 남자는 자연의 질서에선 철저히 배제되었다. 인간의 역사에서만 강했다. 그 안에서의 영웅일 뿐이다. 불현듯 아빠의 안부가 궁금하다.

 

“아빠는 어디서 사셔? 참, 오빤 아직도 결혼 안 했어?”

 

내게 엄마의 그림자로 기억되는 아빠. 셀마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그녀는 그의 부모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했다. 이기적이란 말은 무책임으로 들렸다. 대의에 소의를 무시해도 되는 인간이 남자다. 그 대의도 남자만의 것일 뿐이다. 남자가 저질러놓은 일을 여자가 추스른다. 셀마의 엄마가 그랬고 아마 마리아도 그랬을 것이다. 셀마가 그랬다.

 

“한국도 미국도 내겐 중요하지 않다. 내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들의 사랑으로 가족의 구성원 속에 나를 넣어두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밉다.”

 

나는 알량한 이해심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옹호했다.

 

“어찌 네 아버지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했겠느냐. 네 아버지도 뜻하지 않은, 억울한 죽임을 당했다. 1948년 제주인들이 그랬듯이, 1980년 전라도인들이 그렇게 당했듯이.”

 

그녀는 생각이 다르다고 했다.

 

“아버지의 제주도며 엄마의 남자다. 나에겐 평생 아버지를 잊지 못한 엄마만을 기억한다. 그것 역시 엄마의 사랑이다. 난 무엇으로,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혼자 이런 질문을 많이 하며 청년기를 보냈다. 그 질문의 대답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나의 부모, 그들의 사랑이 나인 것은 아니다. 나를 그들 사랑의 결과라고 하지만, 그들의 사랑에 나는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가 결코 그립지 않다. 보지도 못했는데 그리울 수 있겠는가. 단지 아버지를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하며 부르고 싶었다. 한번만이라도. 그래서 제주도에 왔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버지 고향에도 없었다. 이제 아버지가 가엾다. 죽어서도 고향을 찾지 못하는 아버지가 가엾다. 그 한을 이해하니 아버지가 밉기보다는 가엾다. 이런 아버지가 더 보고 싶어져 제주도에 더 오래 머물 수가 없다. 아버지처럼, 엄마처럼 나도 제주도를 바다 건너 바라보는 섬으로, 떠나 밖에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너희 나라 한국은 참으로 슬픔의 나라다. 나도 그 반절을 안고 태어나서인지 내 핏속에는 한이란 게 남아있는 것 같다. 내게 가족이란 것은 한이다. 미워할 수 없는 한, 그렇다고 사랑할 수도 없는 한이다.”

 

내게 가족은 무엇인가, 자문하게 한 셀마가 미국으로 돌아간다면서 인천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한라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제주도는 확실히 섬이더라. 한라산에 오르기 전, 제주도는 다른 육지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한라산에 오르니, 그러니까 안에 있으면서 볼 수 없는 것을 좀 더 떨어져 멀리서 보니 그 정체를 알게 됐다. 나는 내 고향이 미국인 줄만 알았다. 한국도 내 고향이란 것을 이번 여행에서 깨우치고 돌아간다. 그런 중에 너를 만나서 정말 반갑다. 너로 인해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한국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 귀희에게 고맙다는 말은 꼭 하고 한국을 떠나야할 것 같아 전화했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널 또 만나고 싶다. 우린 미국에서 살지만 한국인이지 않느냐.”

 

오빠는 엄마가 죽고 그 이후 아빠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빠는 매우 신경질적인 말투로 변했다.

 

“각자의 삶들이 있는 거야. 똑같은 삶은 있을 수 없어. 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네가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아빠도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실 거다. 엄마도 역시.”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는 오빠는 왜 내내 내 앞에서 우는 걸까. 오빠는 신음하듯 울어댔다. 그 신음은 정신치료를 받는 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학적인 울음에서 나온다. 환자에게 하듯 오빠를 안았다.

 

“오빠. 엄마가 정말 암으로 돌아가셨어?” 14편으로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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