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오빠, 그래서 엄마의 무덤을 따로 마련해드리지 못한 거야?”
나는 오빠에게 물었다. 오빠가 앉은뱅이 책상의 서랍에서 노트 한 권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귀희의 우표첩과 같이 있던 거다. 엄마는 끝내 혼자 품고 계셨을 뿐 우리에게는 차마 보여줄 수 없었나보더라.”
펼쳐보니 십여 년이 지나도 눈에 익은 엄마의 글씨가 눈에 밟혔다. 노트의 첫 장에,
사랑하는 내 딸 귀희, 내 아들 규범에게,
이 엄마의 오래 전 일기를 귀희가 미국으로 떠나고 난 뒤 우연히 보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살던 때가 있었구나.’ 하며, 엄마가 무지 가슴 아파하던 시절이었고 너희들은 아직 어려 규범이는 네 살, 귀희는 한 살이었을 때의 그 지난 날들을 떠올린다. 우리 가족이 헤어져 있어야 했던 약 6개월, 너희들은 기억나지 않겠지. 어제 늦게까지 이 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엄마가 너희들에게 절절할 수밖에 없었는가, 다시 가슴이 쓰려온다. ‘미안하다’는 말과 ‘이렇게 잘 커줘서 고맙다.’라는 말을 지금 너희에게 한다. 들리니? 들리겠지.
비록 우리가 몸은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전해져 마음의 소리는 들리지 않을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엄마는 이 마음을 믿는다. 우선 엄마에게 무척 화가 났다. 그렇게 믿었던 아빠가 결혼 후 우리 가정에 대해서 소홀해하며 밖으로 겉돌고 엄마 또한 어렸기에 이런 아빠에 대해 불만하며 너희들에게 사랑이라고 보인 집착으로, 그래 집착이 맞았다, 너희들에게 다른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의 곰살궂고 살가운 사랑을 주지 못한 이 엄마에게 참으로 화가 나는구나.
규범이도 귀희도 다 커서 제 갈 길을 잘 가고 있고, 더욱이 귀희는 더 큰 세상인 미국으로 떠났는데 이런 부모의 과거를 알게 해서 좋을 게 없다며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엄마가 너희들에게 부드럽고 자상한 엄마가 되어주지 못하고 악녀 엄마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연이라도 늘어놓지 않으면 엄마의 가슴이 미어져서 터질 것만 같아 이렇게 일기장에 글로나마 적어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했었나 보다. 엄마를 위한 엄마의 변명이랄까.
이 일기장이 너희들에게 언제, 아니 끝내 넘겨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혼자 하는 독백이 되고 말 일기들은 그래도 엄마를 하루하루 견디게 한 힘이 되어주었단다. 변명일지라도 너희들에겐 ‘고맙다’는 말은 듣고 싶구나. 그러자면 엄마부터 이해해줘야겠지. 이 일기장은 귀희가 미국으로 떠나던 날을 마지막으로 끝을 냈다. 엄마에게서 도망가는 딸의 뒷모습에 훗날, 그 날이 언제가 될지 몰라도, 먼 훗날 너희들이 엄마의 이 못나고도 못된 사랑을 이해해주겠지 하며...... 너희들에게 더 냉정하고 때로는 야박하게 대한 이 엄마가 그래도 이것도 사랑이라고 외치고 싶은 이 심정을 알아줄 날은 오지 않을까.
대체로 또박또박한 글씨가 가끔은 흔들려 흘려 쓰였고, 그런 글자는 울퉁불퉁 얼룩이 져 있었다.
‘눈물로 쓴 일기’ 나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엄마에겐 슬퍼하고 외로운 모습은 없었다. 나는 나를 보고 있던 오빠를 고개를 저으며 쳐다보았다. 오빠는 고개를 나처럼 가로저었다.
“아니다. 엄마는 혼자라서 더 힘드셨던 게다. 엄마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너나 나나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나 있겠니?”
오빠에게 끄덕거리며 동감할 수 없었다.
“아니야. 아빠는 우리 앞에서 엄마처럼 매차고 차갑지는 않았잖아.”
오빠는 고개를 또 저었다.
“나는 다 읽어보았다. 엄마를 더 읽어보렴.”
나는 오빠의 작은 방 한 쪽 벽면에 등을 기대고 엄마의 일기장을 넘겼다. 오빠는 건너편 벽에 기대어 방에 놓여있던 레비 스트로의 <슬픈 열대>를 들어 펼쳤다.
‘우리의 눈 앞에서 파괴되어 소멸하고 있는 원시적 과거를 그대로 지닌 신비로운 열대 원주민은 슬프다. 그 사회 역시 슬프다.’
하지만 건성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 같았다. 오빠는 나를 힐끔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어설프고도 낯설게 피식 웃어보였다. 그 웃음이 슬펐다.
“오빠. 오빠는 네 살이었다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왜 우리 가족이 떨어져 살았어야 했지?”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떨어져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이지 않았겠니? 그 안에 다 있더라. 친할머니 집에 육 개월 정도 우리가 가 있었나본데, 그때 엄마만 혼자 떨어져 있어야 했나 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우리를 떼놓았고 그때 아빠는 그 분들이 하는 대로 아무 말 없이 따라만 가셨나보더라. 엄마는 완전히 우리 가족에서 배제된 거지. 강제로, 엄마의 뜻과는 무관하게. 아빠는 이런 엄마에게 모른 척하며 등지고 있었고. 구속보다 더 나쁜 방관이지. 우리는 방치되었던 것이고. 그때 엄마는 그 일기로서 우리와 만나려 했는데, 더 읽어보렴.”
“왜?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아빠는 또 왜?”
“나도 너도 어린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어른들의 역사니까.”
“그래서 엄마는 아빠 쪽 식구들을 피해왔나 보구나. 그래서 아빠도... 그런데 아빠는 우리에게 잘 대해준 편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니 귀희는? 아빠가 우리를 잘 대해줬다고 생각하는 거니?”
나는 다 수긍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엄마처럼 불편하지 않았던 아빠를 떠올렸다.
“이래라 저래라 시시콜콜 엄마처럼 참견하지 않았잖아, 아빠는. 우리의 자유를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잖아, 엄마는.”
오빠는 대답을 않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거나 무언가 골몰히 기억해내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엄마는 엄마의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사랑을 선택했던 거야. 아빠였지. 하지만 결혼 후 그 선택이 잘못이라는 것을 이내 알게 된 것 같아. 어쩌면 환상 또는 환영을 쫒은 엄마의 책임이 더 클 수도 있겠지. 사랑은 기대감으로 채우고자 하는 환상이고 소망으로 바라보고자하는 환영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나의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환상이든 환영이든 사랑은 사랑으로서 그저 아름다운 거니까. 안타깝고 아쉬운 것마저도 말이다. 오히려 일방적이어서 사랑은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규범은 카페 <The>와 감방을 또 떠올렸다. 몸은 가두어져 있지만 자기를 되돌아보게 했던 수많은 반추는 순전한 삶에 대한 자유의 욕구였으며, 머리는 막막했지만 삶의 방편으로서 삶의 가치를 유치하게 추락시킨 기존 선택의 반성은 순진한 삶을 향한 자각의 반전이었다. 가둠은 침묵과 같다. 침묵은 자기와의 가장 깊은 대화다. 사랑으로 끌려간 감옥은 ‘자연으로 돌아가라.’와 같은 교훈을 규범의 가슴에 새겨놓았다. 순순한 삶으로의 전환은 ‘자신에게 감동하라.’의 자유를 주문했다. 규범은 여동생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엄마 자신에게 화가 났을까?”
나는 오빠의 질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엄마가 엄마에게 화를 냈다고?”
오빠가 등을 밀어 벽에 더 의지하며,
“엄마의 일기 첫 장에 그러지 않던. 엄마에게 우선 화가 났다고 말이다.”
오빠에게 따지듯 나는 대답했다.
“그 화라는 게 어쨌든 자기불만족에서 촉발한 거 아냐?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
오빠가 벽에 기댄 등을 곧추세웠다.
“그래? 엄마의 죽음에 대해 귀희가 알고 있는 게 뭐지?”
한소연과 안수철 변호사의 관계는 소연의 자살로 부풀려졌다. 흥미와 재미가 붙은 소문이 일방적으로 양산됐다. 죽은 자는 말도 죽지만 산 자는 그 입으로 죽은 자를 또 죽인다. 한소연이 꺼내지도 않은 말들이 퍼졌다. 오로지 살아있는 것이나 살아남은 것만이 힘이었다. 산 자의 거짓이 죽은 자의 진실을 이겼다. 역사가 살아남은 자의 편의 기록이듯이 소문도 마찬가지로 퍼졌다.
‘소연이라고 별 수 있어. 그래도 여자이긴 여자였나 봐. 아들을 빙자해서 옛 애인 수철이를 꼬셔냈다는 거 아냐.’
소문은 가까운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래서 일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소문은 때지 않아도 연기로 지펴진다. 발 없는 소문은 보이지 않는 연기와 같이 퍼트려졌다. 남의 불행을 즐기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 본능으로 자기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인간이다. 헐뜯기지 않으려면 헐뜯어야 한다.
‘그래도 양심인지 자존심인지가 남았던지 안 변호사에게 몸을 주고 나서 갈등이 심했나보더라고.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목숨까지. 쯧쯧.’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몸은 탱탱하데.’
안수철 변호사의 입은 타인의 귀로 옮겨지며 상상이 보태진다.
‘남편하고도 잠자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니 처녀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 안 변호사, 회포 한 번 자알 풀었겠네.’
소문을 부풀리는 근거 없는 부러움은 상상을 형상화한다. 상상은 소문의 휘발유다. 어차피 보이지 않은 것의 실체는 없다. 엄마에 관한 소문을 재우기 위해 아들 규범이 한 일은 전화 한 통을 넣는 것에 그쳤다.
“안 선배님, 소문이 사실이라면 안 선배님도 부끄러울 줄은 알아야 합니다.”
점잖아 보이는 자기의 말투나 행위에 규범은 부끄러웠다. 공부만으로 곱게 키워온 범생이는 공부의 궁극은 실천임을 글로는 배웠으면서도 실제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글로 받은 지혜라는 것이 결국은 타협이고 적당이고 눈치며 겉치레였다. 적어도 한국적 지혜라는 것은 그랬다. 타인에 의해 존재하는 자기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는 없다. 이기주의는 진정한 자기를 배제한 타인과의 관계에서의 이익추구에 불과하다. 손해보지 않기, 이익주의에 불과한 이기주의엔 자존심이 없다. 한국의 역사가 가르치는 탈자존의 한국적 지혜를 규범은 자기의 점잖은 듯한 언행에서 느낀다. ‘씨발~~’ 자신에게 화가 났다. 자기에게 욕을 해댔다.
‘용서하기 전에 철저한 기억이 필요하다.’ 까뮈였던가. 철저한 기억이란 응징이었다.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개인에게든 집단에게든 철저한 기억이란, 살을 애는 각성이며 더는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징벌이 되어야 한다.
감옥에서 규범은 자기용서의 시간을 가졌다. 밤을 알았고 어둠을 알았다. 규범은 낮만 보고 살아온 자신을 갇혀 어두운 감방에서 보았다. 머리 하나 빠지지도 못할 좁은 창밖에 초승달이 감방 안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여자의 아미 같은 희미하고도 여린 초저녁 초승달을 보면서 낮을 더듬거렸다. 매일 30분만 주어진 낮과의 대면, 하루에 해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왜 낮이 있고 왜 밤이 있어야 할까.’
해를 잃고 어둠만 주어진 감방에서의 하루는 지상 최고·최상을 지향하던 태양맞이의 지난 삶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감옥에서의 첫 날, 규범은 종일 잠만 잤다. 하루 세 끼 제 시간에 꼬박 가져오는 끼니를 거부하면서 감방생활을 시작했다. 죄수 검사는 감옥에서도 대우를 받았다. 간수들이 쩔쩔맸다.
“어떤 일로도 나를 방해하지 마라.”
감옥에서도 명령이 통했다. 구치소장이 직접 찾아와,
“불편한 것 없으십니까?”
죄수에게 감옥의 수장은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알현을 자진했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밥사발이나 들여보낼 수 있고 안의 동정을 살필 수 있는 두 눈만 들여보낼 수 있을 만큼만 뚫어놓은 감방의 복도 쪽 작은 창을 통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도 검사노릇하려 드네. 세상 좆같다니깐.”
전과 18범이 규범을 가둔 쇠문 밖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상전이라니깐요. 무슨 죄로 여기 들어왔는지 알아요?”
간수였다.
“알지, 잘 알지. 신문에도 대문짝만하게 나오지 않았던가.”
간통을 굳이 말하지 않고서도 그들은 낄낄깔깔 웃어댔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출세하고 볼 일이라니깐.”
두 사람의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갔다. 그들의 대화가 규범의 가슴 속에 박혔다. 그 날 저녁 식사시간이 돌아오자 규범은 지나치려는 간수를 불렀다.
“오늘부터 여기도 넣어주시오. 미안합니다.”
옆방 죄수에게 전해졌는지 그쪽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간통 따위로 단식투쟁하기엔 명목도 없고 면도 안 서겠지.”
다른 방에서도 굽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고픈 건 검사님도 참을 수가 없었나 보네. 우리 이제 한 솥밥 먹게 된 식구가 되었소이다. 우린 한 지붕 한 가족이라 이 말입니다.”
“검사님, 우리 사정도 좀 새겨 살펴주시옵기 간절히 바랍니다요.”
규범은 나흘만의 끼니에 집중했다. 그릇을 다 비웠다. 그때 철막대의 십자가 쪽창 밖으로 초승달이 안을 보고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 초승달이 다감하게 말을 걸어왔다.
‘이 시간을 진심으로 맞아주세요.’
달과 밤의 존재를 들려주고 있었다. 시련과 쉼으로서 앞서기를 멈추고 돌아보기 할 시간의 의미로 자신을 깨웠다. 두 뼘 크기 쪽창 안의 초승달이 머문 시간은 짧았다. 사각 철창 안에서 기울면서도 초승달은 또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글.그림=오동명/ 1편으로 이어집니다>>>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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