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은 국난 극복의 원동력이 된다
얼마 전 관람객 700만을 돌파한 영화 '베를린'을 보며 애국심과 제주 지도자의 리더십을 동시에 떠올렸다. 가족보다 당에 맹목적 충성을 하던 주인공은 조국 북한으로부터 배신당한다. 이후 주인공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공화국의 '영웅'이 아니라 모함받은 아내의 목숨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남편'으로 변신하게 된다.
국가로부터 헌신짝처럼 버려진 한 인간의 상처에 애국심도 파괴돼, 조국에 복수를 다짐한다. 영화 '베를린'은 곤경에 처한 국민을 보호해주지는 못하고 배신하는 국가라면 국민에게는 전혀 무가치함을 일깨워준다. 국가다운 국가, 지도자다운 지도자만이 국민을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국격을 가늠하는 척도는 자국민의 안위를 걱정하고 책임지는 국가와 지도자의 가치관과 의지다. 미국은 자국민에게 ‘우리는 당신을 잊지 않는다 (You are not forgotten)’라고 약속한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반드시 지켜낸다는 원칙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1995년 6월 보스니아에서 미군 전투기가 적진의 숲속에 격추됐다. 엿새 뒤, 기적적으로 생존한 조종사의 SOS가 미군 무전기에 타전돼 왔다. 미군은 즉각 적진 한복판에 특공대를 투입해 빗물로 연명하던 조종사를 구출해내고야 말았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더 큰 희생이 따를지 모를 위험한 작전을 강행한 것이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아직까지도 북한에 돈까지 지급해가며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벌이고 있다. 곤경에 처한 도민을 곧잘 나몰라라 하는 제주 지도자들이 반드시 성찰을 해야 할 대목이다.
애국심이란 내 나라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국가에 대하여 헌신하려는 신념을 말한다. 어린 시절 우리들은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길을 걷다가도 다들 멈춰 가슴 한편에 손을 얹고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갖췄다. 애국가를 듣고 태극기를 보면서 누구나 막연하게나마 나라의 소중함에 대해 가슴 뭉클함을 느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가장 존경하는 애국자로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를 꼽는다. 쳐들어오는 외적 앞에서 백성과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기를 서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런 생각과 행동이 양심의 자유를 해치고 시대에 뒤떨어진 어색한 가치로 폄하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진국 국민들의 애국에 대한 신념은 여전하다. 6.25 참전 용사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배려에서 보듯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우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서구 사회와 거꾸로 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스위스와 룩셈부르크는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소국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강소국의 위상을 누리고 있다. 온 국민이 애국심으로 압도적인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며 독립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애향심의 발현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제주 사회
인구·산업 규모 등에서 전국 1%의 벽을 못 넘고 있는 특별자치도의 위상과 존재를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 초라하고 왜소함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제주를 이끌어가야 할 지도자들은 도민들로부터 성추행 ․ 뺑소니 ․ 패거리 ․ 양치기 지사 등으로 조롱과 멸시까지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도자의 리더십은 물론 도민들의 애향심도 발현될 수가 없다. 애국심은 구성원 스스로의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지도자의 처신이 보다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쳐들어오는 외적 앞에서 백성을 버리고 뺑소니치는 왕들과 지도자들을 역사 속에서 많이 봐왔다. 선조가 침략하는 왜군에 사생결단으로 맞서 장렬하게 전사하고, 인조가 삼전도의 굴욕보다는 순국의 길을 택했더라면 백성의 애국심을 자극하여 우리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의 지도자들은 그것을 못했고, 오늘의 정치 지도자들 역시 조금도 다르지 않다. 강정 사태 등 각종 현안에 임하는 제주 지도자들의 모습도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래서는 우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강한 자에 크게 의존하여 처분만 쳐다보는 노예 속성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불행하게도 그러한 상황이 제주에서 곧잘 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글로벌화의 진전은 이런 상황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고난을 발판으로 역경을 딛고 일어선 역사가 말해주듯이 악착같은 제주인의 몸속에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위기극복 유전자”가 하나 더 있다. 우리는 그 유전자를 깨우고 힘을 모아 그 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섰고,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라는 지위를 획득하여 국제자유도시 건설에 임하고 있다. “위기극복 유전자”를 일깨울 수 있는 애향심으로 온 도민이 뭉쳐 하나가 될 때 비로소 제주는 전국 1%의 벽을 넘어 선진 사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애향심의 발현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기행(奇行)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위기의 제주를 극복할 애국심의 발현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
첫째, 도민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신뢰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국가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기업들도 누가 리더가 되는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짐은 역사가 증명한다. 국가 지도자를 잘 만나고 잘못 만나는 차이로 과거와 현재의 처지가 바뀐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과 필리핀이 많이 언급된다. 지도자가 신뢰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어버리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면 족하다. 그리고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은 결코 쉽지 않다.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지금 제주 사회에 필요한 지도자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각종 현안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제주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리더십은 도민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도정이 반드시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리더십일 것이다. 오래 전 지하 700m에 갇힌 칠레 광부들이 끝까지 버텨낸 것은 반드시 구조된다는 믿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칠레 정부는 광부들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1976년 7월 이스라엘의 '엔테베작전'에 세계가 혀를 내둘렀다. 이스라엘 특공대가 무려 4000㎞를 날아가 아무도 예상 못한 자국민 인질 구출작전을 성공시킨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자국민 한 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포로 수백 명을 풀어준 일도 있다. 그렇게 국민을 소중히 여기는 국가에 이스라엘 국민은 전쟁이 터지면 해외에 나간 청년들까지 귀국해 입대하는 충성으로 화답한다. 이는 국가가 국민을 대접하는 방식의 차이가 애국심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제주 지도자들은 도민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이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참 한심하다. 잘못된 일을 서슴치 않는다. 도민을 보호해야 할 지도자가 오히려 성희롱의 위해(危害)를 가하고 잘못에 대해 뉘우치기는 커녕 변명과 적반하장식 대응으로 일관한다. 전경들의 강정마을 진입 당시 제주의 지도자들은 어땠을까? 예상했던 대로 출타 등 의혹 투성의 이유로 변명하며 위급상황에 처한 도민들을 외면했다. 국민의 안위를 끝까지 책임지는 미국이나 이스라엘과는 극명히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또 이들은 지역 내 갈등 등 골치 아픈 문제엔 손을 대고 싶어하지 않았고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서곤 했다. 또한 풀리지 않으면 내 탓이 아닌 남 탓하기 바빴다. 이러한 갈등은 이를 통합하고 조율해야 할 정치권, 특히 ‘제주판 3김’이 그 진원지로 꼽히고 있다.
사회 갈등은 당장 사회ㆍ경제적 비용이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경제의 발목을 잡아 성장동력을 떨어뜨리는게 문제다.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를 10%만 낮춰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5.4%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이런데도 이들은 민생은 외면하면서 도민과 힘겨루기나 하고 치적 홍보 등 정치행보 만을 이어갈 뿐이다. 이제 도민은 지도자의 소리에 식상해 있고 어떤 심각성과 무게도 느끼지 않는다.
제주의 정치 지도자들은 대오각성하여 갈등 유발자가 아닌 갈등 해결자로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제주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결국 제주 정치의 실패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정치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도민의 참여와 동의, 지도자 자신의 역사 인식 없이는 ‘도민의 행복한 국제자유도시의 완성’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신뢰의 위기는 권위의 위기로 치닫게 되고 결국에는 사회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신뢰와 권위를 상실한 지도자를 보면서 도민들이 헌신적 애향심을 발휘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둘째, 제주 사회에 만연된 불공정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진정한 애국심의 발휘는 공정한 사회구조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제주사회 일부 기득권층의 패거리 정치 세습화 구조는 제주의 젊은 중심 세대에게서 꿈과 희망과 공정경쟁의 기회를 앗아 가고 있다. 무소불위의 제왕적 권한으로 연줄이나 관계에 기반을 둔 자신만의 아성을 구축하면서 폐쇄적이고 패권적인 행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23년 동안 권좌를 지키고 있는 전․현직 지사 세 사람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제주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중심세대가 진정한 공정경쟁의 틀 안으로의 진입을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로 인해 제주사회는 몇몇 극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불공정이 판을 치면서 소수의 승자를 위해 다수가 종속되고 희생하는 일종의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도지사 선거는 기득권층이 승자가 돼 모든 것을 독식하는 판으로 굳어져 있다. 못 가진 자가 앞으로 영영 가질 수 없는 자가 됐다고 느끼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접을 수 밖에 없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 질시와 증오와 갈등이 증폭되어 저항이 시작된다. 이런 구조 하에서 제주의 젊은 세대에 애향심을 요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부가 얼마 전 전력난 우려가 커지자 냉방기 가동을 자제해 달라며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했다. 결과는 우리 사회의 젊은세대와 노인세대 간 '애국심 격차'가 심각했다. 경로당의 노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우리라도 전기를 아껴야 한다"며 아예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연 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반면 대학가와 카페에 있는 젊은이들은 "이 더위에 에어컨을 안 트는 건 무식한 짓이며 전기 절약은 공장이나 기업이 해야지 공부하는 학생들이 할 필요는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무릎 담요를 덮는 사람이 있을 만큼 '과잉 냉방'을 하고 있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불공정 구조로 좌절과 불만에 빠져 있는 젊은세대의 애국심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이제 제주의 지도자는 젊은 세대와 공유하며 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적 성장’ 정신을 세워,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제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지도층이 먼저 손 내미는 포옹과 포용이 절실한 때다. 제주 사회에 형성된 위험한 단층을 하루빨리 메울 수 있는 지도자들의 혜안이 절실하다.
셋째, 지도자에 의한 사회적 불신의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
지도자의 언행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요즘 남에게 베풀고 스스로 몸을 낮추는 제주 지도층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은혜나 신의를 팽개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도민을 위한 미래 지향적 정책이 아닌 눈치·염치 없이 자신과 패거리 이익에만 매달리며, 정략적 이벤트로 표심 낚기에 급급해하는 사익편취 행위가 스스럼없이 이루어진다. 너무 당당한 모습에 그저 아연할 뿐이다.
이런 패거리 도정 운영이 제주 사회의 신뢰를 마구 흔들고 있다. 정치와 지도자에 대한 도민의 불신이 확산되면 지역사회를 둘러싼 갈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와 제주 사회를 위협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특히 지도자의 약속은 엄중해야 하고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어느 지도자는 도민과의 불출마 약속을 어기고 재출마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지도자가 도민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다면 제주 사회와 정치를 불신의 늪으로 빠뜨리며 퇴행시킴은 물론 자신도 끝없는 고통과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 안창호 선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지도자가 됐으면 한다.
이제 더 이상 허황된 기만의 말로 도민을 기망하려는 행태를 멈추어야 한다. 불신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는 밀양 송전탑과 강정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불신의 지도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애국심을 발휘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국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제주 지도자들의 진정성 있는 자성과 성찰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실패한 지도자로 인해 추락하는 제주, 도민이 나서 전국 1% 벽을 깨자
제주는 지금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여기까지 정말 쉼없이 힘들게 달려왔다. 어쩌면 제주 사회는 그 여파로 사회 활력이 떨어지고 사회병리 현상이 불거져 나오고 있는지 모른다. 미래에 대한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밀려오는 저출산 ․ 고령화의 쓰나미는 제주의 치명적인 급소를 강타하고 있다. 경제는 골병으로 쪼그라들어 성장은 둔화되고 공동체적 유대감은 내분과 갈등의 덫에 갇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폐해지고 있다. 폭발 직전의 온갖 현안 문제가 어지럽게 꼬인 채 우리 앞에 널부러져있다.
불확실한 대내외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제주 경제에 큰 악재가 될 것이 자명하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해결의 물꼬를 터야 할지 모를 총체적 곤경에 빠졌다. 국제자유도시를 완성해야 할 제주가 여기서 방향타를 잃고 모두가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그간 제주의 강점이었던 도덕적·윤리적 덕목들은 지도자들에겐 오히려 무거운 족쇄가 되어 그들의 삶을 옭아매고 있다. 어쩌다 괸당문화는 천형(天刑)처럼 껴안고 가야 할 족쇄가 돼버렸다. 진정 우리가 벌이는 끼리끼리의 괸당문화, 전․현직 지사간 치킨게임의 외통수에서 탈출할 길이 없을까? 탈출이 지체되면서 제주 사회가 점점 부실해지고 있다. 성추행.뺑소니.식게집.양치기 등 지도자들의 몰염치한 처신은 애향심의 발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처럼 제주 사회에 경고음이 심각하게 울리고 있는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내년 선거에만 매몰돼 치적 홍보에 여념이 없다. 이벤트 성 사업에 취해 도민을 호도하며 우쭐하는 모습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제주의 미래를 염려하고, 미래의 혜안과 비전을 세워보려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정 말 레임덕의 가속화는 도정의 정책 추진동력을 급속히 떨어뜨리고 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마냥 흔들거리는 정치 지도자들도 한심하지만, 표류하는 제주를 멀거니 구경만 하고 있는 지식인과 언론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이런 허접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 게 제주 도민의 기구한 운명이겠지만, 편법과 꼼수 정치를 부인하며 고개를 처들고 있는 뻔뻔한 지도자를 접하며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삶이 참으로 불쌍하다.
쪼그라지는 제주의 경제를 회생시킬 전략은 무엇이며, 향후 제주의 경쟁력을 높일 성장전략의 큰 기획과 구상의 밑그림을 갖고 있는가? 내부 갈등을 해소할 혜안은 무엇인가? 모든게 지지부진한 가운데 제주는 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땅으로의 전락이란 뼈아픈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고 지금 어두운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과연 제주 지도자들은 터널 속을 통과하는 도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기나 할까? 정치철학이 응축된 지도자의 한마디가 흩어지고 찢긴 도민들의 마음을 치유한다. 안타깝게도 제주의 지도자에겐 시대 중추를 꿰뚫는 정치적 치유의 언어가 너무 빈약하다.
이처럼 지도자에 의한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병폐들은 도정의 실패를 초래케 하며 그 결과 지역사회는 거짓, 편법, 모사, 분노, 불신 등이 정의와 진실의 빈자리를 메워 나가게 된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다. 우리의 미래가 점점 안보이고 잇다. 그렇다면 누가 나서 이를 복원해야 하는데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를 자처하지 않는다. 비극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이제는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할 시점이다. 바로 도민 스스로 해야 한다.
일본은 아베의 리더십의 물꼬가 국가 활력을 되살리는 구심점 역할을 해내면서 반전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이란 이렇게 한 국가의 분위기를 통째로 바꿔놓는다. 허나 지도자의 리더십 위기에 처한 제주 사회는 패거리로 쪼개져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도민의 마음을 읽어 주눅든 자존감을 세워주고, 시대 흐름과의 조화 속에 혼란과 좌절의 고리를 끊어 지평을 더 넓혀 줄 뛰어난 지도자를 만들어 패거리들이 벌이고 있는 저주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도록 해야 한다.
지도자가 도민을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주인인 '도민이 지도자와 함께 가는 세상'의 실현은 제주 사회의 애향심의 복원과 고취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도민 행복시대는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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