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갇힌 제주 사회
“지난 몇 주간 제주특별자치도 우근민 지사 만큼 전국적인 조명을 받았던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제주의 지식층과 언론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한 제주 도민의 말이다.
윤창중 성추행 의혹 사건은 과거 벌건 대낮 제주도 지사실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을, 고위 공직자가 성범죄를 벌여 파문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로 오버랩시키면서 세간의 이목을 제주에 집중시켰다. 언론을 비롯한 SNS에서의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풍자와 보도가 이어지면서 뜨거운 감자로 재점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박사의 “과거 성추행으로 한창 문제된 사람. 어떻게 아직도 도지사하고 있는지...”라는 트윗이 불을 지피는데 한 몫했다. 이어 터진 ‘4·3 폭도’, ‘간첩기자’ 등 우근민 지사의 돌출 발언은 또 다른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간첩기자’ 발언과 관련해 우 지사는 언론사 기자로부터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피소됐다.
이와 같이 시끌벅적한 소란이 전개되면서 성범죄자를 도지사로 뽑은 제주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비아냥거림이 멈추지 않는다. 수치스런 일로 전국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제주 도민들의 심정이란 시쳇말로 '멘붕'을 경험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전국적인 큰 반향과는 달리 정작 제주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슈퍼 갑(甲)’ 도정을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언론은 물론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동료 기자가 명예를 훼손 당했는데도 기자들 조차 입을 다물었다. 제주 도정의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갇힌 도민들이 민주 시민정신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제주의 거센 바람은 사라지고 결국은 찻잔 속의 미풍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한 작금의 상황들은 대한민국의 ‘갑을 관계’를 축약한 안철수 의원의 ‘대기업 동물원’ 발언과 함께 깊이 사유하게 한다.
안철수 의원은 2011년 3월 관훈클럽 포럼에서 "한국 경제는 동물원 구조"라며 "약자인 중소기업들은 삼성 등 대기업 동물원에 갇혀 사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 중소업체들은 대기업의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편입돼 대기업이 주는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로 연명하다 끝내 절명하고 만다. 우리에서 도망치려 하면 사살 당한다. 결국 죽어야만 동물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다. 제주의 권력층이 즐겨 읆어댄다는 “조(조직을) 배(배신하면) 죽(죽는다)”이란 건배사를 떠올리는 대목이다.
안 의원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으로 크지 못하는데에는 우리 안에 가두어 중소기업의 야성을 길들이는 대기업의 동물원과 불공정 거래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게다가 중소기업정책도 중소기업을 대기업의 동물원 안에서 연명하도록 조장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기존에 누리던 온갖 혜택을 포기해야 하므로 중소기업으로 남아 쉽게 먹이를 받아먹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이 많을수록 나라가 융성해진다. 그러자면 중소기업에서 벗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동물원에 가두어두고 미래의 희망없이 현실에 안주케 만들어 버리는 현재의 중소기업정책에 대한 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제주의 지도자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들이다.
슈퍼 갑(甲) 제주도정, 을(乙)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갑을(甲乙) 관계로 상징되는 성찰적 거대 담론이 올해 우리 사회를 달구고 있다. 계약 관계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강자를 갑(甲)으로, 그 반대편에 있는 약자를 을(乙)로 규정하는 한국 사회의 불공정 거래의 폐해를 집약한 말이다. 대기업 상무의 항공기 여승무원 폭언, 남양유업 직원의 대리점주 폭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혐의와 우근민 지사의 성희롱은 바로 ‘갑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
제주 도정의 권력 만능주의 병폐가 드러나면서 제주 사회에도 갑을 관계가 성찰적 담론으로 등장했다. ‘슈퍼 갑(甲)’ 제주 도정의 대표적 갑질은 을(乙)의 지위에 있는 도민을 대상으로 구사된다.
도민을 상대로 제왕적 권한의 무기를 휘두르는 제주 도정이야말로 제주 사회에서 가장 무서운 ‘슈퍼 갑’이다. 도정의 갑질 수법은 무소불위의 권력에 기대어 갈수록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각종 전시성 치적쌓기 사업을 도민의 동의없이 일방적으로 저질러놓거나, 그 책임과 폐해를 도민에 떠넘기는 행동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제주 도민들은 ‘슈퍼 갑’ 도정과의 관계를 유지해 나가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우월적 갑의 일방적 계약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도민들은 도정의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갇히고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거기서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 이런 악순환의 관계가 지속되다 보니 제주 사회의 창의성과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지역경제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도민을 향한 고압적이고 일방적인 ‘슈퍼 갑’의 자세는 전형적인 특권이자 권위주의이며 구시대 유물이다. 도정이 무소불위의 특권을 누리면서 도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신과 정파만을 위한 정치를 해 온 부산물이다. 이로 인해 도정의 도덕성과 신뢰는 땅에 떨어지며 제주의 미래가 암담해지고 있다.
제주도민,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 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즉생의 각오가 필요하다
현재의 시대적 화두인 갑을 관계는 갑과 을의 처절한 성찰과 반성없이는 결코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하기에 제주 사회는 도민과 도정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가치를 공유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적극 부응해야만 한다.
요즘과 같은 융복합의 시대에는 다양성이 추구되고, 생태계끼리 선의의 경쟁을 통한 건전한 생태계가 구축되어야만 한다. 제주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하고 건전한 생태계가 공존해야만 창조경제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성공모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상생과 공존의 방식을 채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한층 명백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아닌 양쪽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공정한 틀을 만들어야 하는 점이다.
첫째, 요즘 우리 사회에서 상생과 동반성장이 주요 화두가 되고 있는 데에는 갑과 을이 보다 진화된 융복합의 생태계를 이뤄야 한다는 기본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원이 갑(甲)과 을(乙)의 일방적 ․ 폐쇄적 불평등 관계라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글로벌 생태계는 상생공존의 동반자 관계다. 글로벌 경쟁 하에서 차별적인 부가가치의 창출은 협력 파트너들과의 시너지에서 나온다. 글로벌 생태계의 끝없는 진화와 질주는 포용과 경쟁 시스템을 구축하고 공존의 토양 제공을 통해 을(乙)의 자발적인 혁신 노력을 유도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슈퍼 갑 제주도정의 부도덕적 갑질은 제주경제에는 물론 제주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혼자서 모든 걸 틀어쥐고 있는 지금의 슈퍼 갑 제주 도정의 일방적 폐쇄적 수직결합 구조는 역동적·창의적인 생태계를 고사시킬 뿐이다. 이로 인해 유능한 제주의 인재들과 생태계가 잠재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 갇혀 서서히 질식해 죽어가며 지금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도민을 향해 부도덕한 ‘갑질’을 하려는 일그러진 도정의 행태는 청산돼 도민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도정이 공멸을 피하려면 '갑의 횡포'에 대한 냉철한 자기반성과 자정운동을 통해 스스로 ‘갑질’부터 멈춰야 한다. 이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으로 도민적 항거에 직면하게 되는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제주 도정이 자기성찰을 통한 겸손과 포용, 적극적인 소통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개성과 다양성이 살아 숨쉬는 건전한 '제주형(型) 사회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그 안에서 갑과 을이 공생할 수 있을 때 제주사회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경쟁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제주 도정은 협업과 융합만이 제주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제라도 공생의 추구가 가장 기초적인 인류애의 발로임을 깨닫자.
둘째, ‘조배죽’을 외치는 도정 하에서는 갈등의 골만 깊어질뿐 더 이상 제주의 미래가 없다. 도민 스스로 갑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박한 각오가 필요한 이유다. 지식인과 언론이 입과 귀를 열고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회는 영영 사라진다. 도정에 대해 떳떳하게 공정성과 도덕성을 요구하자. 도민들이 슈퍼 갑 집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궨당 문화와 노예 근성을 깨부수어 ‘예속적 하도급 동물원’에서 탈출하기 위한 사즉생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
특히 제주의 지식인들은 도정과의 유착 의혹에서 벗어나 지성인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 용감하게 진실을 설파하는 자”라고 규정했다. 도정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지조와 기개는 제주 지식인의 삶을 명예롭게 하는 근원이 됨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제주의 언론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 권력에 순응하는 듯한 제주 언론의 모습에 도민들의 거듭된 실망과 좌절이 이어지고 있다. 요즘 제주는 지도자의 리더십 실종으로 집단·지역 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사회 시스템 전체가 혼돈 상태에 빠지고 있다. 이로 인해 제주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이익은 도외시되기 일쑤고 각종 정책은 추진력을 상실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뮈르달(Myrdal)의 언론의 여론선도 기능에 대한 언급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는 언론이 여론선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령(令)이 안서 질서가 안 잡히는 ‘연성국가(soft state)’가 된다고 말했다. 뮈르달은 “연성국가에서는 사회가 극도의 혼란으로 내몰리고 민생과 약자들은 더 궁지에 빠지게 돼 절대로 경제발전이 안 된다”고 했다. 이는 혼란의 시대에는 언론이 경제․사회 발전에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갈등과 분란이 일상화되고 있는 제주의 언론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제주 사회는 도정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며 일부 언론의 취약한 재정사정 등을 교묘히 이용해 직·간접적인 간섭과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언론 역시 도정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알아서’ 보도와 논평의 수위를 조절하는 굴욕적인 처신을 서슴지 않는 것도 오늘 제주언론의 슬픈 단면이다. 지역 사회가 갈등과 분란의 늪에 빠져있을 때일수록 제주 언론은 도정이 잘못하고 있는 점을 여과 없이 비판적으로 전달하여, 도정이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제주 언론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도민의 슬픔과 고통을 공유하며 어떤 폭압적 권력 앞에서도 불의에 불굴하고 권력의 남용을 외면하지 않는 정론직필을 지키는 강직한 기개를 보여줄 때, 제주 사회는 언론을 방향타로 삼아 미래의 희망을 찾게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슈퍼 갑 도정도 지금처럼 우월적 지위를 이용, 지속적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면 부메랑이 돼 도민의 항거라는 혹독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암시하는 것처럼, 지금 제주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는 갑을 간의 건전한 생태계 구축이 긴요하다. 도정이 '글로벌 생태계' 경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과거 타성을 답습하고 현실에 안주하여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제주 사회는 지구촌의 험악한 생존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될 수도 있다.
지금 제주 사회에 진정 필요한 건 구색 맞추기와 생색내기, 분칠(粉漆)한 수사(修辭)로 포장된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갑과 을이 상생번영으로 동반성장하는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그에 따른 과감한 선택과 실천만이 필요하다.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면 안된다. 바로 지금, 과감한 선택과 혁신을 놓치면 그 결과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보여주듯, 소통과 신뢰를 상실한 독단적 국정운영으로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내지 못하는 국가는 어디서든지 지속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제주대 양길현 교수는 최근 언론기고에서 “지난 10여년의 제왕적 제주도정의 이미지와 관행을 대폭 바꾸기 위해서는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도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주의 새 출발을 가다듬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기득권 타파에 적극 나서는 제주도민의 제2의 민주화 항쟁을 기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묵직한 울림으로 여운을 남긴다.
☞고운호는?
=1979년 한국은행에 발을 들여 놓은 뒤 제주출신으론 처음으로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이 됐다. 2005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 3년간 재임하는 등 한국은행에서만 31년간 재직, 외길 금융인의 길을 걸어왔다. 한국은행 제주본부장으로 재직중엔 지역경제의 콘트롤타워를 목표로 제주경제포럼을 출범, 제주도지사와 함께 공동대표 역을 맡아 제주의 경제와 미래방향 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제주본부장 재직시절엔 제주본부가 한국은행 지역본부중 최우수본부로 지정됐다. [제주경제의 선진화를 위한 외침] 등 다수의 저서와 연구논문,자료를 냈다. 한국은행에서 퇴직한 최근에도 활발한 저술과 기고활동을 펼치며 제주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영훈 전 도의원이 원장을 맡고 있는 제주미래비전연구원의 이사장도 맡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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