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사직을 유지하게 됐다. 재판부가 원 지사의 혐의에 대해 “죄질이 가볍지는 않다”면서도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 부장판사)는 14일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희룡 지사에게 벌금 80만원을 선고했다.
원 지사는 6·13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5월23일 서귀포시 한 컨벤션센터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약 13분간 자신의 주요 공약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한 혐의다.
또 그 다음날인 24일에도 제주관광대 축제현장을 방문, 대학생 300여명을 대상으로 약 3분간 ‘월 50만원 청년수당 지급’, ‘일자리 1만개 창출’ 등의 공약을 발표하고 지지호소를 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 사안에 대해 벌금 15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은 과거 국회의원에 출마해 여러 차례 당선됐고 2차례에 걸쳐 도지사 선거에 임하는 등 선거법의 취지를 잘 숙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선거법을 철저히 지켜야할 의무가 있음에도 공소사실과 같이 2건의 위법 선거운동을 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원 지사 측은 “선거운동의 의미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2016년 8월26일 판결을 들어 “간담회와 축제장에서의 발언이 선거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시기와 장소, 방법 등이 종합적으로 관찰돼 판단돼야 한다”고 맞섰다.
그러면서 “정치인이 일상적인 사회활동과 통상적인 정치활동의 일환으로 유권자와 만나 인지도를 높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높이려는 목적이 있어도 선거당선이라는 특정한 목적의사가 표시된 것으로 인정되지 않는 한 선거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공약 발표를 한 것도 아니고 이미 발표된 정책 등을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 당선을 목적으로 지지호소를 적극적으로 한 것도 아니다. 선거운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 지사의 발언을 사전선거운동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이란 특정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해 필요하고도 유리한 모든 행위”라며 “피고인의 발언은 그 대부분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공약과 관련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 발언을 한 시점은 선거일로부터 약 20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꼬집었다.
재판부는 또 “발언의 내용도 청년・보육・교육 등 청중의 이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사항에 집중돼 있었다”며 “직・간접적으로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취지의 발언이 이어졌다. 종합적으로 볼 때 공직선거법상 사전선거운동을 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피고인이 발언한 내용이 이미 그 전에 발표된 공약이라고 해도 공개된 장소나 대중이 있는 곳에서의 연설을 통한 설명 또는 지지호소가 허용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의 범행은 공정한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 구현하려는 공직선거법의 취지를 몰각시킬 수 있는 것”이라며 “그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발언 내용이 기존에 발효된 공약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고 단순히 지지를 호소하는 내용이었다”며 “다른 후보자를 비방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또 발언을 들은 청중의 수도 매우 소수여서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적이 없는 점, 피고인의 법 위반 정도가 선거의 공정을 훼손해 당선을 무효로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현직 지사가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을 확정받을 경우 지사직을 잃게 된다. 원 지사는 이번 선고로 지사직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재판부의 선고가 있자 재판장 안에 모여 있던 원 지사의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원 지사는 판결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 선거법 고발로 인해서 여러분들게 심려 끼쳐드리게 된 거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제 법원의 판결로 도정에 전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도정 업무에 집중함으로써 여러분들의 성원에 보답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추후 검토과정을 거쳐 항소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뜻을 보였다. [제이누리=고원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