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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입성한 제주 '제4국회의원' 장하나..."종이짱돌로 기득권층에 맞섰다"

'어리바리하다'고 했다.  어떤 이는 ‘4차원’이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그가 '떡'하니 나타났다. 그것도 제주의 3석 지역구 국회의원 +알파인 ‘제4의’ 국회의원으로 등장한 것이다. 고작 77년생으로 만 35세다. 그것도 여성이다.

 

장하나.

 

19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통합당의 비례후보 순위 13번으로 당당히 여의도에 입성한 그를 놓고 처음부터 가능성을 짐작한 이는 사실 드물었다.

 

민주통합당의 청년비례대표 후보 경선에 임하고 있을 무렵. 사실 제주도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몇 번의 고비와 기회를 줄기차게 뛰어넘더니 그만 ‘청년 국회의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어린시절, 학창시절을 되돌아 보면 그는 이미 뚜벅뚜벅 정치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6살 때부터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남들은 기가 죽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유달리 자립심이 강했다. 성적도 준수했고, 반장·학생회장도 도맡았다. 연세대 사회·철학부를 다닌 그는 대학 영화패 프로메테우스에서 활동했다. 1997년엔 한국코닥 주최 전국대학생 시나리오공모전에서 대상도 받았다. 이 때 받은 상금으로 그는 단편영화 <비>를 만들었고, 이는 1998년 제2회 대학영화축제에 초청·상영됐다.

 

그러던 그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건 사실 노무현이었다. 2003년 겨울, 그가 대통령으로 인정한 노무현 정부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무렵에 그는 고향 제주로 내려가 열린우리당 제주도당 창준위 간사를 맡았다. 그런데 2004년 3월 노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한 마디로 ‘열’(?) 받았다. “대통령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내 한 표로 대변되는 민주시민의 자존감을 되찾고자 진짜 열심히 뛰었습니다.”

 

잠시 먹고 살기가 팍팍해, 그래도 기술이라도 익혀 볼라고 제약회사도 다녀봤고, 원목가구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일해 봤지만 그래도 ‘정치’는 언제나 그에게 손짓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그는 만 32세의 나이로 제주시 연동 선거구에서 도의원에 출마했다. 민주당 제주도당 대변인도 맡을 때였다. 당시 선거벽보 현수막은 통상 얼굴을 ‘들이대는’ 게 공식이었지만 그는 낡은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걸었다. “제주도민의 대변인이 되겠습니다”라고 썼다.

 

“정치는 아무나 하냐?”는 비아냥이 들렸지만 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라고 되받았다. 물론 선거에서 졌다. 하지만 관록의 상대에 맞서 눈에 띄는 득표를 하자 사람들이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 이후 그에겐 ‘청년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그 이전도 그랬지만 그 이후 그는 지역사회를 발로 뛰었다. 제주해군기지·한미 FTA, 영리병원 문제 등 곳곳에 그가 끼지 않은 데가 없고, 자잘한 손길이 가지 않은 구석이 없다. 시위현장에선 그를 ‘아름다운 청년’이라 불렀다.

 

그는 선거막판인 4월10일 제주도의회에서 청년들에게 부르짖었다. “선배가 이룬 민주주의, 후배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투표는 청년의 강력한 무기”라고. “종이짱돌로 기득권층에 맞서자”고.

 

민주통합당 비례후보를 신청하며 쓴 자기소개서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진솔하다. 어리버리하고 허술해 보인다. 나는 나의 단점과 무지를 숨기지 않고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점이 상대의 마음을 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선지 사람들은 나의 장점을 소통과 융화에 있다고 본다. 혹자는 ‘적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적이 없진 않다. 다만 나는 불필요하게 적을 만들지 않을 뿐이며, 차이와 다름에 집중하는 대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한다.”

 

그런 그가 청년비례후보 경선에 임하며 내세운 슬로건은 간단하다.

 

“꿈꾸고, 일하고, 신나게 놀좌”. 그는 그걸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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