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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릿 트레인 (7)

‘탄환열차’에 실린 1000만불이 든 가방을 노리는 킬러들은 국적과 인종만 다양한 게 아니라 세대도 다양하다. 러시아 킬러 70대 ‘하얀 사신’과 일본 전직 야쿠자 간부 ‘장로’도 있다. 미국의 50대 ‘무당벌레’, 영국의 40대 듀오 ‘탠저린’과 ‘레몬’, 멕시코 30대 ‘늑대’와 20대 ‘말벌’, 그리고 국적 불문의 10대 소녀 ‘왕자’도 있다. 전후 세대부터 X, Y, MZ, α 세대까지 망라한다. 과연 어느 세대 대표선수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시니어 시스템이 확고한 일본 원작이어서일까. 우승컵은 일본의 70대 장로에게 돌아간다. 결승전도 러시아의 하얀 사신과 장로의 70대 매치업이다. 10대부터 40대에 이르는 세대들은 모두 철도 없고 생각도 없고, 분수도 모르고 날뛰다가 끝장이 난다. 그나마 50대 무당벌레는 70대 어르신의 심기를 잘 살피고 장로에게 ‘광 팔고’ 살아남는다.

70대의 결승전이라고 하지만 70대라고 해도 같은 70대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노인(old)’과 ‘장로(elder)’의 매치업이다. 노인은 생물학적 나이고 장로는 사회적 경륜이다.

하얀 사신은 세월의 경륜이 있을진 몰라도 덕을 갖추진 못했다. 여전히 최고의 야쿠자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 자식도 내버리거나 자기 손으로 처치하기도 한다. 적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근삼의 희곡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에 나오는 명대사 “열망? 그거 술보다 더 나쁜 거지. 한 번 마시면 미쳐버리지”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힘을 갖춘 ‘노인의 열망은 재앙’이다.

반면에 장로는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 야쿠자 생활을 정리하고 은둔해 덕을 갖추고 가족들을 돌보고 살아가는 진정한 ‘어르신(elder)’으로 살아간다. 특히 70대 장로와 10대 왕자의 대결 장면은 인상적이다.

나름 패기 넘치는 왕자가 장로에게 ‘노인은 빠지라’고 이죽거린다. 장로는 짚고 있던 지팡이로 왕자의 코끝을 겨누고 “네가 알아야 할 것은 내가 너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그 세월을 너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자신은 노인(old)이 아니라 장로(elder)임을 알려준다. 

장로의 지팡이는 예사 노인네가 휘두르는 지팡이가 아니라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지팡이만큼의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그야말로 ‘토청년격문(討靑年檄文)’이다. 당나라 소금장수 ‘황소(黃巢)의 난’ 때 신라사람 최치원이 썼다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만큼이나 준열하다. 황소는 최치원의 준엄한 질타에 혼비백산해 전의를 상실하고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왕자도 장로의 준엄한 일갈에 하얗게 질려 꽁무니를 뺀다. 철없는 왕자는 그에게서 노인이 아닌 장로의 아우라를 느낀다. 반말하는 70대 노인에게 같이 반말로 응수하는 편의점 알바 여고생의 객기를 부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무시하는 것은 노인이지 장로가 아니다.

조직을 모두 잃고 은둔하던 70대 장로가 다시 ‘피의 현장’에 귀환한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는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이다. 하얀 사신 때문에 자신의 아들과 손자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두고 볼 수 없다. 죽기 전에 이 문제만은 반드시 매듭지어야 한다. 70대 노인 ‘하얀 사신’도 죽기 전에 아내의 원수를 갚고 ‘조직의 후계’ 문제도 자기 손으로 정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탄환열차에서 ‘마지막 춤’을 춘다

아마 70대의 장로와 하얀 사신 모두 미국 대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대표 작품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 내리는 아름답고 어둑한 깊은 숲속/그러나 내게는 잠들기 전에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잠들기 전에 가야 할 몇 마일이 남아있다.”

임기 중에 잠자리에서 숨을 거둔 인도 초대 총리 네루의 침대 머리에도 이 시가 펼쳐져 있었고 마지막 네 문장에 밑줄이 쳐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46세에 암살당해 가던 길을 멈춰야 했던 케네디 대통령 장례식에 낭송된 시이기도 하다.

정권이 바뀌고 ‘올드보이의 귀환’이 이어진다. 새 정권을 채우는 흘러간 옛 이름들이 새집에 들여놓은 흠집 많고 철 지난 중고가구처럼 찝찝하다. 모두들 가슴속에 프로스트의 시를 간직하고 ‘눈 내리는 어둑한 깊은 숲속’에서 잠깐 머물고 있었던 듯하다. 

모든 올드보이의 귀환이 나쁜 것은 아니겠다. 올드보이 중에서 장로의 귀환이라면 바람직하겠지만 혹시라도 하얀 사신과 같은 노인의 귀환이라면 걱정스럽다. 사회 다른 분야에서는 웬만해서는 올드보이의 귀환을 볼 수 없는데 유독 정치판에서만 다반사인 것이 조금은 기이하다. 어쩌면 그래서 다른 분야보다 정치 분야의 발전이 유난히 더딘지도 모르겠다. 
 

 

솔로몬의 전도서에도 ‘앞물이 뒷물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기록돼 있는데, 우리네 정치에는 해당이 안 되는 듯싶다. 우리는 대학입시도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고 하는 것처럼 대권도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쯤 된다. 미국에서 대권 재수에 성공한 사례는 닉슨 대통령밖에 없는데, 우리는 대권 재수 성공확률이 75%에 달한다. 올드보이들이 너나 없이 귀환할 만도 하다.

대학입시 출제 문제들이야 몇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으니 재수ㆍ삼수생들이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사회문제를 하얀 사신과 같은 변한 것 없는 올드보이들이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이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었으면 좋겠다. 

앞물이 뒷물에 자리를 내어주고 바다로 흘러가기를 거부하다 보면 온 천지에 물난리가 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아예 먼바다까지 흘러나갔던 물이 역류해서 바닷물을 몰고 강 상류까지 밀려들어 오는 듯한 올드보이도 있는 듯하다. 이건 거의 재앙 수준 아닌가.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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