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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릿 트레인 (2)

 

도쿄에서 나고야로 향하는 ‘탄환열차’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분기탱천한 킬러들이 저마다의 분노를 해결하기 위해 모인다. 야쿠자 보스 ‘하얀 사신’은 아내의 죽음에 책임 있다고 생각하는 모두에게 분노하고, 키무라는 아들을 해친 ‘왕자’에게 이를 갈고, ‘왕자’는 자신에게 무관심한 아버지 ‘하얀 사신’에게 독을 품고, ‘늑대’는 연인을 독살한 ‘말벌’을 쫓아 이를 갈며 탄환열차에 오른다.

모두가 분노에 치를 떨며 각자 분노의 대상을 처단하려는 독기로 차오른다.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그 과정에 엉뚱한 상대끼리 총질을 해대기도 한다. 그 사고들이 또 서로 이를 갈게 만드는 새로운 분노와 원수를만든다. 분노한 세계 최고의 킬러들이 모였으니 그들이 보여줄 액션은 기대해도 좋다. 

한마디로 ‘탄환열차’는 아수라(阿修羅)장이 된다. ‘아수라’는 불가에서 전생의 업보에 따라 다음 생에 태어나는 육도(六道) 중 하나다. 육도는 천(天), 인간(人間), 아수라(阿修羅), 축생(畜生), 아귀(餓鬼), 지옥(地獄) 중 하나인데, 아수라는 인간계와 짐승계의 중간쯤 되는 곳인 모양이다. 짐승보다는 조금 낫지만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이 곧 아수라들이다. 

불가에 전해지는 ‘아수라’의 특징은 흥미롭다. 전생에 걸핏하면 분노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면 ‘아수라’계에 떨어진다. 항상 화내고 싸움질을 멈추지 않는 아수라들은 ‘사람꼴’은 갖췄는데 얼굴이 셋이어서 종잡을 수 없고 팔이 여섯개여서 무슨 ‘수작(手作)질’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고 한다. ‘탄환열차’에서 서로 뒤엉켜 욕질하고 안면몰수하고 수작질하고 죽고 죽이는 킬러들의 모습이다. 

‘무당벌레’와 ‘키무라’, 그리고 ‘레몬’이 한곳에서 뒤엉켜 서로에게 분노하고 욕질하고 사생결단하는 딱한 ‘아수라’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장로’가 일갈한다. “자두는 자기를 따먹는 사람에게 분노하지 않는다. 자두나무를 그곳에 심은 농부에게 분노한다.”

너희들이 정작 분노해야 할 대상은 지금 너희들끼리 죽고 죽이게 만든 ‘하얀 사신’이라는 깨달음을 준다. 사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원한도 없다. ‘하얀 사신’이 아무 원한 없는 그들이 서로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장로의 일갈에 ‘깊은 빡침’을 ‘깊은 깨우침’으로 전환한 무당벌레와 키무라, 그리고 레몬은 장로를 앞세우고 합심하고 업무 분장해 공공의 적인 하얀 사신을 잡으러 간다. 열매를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따먹힌 자두나무들이 자신들을 그런 거지 같은 자리에 심어놓은 농부를 잡으러 몰려간다.
분노를 향한 지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를 닮았다. 족보 있는 야쿠자의 지도급 인사는 지혜도 출중해야 하는 모양이다. ‘자두꽃’은 이 ‘장로’가 속했던 족보 있는 야쿠자 조직의 문장(紋章)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분노를 경고한다. “누구든지 분노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분노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올바른 대상을 향해 올바른 정도(程度)로, 올바른 시간에,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분노하는 것은 어렵다.” 아수라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 차이인 듯하다.

주말마다 분노한 시민들이 편을 나누어 광화문과 시청 앞을 뒤덮는다. 굳이 진보와 보수로 부르기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기이한 전선(戰線)을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분노한다. 탄환열차의 아수라장 같다. 유튜버들도 분노하고 논객들도 분기탱천한다. 일부는 분노가 생업인 듯한 생계형 분노도 있다.

국회는 분노와 욕설의 전당(殿堂)이 돼버린 듯하다.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라는데, ‘민의’가 분노와 욕설이라면 우리 국회는 제할 일을 한다고 할 수밖에 없겠다. 분명 ‘탄환열차’의 킬러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원수질 일도 없는 사람들일 텐데 불구대천의 원수들처럼 으르렁댄다.

혹시 우리가 사실은 ‘아수라계’에 살고 있으면서 ‘인간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를 지경이다. 모두의 분노들이 정말 올바른 대상을 향해, 올바른 정도로,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방법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까운 것은 이제 대통령까지 링 위에 올라 분노해 마지않는다는 점이다. 대통령이라면 영화 속 ‘장로’처럼 우리끼리 싸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 분노해야 할 대상은 ‘하얀 사신’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줘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이 분노하는 전 정권이나 언론, ‘종북주사파’가 정말 ‘하얀 사신’과 같이 우리의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일까. 전 정권과 언론, 야당이 정말 우리들의 ‘하얀 사신’일까. 우리가 혹시 아수라계에 빠져있다면 대통령은 나서서 우리를 아수라계에서 건져줘야 하는 자리 아니었나.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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