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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블릿 트레인 (12)

세계 최고수 킬러들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탄환열차에 동승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발군의 킬러들은 ‘탠저린’과 ‘레몬’이라는 환상의 2인조 킬러다. 그들은 볼리비아에서는 ‘하얀 사신’의 야쿠자 조직을 박살내고, 홍콩에서는 중국의 삼합회를 초토화한다. 그들이 펼치는 사람 죽이는 환상적인 호흡은 거의 예술의 경지다. 

 

 

영화 속에서 살벌한 영국 출신 킬러로 나오는 ‘탠저린’과 ‘레몬’의 코드네임은 조금 ‘깬다.’ 탄환열차에 모여든 다른 킬러들의 코드네임은 킬러답게 살벌하다. ‘하얀 사신(死神)’도 있고, ‘늑대’와 ‘말벌’도 있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이 환상의 2인조 킬러들의 코드네임은 도저히 ‘킬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탠저린과 레몬이다.

이 살벌한 영국 출신 2인조 킬러들의 코드네임이 귀여운 과일들이라니 가당치 않다. 테스토스테론을 뿜어대며 쿵따리샤바라를 열창하는 남성듀오 ‘클론’이 ‘소녀시대’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꼴이다. 

이들이 현장에서 자신들의 코드네임을 대면 상대들은 모두 당황하거나 비웃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오렌지과에 속하는 자신들의 코드네임이 썩 만족스러운 듯하다. 백인 탠저린은 스타일리시한 정장 차림의 말쑥한 신사형이라면 흑인 레몬은 뚱뚱한 잠바때기다. 용모만 보면 표범과 불곰쯤이 어울릴 듯하다. 

더욱 기이한 건 이 기묘한 환상의 2인조가 업계에선 쌍둥이로 통하고 스스로도 자신들이 쌍둥이라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적진을 휘젓는 이들의 호흡을 보면 이들이 쌍둥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마 이들이 탠저린과 레몬이라는 코드네임에 썩 만족하는 이유는 그 이름이 상징하는 ‘오렌지’의 특성에 있는 듯하다. 탠저린이든 레몬이든 자몽이든 모든 오렌지과에 속하는 과일은 ‘다양함 속의 하나’를 상징한다. 매우 독특한 과일이다.

오렌지과 과일들은 사탕으로 치면 과자 봉지 속에 낱개 포장된 사탕이다. 감귤이든 레몬이든 오렌지 껍질을 까보면 서로 독립된 개체들이 단일대오를 이루고 있다. 씨도 각 개체가 독립적으로 품고 있다. 모두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껍질 속에선 상호의존적이다. ‘함께’면서 ‘따로’고, ‘따로’면서 ‘함께’이기도 하다. 

‘여럿이면서 하나(Out of Many, One: E Pluribus Unum)’라는 구호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모여 사는(혹은 살아야 하는) 미국의 모토이고, 실제로 ‘에 플루리부스 우눔(E Pluribus Unumㆍ라틴어로 여럿이 모여 하나라는 뜻으로 미국의 건국 이념)’은 미국의 많은 관공서 건물 입구에 새겨져 있고, 관공서에서 발급하는 문서들에 인장으로 찍혀 나온다. 

미국을 상징하는 과일을 꼽으라면 단연 오렌지가 될 듯하다. 그래서인지 오렌지와 오렌지 주스는 미국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식품이기도 하다. 미국은 오렌지를 떠올리게 하고, 오렌지는 미국을 느끼게 한다. 오렌지과에 속하는 탠저린과 레몬은 그렇게 완전히 이질적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환상적인 협업을 한다. 서로 다르면서도 쌍둥이다. 
 

 

영화 속에서 ‘무당벌레(브래드 피트)’와 결투를 벌이다 탄환열차 밖으로 팽개쳐진 탠저린은 몸을 날려 달리는 탄환열차 창문에 스파이더맨처럼 붙어서 탄환열차 창문을 주먹으로 깨고 들어온다. 거의 중국 무협영화나 만화적인 장면이다. 

탠저린이 그렇게 목숨 걸고 ‘말도 안 되게’라도 탄환열차로 돌아오는 이유는 무당벌레를 잡기 위해서도 아니고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자신의 형제 레몬을 지키기 위해서다. 탠저린은 평소엔 레몬과 티격태격하고 레몬을 놀려먹기도 하지만, 위기상황에서는 레몬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진정한 형제다. 

레몬 역시 탠저린의 죽음을 확인하고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주저앉아 눈물만 흘린다. 배경음악으로 Peter, Paul & Mary의 ‘500마일(Five Hundred Miles)’이 흐른다. 세상에 홀로 남은 기차여행자의 노래다. 형제란 그런 것이다. 마치 팔다리와 같다. 네개의 팔다리는 서로 따로 놀지만 함께해야 하고, 없으면 가장 시리다.

얼마 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 수비진이 골키퍼까지 포함해서 5명이 모두 ‘Kim’이어서 한국을 상대하는 외국 방송사 중계진이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둔갑술을 부린 홍길동 5명이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미국 대표팀 수비진이 모두 ‘케네디’ 선수라면 우리 중계진도 짜증 났을 듯하다. 

단일민족도(度)가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는 어찌 보면 모두가 친형제는 아닐지라도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 4촌형제나 8촌형제쯤은 될 듯하다. 프랑스 혁명 당시 그랬던 것처럼 자유와 평등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굳이 따로 형제애(fraternity)를 첨가하지 않아도 그런 가치들이 구현될 수 있는 환경일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듯하다. 형제 같은 ‘김씨’들끼리 콩알 한쪽을 두고도 싸워도 너무 처절하게 싸운다.
 

 

우리나라의 애매한 ‘보수’와 ‘진보’라는 것도 어찌 보면 탠저린과 레몬과 같다. 서로 대단히 이질적이고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은 오렌지과에 속하는 쌍둥이 형제다. 탠저린과 레몬은 평상시에는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고 한번만 더 짜증 나게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극언까지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면서 적들에 대항한다. 

보수당이 됐든 진보당이 됐든 결국 모두 탠저린과 레몬 같은 형제 정당들이다. 일본 속담에 ‘형제는 남의 시작’이라고 하니 형제들끼리 모두 똑같을 수도 없고 한 껍질 속에서 싸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렌지가 그 ‘외피(外皮)’에 해당하는 민생과 안보의 위기상황에서도 서로 콩 한쪽을 두고 싸운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껍질이 상하면 모두 죽는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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