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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5) 올바른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떤 우상이든 파괴해야 해 ... 하지만 정치 지도자·논객들은
자신의 우상은 결사옹위하고 ... 상대편의 우상만 두들겨 패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아내를 납치해서 장인에게 몸값을 받아내려는 창의적인 사기극을 벌인다. ‘전대미문’의 일인 만큼 이 사건을 맡은 미네소타의 한적한 소도시 브레이너드(Brainerd)시의 순박하고 임신 7개월에 몸도 무거운 ‘아줌마’ 여자경찰서장 마지 군더슨(Marge Gunderson)에게 조금은 버거워 보인다. 선입견과 편견이 발동한다.

 

 

경찰관 1명이 사살당하고, 그 자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남녀 2명이 역시 사살당한 ‘강력사건’의 유일한 단서는 경찰관이 죽기 직전에 남긴 이 말뿐이다. “임시번호판도 없는 자동차를 발견했다. 검문하겠다.”

마지는 그 번호가 자동차대리점에서 아직 출고하지 않은 자동차에 붙어있는 표식번호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제리의 자동차대리점에 찾아가 ‘수석 세일즈맨’인 제리를 만나 “최근에 사라진 자동차가 없었느냐”고 탐문한다. 유난히 해맑고 단정해 보이는 제리는 선한 미소를 머금고 “그런 일 없다”고 친절하게 응대한다. 이름을 보아하니 제리(Lundegaard)는 마지(Gunderson)와 마찬가지로 노르웨이ㆍ덴마크계 사람이기도 하다. 

마지는 선해 보이는 ‘고향사람’ 제리를 100% 신뢰한다. 대신 그 대리점 정비부에서 일하는 전과 이력을 가진 정비공 ‘인디언 혈통 빅 풋(Big Foot)’을 의심해보지만 워낙 과묵한 빅 풋은 영어 못 알아듣는 인디언 전사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한다. 그렇게 수사는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지의 고등학교 동창생 야나키타가 찾아온다. 졸업하고 거의 20년만에 처음이다. 사건 수사와 전혀 상관없는 동창생과의 만남이 마지에게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준다. 20여년 만에 마지를 만난 야나키타는 아내가 죽었다는 ‘개드립’을 치면서 마지에게 수작을 건다.

마지는 당연히 순수해 보이는 동창생 야나키타의 말을 믿고 위로한다. 그런데 그 자리가 끝나고 다른 동창생과 통화를 하다 야나키타는 결혼한 적도 없으며, 정신적으로 조금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순간 마지는 대오각성(大悟覺醒)한다. 자신이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고교동창이어서 믿었던 야나키타에게 기만당했듯이 제리도 ‘고향사람’이라서 그를 믿은 것은 자신의 ‘선입견’일 뿐이지, 이성적이거나 연역적인 추론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객지에서 만나면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는 말이 있듯, 원수도 고향 외나무다리가 아니라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만나면 같이 술 한잔하고 어깨동무할 수도 있는 게 고향사람이다. 마지는 곧바로 용의선상에서 제쳐뒀던 제리의 자동차대리점으로 차를 몬다. 비로소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

 

 

형사나 경찰의 일은 기본적으로 ‘연역적 추론(deduction)’이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사실(증거)로부터,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사실(범인)을 추론하는 일이다. 인류의 제한된 지식을 확장시켜온 가장 대표적인 연구방법이기도 하다. 영국 추리소설 작가 코난 도일(Sir. Arthur Conan Doyle)이 탄생시킨 명탐정 셜록 홈스(Sherlock Homes)는 그래서 연역적 추론의 최고봉이다. 

연역적 추론이란 이토록 훌륭한 것이지만, 그 추론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논리적 오류를 범하면 선입견이나 편견 혹은 고정관념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인간은 죽는다→철수는 인간이다→그러므로 철수도 죽을 것이다”는 훌륭한 연역적 추론이지만 “동향과 동창은 믿을 수 있다→제리는 동향이고 야나키타는 동창이다→그러므로 제리와 야나키타는 믿을 수 있다”는 삼단논법은 연역적 추론의 허울을 쓴 괴물과 같은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일 뿐이다. 전제의 오류가 결론의 오류를 낳는다는 거다.

경험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 is Bacon)은 연역법을 먹잇감들이 다닐 만한 곳에 거미줄을 쳐놓는 ‘거미’에 비유하며 그 한계를 지적한다(「학문의 진보(1605년)」). 거미가 거미줄을 쳐놓고 거기에 걸리는 것만 포획할 수밖에 없듯이, 연역법은 그 전제로 삼고 있는 일반적인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들만 밝혀낼 수 있을 뿐이다. 

베이컨은 과학적인 인식을 방해하는 인간의 선입견과 편견, 고정관념을 우리가 벗어나야 할 4가지 우상(偶像, Idol)에 비유한다. ‘종족의 우상(자연현상을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동굴의 우상(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 ‘시장의 우상(남들이 떠드는 헛소문을 믿는 것)’ ‘극장의 우상(유명한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 그것이다.

베이컨의 ‘우상타파론’은 당(唐)나라 고승 임제(臨濟) 선사(禪師)의 일갈과 무척이나 닮았다. 임제 선사는 불제자들이 진정한 정견正見을 얻고자 한다면 이렇게 하라고 극언했다. “조사(祖師, 한 종파의 시조)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나한(羅漢, 불교의 성자)을 만나면 나한을 죽여라.” 

그 모두가 베이컨이 말하는 우상일 뿐이다. 임제 선사는 “내가 보기에는 부처도 한낱 냄새나는 존재요, 나한이나 조사는 너의 목에 씌우는 형틀이요 손발을 채우는 자물쇠일 뿐”이라고 극언을 멈추지 않는다.
 

 

올바른 깨달음(正見)을 얻으려면 어떤 우상이든 파괴해야 할 판에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한낱 정치지도자나 신문방송, 고명(高名)한 논객들의 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민망하고 참담한 일은 우리도 임제 선사의 말씀과 베이컨의 가르침대로 부지런히 우상을 파괴하는 것 같기는 한데, 모두 철저히 상대방의 우상만 가루가 되도록 두들겨 패지, 자신의 우상은 터럭 하나 못 건드리게 결사옹위한다는 거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 우리집 개는 절대 안 문다. 사랑에 빠지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인다. 못났지만 사랑하는 내 자식이 학교에서 ‘꿀밤’ 한대라도 맞고 돌아오면 당장 교무실에 난입해 혈혈단신 적진을 뚫고 선생님의 멱살을 낚아챈다. 사랑은 극강의 전투력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결론을 내려준다: “사랑하면서 현명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It’s impossible to love and to be wise).”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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