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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12) ‘야누스의 얼굴’ 미네소타 나이스
미담 넘쳐나는 너그러운 사람들 ...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선 대폭발
사람마다 다른 분노의 비등점 ... 국가 위기 때 금 내놓은 국민
최고 권력자 내려 앉히기도 ... 권력자, 국민 비등점 헤아려야

영화 파고(Fargo)는 ‘스릴러 코미디’ 장르로 분류돼 있다. 아마도 미국 관객들에게는 극도로 감정을 억누르고 폭발 직전의 상황에서도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모습들이 비현실적이다 못해 코믹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아내와 장인에게 쌓인 불만이 많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항상 미소를 머금고 상냥하게 대한다. 제리는 장인이 자신이 힘들게 기획한 사업 아이템을 날로 먹을 때도 그 부당함을 정면으로 따지지 않고 어정쩡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용을 쓴다. 

어깨가 축 처져 장인의 사무실을 나와서야 주차장의 자신의 차를 걷어차고 두들겨 패면서 분노를 폭발할 뿐이다. 장인도 제리가 못마땅하지만 결코 직설적으로 표현하거나 드러내놓고 무시하지는 않는다. 항상 웃으면서 뼈를 때린다.

브레이너드 시의 여자 경찰서장 마지(Marge) 역시 용의자들을 탐문하고 심문하면서 단 한번도 ‘엄·근·진’한 표정을 짓지 않고 상냥한 말투와 어색하나마 미소를 놓지 않는다. 고교 동창생인 야나키타가 카페에서 자신이 유부녀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옆에 붙어앉아 마지의 어깨를 팔로 감싸는 ‘수작’을 걸어도 물을 끼얹거나 뺨을 갈기지 않고 그저 ‘좋게좋게’ 몸을 사릴 뿐이다.

미네소타의 창녀들도 마지에게 ‘용의자들과의 하룻밤’이라는 불편한 보고를 하면서도 미소를 유지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식당 카운터에 앉은 여직원은 손님이 화를 내고 무례하게 굴어도 마치 웃는 인형처럼 기계적으로 웃으면서 대응한다. 코믹한 장면들이다.

미네소타주 출신 감독인 코언 형제는 미네소타 주민들의 ‘종특’인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의 상냥함을 보여주고 싶어서 굳이 영화 배경을 미네소타주로 설정한 듯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면충돌’을 피하고,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타인에게 관대하고 항상 상냥함을 유지하는 미네소타 사람들의 특성은 ‘미네소타 나이스(Min nesota Nice)’라는 사회학 용어로 정립될 정도로 연구 대상이다.

2004년 미국에 유례없는 독감이 기승을 부리면서 모든 주가 백신 부족 사태로 혼란에 빠졌을 때 오직 미네소타주에서만 백신이 남아돌았다고 한다. 주민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백신을 양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 미네소타 나이스’라고 전 미국이 고개를 끄덕였던 미담美談이다. 덕분에 미네소타주는 외국 난민 수용에 가장 관대한 주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언 감독은 미네소타 사람들이 ‘나이스’하다고 한없이 ‘나이스’한 것은 결코 아니라면서 야누스의 두 얼굴과 같은 ‘미네소타 나이스’를 경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궁지에 몰린 제리는 결코 ‘나이스’하지 않다. 제리는 ‘나이스’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청부업자들에게 아내의 납치를 청부하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침착하게 장인의 시체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어 어딘가에 유기해 버린다. 

영화 내내 뼛속까지 ‘나이스’할 것만 같았던 마지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인청부업자인 칼 쇼월터(Carl Showalter)를 나무분쇄기에 넣어버리고,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를 향해선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제아무리 ‘나이스’한 마지도 이건 참을 수 없다. 비무장상태로 도주하는 용의자에게 총을 쏘는 건 중대한 경찰 복무법 위반이다. 그 탄환이 게어의 다리에 맞았기에 망정이지, 즉사라도 했다면 마지도 옷 벗고 감옥 갈 일이다.

‘미네소타 나이스’는 허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코언 감독의 의심은 결국 옳았던 것으로 판명된다. 2020년 미네소타주에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살인 사건’이발생한다. 발단은 조지 플로이드라는 흑인 청년이 마켓에서 20불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한 것이다. 마켓 주인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는데,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플로이드를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땅바닥에 엎드려놓고 9분 가까이 무릎으로 목을 짓눌러 숨지게 만들었다. 

미국인들은 1992년 LA에서 경찰관의 과잉대응으로 흑인 청년 로드니 킹(Rodney King)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온 나라를 뒤집은 ‘LA 폭동’으로 비화한 경험을 갖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로드니 킹 사건보다 더 악랄하고 참담한 사건이었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워낙에 ‘나이스’하기로 유명한 미네소타 주민들이 이 사건도 최소한 LA 주민들과는 다르게 ‘나이스’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특히나 미네소타주는 흑인 인구가 6%밖에 안 되는 ‘백인 사회’다. 그런데 웬걸, 미네소타 주민들의 반응은 전혀 ‘나이스’하지 않았다.

LA 폭동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았다. 시위는 격렬했고, 경찰서는 불탔다. 마켓 약탈이 이어지면서 비상사태까지 선포돼 주 방위군까지 동원해야만 했다. 한순간에 ‘미네소타 나이스(nice)’가 ‘미네소타 바이스(vice)’가 돼버린 셈이다. 

물은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모든 물이 똑같이 100도에서 끓는 것은 아니다. 1기압에서는 100도에서 끓지만, 0.1기압에서는 50도에서 끓고, 100기압이 가해지는 상태에선 300도가 돼야 끓는다고 한다. 순수한 물에 다른 물질을 혼합하면 200도에서 끓을 수도 있다.
 

 

사람들의 분노의 비등점(沸騰點)도 물과 같은 모양이다. 50도만 돼도 끓어버리는 ‘분노조절장애’급 사람·국민이 있고, 100도에서 끓는 사람·국민이 있으며, 300도는 돼야 끓는 사람·국민도 있겠다.

하지만 변치 않는 사실은 아무리 ‘나이스’한 사람이나 국민들도 계속 열을 가하면 결국은 끓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온도가 200도쯤 돼 보이는데도 전혀 끓을 기미가 없는 북한 주민들이 신비롭기도 하지만, 아마 그들도 300도 되면 끓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듯하다.

우리 국민들은 백신을 양보하던 미네소타 주민들처럼 1997년 외환위기 때 장롱 속 돌 반지까지 꺼내들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길게 줄을 설 만큼 분명 ‘나이스’한 국민들이다. 위정자들이 우리 국민들의 ‘나이스’함을 믿어주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너무 믿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우리 국민들도 미네소타 주민들처럼 무척이나 ‘나이스’하지만, 그토록 ‘나이스’한 미네소타 주민들이 ‘플로이드 사건’ 때 모든 경찰서를 불 질러 버렸던 것처럼, 우리 국민들도 한번 끓어버리면 전직 대통령들을 나란히 손잡고 재판정에 서게 하고 현직 대통령마저도 끌어내리는 국민이기도 하다. 조건에 따라 비등점에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계속 열 받게 하면 물은 결국 끓는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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