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리 룬드가드는 청부업자들에게 “아내 ‘진’을 납치해서 몸값으로 8만불을 요구해 달라”는 황당한 의뢰를 한다. 장인에게 몸값 8만불을 받아서 그들에게 수임료 4만불 주고 자신이 4만불 갖겠다는 ‘비전’을 제시한다. 제리 룬드가드는 왜 이러는 걸까.
청부업자들도 자기 아내를 납치해 달라는 기상천외한 의뢰가 황당해서 그래야 하는 이유를 물어본다. 제리도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청부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는 듯 생각을 가다듬는 것 같더니 이내 ‘내가 당신들한테 그런 것까지 설명해야 하느냐’고 버럭한다.
아마도 돈 4만불을 마련하기 위해 청부업자들마저 황당해하는 ‘아내 납치 자작극’을 벌여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납치자작극은 대개 자신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한 상황을 설정하는데, 제리는 자신이 납치당했다고 하면 장인은 물론, 아내조차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순순히 몸값 8만불을 지불하리라고 자신할 수 없다.
돈 많은 장인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아니라 이게 모두 당신의 딸 진과 당신의 손자 스카티를 위한 것”이라며 사업자금을 빌려달라는 제리에게 “네가 내 딸과 내 손자 걱정까지 할 필요 없다. 내 딸과 내 손자는 내가 보살핀다”고 무지막지하게 잘라버린다.
제리가 어렵게 구상하고 정지작업을 해 놓은 사업 아이템도 장인이 가로채고 사업소개비 명목으로 푼돈을 받으라고 한다. 한마디로 장인은 사위 제리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제리는 장인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다. 아내 진도 제리가 아닌 친정아버지를 ‘가장’으로 여기는 모습이다. 장인이 집에 오는 것을 불편해하는 남편 제리는 안중에도 없이 친정아버지를 불러 저녁식사를 하곤 한다.
아내와 장인은 제리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사위의 집에서 저녁 먹고 거실을 차지하고 앉아 아이스하키 중계방송을 끝까지 본다. 제리는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집단 따돌림당한다.
이런 상황에선 제리가 납치당했다고 자작극을 벌여도 장인이 몸값 내어줄 것 같지 않고, 아내도 장인에게 쫓아가 몸값을 내어달라고 하소연할 것 같지 않다. 결국 ‘아내가 납치당해야 돈이 나올 것 같다’는 제리의 생각은 파국을 부른다.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진은 납치범들에게 저항을 하다 난폭한 청부업자의 신경을 건드려 맞아죽고 만다. 사위 제리를 못 믿어 자신이 직접 납치범들에게 몸값을 전달하겠다고 나선 장인도 눈 덮인 주차장 옥상에서 납치범의 총에 맞아 죽는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제리는 눈밭 위에 뒹굴고 있는 장인의 시신을 보고 그다지 경악하거나 애통해하지 않는다. 그저 잠시 당황할 뿐이다. 마치 갑자기 길에 뛰어들어 자기 차에 부딪혀 죽은 개 한 마리를 굽어보는 낭패스러운 표정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제리가 주위를 한번 살펴 목격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동차 트렁크를 여는 것으로 그 장면이 마무리된다. 아마도 운수 사납게 자신의 차에 치여 ‘로드킬’당한 개나 사슴을 자동차 트렁크에 욱여넣어 운반해서 어디엔가 유기해버리듯 장인의 시신을 처리한 모양이다.
모르긴 몰라도 저승에서 제리의 장인과 아내는 자신들이 비명횡사한 원인이 제리 때문이라고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작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간 제리가 장인과 아내를 자신이 죽음으로 몰았다고 인정하고 있을까. 아마 제리는 감방에서 거꾸로 ‘이게 다 장인과 아내 때문’이라고 분노를 삭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군주를 상대로 정치자문을 하면서도 결코 말을 에둘러하거나 어휘를 순화하지 않았다는 맹자(孟子)는 한때 전국시대의 패자(覇者)로 교만이 극에 달했던 위(魏)나라의 양 혜왕(梁惠王)에게도 면전에서 돌직구를 날린다.
“군주가 신하를 자기 수족처럼 중히 여기면 신하는 군주를 자기 배나 심장처럼 여기고, 군주가 신하를 개나 말처럼 여기면 신하는 군주를 장삼이사(張三李四)처럼 여기고, 군주가 신하를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여기면 신하는 군주를 원수로 여기게 됩니다(맹자 양혜왕편).”
영화 속에서 장인이 ‘군주’라면 제리는 그의 ‘신하’다. 그런데 장인은 사위인 제리를 결코 수족처럼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거의 ‘개나 말’ 아니면 옷에 지저분하게 묻어 털어버려야 할 ‘흙이나 지푸라기’처럼 대한다. 맹자의 경고처럼 제리도 장인을 ‘아무개씨’나 혹은 원수로 여기고 아내를 납치해서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낼 구상을 한다. 미안함이나 죄책감 따위가 들지 않는다.
집권당에서 집단 따돌림당하고 쫓겨났던 전직 당대표가 대통령을 ‘아무개씨’ 대하듯 막 대하고 원수처럼 여기면서 조만간 새로운 당을 만들어 혼내주겠다고 한다. 시한폭탄 시계가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으름장도 놓는다.
영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테러리스트의 협박 장면을 보는 듯하다. 제리가 장인에게 실망하고 분노한 모습과 퍽이나 닮았다. 그렇다고 반대편이 정상인 것 같지도 않다. 전직 당 대표가 선거에서 승리하고 이제 당을 위해서 자기 사업 좀 해보겠다는데 ‘노하우’는 전부 가로채고 손 떼라 하고, 아예 내쫓고 뒤에서 자기들끼리 ‘체리 따봉’ 외치며 기꺼워한다. ‘당은 내가 알아서 잘 할 테니 네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한다. 제리의 장인을 닮았다.
비틀스(The Beatles)의 왕팬을 자처하는 스티브 잡스가 어느 강연에서 애플 경영의 모델을 비틀스 밴드로 삼는다고 하던 말이 인상적이다: “나의 사업 모델은 비틀스다. 비틀스 밴드의 4명은 서로의 부정적인 성향들이 드러나지 않게 서로 억제하고 서로 균형을 맞춰서 4명의 합보다 뛰어난 전체를 만든다. 위대한 것은 결코 한 사람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맹자도 스티브 잡스도 모두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당연한 일이 가장 어렵다. 그래서 제리는 가장 쉬운 일이 가장 어려워서 ‘아내 납치극’이라는 가장 어렵고 기상천외한 일까지 실행에 옮겼는지 모르겠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