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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8) 모든 정부 영원히 반복하는 문제
권력 집착하는 병적 성향 사람들 ... 민생에 관심 없는 정치꾼의 세상

남편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가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에게 발주한 ‘아내 납치’ 청부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다. 수임료 4만불도 그럭저럭 적당해 보인다. 이 미션이 분명 북한 영변에 침투해 플루토늄을 탈취해 오라는 톰 크루즈급 ‘미션 임파서블’은 아닐 텐데, 이 간단한 ‘미션’이 6명이나 죽어나가는 ‘블록버스터’급 범죄액션물이 되는 것이 황당하다.

 

 

‘납치 청부’라는 일을 하다보면 누구든지 게어와 쇼월터처럼 그토록 폭력적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게어와 쇼월터가 태생적으로 원래 폭력적이었기 때문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청부업자에게 일을 맡기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난장판이 되고 마는 걸까. 아니면 제리가 좀 더 ‘착한’ 청부업자를 고용했다면 ‘해피엔딩’이 가능했을까.

이 궁금증은 매우 오래된 정치의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정치에 발을 담그면 누구나 부패하고 ‘입벌구(입만 열면 거짓말이란 속어)’하는 악당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의 영역이란 본래 그런 기질이 있는 사람들만 찾아가는 곳일까.”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던 SF 대작 영화 ‘듄(Dune)’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소설이란 기록을 갖고 있는 신화적인 작가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의 동명소설(1965년)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의 정치적 통찰력이 돋보여 정치학 교재로도 권장되는 특이한 SF 소설이다. 

프랭크 허버트는 행성 간의 정복 전쟁이 벌어지는 미래사회에도 변하지 않는 비극을 그린다. “모든 정부는 한가지 문제가 영원히 반복되며 고통받는다. 정신적으로 병적(病的)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이 유난히 권력을 탐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이라는 것 자체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부패하기 쉬운 사람들만을 골라 자석(磁石)처럼 끌어당기는 특수한 성격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사람들은 폭력에 쉽게 취하는 경향이 있고 한 번 취하면 금방 중독이 되는 병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경제의 발목을 잡는 권력자들의 ‘정치질’에 어지간히 분노했는지 「예종(隸從)의 길(The Road to Serfdom·1943」이라는 정치학적 연구를 발표한다. 편한 말로 하면 ‘개돼지가 되는 길’쯤 되겠다.

분명 가장 탁월한 경제학자인데 오히려 그 한권의 정치담론으로 기억되는 경제학자다. 이 작은 책자의 제10장 제목이 ‘정치에서는 왜 최악의 인간이 정상을 차지하는가?(Why the worst get on top)’이다. SF 소설 작가와 유사한 시각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하이에크는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 하고(wield power) 권력을 가장 무자비하게 행사하고 싶은(most ruthless in using power) 성정(性情)을 지닌 자들만이 정치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개탄한다. 국민을 위한다거나 자신의 이상과 선을 실현하려는 꿈만으로 인간이 처절하게 모든 것을 희생하고 피투성이가 돼 권력의 정점을 향해 기어오르진 않는다. 

이타심은 이기심처럼 강력하지 못하다. 권력을 사유화해 누리고 무자비하게 휘둘러보려는 욕망을 가눌 길 없는 자들만이 권력의 정상을 차지한다. 그렇게 국민은 권력자들의 노예가 된다. 하이에크는 “권력자들이 ‘착한 사람’이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마음 따뜻한 사람이 벌거벗은 노예 등짝을 채찍으로 갈겨대야 하는 감독관 일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다름없다”고 단언한다.

베트남 전쟁을 ‘더러운 전쟁’으로 몰고 간 미국의 36대 존슨 대통령의 행정부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부패하고 난폭했던 최악의 정권 중 하나로 기록된다. 미국 최고의 전기(傳記) 작가로 추앙받는 로버트 카로(Robert Caro)는 그의 불후의 명작 「권력의 통로: 린든 존슨의 시대(The Passage of Power: The Years of Lyndon Johnson·2012)」에서 존슨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 국민을 기만하고 부패하고 난폭해지는 권력의 속성을 낱낱이 해부한다. 

“권력은 인간의 감춰진 본성을 드러내게 만든다. 인간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권력을 부여하도록 설득하고, 권력을 향해 기어오를 때는 자신의 본성을 감춰야만 한다. 그러나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위장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한마디로 권력을 쥐고 나면 가면을 벗고 꼭꼭 숨기고 있던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권력이란 CIA가 자백 유도제로 사용했다는 티오펜탈(Thiopental)과 같은 일반인들은 접근해서는 안 되는 ‘향정신성 의약품’과 같은 것이거나, 점잖은 지킬박사를 한순간에 살인귀 하이드씨로 돌변하게 하는 약물 정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본다면 청부업이라는 업종이 게어와 쇼월터같이 태생적으로 폭력 성향이 강하고 언제든 총질하고 도끼질할 수 있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자성(磁性)을 지닌 것처럼, 정치라는 업종은 언제든 부패하고 남들을 짓밟을 만반의 준비가 된 사람들만 골라서 끌어들이는 마성(魔性)을 지닌 업종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수많은 정치인이 국회의원 공천에 목숨을 걸고, ‘집권’을 향해 목숨을 걸고 단식을 하고, 비장한 모습으로 당을 박차고 나가 새 당을 만들기도 한다. 오직 국민을 위해서 그 ‘개고생’을 하고 있다는 말이 모두 진심이라면 우리네 정치인들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를 만한 인물들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이토록 많은 크고 작은 정치인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분골쇄신(粉骨碎身) 하겠다고 사방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온갖 비난과 욕설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돌진하고 있다니 대한민국은 분명 축복받은 나라다.

그러나 믿고 싶지 않지만, 만약 권력이란 마성(魔性)의 물질이 지닌 속성을 꼬집은 하이에크나 허버트, 그리고 카로의 통찰이 옳다면 불안해진다. 게어와 쇼월터를 믿고 일을 맡긴 제리는 그들에게 아내와 장인도 죽임을 당하고 본인도 쇠고랑 차고 경찰에 끌려간다.

어쩌면 게어와 쇼월터 같은 가장 난폭하고, 천박하고 고객의 이익은 안중에도 없는 최악의 정치 청부업자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네 처지도 왠지 아슬아슬하다. 이러다가 정말 하이에크의 경고처럼 그들의 ‘개돼지가 되는 길(The Road to Serfdom)’에 들어서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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