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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2)
선거 다가오면 너도나도 ‘개혁’ ... 자신들은 개혁의 주체이지
개혁의 대상은 아니라며 ... 남들에게 변하라 소리 높여

코언 형제감독의 ‘파고’는 ‘가정답지 못한 가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면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건을 보여준다. 영화의 포스터가 인상적이다. 뜨개바늘을 쥐고 있는 한 남자가 하얀 설원에 피를 흘리고 엎드려 있고, 이 장면을 뜨개질로 표현했다. 평범한 가정에 한두점쯤은 있을 법한 어머니가 놓은 ‘홈메이드’ 자수(刺繡)같은 모습이다. 영화 포스터는 이 영화가 ‘홈메이드’ 살인극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영화 주인공 룬더가드(Lundergaard)의 아내 진(Jean)은 거실에서 TV를 보며 한가롭게 뜨개질을 하다가 남편 룬더가드가 고용한 납치법들에게 납치당하는 황당한 꼴을 당한다. 돈 많은 장인이 운영하는 자동차 대리점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는 룬더가드는 항상 돈에 쪼들리고, 너절하고 쩨쩨한 판매사기부터 대담한 은행 대출사기까지 손에 대고 점점 수렁에 빠진다. 

돈 많은 장인이 지원을 해줄 만도 한데, 장인은 똑 부러지지 못한 사위가 못마땅하고, 기대도 없다. 사위의 경제적 곤경도 외면한다. 아내 진(Jean)도 곤경에 빠진 남편 룬더가드의 위안이 돼주지 못한다.

아내는 남편인 자신보다 장인을 믿고 살아가는 듯하다. 결국 룬더가드는 아내 납치극을 벌여 돈 많고 인정머리 없는 장인의 돈을 뜯어낼 궁리를 한다. 당연히 아내나 장인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혹시 관객들에게는 룬더가드가 정신줄을 놓아버렸거나 애초에 정신줄이 없는 악당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룬더가드가 허름한 술집에서 납치 청부업자들을 접선해서 자신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당신들이 내 아내를 납치해서 8만불을 요구하면, 내가 4만불 갖고, 당신들에게 4만불을 주겠다. 장인이 돈이 많으니까 8만불 정도는 금방 내놓을 것이다.” 

룬더가드의 계획을 듣던 청부업자들이 황당해하다 못해 짜증을 낸다. “그럼 그냥 돈 많은 장인한테 4만불 달라고 하지,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짓이냐? 아니면 네 마누라보고 장인한테 가서 4만불 얻어오라고 하든지.” 

룬더가드는 청부업자들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못하고 속 터지는 한숨만 쉰다. 청부업자들이 하는 말은 ‘정상적인 가정’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이들에게 간단히 설명할 길이 없다. 어쩌면 장인답지 못한 장인과 아내답지 못한 아내, 그리고 남편답지 못한 남편이 함께하는 ‘비정상적인 가정’이 룬더가드를 이 지경까지 내몰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톨스토이의 불후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는 가정문제를 다룬 소설은 아닌데, 다소 생뚱맞은 경구(警句)로 시작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한 모습인데, 모든 불행한 가정들은 모두 각각 다른 모습으로 불행하다.” 
 

 

행복의 원인은 단순할 수 있는데, 불행의 원인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룬더가드의 가정의 모습은 세상의 비정상적이고 불행한 모습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숙련된 청부업자들에게도 황당할 만큼 특이한 모습으로 불행하다. 

행복한 가정의 원인은 단순하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다. 구성원 모두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룬더가드의 가정은 구성원들이 모두 자신의 본분에서 벗어난다. 한 사람이 벗어나면 다른 사람들도 벗어난다.

‘국가(國家)’라는 말이 가정이 확장된 개념이라면 가정이나 국가나 그 근본적인 작동원리는 동일하다. 전국시대에 ‘좋은 나라’를 만드는 방책을 묻은 제(齊)나라의 임금에게 공자는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대답한다. “군군신신(君君臣臣) 부부자자(父父子子).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우면 된다.”

행복한 가정의 원인이 단순한 것처럼 행복한 국가의 원인도 사실은 이처럼 단순한 모양이다. 이렇게 쉽고 간단한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보다. 톨스토이는 우리들에게 이처럼 간단한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공자 대신 설명해준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사상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같은 대하소설 속에 자신이 품고 있는 러시아 개혁의 사상을 녹여내서는 전달에 한계를 느꼈는지 말년에 이르러서는 자신의 주장을 논문 형태로 선명하게 밝힌다. 

70세가 넘은 1900년에 집필한 논문 ‘개혁의 3가지 방법(Three Methods of Reform)’에서 그는 러시아 개혁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는 이유를 짚어낸다. “모두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을 바꿀 생각은 안 한다(Every one thinks of changing the world, but no one thinks of changing himself).”

룬더가드는 장인과 아내가 변화하기를 원하고, 장인과 아내는 룬더가드가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구도 자신이 먼저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룬더가드의 가정은 남편이 자기 아내를 납치해서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는 대단히 독특하고도 파괴적인 방식으로 불행해진다.
 

 

선거가 다가오면 으레 그래 왔듯,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꿔야 한다’는 말이 나부끼면서 여기저기가 부산스럽다. 그런데 개혁을 울부짖는 사람들이 모두 남들 보고 변하라고 한다. 모두 자신들은 개혁의 주체이지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모두 ‘니가 가라, 하와이’라며 딴전을 피운다.

아마 톨스토이가 개탄한 1800년대 말 개혁을 둘러싼 러시아의 요란한 말의 향연이 이런 모습이었던 모양이다. 러시아의 권력자들이 서로 ‘니가 가라, 하와이’ 하는 사이에 러시아는 크림전쟁(1853~1856년)에서 당시 무능함의 상징과도 같았던 오스만 튀르크에 한 수 위의 무능함을 드러내며 패한다. 

그 치욕적인 패배 후에 다시 불 지펴진 개혁의 절박함에도 또다시 ‘니가 가라, 하와이’ 타령을 하다 결국 1905년 일본에까지 ‘놀라운 패배’를 당한다. 미국의 원로 정치학자 새무얼 헌팅턴(Samuel Hunting ton)이 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했는지도 이해할 만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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