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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7) 죄의식 따윈 없는 등장인물
소시오패스 · 사이코패스 전형 ... 신문 정치면에도 등장하는 이들
국민 마음에 공감 못하는 정치인 ... 권력 맛이 사람을 바꿔놓은 걸까

영화 ‘파고’에는 2명의 진정한 ‘빌런’이 등장한다. 한명은 장인에게 몸값을 뜯어내기 위해 자기 아내를 납치해달라고 청부하는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다. 또 한명의 ‘빌런’은 노르웨이계로 보이는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다.  영화 속에서 대사도 몇마디 하지 않는 그는 누구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닥치는 대로 죽여버린다.

 

 

코언 감독은 영화 ‘파고’에 빌런 2명을 등장시킨다. 한명은 청부살인업자에게 아내 진(Jean)을 죽여달라고 부탁하는 제리 룬더가드다. 제리는 자동차대리점 판매사원답게 상냥하고 미소를 잃지 않으며 붙임성도 좋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실한 사회인으로 보인다. 그렇게 고객을 상냥한 미소를 머금은 채 꼼꼼하게 벗겨먹는다. 

장인과 아내를 향한 불만도 속으로만  ‘빌드업’할 뿐 한번도 드러내지 않는다. 결코 충동적이지 않다. 장인과 아내에게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아내를 납치할 치밀한 계획을 세운다. 심지어 청부업자들의 비위도 건드리지 않고 예의 바르다.

이처럼 제리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일삼지만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한다. 전형적인 소시오패스의 모습이다. 소시오패스는 윤리의식은 없지만 윤리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감정을 잘 조절하고, 위장도 잘한다. 

또 한명의 ‘빌런’은 노르웨이계로 보이는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다. 과묵하기로 이름난 노르웨이인답게 영화 속에서 대사도 몇 마디 없이 동공瞳孔까지 텅 빈 듯한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아무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데 누구라도 신경을 건드리면 순간순간 ‘급발진’하면서 닥치는 대로 죽여버린다. 그런데 단순히 살인귀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특이한 모습을 보인다.

# 장면 1 = 제리의 아내 진이 살고 있는 집 거실 창문을 박살내고 쳐들어가 진을 붙잡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가 난다. 피가 나지 않지만 게어는 진을 내버려두고 진의 캐비닛을 뒤져 ‘마데카솔’을 찾아 바르고 ‘대일 밴드’를 감고 나서야 다시 추적을 시작한다. ‘자기애自己愛’의 화신이다.

# 장면 2 = 잡범이자 공범 칼 쇼월터(Carl Showalter)와 함께 진을  ‘보쌈’해서 교외의 헛간에 내려놓는다. 차에서 내려놓자 진은 공포에 질려 눈밭을 달린다. 그 꼴이 꼭 머리 잘린 닭이 마당을 가로지르는 꼴이다. 쇼월터는 배꼽을 잡고 웃는데, 게어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그 모습을 바라본다. 진이 느끼는 공포를 아예 이해하지 못한다.
 

 

# 장면 3 = 게어는 오두막집에서 진을 의자에 묶어 놓은 채 TV 연속극을 보다가 진이 계속 비명을 지르자 TV 시청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때려죽여 조용히 만들고 연속극에 집중한다.

# 장면 4 = TV 연속극 속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임신했다는 말을 전한다. 그러면서 이 아이는 너의 아이가 아니라고 통보한다. 그 순간 게어는 너무 놀라 밥 먹던 포크를 떨어뜨린다. 게어의 생각은 ‘딴 세상’을 헤매고 있다.

현실 속에서 동료인 쇼월터가 제리의 장인에게 몸값을 받으러 갔다가 진의 아버지를 죽이고 턱에 심각한 총상을 입고 피범벅이 돼 들어서는데, 게어는 그런 동료의 처참한 꼴을 한번 힐끗 보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연속극에 몰입한다. 현실 감각이 마비된 인물이다.

진을 살해한 다음 쇼월터가 성공보수 8만불을 게어와 4만불씩 나눠갖고, 착수금으로 받은 자동차는 ‘내가 더 고생했으니 내가 갖겠다’고 한다. 돈 받으러 갔다가 턱이 그 지경이 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게어는 인정하지 않는다. 아무 말 없이 무표정하게 쇼월터를 도끼로 찍어 죽여버리고 심드렁하게 나무분쇄기에 거꾸로 처박아 갈아버린다.

여전히 무표정하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고통, 이익에는 극도로 예민하지만 타인이 감정과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극도로 충동적이지만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당연히 자신의 감정을 꾸미거나 감추지도 않는다.

아내 납치 프로젝트 기획을 담당한 제리는 ‘소시오패스’라고 한다면, 프로젝트 실무책임자 게어는 ‘사이코패스’라 할 수 있다. ‘소이코패스’ 제리를 조금 무능하지만 그래도 선량한 인간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내와 장인은 황당하게 죽어나간다.

그런 제리의 황당한 청부를 맡은 ‘사이코패스’ 게어는 급발진하면서 운수 사납게 걸린 모두를 죽여버린다. 그야말로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가 펼치는 ‘환장의 컬래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제리와 게어 같은 인물들은 범죄영화나 신문 사회면의 충격적인 강력사건 기사에나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정치면의 굵직굵직한 기사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태가 극단적인 무언가를 닮은 구석이 있어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반듯하고 선량한 얼굴로 온갖 기상천외한 협잡을 일삼고, 누군가는 보스의 청부만 받으면 누구든지 아무런 감정 없이 무표정하게 물어뜯는다. 아무런 부끄럼이나 두려움이나 죄의식도 못 느끼는 듯하다. 국민의 마음이나 고통을 공감하지도 못하거나 공감하려 들지도 않는 듯하다.

자신과 생각과 철학이 다른 사람을 선천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난히 정치라는 업종을 선호하고 적성이 그 업종에 맞아서 그 바닥에서 맹활약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업종 자체가 일단 발을 담그면 멀쩡한 사람들도 그렇게 변해버리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권력 맛을 본 그런 사람들이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고 이죽거리고 비웃으면 게맛살만 먹어봤지 그 깊고 오묘한 게맛을 알 턱이 없는 우리가 할 말이 없긴 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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