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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파고(Fargo) (10)
도덕 · 윤리 자리 차지한 실력 ... 실력이 공정성 기준 된 사회
공정성 논란 ·불만 끊이지 않아 ... 누리는 것 당연히 여기는 엘리트
그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기회 ... 실력사회는 운수사회의 가면인가

제리 룬더가드(Jerry Lundergaard)는 돈 많은 장인 웨이드 구스타프손(Wade Gustafson)에게 사업자금 75만불을 빌려달라고 어렵게 부탁하지만, 장인은 못 미더운 사위의 얘기를 들어보지 않은 채 손사래부터 친다. 제리가 ‘이게 다 당신의 딸과 손자를 위한 것’이라고 장인의 아킬레스건도 건드려보지만 장인은 “내 딸과 내 손자는 내가 알아서 먹여 살릴 테니 자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고 무지막지하게 잘라버린다.

 

 

제리는 장인의 태도와 멘트에 깊은 ‘빡침’을 느끼고 아내를 납치해서 몸값으로 8만불을 뜯어내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청부업자 게어 그림스루드(Gaear Grimsrud)와 칼 쇼월터(Carl Showalter)를 접선해서 ‘발사 버튼’을 누르고 돌아온 날 저녁 뜻밖에도 장인으로부터 “만나서 그 사업 얘기를 해보자”는 연락이 온다. 

제리는 아내 납치 작전을 취소하기로 하고, 부푼 마음으로 장인의 사무실을 찾아간다. 장인은 그의 널찍한 집무실에서 그의 재정 고문이자 투자의 귀재인 유대인 스탠(Stan)과 버티고 앉아 제리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세워 둔 채 본론으로 들어간다.

장인: “스탠에게 자네 계획을 물어보니 수익성이 충분하다고 그런다.”
제리: “그렇죠? 고맙습니다.”
장인: “그래서...내가 해볼까 한다.”
제리: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다) “장인어른이 하신다니요? 장인어른이 돈 빌려주시면 제가 할 사업인데요? 이자는 꼬박꼬박 드리겠습니다.”
장인: “그럼 은행 찾아가지 왜 나한테 얘기하냐? 내가 은행이냐?”
제리: “…”
장인: “사업 소개비(finding fee)는 주겠어.”

참으로 난감하고 진땀 나는 장면인데, 우리 모두 어디선가 누구로부터 한번쯤 겪어봤을 법한 장면이기도 하다. 장인은 그것이 가장 ‘공정하고 상식적인’ 일처리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듯 당당하다. 제리의 입장에서는 장인은 그야말로 ‘약한 사람 콧구멍에서 마늘 빼먹을 인간’이다. 999가마니 가진 부자가 가난한 사람 1가마니까지 뺏으려 한다. 

그렇게 장인은 사위의 ‘대박 아이템’을 ‘사업 소개비’ 몇 푼 주고 사버리고 만다. 그런데 딱한 것은 제리의 입장에서 장인의 처사가 뭔가 심하게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이지만 부당하다고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언제인가부터 ‘실력(merit)’이라는 것이 도덕이나, 윤리, 인간의 도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차지하는 실력사회(meritocracy)가 돼버렸기 때문인 모양이다. 실력사회에서 실력이 없으면 따지지 말고 찌그러져야 한다.

장인의 지적처럼 은행에서 75만불을 빌릴 만한 ‘실력’이 없으면 사업 소개비 푼돈이나 받고 손을 털어야 한다. 실력사회에서 실력이 없는 제리는 실력 있는 장인에게 부당하다고 따질 수도 없지만, 실력이 없다고 모욕감과 분노까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분노한 제리는 아내 납치극을 벌여 장인에게 ‘양심적’으로 8만불 정도만 뜯어내려던 당초의 계획을 대폭 수정해 몸값을 100만불로 올려버린다. 사업자금 75만불에 정신적 위자료로 25만불을 추가로 붙인 모양이다.

공정성의 기준이 ‘출생신분’이었던 과거 귀족사회(aristocracy)에서 이제 그 기준이 실력인 실력사회(meritocracy)가 됐다고 그것이 역사의 커다란 진보라고 모두 뿌듯해했는데 겪어보니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실력사회에서도 공정성 논란과 불만, 분노가 끊이지 않는다.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사회에 ‘정의’ 열풍을 몰고 왔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은 2020년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는 책을 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후속편에 해당하고, 어쩌면 우리사회에 던지는 더 절실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는 듯한데, 전편에 비해선 관심도가 떨어지는 모양이다. 

책의 원래 제목은 「Tyranny Merit: Wh at's Become of Common Good」이다. 제목을 책 내용에 충실하게 번역하자면 ‘능력주의의 폭정: 능력주의가 공공선(公共善)을 어떻게 만들어버렸는가?’쯤 되겠다. 

부자와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오직 자신들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노력해서 얻는 보상 차원에서 특혜를 누리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의 내밀한 가치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들이 갖춘 능력이나 실력은 남들은 누리지 못하고 그들에게만 주어진 ‘기회(부모 찬스·교육기회·재능계발 기회)’에 의해 이룬 것이 적지 않다. 어쩌면 실력사회(meritocracy)는 인생은 오직 ‘운빨’이 좌우한다는 ‘운수사회(luckocracy)’의 본모습을 가리고 있는 가면일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라는 것이 과연 공정하고 상식적인 것인가의 문제는 공공선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수저들이 주장하는 공정성이나 흙수저들이 생각하는 공정성이나 모두 자신들의 관점일 수밖에 없다. 
 

 

공정성의 기준은 그것이 공공선을 이룰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금수저들이 자신들이 누린 기회의 ‘감사함’을 망각하고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흙수저를 향해 ‘미안함’이나 ‘동정’조차 느끼지 못하고 한치의 양보도 거부한다면 공동체는 유지되지 못한다.

현 정부의 정책 철학이 ‘공정과 상식’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마이클 샌델이 말하는 공공선을 이룩할 수 있는 ‘공정과 상식’인지, 아니면 각고의 노력 끝에 부와 지위를 차지한 자신들이 특권을 누리는 것이 공정하다는 금수저들의 오만한 ‘공정과 상식’인지 알 길이 없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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