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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돈 룩 업(3) 혜성 충돌 임박한 절체절명 순간
선거에만 관심 쏟는 영화 속 대통령 ... 방송국은 시청률 떨어질까 전전긍긍
오로지 흥미와 재미 추구하는 세상 ... 이상하게 진화한 ‘재미 이론’
재미만 관심과 행동에 동기 부여 ... 재미에 점령 당해 놓친 건 없을까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천체물리학 박사과정을 밟는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는 심드렁하게 천체를 관측하던 중 새로운 거대혜성을 처음 발견하고 지도교수인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에게 보고한다.

 

 

새 혜성의 존재를 확인한 민디 박사는 혜성에 제자이자 최초 발견자인 디비아스키의 이름을 붙여준다. 모두가 이 ‘발견’에 환호한다. 그러나 민디 박사가 혜성의 크기, 진행 속도와 궤적을 계산해내자마자 축제 분위기는 곧바로 초상집 분위기로 바뀐다. 6개월 후 지구와의 충돌 궤도를 보여주는 천체망원경 속에 보이는 거대 혜성은 보기에는 신비롭게 아름답지만 지구종말을 의미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국가안보 위기는 없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국가안보의 최종책임자인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을 찾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지만, 대통령은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중간선거와 정치적 스캔들에 골몰하느라 ‘혜성 위기 따위’ 보고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진귀한 꽃을 찾으러 숲속에 들어가면 호랑이가 옆에 다가와도 모르는 법이다.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는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경고에도 꽃 찾기에만 열중하는 대통령에게 절망한다. 어떻게든 국민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에 겨우 연줄이 닿는 작은 신문사에 정보를 제공한다. 이 신문사는 그들을 미국에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모닝 토크 쇼인 ‘데일리 립(The Daily Rip)’에 연결시켜 준다.

프로그램 이름 자체가 ‘아침 수다방’이다. 그날그날의 다양한 이슈를 말재주 현란한 남녀 앵커가 ‘재미있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첫 꼭지는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는 남녀 가수의 이별과 재결합 이슈로 채워진다. 

두번째 꼭지가 지구를 향하고 있는 거대혜성 소식이다. 거대혜성도 사고 친 연예인 취급한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앵커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프로그램에 출연해 다급하고 초조한 민디 박사와 디비아스키를 상대로 혜성 위기를 최대한 재미있게 풀어가려고 끊임없이 말장난을 한다. 방송이란 시청자들을 재미나게 해줘야지 우울하거나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성질 급한 디비아스키는 지구종말을 두고 말장난을 이어가는 진행자들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러버린다. 현재 지구가 처한 심각한 상황을 참으로 재미없고 무지막지하게 한마디로 전달한다. “우리 모두 X 됐다구!”
 

 

대통령이 지구종말보다는 자신의 중간선거가 더 중요했던 것처럼, 방송국과 앵커들은 지구종말보다 더 심각한 것이 시청률 하락이다. 백악관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던 과학자들은 방송국에서는 ‘재미없다’는 이유로 쫓겨난다.

재미있어야 할 방송에서 가뜩이나 재미없는 ‘혜성 위기’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지 못해 아침방송을 망쳐버린 디비아스키라는 대학원생을 방송국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방송 후 실시간 시청률 변동 그래프에서 재미없는 혜성 위기 꼭지의 시청률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혜성 위기 소식은 당장 방송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퇴출된다. 그날 이후 미국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어진 디비아스키는 편의점 알바로 전락하고 만다. 디비아스키가 잘못했다. 

정치인도 연예방송에 출연해서 재미있게 수다를 떨어야 지지율이 올라간다. 디비아스키처럼 진지해서는 안 된다. TV 강의도 ‘팩트’를 조금쯤 왜곡해서라도 무조건 재미있게 해야 스타 강사가 되고, 스타 강사는 그 분야 최고 권위자가 되는 세상이다. 재미가 세상을 지배한다. 육아상담 전문가도, 개 조련사도, 요리사도 일단 재미있어야 한다. 전문성은 그다음 문제다.

‘재미 이론(fun theory)’이란 본래 ‘재미를 통해 실생활에 필요한 기술을 학습한다’는 의미로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랠프 코스터(Raphael Koster)가 2004년 창안한 이론이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재미 이론’은 오직 재미만이 모든 일의 관심과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는 의미로 진화돼 사용된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고, 재미만 있으면 못할 짓이 없다는 거다. 

방송도 인터넷도 유튜브도 모두 재미에 점령당한 지 오래된 듯하다. 영화와 드라마, 연예인들의 잡다한 신변잡기에서 사건 사고 소식까지 거의 ‘막무가내식 재미’가 넘쳐난다. 재미 자체를 탓할 일이 아니겠지만, 혹시 우리 모두 재미를 찾느라고 영화 속에서처럼 인류종말의 소식까지 묻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우리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1960년대 풍요가 정점에 도달하면서 병들고 타락하기 시작한 미국사회를 경고하는 의미가 들어 있는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불후의 명곡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Sound of Silence)’ 노랫말 마지막 구절은 매우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이제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휘황찬란한 신에게 절하고 기도할 뿐이다/그 휘황찬란한 불빛 속에 경고의 사인이 보인다/그 사인은 이렇게 말한다/ ‘선지자들의 말씀은 이제 그저 지하철 벽의 낙서나 서민임대아파트 남루한 현관 벽에 낙서로나 쓰여있을 뿐이다’/.” 
 

 

재미없는 선지자들이나 현자들은 방송에 초대받지 못하고, 그들의 재미없는 말씀들도 모두 퇴출당하고, 그들의 자리는 모두 재미있는 연예인, 재미있는 수다와 입담으로 채워진다. 모두 ‘재미의 신’에게 절하고 더 재미있는 것을 만들어달라고 기도한다. 선지자들과 현자들의 재미없는 말씀들은 모두 아무도 찾지 않는 도서관 서가에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이탈리아의 독특하고 창의적인 작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는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저서에서 고전이란 “중장년쯤 되는 사람들이 ‘나는 ○○를 지금 2번째 읽고 있다’고 말하지 결코 ‘나는 요즘 ○○를 처음 읽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고전이란 모든 사람이 알고는 있지만 읽지는 않는 책”이라는 농담과 비슷한 정의다. 다시 말하면 ‘좋다고는 하는데 재미없어서 읽지 않는 책’이다.

포르노는 이와는 반대다. ‘나쁘다고는 하는데 재미있는 것’이어서 ‘모두가 본 적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모두가 2번 이상 본 적 있는 것’이 곧 포르노다. 고전은 사라지고 포르노만 넘쳐난다. 문득 나홍진 감독의 영화 ‘곡성(2016년)’의 유명한 대사 한마디가 머리를 맴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요허냐고!”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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