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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돈 룩 업(2) 정치적 궁지 몰린 영화 속 대통령
거대한 정치 쇼로 지지율 회복해 ... 국민보다 소중한 ‘금쪽같은 내 정권’
한국에 대입해도 다를 바 없어 … 정치적 모든 것 혼란과 분란 야기

미시건 주립대학 천체물리학과의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박사팀은 우연히 직경 10㎞짜리 새로운 거대 혜성을 발견하고 샴페인을 터뜨리며 환호한다. 그런데 그 기쁨도 잠깐이다. 혜성의 진행방향을 측정한 그들은 모두 사색이 돼버린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그 혜성은 하필이면 하나의 점에 불과한 지구를 정조준하고 있다.

 

 

혜성이 떨어질 지역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칠레 앞바다 600㎞ 지점이다. 혜성의 비행 방향이 바뀔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0’이다. 과학자들은 ‘6개월 14일 00시간 00분 00초 후’라면서 지구종말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초 단위’로 움직여 미국종말 시계를 멈춰야 한다. 그런데 민디 박사로부터 지구종말 ‘보고’를 받은 미국 대통령 올린(메릴 스트립 분)은 왠지 느긋하고 눈빛이나 말투가 딴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민디 박사의 보고를 받은 올린 대통령은 지구충돌 가능성이 100%라는 민디 박사에게 ‘세상에 100%라는 것은 없다’고 타이르려 든다. 

민디 박사는 98.7%라고 수정한다. 올린 대통령은 “그것 보라”며 의기양양해한다. 올린은 대통령에 당선될 1%의 가능성을 댓글부대와 정경유착, 정언유착 등등 온갖 ‘협잡질’을 동원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인물이다. 

‘정치는 예술’이며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는 말을 매일매일 체험하고 신봉하며 살아가는 정치인들에게 ‘과학적 인과관계’란 철딱서니 없는 소리들이다. ‘정치적’으로는 불가능이란 없다. 올린 대통령은 부들부들 떨면서 숨넘어가는 소리로 혜성 충돌의 과학적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민디 박사를 칭얼대는 유치원생 달래듯 한다. 

올린 대통령은 민디 박사의 보고를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다른 과학자들에게 ‘교차검증’을 시킨다. 모두 민디 박사의 예측과 일치한다. 불행하게도 혜성의 움직임은 정치처럼 예술적으로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라 과학처럼 고지식하다. 

올린 대통령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혜성충돌을 국가 ‘어젠다 0순위’에 올려놓는 것은 아니다. 6개월 후에 들이닥칠 혜성보다는 코앞에 닥친 중간선거가 우선이다. 

올린 대통령과 참모들은 ‘혜성 위기’를 중간선거 악재로 판단하고 이를 봉인해 버린다. 얼마 후 대법관 지명자의 섹스 스캔들이 터지고, 올린 대통령 본인의 섹스 스캔들이 터지자 이 치명적인 스캔들을 덮기 위해 6개월 후에 거대혜성이 지구를 들이받는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터뜨린다. 큰 이슈는 더 큰 이슈로 덮겠다는 계산에서다.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린 올린 대통령은 거대한 ‘정치 쇼’를 기획한다. 사람들이 감정적이 되기 쉬운 밤 시간에 미국 군통수권자로 함정에 올라 성조기를 배경으로 서서 ‘내가’ 미국이 보유한 모든 역량을 결집한 핵미사일로 혜성을 파괴해 여러분과 세계를 지키겠노라고 비장하고도 웅장한 지구방위 계획을 밝힌다.

연설을 마치자 성조기와 올린 대통령 뒤로 어두운 밤하늘에 한강 불꽃축제처럼 폭죽이 터지며 어둠이 물러간다. 온 국민이 열광한다. 무능, 무지, 무도하기 짝이 없는 올린 대통령의 지지율이 미사일처럼 솟구친다. 

아무리 미워도 국가 위기상황에서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전 세계에서 약탈과 방화가 벌어지고 모든 사람이 패닉에 빠지지만 올린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은 지지율 회복에 환호한다. 국가와 국민보다 더 소중한 것이 ‘금쪽같은 내 정권’이다.

올린 대통령은 분명 훌륭한 ‘정치인(politician)’은 아니지만 놀랍도록 뛰어난 ‘정치적 동물(political animal)’이거나 무시무시한 ‘정치적 야수(political beast)’임에 틀림없다. 미국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를 우리나라에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으니 딱하다.

정치적이라는 말은 ‘정치를 기반으로 하는’이라는 뜻이니 두 어휘의 의미가 같은 것이어야 할 텐데 전혀 다른, 어쩌면 반대말이 돼버리니 당황스럽다. 과학은 과학적으로 하면 되고, 윤리는 윤리적으로 하면 되는데 유독 정치만은 정치적으로 하면 난장판이 된다.

일상적인 뒷담화에서 ‘그 사람은 좀 정치적’이라는 말은 대개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거나 원칙 없이 시류에 영합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때로는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사람을 의미하기도 한다.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이라는 1950년대 정치학자는 정치를 이렇게 정의했다. “정치란 제한된 사회적 가치들을 사회 전체를 위해 (폭력이나 강제가 아닌) 권위를 통해 분배하는 일.” 아직 대부분 그의 정의에 동의한다. 

이스턴의 정의에 따른다면 정치란 곧 ‘민생(民生)’이다. ‘정치적 판단’이나 ‘정치적 결정’ ‘정치적 고려’라는 말도 당연히 민생을 위한 것이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모양이다. 정치에 ‘적(的)’자 하나만 더 붙으면 정치의 본래적 목표와는 동떨어진 온갖 협잡질을 의미한다. 
 

 

올린 대통령도 혜성충돌 정보를 접하고 정치를 해야 함에도 모든 일을 오직 정권의 안위(安危)를 중심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정치적으로 판단하는 짓만 한다. 여당의 대표 선거, 탄핵 청문회, 특검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동물들의 온갖 험악한 정치적 공방을 보노라면 저 무수한 고성과 이죽거림들이 데이비드 이스턴이 정의한 정치(민생)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혼란만 가중되고 혼돈은 더욱 깊어지는 듯하다.

이쯤에서 오래된 매우 씁쓸한 농담 하나. 분야별 명망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떤 직종이 인류사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위대한 직업인지를 토론했다. 

의사: “아담의 갈비뼈를 빼내 여자를 만든 것이 바로 의사다. 당연히 의사야말로….”

엔지니어: “당신은 창세기도 안 읽어봤나? 아담과 이브 전에 태초에 모든 것이 캄캄한 혼돈과 혼란이었을 때 누군가 하늘과 땅을 나누고 빛을 만들어 낮과 밤을 나눴다. 그것을 해낸 것이 바로 엔지니어들이다.” 

정치인: “그렇다면… 태초의 그 캄캄한 혼돈과 혼란을 만든 것이 누구일 거 같은가? 바로 우리 정치인들이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전해진다. 회식 자리에서 정치 얘기 꺼내면 벌칙으로 그날 회식비를 부담하게 하기도 하고, 단톡방에 걸핏하면 정치 얘기를 올리면 ‘강퇴’당하기도 한다. 모든 ‘정치적’인 것들은 혼란과 분란을 야기하기 때문인가 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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