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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돈 룩 업(6)
지구 파괴할 혜성 6개월 후 도착 ... 거짓 희망 설파하는 지도자들…
엇갈린 여론, 으르렁대며 대치 ... 우리나라 보수 vs 진보 마찬가지
공수 교대하며 상대 악마화해 ... 생각 다르면 ‘그들’ 아닌 ‘그것’
강물도 산을 돌아 흐르건만 ... 인간 관계 ‘나와 너’의 관계여야

지구를 완전파괴할 만한 직경 10㎞ 거대혜성 ‘디비아스키’는 6개월 후 도착 예정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 그대로 ‘우직하게’ 날아온다. 요행은 없다. 태풍의 예상경로는 바뀌기도 하고, 진행속도가 느려지기도 하고, 그 강도가 커졌다 작아지기도 하는데, 혜성은 태풍이 아니다. 그런 법이 없다.

 

 

지구를 완전파괴할 만한 직경 10㎞ 거대혜성 ‘디비아스키’는 6개월 후 도착 예정이라는 과학자들의 예측 그대로 ‘우직하게’ 날아온다. 요행은 없다. 태풍의 예상경로는 바뀌기도 하고, 진행속도가 느려지기도 하고, 그 강도가 커졌다 작아지기도 하는데, 혜성은 태풍이 아니다. 그런 법이 없다. 

사람들은 지구를 파괴할 수도 있는 혜성이 날아오는데도 별 반응이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태풍쯤으로 착각하는지 직경 10㎞짜리 혜성이 지구에 도착할 무렵이면 100m짜리쯤으로 작아질 것이라고 믿는 눈치다. 

어쩌면 믿는다기보다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백악관도 이런 대단히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사람들의 희망을 부채질한다. 0.1%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싶은 사람에겐  50%쯤으로 느껴지게 마련이니까. 

국민들을 공포로 다스리기 불가능하다면 희망으로 다스려야 하는 것이 국가 지도자들이다. 희망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으면 장밋빛 ‘거짓 희망’으로 눈속임이라도 해야 한다. 희망이 사라진 상태의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은 무력과 공포밖에는 없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영화 속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은 어쩔 수 없이 거짓 희망으로 국민들을 다스리는 길을 택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도 언젠가부터 이제는 국민들을 공포로 다스리려는 시도는 점차 맥이 빠지고 대신 거짓 희망으로 다스리는 듯해서 이것이 웃어야 하는 일인지 울어야 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도자가 설파하는 거짓 희망에 속는 국민들도 있고 속지 않는 국민들도 있기 마련이다. 급기야 미국 시민들은 ‘룩 업파(절망파)’와 ‘돈 룩 업파(희망파)’로 쪼개져 극렬하게 부딪힌다. ‘룩 업파’는 혜성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하늘을 좀 올려다보고 현실을 직시하고 정부가 안심하라는 말만 하지 말고 당장 신뢰할 만한 대책을 내놓으라고 잡아먹으려 든다. 
 

 

반면 정부 지지층들은 ‘돈 룩 업파’가 돼 혜성 위기는 과학자들이나 반정부세력이 날조한 ‘가짜뉴스’일 수도 있다는 가짜뉴스를 퍼 나르며 룩 업파에게 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댄다. 룩 업파와 돈 룩 업파는 미디어를 통해 치고받는 것으로는 분이 안 풀리는지 인터넷 말싸움하다 벌떡 일어나 ‘현피’ 뜨러 나가는 중학생들처럼 거리로 몰려 나간다. 

그렇게 룩 업파와 돈 룩 업파는 무리를 지어 거리를 행진하다 거리 한복판에서 조우하고 서로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흔들고 으르렁대며 대치한다. 서로를 향하여 피켓을 창처럼 겨누고 찌르는 시늉을 하며 고래고래 욕설을 퍼붓는다. 결국 그들의 주장이 적힌 피켓은 서로를 향한 흉기로 돌변하고, 서로 뒤엉켜 싸우는 백병전이 전개된다. 길 한복판에서 마주쳐도 ‘대화’는 시도조차 안 한다.

분명 애덤 매케이 감독이 영화 속에서 먼 나라 미국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는 영화 속의 ‘상상’일 뿐인데, 왠지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는 것 같아 고약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도 걸핏하면 서로 공수(攻守)를 교대해가면서 ‘지키자 파’와 ‘바꾸자 파’가 돼 광화문 광장에 떼로 모여서 상대를 ‘악마화’한다.

이처럼 뿌리 깊고 격렬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안 보이는 갈등이 지구상에 아랍세계와 유태인의 그것 말고 또 달리 있을까 싶을 만큼 암울하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유대교 철학과 윤리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1940년대 고향인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히브리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를 통해 아랍세계와 유대인의 상호이해를 위해 노력했던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아랍세계와 유대인들 사이에 ‘대화’를 통해 이 끔찍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소망했던 사상가다.

마르틴 부버는 그가 인류에게 남긴 문화유산이라 할 만한 저서 「나와 너(Ich und Du)」를 통해 그의 ‘대화철학’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세상에는 나와 너(I&You)의 관계와 나와 그것(I&It)의 관계가 존재한다. 인간과 사물(자연·동물)과의 관계는 ‘나와 그것’이지만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나와 그것이 아닌 ‘나와 너’의 관계가 돼야 한다는 게 부버의 주장이다. 

그는 인간들이 맺는 관계가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닌 나와 그것의 관계가 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고 슬퍼한다. 나와 그것의 관계는 나의 상대를 나와 똑같은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의 사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상대를 인간이 아닌 ‘그것’으로 인식하면 상대는 나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이렇게 도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대상은 필요에 따라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또한 그것이 나의 목적에 걸림돌이 된다면 언제든지 정복해 버리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
 

 

아마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자연을 정복했다는 황당한 교만에 사로잡혀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면 인간도 야산이나 숲처럼 ‘정복’하거나 ‘제거’해버릴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힌 모양이다. 

우리가 창조주가 아닌 이상 창세기처럼 ‘빛이 있으라 함에 빛이 생겨나고, 하늘과 땅이 떨어지라 함에 하늘과 땅이 떨어지고, 땅과 바다가 나뉘라 함에 땅과 바다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닐진대, 우리는 문득 문득 그런 착각 속에 살아가는 모양이다.

강물도 산이 있으면 굽이굽이 산을 돌아 흐르지 강물이 이를 악물고 산을 뚫거나 산을 넘어 직진하지 않는다. 하물며 인간을 어찌 그리 대하겠는가. 인간들이 산을 뚫거나 산을 넘어 깔아놓은 고속도로보다는 굽이굽이 산을 품고 돌아 흐르는 강이 아름답다. 혹시 경제개발의 화신(化身)들의 눈에는 고속도로가 더 아름다워 보일지는 모르겠다.

영화 속의 룩 업파와 돈 룩 업파가 서로에게 그러하듯, 그리고 우리사회의 ‘보수파’와 ‘진보파’가 서로에게 그러하듯, 우리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면 쉽게 그들을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그것’으로 바꿔버린다. ‘너도 인간이냐?’고 묻고 ‘저것들도 사람이냐?’고 묻는다. 맞다. 사람이다. 나와 생각이 다른 ‘그들’도 분명 나처럼 생각할 줄 아는 똑같은 사람이지 ‘그것들’이 아니다. 그들이 그것들로 보인다면 그것은 내 잘못이고, 그들이 나를 그것으로 불러도 할 말 없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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