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등장하는 미국의 ‘막장 대통령’ 올린(메릴 스트립 분)은 어마어마한 ‘막장질’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한다. 여타 막장 대통령들과도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요즘 같은 취업난 시대에 어디에도 취업이 불가능할 정도로 여러모로 모자란 자기 아들을 백악관 비서실장에 임명한다.
올린의 막장 인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치후원금을 가장 많이 낸 중국계쯤으로 보이는 여자 의사에겐 나사(NASA) 국장직을 준다. 심지어 자신의 내연남인 포르노 배우 경력까지 지닌 시골 파출소 소장을 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한다.
일반적인 막장 대통령들이라면 대개 국민들 눈을 현혹하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나 ‘눈속임’이라도 할 텐데 그런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당당하게 내지른다. 일견 무지막지한 막장 대통령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올린은 어쩌면 계산된 ‘마키아벨리스트’일지도 모르겠다.
아마 올린 대통령도 많은 국민이 자신의 인사에 분노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짓을 저지르는 건 그래도 자신을 지지하는 또 다른 많은 국민이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니 국민들 눈치 볼 필요도 없다고 믿는 모양이다.
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The Prince)」에서 권력에 목마르고 권력유지에 안절부절 못하는 군주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인간들은 다정하게 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잘못에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잘못에는 감히 대들 엄두를 못 낸다. 따라서 어차피 사람들이 화날 일을 하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5·18 때 군부가 쭈뼛거리지 않고 군홧발로 국민들을 무지막지하게 짓밟아 뭉개버리자 감히 대들 엄두도 못 내고 그들을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만약 올린 대통령이 그 요직들에 자격요건이 애매하고 다소 미흡한 인물들을 앉히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면 국민들이 화내고 대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워낙 공수부대처럼 무표정하게 쳐들어오니 감히 대들 엄두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쳐 날뛰는 주폭(酒暴)은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다음과 같은 훈시도 남긴다. “국민에게 은혜는 여러 번에 걸쳐 조금씩 베풀어야 그 맛을 더 오래 더 많이 느낀다. 반면에 국민을 화나게 할 만한 행위는 모두 한번에 모아 저질러야 한다. 그래야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반감과 분노도 작게 일으킨다.”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에 덜 떨어진 자기 아들을 앉히고, 나사 국장 자리를 정치후원금 퀸에게 선물하고 난 뒤에 전직 포르노 배우를 대법원 판사에 지명했으면 분노의 총합은 산술적으로 ‘300’쯤 돼야 마땅한데 이미 ‘100’까지 오른 국민들의 분노 게이지는 더 이상 오르지도 않는다.
물은 100도 이상 끓지 않는다. 역시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은 버릴 게 없다. 우리도 망언의 전력을 지닌 인물들이 줄줄이 장관과 각종 기관장으로 자리 잡아서인지 국민들은 이제 무덤덤해지는 모양이다.
마키아벨리는 친절하게도 위와 같은 자신의 가르침의 근거도 제시한다. “군주들은 힘을 보유하고 있는 한 적들이나 국민들의 미움이나 비난 따위에 신경 쓸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아이디어는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독창적 아이디어’는 아닌 듯하다.
이런저런 다양한 상황에서 등장하곤 하는 라틴어 경구(警句) 중에 “Oderint Dum Metuant(ODM)”라는 묘한 말이 있다. 영어로 “Let them hate me so long as they fear me”라고 번역되는 것을 보니 우리말로는 “나를 미워할 테면 미워하게 내버려둬라.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한…” 정도의 의미인가 보다.
고대 로마 시인이자 비극 작가였던 루시우스 악시우스(Lucius Accius·BC 170~86년)의 비극 ‘아트레우스(Atreus)’에서 독재자 아트레우스가 내뱉는 말이 원전(原典)인 듯하다. 희대의 엽기적인 독재자였던 칼리귤라(Caligula·AD 10~41년)는 독재자 아트레우스의 통치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ODM’을 아예 자신의 정치 모토로 삼아 다시 한번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마키아벨리도 ODM에 무릎을 탁 쳐서 수천년에 걸쳐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문장으로 남아있다.
오늘날엔 마음에 안 들면 아무 놈이나 팔을 비틀거나 두들겨 패거나 멕시코 국경에 현대판 만리장성을 쌓아버리는 미국 외교정책이나 지금도 국제적인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초토화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대(對)아랍정책을 비난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언젠가부터 중국의 시진핑도 슬금슬금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똥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다.
국회가 거듭 통과시켜 올리는 특검법을 대통령이 거듭 거부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행사한다니 할 말은 없지만 개운치는 않다. 많은 국민을 화나게 소위 ‘명품백’이니 ‘주가 조작 의혹’이니 하는 사건들도 무혐의로 정리된다.
최고의 법률전문가들이 그렇게 판단했다니 역시 할 말은 없지만 역시 개운치는 않다. 많은 국민을 크게 화나게 할 만한 일들을 당당하게 한꺼번에 몰아서 해치우는 듯하다. 혹시 ‘ODM의 원칙’을 따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트레우스의 ‘나를 비난하게 내버려두라’는 말에는 분명히 ‘그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한’이라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대개 문장에서 주절보다 조건절이 더 중요하고, 보험약관에서도 단서조항이 가장 중요하듯 ODM의 원칙도 단서조항에 주목해야 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들에게 이렇게 강조한다. “군주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힘을 잃는 것이다. 힘이 없는 군주는 비난이나 미움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경멸의 대상이 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주의 힘’이란 결국 국민의 ‘지지’일 텐데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의 마음이 사라지는 상태에서도 ODM의 원칙을 적용하는 게 적절할지 의문이다. 정권을 향한 비난 여론이 경멸로 바뀌면 모두에게 불행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